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청소의 시작 (8)
묵비의 참전 시기는 그야말로 절묘했다.
퍽! 퍼버버벅! 퍼버벅!
그녀가 홍련궁의 시위를 당길 때마다 신화병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일발일살(一發一殺)이었다. 철전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신화병 한 명의 목숨이 꼭 날아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나 복부가 아니라 정확하게 미간을 뚫어 버리는데, 제아무리 생명력이 강하다 한들 뇌가 파괴되어 버린 이상 회복은 불가능하다.
석경은 극도로 당황했다.
‘궁사(弓師)라니?!’
적들과 마주하기 전, 적의 기척이 둘인지 셋인지 긴가민가했더랬다.
하지만 싸움이 벌어지고 나서는 그 부분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연호정이 뿜어내는 기파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당관이 자아내는 기파는 지옥의 연기처럼 음험하고 깊었다.
상반되어 휘몰아치는 압도적인 기파와 정신없이 벌어지는 전투에 미처 방수의 존재를 떠올릴 수 없었다.
비로소 석경은 깨달았다.
‘이놈들은 단순히 우리를 노리고 있는 수준이 아니야.’
완벽하게 맞춰 놓은 손발, 그리고 효율적인 공략.
단둘이서 목숨을 걸고 막아 가면서도, 결정적인 순간까지 저만한 궁사를 꺼내 들지 않은 신중함.
‘규적이 우리에 대해 불었다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한들 전투를 이리 과감하면서도 신중하게 진행한다는 것은…….’
석경의 눈이 번뜩였다.
‘이놈들, 본교만 아는 게 아니야. 남은 이교(二敎)의 존재까지 알고 있는 게 분명해.’
그렇다면?
‘본부가 위험하다!’
궁사의 출현으로 거기까지 유추해 낸다. 확실히 석경의 머리도 보통이 아니었다.
석경이 외쳤다.
“전원 후방으로 빠진다! 지금 당장 본부로 돌아갈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연호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당관이 물었다.
“본부로 돌아간다니? 갑자기?”
“깨달은 겁니다.”
“뭘?”
“자신들 모두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안 겁니다. 다른 전력, 즉 아버지와 모용군이 본부를 노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거라고요.”
당관의 눈빛이 음침해졌다.
“절대 보내선 안 돼.”
“물론입니다.”
파아아악!
두 사람이 혼신의 힘을 다해 석경과 남은 신화병 육십여 명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물러나는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일시적인 퇴각과 본부로 돌아가는 움직임은 차원이 달랐다. 당관과 묵비가 끊임없이 암기와 화살을 날렸지만, 후방에서 그들의 공격을 쳐 내는 석경의 방어는 견고하기 그지없어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당관의 눈에 결심의 빛이 흘렀다.
극심한 내공 소모로 인해 잠시지간 전투 불능 상태로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놈들을 본부로 보내면 일이 어그러진다. 당관은 그 오만함 이상으로 적의 완전한 궤멸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이놈한테 보여 주긴 좀 껄끄럽지만.’
어쩔 수 없지. 이 한 방으로, 놈들의 도주를 완전히 차단하는 수밖에.
그때였다.
“괜찮습니다.”
“……?!”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관의 눈이 흔들렸다.
‘이놈 설마?’
설마 아는 건가? 자신이 어떤 무공을 박아 넣을지?
물론 연호정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관을 위해 자세한 건 모른 척했다.
“대외적으로 보여 주지 않은 비기(秘技)를 꺼낼 생각이신 모양인데,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지?”
“안 들리십니까?”
“뭐?”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극심한 내공 소모로 안색이 창백했지만, 그 눈빛만큼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시간 맞춰 잘 도착했습니다. 우리의 아군이.”
순간 당관의 귀가 쫑긋거렸다.
두두두두두.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
숫자는 많지 않지만, 한 마리 한 마리가 천하의 명마인 모양이었다. 대지를 두들기며 짓쳐 드는 속도가 실로 놀라웠다.
연호정이 나직이 투덜거렸다.
“망할 놈들. 진즉에 올 것이지, 꼭 염통 쫄깃하게 만드네.”
파아아악!
절벽을 타고 오르며 화살을 쏘아 내던 묵비가 연호정의 옆으로 다가왔다.
“왔군요.”
“그래, 왔다.”
연호정이 퇴각하는 신화병들 너머를 바라보았다.
