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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369화 (369/963)

369화. 나아갈 길 (4)

상자 안에 있는 것은 두 자루의 손도끼였다.

물론 평범한 손도끼는 아니었다.

“본가 비전의 합금 기술로 만들었다. 일반 철보다 무게는 좀 나가겠지만, 네놈의 그 어설픈 도끼질로도 날이 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바보짓만 안 하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겠지.”

연호정의 눈이 일순 황홀함으로 젖어 들었다.

당관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 하냐? 들어나 봐라.”

“예? 아, 예.”

저도 모르게 공손한 대답이 나왔다. 그 정도로 도끼는 예술이었다.

연호정이 두 자루 중 하나를 들어 올렸다.

‘굉장하군.’

일반 손도끼보다 길이가 조금 더 길었다. 총길이가 대충 한 자 반 정도 될까?

도끼날 자체도 넓고 길어서, 쭉 뻗어 내려온 날 끝이 손잡이 끝에 닿을 정도였다. 날의 길이도 한 자 반에 가까운 것이다.

너비는 한 뼘이 조금 넘었고, 두께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몹시 두꺼웠다. 날이 그리 크고 두꺼우니 평범한 철을 썼어도 어지간한 장도(長刀)만큼의 무게는 나왔을 것이다.

하물며 당가 비전의 합금 기술을 써서 그런지 동일한 양의 철 대비 삼 할은 더 무거웠다. 말이 손도끼지, 평범한 사람이면 쥐고 휘두르기에 다소 부담스러운 무게인 것이다.

‘대체 어떻게 만든 거지?’

물결치듯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도끼날은 그 자체로 예술품과 같았다. 거기에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역동적인 용형(龍形)까지 음각되어 있으니 광룡부보다 더 화려해 보일 지경이었다.

손잡이 색은 각기 달랐다. 한 자루는 흑색이었고, 연호정이 들고 있는 건 백색이었다.

재질은 불명이다. 다만 백색이어도 때가 탈 것 같진 않았다. 게다가 표면이 미끄럽지 않아서 손에 잡히는 감촉이 딱 좋았다.

“본가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장이 만든 도끼다. 그 명장이 흑백쌍룡부(黑白雙龍斧)라 이름 지었더랬지.”

흑룡부, 그리고 백룡부.

고작 손도끼에 이름까지 붙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자태를 보고 나니 오히려 흑백쌍룡은 너무 단순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떠냐? 마음에 드느냐?”

연호정이 홀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고입니다.”

당관이 피식 웃었다. 싸가지가 없느니, 바보 놈이니 욕은 많이 했어도 그는 연호정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놈이 완전히 홀려 버린 얼굴을 하고 있으니, 당관이라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네놈 주문대로 손잡이 끝에 둥근 고리도 넣었다. 쇠사슬에 걸어서 휘둘러 볼 생각이냐?”

“예에.”

“잘 써라. 그 두 자루 도끼에는 지금껏 본가가 연구해 온 주조 기술의 팔 할이 집약되어 있어. 네 몸보다 소중히 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단 말이다.”

“…….”

“목이 달아나도 그건 잃어버리지 마라.”

연호정이 흔들리는 눈으로 당관을 바라보았다.

당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냐? 그 부담스러운 눈빛은.”

“……감사합니다.”

“웃기고 있군. 반쯤 협박하듯 부탁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감사하다?”

“이렇게까지 멋진 물건을 받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당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버릇없는 놈이 이런 말까지 할 정도면, 정말 마음에 들긴 한 모양이었다.

연호정이 포권을 취했다.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 이상, 이 은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와중에 또 조건을 다는군. 네놈이나 네놈 애비나, 그런 면에선 비슷하구나.”

“예?”

“되었다. 마음에 들었으면 냉큼 갖고 꺼져.”

“아, 예.”

연호정은 후다닥 흑백쌍룡을 챙겼다.

범부에게는 다소 무겁겠지만, 연호정에게는 딱 좋은 무게감이었다. 애초에 팔십 근이 넘는 중병을 휘두르는 사람이니, 작정하면 맨주먹을 휘두르는 것처럼 빠르게 휘두를 수도 있을 것이다.

‘멋지구나.’

연호정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다수 대 다수의 싸움에서는 광룡부가 좋겠지만, 일 대 일이나 난전에선 이게 더 좋을 수도 있겠어.’

물론 광룡부만으로도 충분히 잘 싸울 수 있다.

그러나 연호정이 당관에게 손도끼를 부탁한 것은, 앞으로도 어떤 임무에 투입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전처럼 잠행이나 암살 등의 작전에 투입될 때면 광룡부보다는 흑백쌍룡이 훨씬 덜 부담스럽고 활용도도 높을 것이다.

‘정말 좋은 선물을 받았군.’

당장이라도 휘둘러 보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연호정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문을 나섰다.

그때였다.

“잠깐.”

연호정이 뒤를 돌아보았다.

당관이 뒷짐을 지곤 자신을 보고 있었다.

“따로 하실 말씀이라도?”

“아쉽진 않은 거냐?”

“예?”

연호정이 흑백쌍룡부를 들어 보였다.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휘둘러 보고 싶은데요.”

“그걸 말하는 게 아니다.”

“……?”

“일호무장을 놓친 것 말이다. 아쉽진 않느냐?”

“아.”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아쉽긴 합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달아나 버렸으니, 앞으로가 중요하지요. 게다가 군사님과 후개가 여러 방면으로 조사 중이니, 지금은 각자의 위치에서 소임을 다하면 됩니다.”

“그건 그렇다만.”

당관의 눈이 깊어졌다.

