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357화 (357/963)

357화. 청소의 시작 (7)

두두두두.

연위의 눈이 빛났다.

저 멀리 동쪽에서 슬슬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모용군이 떠난 지도 벌써 세 시진이 훌쩍 넘어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위는 극도로 개방한 감각을 죽이지 않았다. 덕분에 상당히 피곤했지만, 한참 멀리서 울리는 말발굽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파악!

연위가 말발굽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했다.

잠시 후.

“전군 정지.”

선두에서 말을 멈춘 사람은 단정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청년처럼 보이지만, 두 눈에 깃든 총기와 지혜는 그의 나이가 보이는 것만큼 어리진 않다는 걸 알려 주었다.

중갑 갑주 차림에 천하 명마를 탄 무림인. 허리춤에는 중원의 여느 검보다 길고 넓적한 군용 장검(軍用長劍)이 걸려 있었다.

탕마군의 군장, 모용우의 등장이다.

“오셨는가.”

촤르륵.

말에서 내린 모용우가 절도 있게 포권했다.

“탕마군장 모용우입니다. 연가의 가주님을 뵙습니다.”

연위의 눈이 빛났다.

‘전에도 느꼈지만, 참으로 걸물이로다.’

눈빛, 기도, 언행 모든 부분에 있어서 완벽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첫째와는 너무나도 대비가 된다. 연호정에게 파격의 미학이 느껴진다면, 모용우는 정통의 미학을 안고 살아가는 자였다. 연호정이 타오르는 불처럼 뜨겁고 위험하다면, 모용우는 잔잔한 물처럼 도도하고 안정적이었다.

전혀 다른 기질을 갖고도 후기지수 정점에 오른 두 청년.

‘이런 청년이 모용가주의 동생이라니, 정녕 모를 일이구나.’

같은 핏줄임에도 어찌 이리 다른지 모르겠다. 자신의 두 아들들만 봐도 그 성정이 판이하지만, 둘 다 근본적으로 ‘바름’이라는 가치를 안고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모용군과 모용우는 정말 같은 핏줄이 맞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예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네.”

“아닙니다.”

“저 멀리 주둔지에서 탕마군의 말발굽 소리를 들었네. 조금 더 이동했다간 적들에게 들킬까 싶어 먼저 찾아왔네.”

“그렇군요. 저 역시 이쯤에서 멈출까 싶었습니다.”

“그렇구먼.”

“한데…….”

모용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 모용 봉공께서는 어디 가셨습니까? 기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말발굽 소리를 들었다면 연위보다 먼저 찾아왔을 모용군이었다. 한데 보이질 않으니 의아할 만도 했다.

연위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 부분에 관해서 따로 할 얘기가 있네.”

그는 모용우에게 모용군과의 작전을 전달했다.

모용우의 눈이 흔들렸다.

“……정녕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솔직히 확신은 못 하겠네. 그러나 모용가주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더군.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처지지만, 달리 생각하면 여 공에게도 어떻게든 물리쳐야 할 대적일세. 그렇다면 가능성은 있다고 보네.”

“그렇군요.”

“문제는 자네들일세.”

연위가 다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즉석에서 떠올린 작전이네만…… 혹시 이런 전술에 대해서도 따로 훈련한 적이 있는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던진 질문이었다.

놀랍게도 모용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입니다.”

“허!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탕마군은 멸사군과 다릅니다. 멸사군이 특공(特攻)에 적합하다면, 저희 탕마군은 전면전에 능합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하지 않은가. 오히려 멸사군이 그런 훈련을 했다면 모를까…….”

“아니지요. 탕마군은 언제 어느 때나 정면으로 승부를 봅니다. 압도적인 힘과 전투력으로 밀어붙여야 하지만, 때로는 적의 기괴한 술수에 전력이 급감할 수도 있습니다.”

“음.”

“그런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많이 했습니다. 두 봉공님께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자신하니, 알겠네. 자네를 믿지.”

“감사합니다.”

모용우가 손으로 탕마군을 가리켰다.

“잠시 작전 하달을 하고 오겠습니다.”

“그러시게.”

짧게 목례한 모용우가 조장들을 불러들여 작전을 하달했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연위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괜찮은 청년이야.’