좌우가 절벽으로 막힌 소로의 끝부분에서, 자욱한 먼지구름이 일었다.
“자, 마지막 힘을 짜내 보자고!”
파아아악!
세 사람이 무서운 기세로 돌진했다.
‘뭐지?’
후방에서 공격이 날아오지 않아 의아해하던 석경은, 순간 대지가 울리는 감각에 놀라서 전방을 바라보았다.
“아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는 오십여 기의 기마들.
이런 상황인 줄 진즉 알았다는 듯 포위망을 형성하며 돌진하는데, 그 기세가 성난 파도와 같았다.
“저놈들은 또 뭐야!!”
“뭐긴 뭐야.”
부우우우웅!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광룡부에 주작기가 어렸다.
쩌어어어엉!
석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불 바퀴를 일으키며 날아온 광룡부의 위력에 하마터면 두 팔이 부러질 뻔했다.
파아아악!
허공으로 날아올라 다시 광룡부를 쥔 연호정이 도끼를 머리 위로 높이 쳐들었다.
“내 부하들이지.”
연호정이 대지를 향해 광룡부를 힘껏 내리쳤다.
콰콰쾅!
주작과 백호, 적백(赤白)의 화염 돌풍을 일으키며 내리친 참격에 일대의 땅거죽이 산산이 부서지며 튀어 올랐다.
그 갈라짐은 석경을 넘어 신화병들의 발치에까지 이르렀다.
육십여 명의 신화병들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어 주춤할 때.
바로 그때, 멸사군이 들이닥쳤다.
“다 죽여라!”
“우아아아아!”
콰르릉!
입구를 틀어막고 밀어닥치는 멸사군의 진군(進軍)은 엄청난 파괴력을 동반했다.
석경의 얼굴에 허망함이 떠올랐다.
번쩍! 퍼억!
그의 어깨에 비도 한 자루가 박혔다. 당관이 날린 비도였다.
치이이이익!
피부를 뚫고 침투하는 화골산을 증발시켰다. 하지만 그 찰나의 내공 운용으로 보법이 흔들렸다.
묵비가 냉정하게 시위를 당겼다.
피피피피핑! 퍼억!
네 발의 화살이 신화병 둘의 몸에 꽂히고, 한 발의 화살이 석경의 허벅지에 꽂혔다.
당관이 빠르게 달려 나가며 그대로 묵비를 지나쳤다.
짧은 한마디와 함께.
“제법이군.”
번쩍!
번개를 쫓듯 휘어지며 접근한 당관이 석경의 가슴에 쌍장을 퍼부었다.
퍼퍼펑!
“커헉!”
피를 토하며 물러난 석경이 신화병들 사이로 고꾸라졌다.
퍼어엉! 콰쾅!
전방에선 멸사군이 삼살의 진법을 펼쳐 내며 밀어붙였고, 후방에선 당관과 묵비가 암기와 화살을 미친 듯이 난사했다.
쓰러져 신화병들의 발에 짓밟히던 석경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
한순간 세상이 어두워진 듯한 착각을 받은 그가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서, 거대한 도끼를 든 흑암의 살인마가 들이닥치고 있었다.
“불장난은 끝이다, 개자식들아.”
광룡부가 석경의 머리통을 향해 내리꽂혔다.
콰앙!
* * *
“말씀하신 한 시진이 다 되어 가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오.”
모용군은 침착했다.
시간은 그들의 편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상도의 첩보 조직이 신화교 측 고수들의 이목을 속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더 허비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말하자면, 한시라도 빨리 기습전을 벌이는 게 그들에게도 유리하다는 뜻이었다.
‘아직 멀었나.’
모용군의 얼굴에 언뜻 초조함이 일었다.
‘적어도 동이 트기 전에는 도착해야 해. 제아무리 내공으로 안력을 틔운다 한들, 밤과 낮의 시야 차이는 뚜렷하다. 무조건 해가 뜨기 전에 싸움을 끝내야 하는데.’
그때였다.
두두두두.
저 멀리서 힘찬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연위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지고, 모용우의 얼굴에 언뜻 반가움이 일었다.
모용군이 나직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간 맞춰 도착했군.”
히히히힝!
말의 울음소리가 실로 웅장했다.
연위가 격동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호정!”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연호정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슬아슬했지요?”
“네가 여기는 어떻게……?!”
모용군이 말했다.
