375화. 유군 출격 (5)
“호정.”
“오셨습니까, 아버지.”
회의를 늦게까지 한 모양이었다. 자정이 넘어서 돌아온 연위의 얼굴에 은근한 피곤함이 엿보였다.
연호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이만 들어가서 주무시지요.”
“그전에 할 말이 있다.”
“출정지 말씀입니까?”
“그렇다.”
연위가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의 자식 걱정은 경험에 구애받지 않는다. 열 번의 싸움에서 이겼다 해도, 열한 번째 싸우러 나가는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은 처음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연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들을 향한 걱정은 이전과 같았다.
다만 표정 관리는 확실히 하던 사람이 지금은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연호정의 눈이 반짝거렸다.
“묵룡부입니까?”
연위가 놀라서 물었다.
“그것을 어찌 알고 있느냐?”
그는 모용우와의 대화를 그대로 풀어놓았다.
연위의 얼굴에 굳어졌다.
“탕마군장이?”
“그렇습니다.”
규범을 중시하는 연위로서는 모용우의 발언이 다소 선을 넘은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위는 마음을 바로 했다. 아닌 말로, 연호정도 간간이 자신에게 조언을 하거나 사태의 해결책을 제시할 때가 있었다. 그런 영역에서 보면, 모용군에게 작전을 제시한 모용우의 언행도 크게 나무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일에 혈육이 말려들어 기분이 좋지 않을 뿐.
연위의 마음을 읽은 듯, 연호정이 웃으며 말했다.
“모용 군장은 뛰어난 인재입니다. 무공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략 역시 모자람이 없지요. 그러나 그 모든 부분을 압도하는 것이 바로 품성입니다.”
“품성이라.”
“모용우는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백도다운 사람입니다. 물론 아버지를 제외하면 말이지요.”
연위가 쓴웃음을 지었다.
“네 안목을 믿는다.”
“감사합니다.”
“회의 결과는 내일 정오에 정식으로 알려질 것이다. 다만, 그 전에 의정군의 대수인 네게 먼저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봉공들의 의견이 있었다. 해서 먼저 말해 주는 것이다.”
“경청하겠습니다.”
연위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네 말대로 출정지는 흑도 묵룡부와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묵룡부를 직접 건드리는 것은 아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섣불리 건드렸다간 전쟁이 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물론 전쟁은 어지간해선 나지 않을 것이다. 선제 타격을 가한다 한들 대부분의 일은 외교로 해결이 되지, 진짜 피를 흘리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해. 그러나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맞는 말씀입니다. 해서, 저희에게 하달될 명령은 무엇입니까?”
“그 전에, 홍관(鴻寬)이라는 자를 아느냐?”
연호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만…….”
“그래. 나 역시 그렇다. 후개의 말을 듣기 전까지, 그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잠시 뜸을 들인 연위가 툭 던지듯 말했다.
“홍관이라는 자는 투왕 양천의 제자 중 하나다.”
“……!”
연호정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나도 그러고 싶다만, 아직 그자에 대해 확실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다만 후개가 알아본 바로는 양천의 수많은 제자 중 손에 꼽히는 강자이며, 일부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암중에서 움직이고 있었다고 한다.”
연호정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손에 꼽히는 강자? 양천의 제자라고?’
그는 이미 한 번의 생을 살다 돌아온 남자였다.
말하자면 과거에, 지금으로선 미래에 벌어질 일이나 세상이 아직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홍관이라는 자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투왕 양천의 제자? 물론 그의 제자들과도 싸운 적이 있지만, 연호정이 아는 양천의 제자는 고작 네 명에 불과했다.
넷이라는 숫자는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니다. 한데 아버지께선 ‘수많은’ 제자 중 하나라고 하신다.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약 네가 알고 있었다면 그런 반응은 나오지 않았겠지.”
“저는 양천과 생사결을 벌여 그를 죽이고 흑도의 제왕으로 군림했습니다.”
“안다.”
“흑도의 정보력은, 어떤 부분에선 백도를 압도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적의 수장을 죽이면, 그 수장 휘하의 위험인물들도 찾아서 후환을 없애는 게 보통이지요. 저 역시 그리하였습니다.”
“…….”
“하지만 저는 양천의 제자를 넷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결코 많다고 표현할 만한 숫자가…….”
“그렇다면 둘 중 하나구나. 양천 사후에도 꽁꽁 틀어박혀 뭔가를 획책했든지, 아니면…… 애초에 양천의 제자가 아니었든지.”
“……!!”
연호정의 얼굴이 재차 충격으로 굳어졌다.
연위가 말을 이었다.
“기실, 이번 의정군의 출정지는 네가 묵룡부에서 탈취한 정보들을 토대로 결정하려 했다. 묵룡부가 진행하는 불법적인 사업이 강호의 경제를 뒤흔들고,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문파들이 암암리에 양민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었어. 일차 타격지를 그런 곳으로 정하려 했었다.”
“저도 그리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후개 말로는, 홍관이라는 자를 발견한 것 자체가 무척이나 운이 좋았다고 하였다.”
천하제일방, 개방 후개의 정보력은 천하 정점을 논한다.
그런 후개조차도 운이 좋아서, 우연으로 홍관이라는 자를 조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홍관이란 자가 얼마나 스스로를 잘 숨기고 다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홍관이라는 자,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암살자다.”
“……예?”
연위의 얼굴이 굳어졌다.
“홍관이라는 자는 암살자다. 하지만 평범한 암살자가 아니야. 나도, 후개도, 백도 무림 전체가 몰랐던 암살자 세계의 제왕이 그라고 하였다.”
“……?”
