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363화 (363/963)

363화. 강자의 권한 (5)

두근두근!

뜨겁게 달아오른 심장에 주작기가 들어서며 더 강한 박동을 끌어냈다.

울컥울컥!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연호정의 체온을 올렸다.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이 치솟았다. 그 정도 체온이면 천하의 고수라도 쓰러질 수밖에 없을 텐데, 놀랍게도 연호정은 그 온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 내고 있었다.

치이이이익!

그의 몸 곳곳에서 희뿌연 연기가 치솟았다. 발산하는 열기가 차가운 공기에 닿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툭!

연호정이 천강을 뒤로 던졌다.

풀썩!

땅에 떨어진 천강이 꿈틀거렸다. 죽지는 않았지만, 상처를 통해 침투한 현무기가 금제순화공을 완전히 제압한 상태였다.

퍼억!

“크아악!”

천강이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모용우가 그의 복부에 탕마검을 박아 넣은 것이다.

그걸로 천강은 전투 불능이 되었다. 화정 덕분에 배가 꿰뚫려도 금방 죽지는 않겠지만, 회복한다 한들 전신 혈도가 상해서 이전과 같은 무력을 구사하긴 힘들 것이다.

연호정이 힘차게 일 보를 밟았다.

쿠웅!

강력한 진각에 일대의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과거, 그 많은 싸움의 시작을 알렸을 때처럼.

호쾌한 진각으로 전투 준비를 끝마친 연호정이 자세를 낮추었다.

파아아앙!

단숨에 거리를 좁힌 연호정이 번작의 머리를 향해 광룡부를 휘둘렀다.

쩌어어엉!

광룡부가 화룡마도에 막혔다.

곧바로 연호정을 튕겨 내려던 번작은 순간 자신의 옆구리를 노리는 신검(神劍)의 경파를 느꼈다. 너무나도 절묘한 순간에 쏘아진 연위의 검격이었다.

번작이 왼손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투웅!

연위의 검격이 튕겨 나가고, 연호정이 뒤로 날아갔다.

퍼어어엉!

그 틈을 노린 당관의 독장이 번작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곧장 장력을 쳐 내려던 번작은 깜짝 놀랐다.

푸스스스스!

독장이 코앞에서 흩어지며 연기로 화했다.

자신이 흩어 낸 게 아니었다. 장력이 저 스스로 흩어지며 사방으로 독기의 운무를 퍼트린 것이다.

“당가주, 이 쥐새끼가.”

번작의 동공이 황금빛으로 타올랐다.

화르르르르륵!

당관의 독기는 어지간한 화기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번작의 화기는 그야말로 수준이 달랐다. 초고온의 화기는 당관의 독기를 그 즉시 분해해 버렸다.

퍼어엉!

번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궁사?’

등판에 일격을 허용했다. 금제순화공의 호신강기로 몸이 꿰뚫리는 건 막았지만, 충격이 제법이었다.

파아아아앙!

분노한 번작이 염왕권을 펼쳤다.

묵비의 화살만큼 빨랐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목표물에 도달하기도 전에 화상을 입힐 수 있는 화기였다.

훅!

묵비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화기를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번작은 귀신처럼 그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퍼어엉!

또다시 뿜어지는 화염의 권풍.

번쩍!

번작의 권풍은 묵비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아래에서 솟구친 녹청빛 검광이 권풍을 그대로 쪼개 버렸기 때문이다.

“연위!”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묵비가 조금도 동요치 않고 허공에서 시위를 당겼다. 화살을 걸지 않은 시위에서 섬뜩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피피피핑!

무형의 화살이 제각기 곡선을 그리며 번작에게로 쏘아졌다.

파악!

연위가 군자검(君子劍)을 펼치고, 당관이 비도칠연의 암기술을 쏟아 냈다. 모용군이 펼친 뇌정살의 검포(劍砲)는 화룡점정이었다.

중원을 대표하는 고수들의 합공이었다. 제아무리 번작이라도 다급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번작이 양손을 호랑이의 앞발처럼 오므렸다.

화르르르르륵! 퍼퍼퍼퍼펑!

네 명의 초절정고수가 쏟아 낸 공격들이 화염의 폭풍 앞에 모조리 흩어졌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로군.”

치이이이익!

양손에 황금빛 불꽃을 두른 번작이 금제순화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모조리 죽여…….”

번쩍!

한 줄기 초승달과 같은 광채가 번작의 쇄골을 노리며 떨어졌다.

콰아앙!

광룡부의 도끼날을 맨손으로 잡아 쥔 번작이 살기 어린 눈으로 연호정을 노려보았다.

번작이 손에 화기를 집중했다.

