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화. 암투(暗鬪)의 승자 (2)
개봉부의 상안루는 그리 크지도 않고, 유명하지도 않은 주루였다.
게다가 외지인이 아니면 손님도 거의 찾지 않는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에 보름 이상 쉬는 곳이니 누가 그런 곳을 부러 찾겠는가.
덕분에 한때는 상안루를 향한 잡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암살자들의 은신처니, 흑도 패거리의 거점이니 하는 섬뜩한 소문부터 은퇴한 거부가 취미 삼아 운영하는 가게라는 소리도 들렸다.
자연히 호기심에 상안루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실종되거나 폐인이 되어 돌아왔다. 그것은 양민도, 무림인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젖어 이 사실을 관부에 알렸지만, 관부는 묵묵부답이었다. 상안루에 대한 조치는커녕 애초에 알아보려 들지도 않았다.
결국 사람들은 상안루에 관심을 끊었다. 애초에 상안루에서 요괴가 나온다든가 하는 것도 아니고, 괜스레 기웃거리던 사람들만 피해를 봤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떠들썩했던 소문은 이상할 정도로 빨리 잠잠해졌다. 즉,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소문을 잠재운 것이다.
그렇게 상안루는 개봉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누구도 알려고 들지 않으니, 자연스레 그리될 수밖에 없었다.
‘흠.’
어둠 속에서 상안루를 보는 모용군의 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묘하군.’
상안루의 위치는 참으로 묘했다.
주루는 술과 음식을 파는 곳이다. 장사가 되려면 당연히 저잣거리,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어야 한다.
한데 상안루는 그렇지 않았다. 지극히 은밀한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목이 좋은 곳에 자리한 것도 아니었다.
‘외부 시선을 피하기 좋은 장소다. 은밀하진 않지만, 어쩌다 지나쳐도 기억에 남지 않을 장소야.’
모용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미있군. 의도적으로 이곳에 지은 게 확실해.’
그가 그리 확신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상당하군.’
상안루 구석구석 무수히 많은 고수가 은신해 있다. 그 수가 오십을 헤아린다.
상안루의 크기를 생각하면 그리 많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무력이었다.
‘절정고수 오십이라? 그것도 어중간한 고수가 아니라 하나같이 일당백의?’
모용군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육대세가의 가주급 호위 이상이었다. 소위 절정고수라 불리는 이들에게도 급이 있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어떤 전투에서도 제 역량 이상의 역할을 해낼 만한 이들이었다.
‘음.’
모용군은 또 하나의 특이점을 알아챘다.
‘열양공?’
숨긴다고 숨겼지만, 모용군의 예리한 기감은 은신자들이 하나같이 극양의 무공을 익혔음을 알 수 있었다.
열양공은 무공 특성상 은신에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기척을 죽였다는 건, 그들의 실력이 그만큼 빼어나다는 걸 뜻했다.
‘열양공이라…… 그렇다면?’
모용군의 눈에 은은한 살의가 깃들었다.
‘이놈들이 그 신화교 소속 놈들인가?’
주먹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
모용군은 나직이 호흡을 조절했다. 순간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그는 애써 냉정을 되찾았다.
‘새외의 잡것들에게 호위를 받고 있다…… 그것도 도지휘사가.’
문제는 이것이다.
‘과연 호위인가?’
그렇다.
모용군의 그런 의문은 은신자들의 움직임이 다소 자유분방하다는 것에 기인했다.
중원 무림이든 새외든, 호위는 다 똑같다. 기척을 숨긴 채 호위한다면, 사방을 주시하기 용이한 곳에 앉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그게 기본이다.
한데 저들은 달랐다. 기척은 숨겼지만, 주루 안팎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결코 호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모용군의 눈이 깊어졌다.
‘이건 모험을 걸 만한 가치가 있군.’
논리 이전에 직감이었다.
파악!
모용군이 단숨에 상안루 지붕에 올라섰다.
고수가 오십이 있다 한들 모용군과 그들의 격차는 까마득했다. 진을 짜서 덤빈다면 모르되 작정하고 움직이면 눈을 속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후우우웅.
다행히 아직 밤바람은 차가웠고, 풍속도 제법이었다.