“그리고 그의 힘은, 놀랍게도 강호의 뒷세계를 주름잡고 있을 정도로 엄청나다고 하더구나. 말하자면 천하 모든 암살자의 주인이며, 그림자 진 곳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
“믿기지 않는 정보였다. 심지어 이름과 양천과의 관계만 명확할 뿐, 그 외엔 자세한 정보가 없으니 신뢰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후개는 그자가 진정 무림 살수계의 신(神)으로 군림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연위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개방은 천하 각지에서 모은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정제하여, 반드시 알려야 할 것만 무림맹으로 보내고 있다. 그 걸러 낸 정보의 양만으로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지.”
“알고 있습니다.”
“제갈 군사께서 그러시더구나. 중원 남부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나름대로 명성을 휘날리던 문파들이 어느 시점부터 힘을 잃더니 봉문을 하거나, 산적들에게 멸문당한 문파 혹은 무가(武家)들이 속출하고 있다 하였다.”
“산적이요?!”
“그렇다. 물론 산적만이 아니다. 문파 대 문파끼리 국지적인 전쟁을 벌이기도 했고, 명성 높은 노강호들 몇몇이 질병으로 사망하거나 절벽에서 실족사하는 등의 일도 벌어졌다.”
“그런…….”
“문제는 그러한 일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중원은 넓어. 그리고 질병과 죽음, 다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법이다. 하여 지금껏 개방에서도 남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주시하면서도, 딱히 이상하다고 여기진 않았던 게다.”
개방에서조차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 일을, 제갈문호가 짚어 낸 것이다. 새삼 그의 안목이 얼마나 비범한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후개는…… 그 남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그러나 확연히 눈에 보이는 백도 무림의 세력 축소에 홍관이라는 자가 연관되었을 거라 보고 있다.”
“홍관…… 그렇다면 의정군이 할 일은?”
“그렇다.”
연위가 한숨을 쉬었다.
“중원 남부로 가서 개방과 함께 그 일이 왜 벌어졌는지, 분명한 원인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를 조사하고 이내 홍관이라는 자를 찾아내 제거, 혹은 체포하는 것이다.”
연호정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유군은 말 그대로 유군일 뿐이다. 하지만 상부에서는 사태를 조사하고 그 원인, 즉 홍관까지 찾아내 제거하라고 한다.
유군이 맡을 수 있는 일이면서도 유군의 역량을 한참이나 벗어난 일이다. 그래서 개방의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겠지만, 어디까지나 의정군에 적합한 임무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차라리 소수 정예를 보내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의정군의 수는 오백이 넘어요. 이건 군대가 처리할 일이 아니라 특작 부대나 특수요원(特殊要員)이 처리할 일이란 말입니다.”
“의정군 내에 특작 부대가 있지 않느냐.”
“……!”
연위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봉공들은 멸사군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 이것은 의정군이 처리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그렇기에 더더욱, 의정군이 이 일을 맡기를 바라고 있다.”
연호정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명성 때문입니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만, 그러한 이유가 전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연위는 벽산연가의 가주이며 육대세가의 일원이다. 당연히 그 명성과 존재감은 대단하다.
문제는 봉공 모두가 연위에 뒤지지 않는 존재감과 권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소수의 봉공이 나서서 강력하게 저지해 봤자, 도덕에 큰 위배가 되지 않는 이상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다.
가만히 연위를 보던 연호정이 물었다.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제갈 군사께서도 이 작전을 승인하셨습니까?”
“믿을 수 없게도, 가장 먼저 승인하셨다.”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연위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나 역시 강하게 반대 의사를 보이지 못했다. 군사와 친분이 있어서가 아니야. 군사가 이 일을 승인한 것에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요.”
“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로서는 이번 작전이 이해되지 않는구나. 특히 후개의 말대로 정말 홍관이라는 자가 뒷세계에서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라면, 그를 찾아 제거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음.”
연위가 넌지시 물었다.
“네가 생각하기에는 어떠냐? 이번 일, 군사께서 자신 있게 승인하신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보느냐?”
“있겠지요. 아직은 모르겠지만요.”
“후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어찌 되었든, 그런 명령이 떨어졌다면 저희 역시 나름의 준비를 해야겠지요.”
“면목이 없구나. 나 역시 봉공의 일원이거늘.”
“아닙니다. 저는 오백오십의 군병을 통솔하는 대수입니다. 의아하고 고민은 되지만, 상부의 명령이라면 복종해야지요.”
군대란 그런 것이다. 불합리한 명령이 떨어져도 일단은 움직이는 것, 그리고 그 명령을 최대 효율로 달성하는 것이 바로 군대다.
다만.
‘석연치 않군.’
연호정의 얼굴에 옅은 그림자가 졌다.
‘석연치 않아. 제갈 군사께서도, 후개도 아버지의 성격을 안다. 이 정도 일이라면 미리 언질이라도 줄 수 있었을 터, 보아하니 아버지께서도 회의장에서야 들으신 모양인데.’
그때, 연위가 말했다.
“내가 따로 도와줄 것은 없느냐?”
연호정이 미소 지었다.
“딱히 그러실 건 없습니다. 다만, 하나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편하게 말해 보거라.”
“모용군을 만나 주십시오.”
“모용군을? 지금?”
“그렇습니다.”
“그를 만나서 무엇을 하면 되겠느냐?”
연호정이 단조로운 음색으로 말했다.
순간 연위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굳어졌다.
“……그래, 네 생각이 정녕 그렇다면, 내 그리하겠다.”
반 시진 후.
차를 마시며 창밖을 보던 모용군의 눈에 한 사람이 보였다.
한참이나 그를 보던 모용군이 입을 열었다.
“밖에 누구 있느냐?”
“예, 가주님.”
“술상을 내오거라. 귀한 분이 오셨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