치이이이이이익!

광룡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금제순화공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광룡부를 망가트려 버릴 작정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번작의 오판이었다.

화르르르륵!

광룡부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번작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자신은 광룡부를 녹여 버릴 생각이었지, 이렇게 불을 일으킬 생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 금제기가 아니다.’

번작의 시선이 연호정의 눈에 닿았다.

연호정의 동공은 붉다 못해 피처럼 끈적끈적한 화염을 담고 있었다.

‘화기?!’

연호정이 힘차게 광룡부를 끌어당겼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금제화기(金帝火氣)와 주작화기(朱雀火氣)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그 열기가 어찌나 강했던지 연위, 당관, 모용군, 묵비까지 모두가 물러나야 했다.

연위가 외쳤다.

“호정아!”

콰쾅!

백호군림으로 돌진하던 연호정이 혈익휘천을 펼쳤다.

백호의 보법으로 힘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펼쳐 낸 혈익휘천은 그야말로 벼락과도 같은 움직임을 가능케 했다.

호왕구벽세와 화룡마도가 충돌했다.

쩌저저저저정!

엄청난 충격파가 사위를 휩쓸었다.

연호정이 울컥 피를 토해 냈다. 역시나 힘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콰앙!

물러남과 동시에 또다시 혈익휘천을 펼쳤다.

뼈와 근육이 짓이겨지는 것처럼 아파 왔다. 하지만 연호정은 그 고통을 무시했다.

‘이긴다.’

번작을 노려보는 연호정의 눈에는 맹목적인 살기와 함께 승리를 향한 절대적인 자신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긴다!’

연호정이 광룡부를 휘둘렀다.

번쩍!

이번에도 초식을 펼칠 거라 생각했던 번작은 일순 깜짝 놀랐다.

호왕구벽세가 아니었다. 광룡부가 고속으로 회전하며 번작의 몸통을 노리고 쏘아진 것이다.

휘두른 게 아니라 날려 버렸다. 기가 막힌 행동이었다.

번작이 염왕권을 펼쳤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광룡부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이번만큼은 번작도 주먹에 강한 통증을 느꼈다. 쏟아부은 내력이 조금만 적었어도 주먹이 반으로 쪼개졌을 것이다.

‘병기를 내던지다니, 완전히 미쳐 버렸구나!’

그때였다.

‘……?!’

찰나지간 번작의 눈에 당황의 빛이 어렸다.

‘어디?!’

시야에서 연호정이 사라져 버렸다.

훅!

동시에, 좌측 하단에서 폭발적인 각법이 치솟았다.

퍼어엉!

호왕구벽세가 각법으로 펼쳐졌다. 팔을 겹쳐 그 일격을 막아 낸 번작이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콰앙!

또다시 진각이다.

호쾌한 한 걸음으로 활력을 되찾은 연호정이 냅다 쌍권을 내질렀다.

퍼퍼퍼퍼펑!

두 사람의 주먹이 미친 듯이 부딪쳤다.

훅! 화르르륵!

사방으로 흘러넘치는 불꽃의 기세가 더 강해졌다. 두 사람이 만들어 낸 충격파가 화기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화염의 벽이 둘러쳐진 생사의 비무장이다. 연위와 당관, 모용군 중 그 누구도 그곳으로 치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기세를 헤치고 나아가기에는 화기가 너무 거셌다.

하지만.

파바바바박!

연위가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불의 장벽을 흩어 냈다.

당관의 눈이 흔들렸다.

“연가주!”

“으아아압!”

연위가 우검과 좌장을 연달아 내쳤다.

쾅! 퍼퍼펑! 화르르르륵!

연가의 비전 검법과 절정의 수공이 터져 나오며 불의 장막을 조금씩 걷어 냈다.

연위의 기공력으로는 이리 쉽게 뚫기가 불가능했다. 한 인간의 굳건한 의지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순간이었다.

훅!

불의 벽을 뚫고 들어간 연위의 몸 곳곳에 불이 붙었다. 강력한 내공 방패 덕에 화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내공이 흔들리면 그 즉시 피부가 타들어 갈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도 개의치 않았다.

“호정아!”

콰앙!

연호정이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났다.

파아아악!

연위가 번작의 다리를 향해 일검을 내쳤다.

엄청나게 빠른 쾌검이었다. 천하의 번작도 이번 일격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들이!”

쩌어어어엉!

연위가 검을 놓쳤다.

검객은 죽을지언정 손에서 검을 놓치지 않는 법이었다. 연위 역시 중원의 정통 검객인바, 그 정도 자부심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연위는 검객이 아니었다.

두 아들을 둔 아버지, 혈육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부모일 따름이었다.

