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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347화 (347/963)

347화. 암투(暗鬪)의 승자 (1)

콰릉!

가볍게 내친 일장(一掌)에서 뿜어진 장력이 부딪치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상당하군.’

추뢰신법(追雷身法)으로 요뢰의 장법을 피한 당관은 냉정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화르르르륵!

전신에서 붉은 화기를 피워 내는 요뢰는 하나의 불덩이로 화해 있었다.

뿜어내는 화력이 어찌나 강한지, 십 장 밖에 있는데도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였다. 강력한 내공 방패로 육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감히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할 고온의 진기였다.

‘저만한 화기를 발산하면서도 본체는 무사하단 말이지?’

독공(毒功)을 수련하는 자들이 항상 경계해야 하는 것이 내성과 독기(毒氣)의 균형이었다.

극독에 내성이 없는 상태로 독기의 농도를 불리다간 몸이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독기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무공이 그러하다.

신체가 농도 짙은 진기(眞氣)를 받아 낼 수 있을 정도의 견고함을 갖추지 못하면, 제아무리 뛰어난 깨달음을 얻는다 한들 몸이 버틸 수 없다. 말하자면 기와 육체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다. 무종지벽(武終之壁)이라는 경지가 괜히 존재하겠는가.

요뢰의 열양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건 무공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 이치의 문제였다.

‘즉, 놈의 몸은 어지간한 화공(火攻)에도 멀쩡할 만큼의 내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로군.’

퍼어엉!

또다시 내친 요뢰의 장력이 허공을 불사르며 지나갔다.

패도적인 장력에 땅거죽이 터져 나가고, 사방으로 튀는 파편에 수많은 나무가 불길에 휩싸였다. 신화교의 일차 정보 거점 일대가 순식간에 불바다로 화했다.

조금 전, 당관의 예상치 못한 일격을 받은 것에 분노한 듯 일격, 일격에 심상치 않은 살기가 가득했다. 호승심보다 교를 위해 무공을 구사하지만, 그 역시 사람인지라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퍼엉! 퍼어어엉!

연달아 터지는 폭음에 화광이 충천한다.

실로 대단한 체력이었다. 일격의 위력이 이만큼이나 대단한 장법을 연이어 내치는데도, 숨소리 하나 바뀌지 않았다.

체력, 내공, 정신력 등 모든 것이 초일류다. 그러면서도 회피하는 당관의 움직임을 단 한 차례도 놓치지 않고 주시한다.

억눌린 욕망과 호승심을 제외하면, 무인으로서 거의 완성형에 가까운 무(武)를 구사하는 요뢰였다. 신화교 십팔무장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렇군.”

수없이 많은 장력을 내치던 요뢰가 이내 자세를 풀었다.

그의 얼굴에 조소가 깃들었다.

“맞받아칠 용기도 없는 쥐새끼 같은 놈. 할 줄 아는 건 발재간밖에 없는 모양이다.”

당관이 피식 웃었다.

“널 관찰하는 거다. 이 옷, 비싼 옷이거든. 벌레 하나 잡자고 더럽히긴 아까운 노릇이지.”

“주둥이 하나만큼은 인정해 주마.”

콰르르릉!

요뢰의 몸에서 더 강한 화기가 솟구쳤다.

신화교의 절정무공, 홍련순화공(紅蓮純化功)이었다. 힘을 극성으로 끌어올린 요뢰, 뿜어져 나오는 화기가 마치 붉은 연꽃과 같은 형태로 후광을 퍼트렸다.

당관의 눈이 가늘어졌다.

‘확실히.’

힘 하나만큼은 대단하다. 육체의 완성도는 물론 내공 역시 대단했다.

적어도 내공량만큼은 자신보다도 우위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계 없이 뿜어지는 절대적인 화력, 어지간한 고수라도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가면 지독한 화상을 입을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옷이라.’

당관이 소맷자락을 살짝 매만졌다.

이 장포는 얼마 전, 당상아가 처음으로 선물해 준 옷이었다. 질도 좋았고, 생각보다 훨씬 편해서 즐겨 입고 다녔거늘.

‘웃기는군.’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당관 역시 알고 있었다.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고선 결코 요뢰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요뢰는 그렇게나 강했다. 천하의 당관마저도 잠시나마 자만심을 내려놓아야 할 만큼.

“별수 없지.”

후우우우웅!