잠시 후, 군병들이 제각기 말을 끌고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말에게 건초를 먹이고는 제각기 편안하게 쉬는데, 사방을 둘러보는 눈빛만큼은 여전히 매서웠다.

모용우가 다가왔다.

“이곳은 제가 맡겠습니다. 모용 봉공께서 돌아오시면, 그때 다시 뵙는 것이 어떨는지요?”

“물론 그래야지. 저쪽 상황도 주시해야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아!”

“왜 그러시는가?”

모용우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연 군장 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직 연락이 오지는 않았습니까?”

연위가 고개를 저었다.

“아마 몇 시진 전에 전투가 끝났을 것일세.”

그 전투의 결과는 입에 담지 않는 그였다. 물론 연호정과 당관, 묵비가 잘해 주었을 거라 믿고 있지만, 사람 일은 또 모르는 것이다.

연위의 얼굴에 떠오른 일말의 불안감을 본 모용우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연 군장이라면 충분히 잘 해냈을 겁니다. 하물며 당가주님께서 함께 가셨으니, 곧 승전보를 전해 올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

“설령 이기지 못했더라도 다들 무사할 겁니다. 제가 본 연 군장은 패배할 싸움에 미련을 두지 않는 성격이니, 분명 현명하게 행동하겠지요.”

연위가 미소를 지었다.

“내 아들을 잘 아는 모양일세.”

모용우가 마주 웃었다.

“당연히 잘 알아야지요. 뭐라도 더 알아야 연 군장의 발끝이라도 쫓아갈 것 아니겠습니까.”

“뭐라? 하하.”

모용우의 말에 연위가 웃음을 터트렸다. 마음을 다독여 주려 하는 말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들으니 걱정이 한결 덜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틀 내로 오겠다던 모용군은, 이틀하고도 반나절이 더 지나서야 일행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새벽, 축시(丑時)가 넘어가는 시간.

“나 왔소이다.”

연위가 담담히 말했다.

“생각보다 늦으셨소.”

“미안하오. 중간에 연락을 하려 했는데, 워낙 바빴소이다.”

“음?”

“일단 모입시다.”

모용군이 모용우를 불렀다.

“탕마군은 어떠하냐?”

“언제 전투를 치러도 문제없을 겁니다.”

“좋구나.”

연위가 물었다.

“해서, 여 공께서는 어찌하시겠다 하오?”

모용군이 미소를 지었다.

“성공했소. 앞으로 한 시진 내로 이곳에 물품을 보내 주실 게요.”

“……다행이구려.”

다행이지만, 이제부터 진짜 긴장해야 할 때다. 그 물품이 오는 즉시 전투가 시작될 테니까.

그때, 모용군이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어찌 되었든, 싸움이 더 수월해질 것 같긴 하오.”

“무슨 말씀이오?”

“그 물품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우리 아군이 될 거거든.”

“음?”

모용군이 씩 웃어 보였다.

영문을 모르는 연위와 모용우는 고개만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 * *

이틀 전.

파바바바바박!

당관의 암기술은 가히 공포 그 자체였다.

그냥 아무렇게나 뿌리는 듯한데, 그때마다 사람이 죽어 나갔다. 석경과 무성을 제외해도, 빈말로라도 약하다는 평가를 받을 사람이 없는데 매번 죽는 사람이 나왔다.

석경은 이를 갈았다.

“이런 개 같은 일이!”

독, 그리고 암기.

방심은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그따위 공부는 신성한 불 앞에서 완전히 무용지물일 줄 알았다.

그것은 당연한 자신감이었다. 중원에 산재한 어떤 독공과 암기술이라도 신화교의 열양공 앞에서는 제힘을 낼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독과 암기를 쓰는 자가 당관 수준이라면, 그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만일 당가의 장로들이 떼로 덤볐다면 그나마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당관은 장로들이 구사하지 못하는 독공을 구사하고, 다루지 못하는 암기를 숨 쉬듯 자연스레 다루는 초고수였다.

그 한 명이 뿌리는 죽음의 위협은, 놀랍게도 신화병들의 진격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물론 목숨을 버리고 돌진한다면 어떻게든 방벽을 뚫을 수야 있겠지만, 그건 늑대 한 마리 잡겠다고 사냥개 수십 마리를 죽이는 꼴이었다.