퍼퍼펑!

반룡장으로 번작을 밀어 낸 연위가 단숨에 연호정에게 다가갔다.

“괜찮으냐?!”

순간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파악! 퍼어엉!

연위의 몸을 끌어낸 연호정의 어깨에 불꽃이 터졌다. 번작의 염왕권이 스치며 만들어 낸 불꽃이었다.

“으아압!”

비명과 같은 기합으로 고통을 억누른 연호정이 북천십이벽을 펼쳤다.

퍼퍼퍼퍼펑!

연호정의 몸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번작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연가신단의 모든 힘을 현무기의 증폭에 퍼붓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

번작의 공격을 막아 내며, 연호정이 연위를 바라보았다.

아들과 시선을 마주한 연위의 눈이 흔들렸다.

‘호정.’

아들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 보였다. 어떻게든 이기겠다는 의지가 그 눈빛에 가득했다.

연위가 손을 뻗었다.

후우웅!

놓쳤던 검이 저절로 그의 손안에 빨려 들어갔다. 허공섭물의 신기(神技)였다.

퍽! 퍼펑!

연위의 옷 곳곳에 붙은 불꽃이 펑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검으로 쏟아지는 검극사기 때문에 무뎌진 내공 방패, 보호막이 흔들려 버린 연위의 몸에 금제화기가 화상을 입히고 있었다.

하지만 연위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사아아아아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의 검에서 녹청빛 번개가 휘몰아쳤다.

모용군처럼 뇌기를 익힌 건 아니었다. 실제로 그 검에 실린 것은 뇌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모용군의 뇌정지기보다 더 살벌하고 거친 번개 문양이 연신 검을 두들기고 있었다. 찰나지간 증폭되는 그 검력(劍力)에 불의 장막조차 주춤할 지경이었다.

번작의 눈이 커졌다.

‘뭐지?’

반투명한 흑색 기공 방패 뒤.

실로 무시무시한 힘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 힘의 밀도가 어찌나 대단한지, 번작의 화기조차 겁을 먹고 뒤로 밀려날 정도였다.

‘어디서 이런 힘이……?!’

그때, 흑색 귀갑의 방패가 사라졌다.

후욱!

방패가 사라지자마자 연호정이 달려들었다.

번작은 반사적으로 연호정을 공격했다. 이 힘의 실체를 알아보는 게 우선이겠지만, 그러기엔 연호정의 공격이 지나치게 빨랐다.

퍽! 퍼버벅! 퍼어엉!

단숨에 해치우고 몸을 빼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싸움의 양상은 번작의 예상을 벗어나 버렸다.

퍼퍼펑! 퍼펑!

폭발하는 충격파 속, 바위처럼 단단한 일권이 번작의 대퇴부를 가격했다.

빠각!

‘큭!’

번작의 목에 핏줄이 불거졌다.

‘이놈이?!’

처음으로 연호정의 주먹에 다리를 맞았다. 한순간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렸었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화가 난 그가 염왕권의 연환권을 펼쳤다.

그때, 연호정의 상체가 뱀처럼 움직였다.

퍼퍼퍼퍼퍼펑!

번작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뜨였다.

번개처럼 내친 연환쌍권을, 연호정이 상체의 움직임만으로 모조리 피해 내고 있었다.

“이제야 보인다.”

빠각!

번작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중단으로 주먹을 뻗은 연호정이 차갑게 웃었다.

“네 약점이, 이제야 보여.”

과거 옥청은 상대의 약점을 본능적으로 꿰뚫어 보는 것이야말로 연호정의 가장 큰 재능이라 하였다.

그 재능이, 힘의 격차가 상당히 크게 벌어지는 전투 중에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버겁게만 느껴졌던 번작의 공격을 모조리 피하는 것도 모자라 반격을 가한 것, 생사의 기로에서 죽음의 재능이 기지개를 켠 것이다.

번작이 처음으로 노호성을 질렀다.

“이 버러지 같은 놈이!”

그 순간, 한 줄기 담담한 목소리가 번작의 귓가에 흘러들었다.

“너 따위 소인배에게 그런 말을 들을 만큼, 난 내 아들을 허투루 키우지 않았다.”

번쩍!

연호정의 어깨를 밟고 날아오른 연위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번작을 노려보았다.

순간 번작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연위가 쥐고 있는 검에서 감당키 힘든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절대의 일검을 추구하며 수천 번을 갈고 닦은, 연가의 모든 검법이 압축된 연위의 최종 비기.

“이만 죽어라.”

번쩍!

녹청빛 벼락이 번작의 머리에 내리꽂혔다.

콰르르릉!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