도반삼양귀원공의 섬뜩한 진기가 당관의 몸 전체를 휘감았다.

요뢰의 홍련순화공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끊임없이 발산해 내는 기운이었다.

‘독은 통하지 않는다고?’

일전, 신화교 놈들은 열양공에 통달하여 독은 쓰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연호정이 말했다.

당관이 조소를 머금었다.

세상은 모르고 있다. 당가의 독과 암기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를. 이미 세간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구경은 잘했으니, 슬슬 시작해 볼까.”

훅!

당관의 신형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적어도 신법에서만큼은 당관이 요뢰보다 한참 우위에 있었다. 요뢰의 반사 신경 역시 뛰어났기에 당관의 움직임을 놓치진 않았지만, 그 정도 속도로 움직일 수 없다는 건 큰 약점이었다.

당관의 손이 요뢰의 화기를 뚫고 들어갔다.

퍼어어어어엉!

요뢰의 몸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치이이익!

당관의 손과 소매에서 희뿌연 연기가 치솟았다.

요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놀라운 속도다만, 그만한 공격으로 어디 이 몸에 생채기나 낼 수 있겠느냐?”

당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파바바바박!

번개는 결코 일직선으로 내리치지 않는 법이었다. 여러 각도로 끊임없이 휘어지며 대지에 꽂히는 게 번개였다.

당관의 신법은 그와 같았다. 번개를 추적하는(追雷) 신법이라는 이름처럼, 그의 몸은 무수히 많은 사각을 점하며 공간을 접듯 움직였다.

어느새 요뢰의 후방으로 돌아간 당관의 발이 채찍처럼 움직였다.

퍼버버벅!

요뢰의 몸이 재차 흔들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삼연각(三連脚)을 허용했지만, 그저 둔중한 아픔만 느껴졌을 뿐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요뢰의 손이 횡으로 휘둘러졌다.

번쩍! 콰릉!

화기(火氣)를 머금은 수도(手刀)의 참격이었다. 허공에 붉은 초승달이 떠오른 순간, 그 영역 안에 걸린 나무 네다섯 그루가 쪼개졌다.

쿠구궁! 콰앙!

쪼개진 나무들이 쓰러지며 헤아릴 수 없는 불티를 만들어 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힘이었다.

“뭐 하자는 것이냐?”

사박.

또다시 십여 장 밖으로 물러난 당관이 사뿐한 걸음으로 내려섰다.

요뢰가 눈살을 찌푸렸다.

“네놈의 공격은 지나치게 가볍다. 그따위 무공으론 내 몸에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해.”

당관이 미소를 지었다.

“몸뚱이 하나만큼은 확실히 단단하군.”

“……이건 칭찬해 주지. 홍련화(紅蓮火)의 내공 방벽을 뚫었음에도 손과 발이 멀쩡한 걸 보면, 확실히 명문가의 수장 그릇은 되는 모양이야.”

자만심이 아니라 자신감이었다.

신화교의 열양공을 극에 이르도록 연마하면 불꽃의 호신강기(護身罡氣)를 뿜을 수 있다.

그 호신강기는 초절정고수도 마음먹고 공격을 내치지 않으면 뚫기가 힘들다. 하물며 고온의 화기까지 담겨 있으니, 뚫기는커녕 접근조차 힘들 수밖에 없었다.

즉 당관은, 살아 움직이는 화신(火神)의 몸에 몇 차례나 손발을 박아 넣었음에도 멀쩡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쿠웅!

요뢰의 강인한 진각에 산봉우리가 통째로 뒤흔들리는 듯했다.

당관의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진각?’

새외 무공에도 진각이라는 요소가 있었던가?

“넌 절대 날 이길 수 없다.”

파아아악!

원거리 공격으로 접근을 막았던 요뢰가, 이번에는 주저 없이 거리를 좁혀 들었다.

당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의 신법 역시 놀라운 수준이었다. 당관이 규격 외의 속도를 보여 줬을 뿐, 요뢰 역시 종사급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요뢰의 거권이 바람을 찢으며 움직였다.

일전에 규적이 구사했던 권법, 신화교의 절기 염왕팔권(炎王八拳)이었다.

퍼어엉! 퍼어어엉!

화염의 권격이 공기를 터트리며 무시무시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요뢰의 염왕권은 규적의 그것과 달랐다. 규적이 날카로운 권법을 구사했다면, 요뢰는 한없이 강하고 묵직한 권법을 구사했다.