그 바람 소리가 모용군의 움직임을 도와주었다. 그가 조심스레 최상층부 창가로 들어섰다.
휘잉!
창가를 통해 들어온 바람이 촛불을 흔들었다.
탁자 앞에 앉아 서류를 살펴보던 건장한 체격의 초로인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람이 차군. 마치 귀신이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목소리가 탁했다.
탁자 한옆에 둔 곰방대를 보니, 꽤 오랜 기간 연초를 피운 것 같았다. 다만 그 굵고 탁한 음성 덕분에 특유의 위엄이 더해지는 듯싶었다.
초로인이 방 내부를 둘러보았다.
“눈에 보이지는 않는데, 어째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다 싶어. 기분이 묘하군.”
대단한 눈치였다.
내공을 익히지 않았음에도 눈치가 빠르고 감각이 뛰어났다. 평생을 흉흉한 전장에서 살아온 장수의 직감이랄까.
실제 전장이든 정쟁의 전장이든, 하남의 도지휘사 여상도(呂常跳)는 언제나 승리를 쟁취해 온 사람이었다.
무수히 많은 목숨의 위협을 받아 본 자의 감각. 위협의 숨결을 감지하는 건 내가고수(內家高手)가 아니더라도 체득할 수 있는 생존 본능이었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던 여상도가 창을 닫았다.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뉘신지는 모르겠지만, 방음이 잘 되는 곳이라네. 귀신 놀음은 이쯤하고 모습을 드러내게.”
스르륵.
순간 그림자 진 구석에서 모용군이 나타났다.
여상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자네는?”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 공(公).”
“……허!”
놀랍게도 두 사람은 안면이 있었다.
여상도가 하남성 도지휘사로 오기 전, 호남의 집무를 맡았던 적이 있었더랬다. 여상도와 모용군이 몇 번 술잔을 기울였던 때가 그때였다.
십여 년 전의 그리 깊지 않은 인연. 그간 연락 한 번 주고받지 않은 사람이 이리 몰래 찾아온 것이다.
“자네가 여기는 어찌 알고……?!”
“일단 앉으시지요.”
모용군이 손을 휘저었다.
우우웅.
보이지 않는 기의 장막이 모용군의 기척을 완벽하게 가려 주었다.
내공 소모가 상당한 기예였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는 데에 있어서 별문제는 없을 정도였다.
가만히 모용군을 보던 여상도가 의자에 앉았다.
놀랐지만, 그럼에도 담담하다. 크게 긴장한 것 같지도 않았고, 상대를 쉬이 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한 성의 군정을 담당하는 최고 지휘관다운 면모였다. 눈앞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침착할 것이다.
여상도는 가만히 모용군을 바라보았다.
‘음.’
음영이 진 모용군의 얼굴은 묘하게 섬뜩해 보였다.
그러나 그 안에 살기는 없었다. 적어도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온 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찾아왔군.”
“물론입니다.”
“관부의 첩보 조직을 건드렸을 리는 없을 테니, 강호의 정보 조직을 이용했겠군.”
“그렇습니다.”
“관림불침조약을 위반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짓이네. 알고 있겠지?”
“모를 리가 없지요.”
“즉 자네는 그만한 위험성을 감수하고 날 찾아냈고, 나아가 찾아왔구만.”
여상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아는 자네는 이런 위험천만한 일을 벌일 사람이 아닌데.”
“…….”
“둘 중 하나겠군. 집단적 행동이든지, 아니면 자네가 이리 무리해야 할 정도로 급한 일이 터졌든지. 내 생각엔 아무래도 전자 같은데.”
무서운 안목이었다.
모용군은 여상도의 두뇌에 새삼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모용세가의 가주가 몰래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거기까지 유추해 낸다.
한 성의 군정을 담당하는 자가 괴물일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이 정도 두뇌와 감각은 있어야 도지휘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여상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날 납득시키지 못하면, 강호는 몰라도 모용세가는 제법 큰 홍역을 치르게 될 걸세.”
무서운 협박이었다.
이건 절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도지휘사쯤 되면 제아무리 날고 기는 무림 문파라도 말살시켜 버릴 수 있다.