“말했잖소. 아군이 물건을 들고 올 거라고.”
“그게 호정과 멸사군이었소?”
“그렇소. 이틀 전, 싸움이 끝나고 곧장 이곳으로 오겠다는 연락을 받았소. 양이 양인지라, 차라리 저 녀석들에게 맡기는 게 낫다고 생각했소이다.”
“허어!”
파아악!
편자를 박차고 날아오른 당관이 단숨에 두 사람 앞에 내려섰다.
“오랜만이오.”
“당가주.”
당관은 모용군을 힐끔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모용군은 그를 못 본 척했다.
연위가 물었다.
“싸움은 어떻게 되었소?”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걸 보고도 모르겠소? 싹 쓸어 버리고 오는 길이오.”
연위의 표정이 밝아졌다.
“고생했소. 정말 고생이 많았소.”
“흥! 별로 고생한 것도 없소.”
당관이 연호정을 돌아보았다.
“저 여우 같은 놈이 워낙 대가리를 잘 써 놔서 말이오.”
연호정이 입맛을 다시며 말에서 내려왔다.
“덕분에 저만 죽을 뻔했습니다. 중간에 힘들어서 기절한 거 아십니까?”
“시끄럽다, 싸가지.”
연위가 연호정과 묵비에게 다가갔다.
“고생들 많았다.”
아들과 딸처럼 여기는 아이의 손을 잡고 흔드는 연위의 얼굴에 깊은 안도가 배어들었다.
대단한 칭찬이나 많은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 표정 하나만으로도 그간 연위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알 수 있었다.
“비아는? 어디 다친 데 없느냐?”
“네.”
묵비가 쑥스러운 듯 말했다.
“저야 뒤에서 지원 사격만 한걸요. 고생은 연 공자가 다 했지요.”
연위가 피식 웃었다.
“이 녀석이야 워낙 저돌적으로 움직이니까 말이다. 또 혼자 정면에서 날뛰었겠지.”
연호정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기야 제가 맨날 하던 방식이 그런 거니까요.”
“이놈아. 그래서, 지금 싸울 수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오면서 축기에 힘을 올렸거든요. 한 팔 거들 정도는 됩니다.”
“그래, 무리하지는 마라.”
“물론입니다.”
대화를 끝낸 연호정이 모용군에게 다가갔다.
연호정을 위아래로 살핀 모용군이 콧방귀를 꼈다.
“자네가 그 지경이 되었으니, 적들 꼬라지야 안 봐도 뻔하겠군. 다진 고기를 만들어 놨겠어.”
“그 정도는 해야 죽지 않습니까, 그놈들.”
그때, 당관이 비아냥거렸다.
“저놈도 웃기는 놈이라니까. 그놈들이 어지간해선 안 죽는다는 걸 왜 미리 말해 주지 않았나 싶었더니만, 자기도 모르고 있었더군.”
연호정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몰랐습니다. 전 오히려 가주님께서 놈들을 왜 그리 잔혹하게 죽이나 했어요, 처음에는.”
“그것도 모르면서 규적이란 놈 찢어 죽인 네놈도 어지간히 미친놈이다.”
그때, 모용군이 말했다.
“대화는 이제 그만합시다. 슬슬 전투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소?”
그가 연호정에게 물었다.
“물건은 다 받아 왔는가?”
“물론입니다.”
연호정이 멸사군을 바라보았다. 군병들이 저마다 허리춤에서 황금빛 주머니를 서너 개씩 꺼내 들었다.
모용군의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좋군. 슬슬 가 볼까?”
“그러시지요.”
일각 후.
신화교 본부 주변을 에워싼 육십여 명의 고수들이 황금빛 주머니에 불을 붙였다.
피유우우웅!
한 줄기 철전이 하늘 높이 쏘아졌다.
그것이 곧 신호였다. 황금빛 주머니를 쥐고 있는 이들 모두가 인기척이 있는 곳을 향해 연기가 나기 시작한 주머니를 힘차게 던졌다.
잠시 후.
콰콰콰콰쾅! 콰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건물 수십 채가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크아아악!”
“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사위를 울렸다. 모두 신화교 측 고수들, 신화병들의 비명이었다.
그때, 모용우의 우렁찬 목소리가 천공을 가로질렀다.
“단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쿠르르르릉!
탕마군 오백의 정병들이 무서운 기세로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