같은 무공을 익혀도 해석의 차이에 따라 무공의 성질마저 달라지는 법.

십팔무장 중 강권(强拳)으로는 제일이라는 오호무장의 권법다웠다.

파아앙! 콰르릉!

중첩된 권경(拳勁)이 위력을 증폭하며 숨이 막힐 듯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일권, 일권이 화탄을 연상케 했다. 당관은 연신 물러나며 그의 주먹을 피했지만, 쏟아지는 권법 세례에 마침내 당관의 움직임에도 제약이 오기 시작했다.

요뢰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잡았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그 뒤는 절벽이며, 자신을 뛰어넘어 후방을 점하려 해도 홍련화의 불길이 놈의 하반신을 옭아맬 것이다.

‘그래서 네놈들이 안 되는 것이다.’

사천당가가 공포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독과 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 호신강기를 피우는 고수에게 암기는 별무소용일 것이다. 게다가 독의 특성상, 화기(火氣) 앞에서는 그 독기가 모조리 증발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경지라도 상성에서 우위를 점한다. 요뢰는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쿵!

마침내 당관의 발이 절벽 끝에 닿았다.

화르르륵!

요뢰의 좌우로 시뻘건 불꽃의 벽이 형성되었다. 도주할 수 있는 모든 방위를 차단한 것이다.

당관이 냉정한 눈으로 요뢰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한 요뢰가 본인의 무공과는 달리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끝이다, 독사 놈.”

쿠웅!

강한 진각과 함께 마지막 일격을 퍼부으려던 찰나.

‘……?’

순간 요뢰의 눈이 흔들렸다.

‘뭐지?’

단전에서 솟구치던 내력이 한순간 폭풍우를 맞닥뜨린 뗏목처럼 거칠게 뒤흔들렸다.

찰나에 찰나를 쪼갠 순간.

요뢰는 이 주먹을 뻗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지독한 고민에 휩싸였다. 그는 본인의 힘을 믿었고, 교의 무공을 믿었으며, 지금껏 쌓아 온 수련의 역사를 믿었다.

잘못될 리가 없다. 단순히 내력이 잠시 흔들렸을 뿐이다. 그냥 내치면 된다.

이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본능은 달랐다.

야수의 직감이 속삭인다.

‘안 돼. 뻗으면 안 돼.’

어느새 염왕팔권의 구결에 따라 진기가 흉부에서부터 우측 어깨까지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진기는, 주먹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거센 파랑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주먹을 뻗으면 위험해!’

소름이 오싹 돋았다.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요뢰는 분명한 위험을 느꼈다.

그리고 요뢰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본능이 외치는 경고를 외면키로 했다. 이 한 방이면 저 오만한 놈을 뭉개 버릴 수 있을 테니까.

요뢰가 힘차게 일권을 내질렀다.

퍼어어어억!

“……?!”

침묵이 일었다.

당관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요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요뢰는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주먹은, 안에서부터 폭발하여 뼈가 드러날 정도로 뭉개져 있었다.

치이이이익!

넘실거리는 화염이 상처를 지지고 피를 증발시켰다.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요뢰는 멍하니 주먹만 바라보았다.

“대가리가 비었으면 조심성이라도 있어야 할 터인데, 그조차도 없군.”

“……무슨 짓을 한 거냐?”

“알 바 아니다. 어차피 이해도 못 할 테니.”

당관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검지와 엄지를 맞붙인 그가 손가락을 강하게 튕겼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요뢰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우웨엑!”

그가 한 사발의 피를 토했다.

훅!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방 천지를 불태우던 화기가 무서운 속도로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 주인을 중심으로 범위를 좁히던 화기는, 이내 그의 등과 양쪽 팔뚝으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조금 전, 당관의 장법과 각법에 맞은 그 부위였다.

‘위험!!’

당관이 씨익 웃었다.

“독이 안 통한다고? 웃기는군.”

우우우우웅!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도반삼양귀원공의 진기가 그대로 요뢰의 모공에 침투했다.

순간 요뢰의 몸에서 하얀빛이 폭발했다.

콰르르르릉!!

엄청난 폭음과 함께 불꽃의 소용돌이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당관이 소매를 털었다. 다행히 그의 장포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독이 안 통하는 사람은 없다. 어설프게 쓰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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