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연합 (4)
당상아의 얼굴은 불이라도 붙은 듯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가만히 딸의 얼굴을 보던 당관이 입을 열었다.
“그만.”
“커헉!”
당상아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헉헉!”
거친 숨을 내쉬는 그녀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어찌나 지쳤는지 몸 전체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말은커녕 고개조차 들지 못할 상태였다.
당관이 그녀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우우우웅.
한 줄기 날카로운 진기가 그녀의 혈도 곳곳을 누비며 탁기를 날려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극도로 소모된 그녀의 내력을 북돋아 활기를 되찾아 주었고, 농도 짙은 진기로 빠른 회복을 도모했다.
잠시 후, 당상아가 몸을 바로 세웠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당관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보다는 늘었다만, 여전히 멀었다.”
“네.”
“제왕독경(帝王毒經)상의 무공은 결코 만만치 않아. 도반삼양귀원공이 본가 최고의 무학 중 하나라지만, 제왕의 독공은 그 이상이다. 단순히 독기(毒氣)의 증식만이 아닌, 무(武)의 이상적인 깨달음 또한 필요로 한다. 하여 구결을 안다고 체득할 수 없고, 왕성한 독기로도 진기(眞氣)를 생성할 수 없다.”
당상아는 진지한 얼굴로 당관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무의 이상적 깨달음이란 그저 끝없이 고뇌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에 접근하기 위해선 육체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깨는 고행(苦行)이 필요하다.”
“네.”
“고통을 아는 자, 물 한 모금의 소중함을 아는 법. 그 소중함을 깨달았을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가득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주님.”
당관은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들었다. 가득상이 움찔하며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당관이 말을 이었다.
“주기가 빨라야 한다.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선 최고의 몸 상태가 전제되어야 하는바. 완벽한 회복과 완전한 돌파, 이 독하디독한 과정에서 너의 힘이, 영혼이 무엇을 해방하려는지를 포착해야 한다. 그것이 곧 제왕독경에서 말하는 붕정승제(崩頂昇帝)의 경지니라.”
“네.”
“며칠간 맹을 떠나 있을 것이다.”
당상아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무슨 일 있으세요?”
“극비 사항이다. 빠르면 사흘, 늦으면 보름까지도 걸릴 수 있다.”
“아……!”
“다시 돌아왔을 때, 눈곱만큼이라도 나아져 있어야 할 것이다. 기억해라. 내가 양선을 제치고 네게 먼저 독경을 전수하는 이유는, 너에게서 본가의 명성을 드높일 일말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당관이 몸을 돌렸다.
“무리는 하지 마라.”
가득상에게 다가가는 그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당상아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아버지!”
당관이 걸음을 멈추었다.
당상아가 애써 밝게 말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 당관이 다시 가득상에게로 향했다.
“가자, 거지.”
“옙!”
“어젯밤, 모용가주가 맹을 나섰습니다. 모용가주의 실력을 생각하면 나흘에서 닷새 사이에 개봉에 다다를 것으로 예측됩니다.”
제갈문호의 눈이 빛났다.
“도지휘사의 동선이 포착되었습니다. 현재 그는 개봉부 상안루라는 주루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남성 군정의 최고 책임자가 수일간 주루에 머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지요.”
연위가 물었다.
“모용가주가 위험하지 않겠소?”
“대비는 충분할 것입니다. 설령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한들, 어떻게든 생환할 것입니다. 게다가 개봉부에는 개방의 최고 실력자들이 많습니다. 걱정할 것 없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오.”
“문제는 당가주와 연 군장입니다.”
제갈문호가 당관에게 물었다.
“몸 상태는 괜찮으십니까?”
당관이 퉁명스레 답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이오?”
거침없는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제갈문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대의 실력은 저희 가주들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고 상정해야 합니다. 만에 하나 개방에서 포착하지 못한 조력자들도 함께하고 있는 경우, 정말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당관이 피식 웃었다.
“내가 제일 안전할 테니 쓸데없는 걱정일랑 하지 마시오.”
제갈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단순한 자신감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당관은 사천당문의 수장이며, 성천십삼좌의 일인인 암왕 당형의 아들이다. 당관의 재능과 실력은 강호 최강자인 당형이 인증한 것, 어쩌면 당관 말대로 가장 안전한 사람은 그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연 군장.”
“예.”
“자네만으로 충분하겠는가?”
“음.”
연호정이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더 데려갈까 합니다.”
“누구?”
연호정이 말없이 묵비를 가리켰다.
제갈문호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묵 부장이라면 그 실력을 믿을 만하지.”
묵비가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문제 없이 잘 처리해 보겠습니다.”
“고생이 많네. 아! 그나저나, 이제 정말 코앞이로군.”
“네?”
“무종지벽 말이야. 자네처럼 부드럽게, 서서히 돌파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
“아…….”
부끄러운 듯 묵비가 고개를 숙였다.
“아직 멀었습니다.”
연호정이 코웃음을 쳤다.
“멀어도 한참 멀었지.”
당관이 이죽거렸다.
“네놈, 그러다 곧 따라잡힐 게다.”
“쪽팔리게 그럴 순 없지요.”
“주둥이로 흥한 자, 주둥이로 망하는 법이다. 겸손이 필요해 뵈는데?”
“가주님께서 하실 말씀이십니까?”