다만 관계성과 정치적 논란, 관림의 전쟁 발발 위험 때문에 쉽게 시도할 수 없을 뿐이다. 도지휘사는 그렇게나 강력한 권력자였다.
모용군이 말했다.
“외람되지만, 저 역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
“만에 하나 여 공께서 이곳에 은신하고 있는 고수들을 호위로 쓰고 계신 거라면, 지금 제 손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습니다.”
강수에는 강수로 대응한다.
물론 듣는 여상도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기가 찰 만한 협박이었다. 아무리 강호의 거물이라도 감히 도지휘사를 죽이겠다니?
그러나.
“…….”
여상도는 화를 내지 않았다. 눈에 살기를 띄우지도 않았고,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지도 않았다.
그저 놀란 눈으로 모용군을 볼 뿐이었다.
“……역시 그렇군요.”
모용군이 미소를 지었다.
눈빛은 싸늘했지만.
“여 공께서는 호위를 두고 이곳에 계신 게 아닙니다. 감시를 당하고 계신 것이지요. 아닙니까?”
여상도가 괜히 도지휘사가 된 게 아니라면, 모용군 역시 괜히 호남의 패자로 군림하는 게 아니었다.
서로가 말하지 않은 것을 단번에 꿰뚫어 보는 안목.
거물들의 대화란 이런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의중을 더듬을 능력이 되니, 대화의 진행이 빠르고 효율적이다.
“다행입니다.”
“무엇이 말인가.”
“만약 여 공께서 저 신화교 놈들에게 포섭을 당하셨다면, 그때는 꽤 골치가 아플 뻔했어요.”
“자네…….”
“말씀하십시오.”
여상도가 살짝 침을 삼켰다.
“자네, 저들에 대해 알고 있었나?”
“몰랐습니다. 최근까지는요.”
“…….”
“하지만 놈들에 대해 알아 버린 지금,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모용군의 미소가 짙어졌다.
“여 공께서도 그리 생각하시지요?”
“……후우.”
여상도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자네가 저들이 보낸 세작은 아닌지 고민했다네.”
“그럴 리가 없지요. 여 공의 안색을 보아하니 이미 하남성 관부의 대부분이 장악당한 듯한데, 그런 상황에서 깊지도 않은 인연을 데려다가 공을 감시토록 하겠습니까?”
“내 말이 그것이네.”
“즉, 평소라면 그런 찰나의 의심도 없었을 여 공께서 고민하셨을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고 봐야겠습니다.”
“잘 보셨네.”
여상도의 눈이 깊어졌다.
“무림맹이 알아차린 겐가?”
“정확히는, 아는 사람만 알고 있습니다. 혹 이쪽에도 놈들에게 포섭당한 세작이 있을까 싶어 만전을 기하고 있지요. 삼교(三敎)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열 명이 되지 않습니다.”
여상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했네. 아주 잘했어. 놈들의 행동력을 보자면…… 아, 아니 잠깐!”
“……?”
“삼교라니? 설마, 신화교가 끝이 아니란 말인가?”
모용군의 눈이 빛났다.
“모르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
“강호의 흑도 연합, 묵룡부가 삼교 중 하나인 사음교의 지원을 받아 탄생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아직 나서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것도 확신할 수는 없군요.”
“이럴 수가…….”
여상도의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다. 그의 평소 인품과 담대함을 생각하면, 놀라도 보통 놀란 것이 아니리라.
모용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주변 놈들부터 물리친 연후에…….”
“안 돼!”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여상도의 얼굴에 긴장이 드리워졌다.
“이곳의 고수들은 건드리지 말게. 절대로!”
“혹, 저의 정체가 발각될까 봐 그러시는 거면…….”
“자네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도, 내 안위를 위해서 이러는 것도 아닐세.”
“……?”
“놈들은 불사신이야. 목을 날리고 사지를 찢어 죽이지 않는 이상, 절대로 죽지 않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일세.”
여상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놈들은 괴물이야.”
* * *
푸스스스.
‘음?’
당관이 뒤를 돌아보았다.
후욱!
강한 바람과 함께, 폭발에 휩쓸렸던 거구의 사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당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미있는 고깃덩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