아무리 명령이 중요하다 한들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싸움이 지지부진해지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공략하고자 했지만, 도무지 당관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돌파구는 하나밖에 없는데.

쩌어어어어엉!

하단에서 우상단으로 크게 휘두르며 올려 친 도끼질에 기어이 무성이 피를 토했다.

기공 방패에도 한계가 있었다. 광룡부의 무게감은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간 축적된 충격이 자꾸만 내상을 촉발하고 있었다.

“후욱.”

연호정의 얼굴도 다소 창백해졌다.

연가신단을 완전히 개방하고, 사신기를 죄다 끄집어내 전투에 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내단이 있다 해도 이 정도로 출력을 뽑아내는 이상 내력 고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체력 훈련으로 심폐 능력을 키워 놓지 않았다면 호흡도 슬슬 흐트러졌을 것이다.

파악!

당관을 살피던 석경이 돌연 연호정에게 돌진했다.

쩌어어엉!

연호정이 피를 토하며 물러났다. 광룡부의 창대로 장력을 막았지만, 치고 들어오는 침투경이 내부를 뒤흔들고 있었다.

우우웅!

현무기가 솟구치며 화기의 침투경을 막아 냈다. 그러나 침투경은 막았어도 오장육부가 흔들리는 건 막지 못했다.

그 순간, 당관의 눈이 번뜩였다.

후우웅! 퍼엉!

석경이 시기적절하게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연호정을 공격하면 반드시 당관의 공격이 이어질 줄 알았다. 그것을 대비했기에 서너 걸음 물러난 것으로 충격을 상쇄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독장에 중독되었을 것이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아악!

피를 뿌리며 돌진한 무성이 연호정의 멱살을 잡고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석경의 눈이 커졌다.

“무성!”

“으아압!”

무성이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퍼엉! 퍼엉!

폭음과 함께 연호정의 몸이 흔들렸다.

퍼억! 콰직!

연호정 역시 미친 듯이 팔다리를 휘둘렀다. 그의 슬격과 팔꿈치 공격에 무성의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제힘을 살리지 못한 공격이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정도 이상의 힘을 실었다간 둘 다 목숨이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숨을 돌리는가 싶던 두 사람이 다시 서로를 향해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퍼버버벅! 푸화악!

느닷없이 벌어진 개싸움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무성의 모습에 석경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무성이 외쳤다.

“뒤로 물러나십시오! 일차전은 졌습니다!”

석경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차마 믿을 수 없는, 믿고 싶지 않은 그 한마디.

그렇다. 전력 차가 이렇게까지 많이 나는데도 그들은 연호정과 당관을 뚫지 못했다.

연호정의 무공이 생각 이상으로 철벽같았고, 당관의 독과 암기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일대일 대결이었다면 오히려 쉬웠겠지만,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전쟁’에서 그들은 패배한 것이다.

“쿨럭! 제가 이놈들을 잡아 둘 테니 어서 입구로 물러나십시오! 일단 이놈들과 거리부터 벌리고 재정비를……!”

그때였다.

파악!

무성의 팔을 쳐 낸 연호정이 그의 멱살을 쥐곤 그대로 땅에 내리꽂았다.

“컥!”

땅에 처박힌 등판 전체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

무성은 본능적으로 각법을 올려 쳤다.

퍼억!

연호정의 입에서 피가 튀었다. 어느새 연호정의 얼굴 역시 무성의 얼굴만큼이나 피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연호정은 물러나지 않았다.

우두둑!

“크르륵!”

광룡부의 창대로 무성의 목을 조른 연호정이 그의 등에 고개를 파묻으며 외쳤다.

“묵비!!”

순간, 석경은 저 멀리 떨어진 절벽 위에서 한 줄기 광채가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안 돼!”

퍼어어어억!

길쭉한 철전 한 발이 무성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그 광경을 본 연호정이 씨익 웃었다. 퉁퉁 부은 얼굴로 쾌재를 부르는 그였다.

“그동안 잘 참았다. 지금부터 참전이야.”

파아아악!

한 마리 새처럼 날아오른 묵비가 홍련궁에 다섯 발의 철전을 걸었다.

석경이 저도 모르게 외쳤다.

“퇴각! 모두 퇴각해라!”

티티티티팅!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