사실 진짜로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다.

“전에 네가 내게 말한 것, 기억나느냐?”

“예?”

“너는 내게 숨겨 둔 한 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그렇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당연히 흑암제 시절에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호정은 그 부분에 대해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다.

“그냥 그럴 것 같았습니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는 거냐?”

“아닌 말로, 한 가문의 수장쯤 되면 대외적으로 선보이지 않은 무공 한두 개쯤은 있는 게 정상 아닙니까?”

“…….”

“저희 아버지도 그렇고, 모용군도 그렇습니다. 특히 이번 번작과의 싸움에서, 저희 아버지는 그간 숨겨 두었던 한 수를 꺼내 들었더랬지요.”

당관 역시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엄청났지.’

번작의 상체에 끔찍한 상처를 안겨 준 연위의 마지막 일검.

대단히 현란한 초식을 선보인 것도, 독특한 병기를 쓴 것도 아니었다. 연위의 마지막 일검은 말 그대로 검력(劍力) 자체를 극대화한 것이었다.

그래서 더 대단한 일검이었다. 무공 전개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그 일검을 내친 이후에 잠시나마 전투 불능 상황에 빠지지만, 적중만 하면 누구라도 황천길로 보내 버릴 만한 무서운 위력을 담고 있었다.

실로 연위다운 일검이라고 해야 할까? 벼락을 연상케 하는 연위의 절대일검(絶對一劍)은 지독하게 단순하면서도 검법가(劍法家)가 추구해야 할 검도(劍道)의 이상향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런 힘을 숨기고 있었다니.’

아마도 숨기려고 숨긴 건 아닐 것이다. 연위의 성격 자체가 무언가를 숨기는 데에 능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 보여 줄 필요가 없었을 뿐.

‘생각해 보면 연가주의 무공은 항상 그러했다. 정통 중의 정통,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중도(中道)를 따르면서 삿된 것에 손을 뻗지 않는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답답하기 그지없지만,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우직함으로 누구와도 대적 가능한 검객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어.’

처음 연위와 속 깊은 얘기를 나누었을 때, 당관은 연위가 자신이 이제껏 알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자꾸만 이죽거렸고, 몇 번을 떠보기 바빴다. 본능은 연위라는 사람의 인품을 파악했는데, 머리로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음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당관은 연위라는 사람을 완전히 인정하게 되었다.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연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주어진 상황을 해결키 위해 목숨을 걸었으며, 그만한 자리에 앉았음에도 언제나 타인을 진심으로 대할 줄 알았다.

칼밥 먹는 사람이 성인군자 소리를 들을 순 없겠지만, 적어도 이 강호 무림계에 있어서 연위만 한 성인군자는 다시 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당관은 연위가 좋았다. 그가 착하고 바른길을 걸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배짱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연위가 듣기 좋은 말로 자신을 구슬리려 들었거나 손바닥을 비비며 대했더라면, 절대 그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당관이 연호정을 주시했다.

‘그런 애비에게서 이런 아들내미가 났단 말이지.’

연호정은 빈말로도 연위와 닮은 구석이 없는 놈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하지만 이제는 당관도 볼 수 있었다. 아니, 알 수 있었다.

연호정은 누가 뭐라 해도 연위의 자식이다.

정통 검법을 연마하며 규범을 중시하고, 도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일세의 협객, 연위.

자신만의 독특한 무공을 연성했으며, 규범과 도덕에 구애받지 않고 파격적인 언행과 뛰어난 두뇌 능력을 보여 주는 천하제일 후기지수, 연호정.

이처럼 두 사람은 전혀 달랐지만, 놀랍도록 닮은 부분이 있었다.

‘이 부자는 진심을 보여 줄 때, 불순한 생각이나 걱정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

연위야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지만, 연호정도 그런 면모를 보여 줄 줄은 몰랐다.

당관이 연위는 물론 연호정까지 인정하게 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한데 그것은 어찌 물어보십니까?”

가만히 연호정을 직시하던 당관이 툭 던지듯 물었다.

“너는 나를 믿느냐?”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연호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독특한 질문이십니다.”

“대답하거라. 너는 나를 믿느냐?”

“믿습니다. 어느 정도는요.”

당관이 피식 웃었다.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로군.”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워낙 의심병이 심한 놈이라서요. 아버지처럼 성인군자는 못 됩니다.”

“당연한 소리. 네놈이 천 년 동안 수양을 쌓는다 한들 네 애비의 발치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다.”

“압니다. 그래서 스스로 인정하면서 살고 있는 겁니다.”

“주제 파악을 할 줄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지. 그런 걸 보면, 확실히 네놈도 보통 놈은 아니야.”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한데 갑자기 그런 질문은 어찌?”

당관은 잠시 말없이 연호정을 주시했다.

‘이놈은 모르고 있군.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거야.’

그가 연호정의 눈을 바라보았다.

흑백이 또렷한, 투명하고도 깊은 두 눈을.

‘이놈은 영락없는 연가주의 장자다. 이놈은 나를…….’

당관이 눈을 감았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놈. 그렇게 박 터지게 싸웠음에도 나를 믿는가.’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웠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연호정은 그리 만만한 놈이 아니다.

이미 자신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싸우러 간 것이다. 그것은 작지만 큰 차이였다.

당관이 눈을 떴다.

“은혜를 갚겠다고 하였지?”

“예?”

“도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그 도끼를 건네준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거라.”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왠지 당관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고의 몸 상태는 아닙니다.”

“네놈 목숨을 앗아 갈 생각은 없으니 잔말 말고 따라오도록 해라.”

연호정이 씨익 웃었다.

“예, 그러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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