“……싸가지 없는 놈.”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보던 제갈문호가 연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연가주께서는 맹의 동방대문(東方大門) 앞을 맡아 주십시오. 만에 하나 당가주가 실패하게 되면, 그자는 반드시 무림맹으로 올 겁니다.”
“알겠소.”
“말하자면 저와 연가주가 최종 관문입니다. 당가주와 연 군장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만, 우리 역시 긴장을 늦춰선 안 되겠지요.”
연위가 미소를 지었다.
“언제든 휘두를 수 있도록, 검을 잘 벼려 놓고 있소.”
제갈문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연위의 이 상식적인 반응에 너무나도 믿음이 갔다.
“자, 그럼.”
제갈문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작합시다.”
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사라졌다.
* * *
뚝. 뚝.
이마의 식은땀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동각 앞에 있는 사람은, 얼마 전에 본 십이무장 규적보다도 더 높은 서열의 강자였다.
‘십호무장 안쪽의 장수께서 오실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동각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설마하니 이분이 오실 줄이야.’
단순히 더 강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사람은 무공도 무공이지만, 지독하게 냉정하고도 잔혹한 성품의 고수였다.
규적은 품위를 알았다. 절제를 알았고, 아랫사람의 실수에도 제법 관대한 편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니었다.
신화교 십팔무장의 일인이자 무장 중에서도 진짜배기 강자라는 십호무장 안쪽의 괴물.
오호무장(五號武將) 요뢰(曜雷)가 그였다.
‘제기랄! 왜 하필……?!’
그때였다.
“동각이라 했던가.”
동각이 움찔했다.
“예, 요뢰 님.”
“그래서, 규적의 행적은 모른다?”
동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살의와 권위에 단전까지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를 더욱 두렵게 하는 것은 변명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아니, 어떤 식의 대답이든 명확하고 진실해야만 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면 일말의 희망이라도 생기지만, 변명이나 거짓을 입에 담으면 그 즉시 죽는다.
동각이 눈을 질끈 감았다.
“송구하옵니다.”
“…….”
침묵이 일었다.
일다경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동각이 느끼기에는 족히 반나절은 되는 듯했다.
잠시 후.
“일어나라.”
“예!”
동각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의 눈에 요뢰가 보였다.
‘……!!’
동각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더 강해지셨다.’
방만한 자세로 앉아서 노인이 가져다준 문서들을 읽는 한 사내의 모습.
거대한 산을 연상시킬 만큼 커다란 사내가 거기에 있었다.
분명 앉아 있는데도 그 키가 동각과 별 차이가 없었다. 팔다리는 성인 남성의 허리만큼이나 굵었고, 몸통 역시 거목처럼 굵고 두툼했다.
전신이 엄청난 근육으로 둘러싸인 거구의 사내였다. 이 정도면 정말이지 거인 소리를 들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더하여, 그리 압도적인 체격을 가졌음에도 수염과 머리카락은 깔끔하게 정돈했다. 생김새는 험악했지만, 복식이나 자태만큼은 여느 귀족 못지않았다.
우우우웅!
‘흡!’
동각은 제멋대로 날뛰려는 내공을 혼신의 힘을 다해 다독였다.
규적 때보다 더하다. 가까이서 마주하는 압박감이 실로 엄청났다. 그만한 수준의 고수들에겐 한 수 차이가 천지 차이라고들 하지만, 그 격차가 이 정도로 대단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동종의 내공을 익힌 자, 더 수준 높고 막강한 힘 앞에 무장 해제가 될 수밖에 없다. 동각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내공을 제어했다.
거한의 사내, 요뢰가 문서에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오는 길에 화재가 있었던 곳을 보았다.”
동굴에서 말하는 듯 낮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규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강함의 정도를 떠나서 풍기는 기질이 그러했다.
“혹시 몰라 흔적을 살펴보았다. 워낙 넓은 지역이라 다 뒤져 보지는 못했다만, 적어도 내가 본 결과 열양공의 흔적은 없었더랬지.”
“……!”
“그래, 보기에는 분명 그랬어. 하나 이 망할 놈의 직감이 자꾸 그곳에 신경을 쓰도록 만드는군.”
요뢰가 툭 던지듯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질문은 정말이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동각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했다.
“요뢰님께서 신경이 쓰이신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한 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요뢰가 조소를 흘렸다.
“이봐, 동각.”
“예, 요뢰님.”
“내가 왜 네놈을 살려 두는지 아느냐?”
동각이 침을 삼켰다. 이미 안색은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진 상태였다.
“……모, 모르겠습니다. 송구하옵니다.”
“네놈을 죽이면 쓸데없이 사람을 하나 더 빼서 몰래 이곳까지 데리고 와야만 해. 물론 교육도 다시 시켜야겠지. 한데 지금은 시간도 없고, 급하게 뺄 사람도 없어. 그래서 널 살려 두는 것이야.”
“……!”
“하지만 두 번은 없다.”
“예, 예!”
화르륵.
요뢰가 손에 들린 문서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규적의 행적을 찾아라. 열흘을 주마. 만에 하나 그 안에 찾지 못한다면, 수고를 감수하더라도 대체자를 찾을 것이야.”
동각이 그 자리에서 엎드렸다.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예!”
한참이나 동각을 노려보던 요뢰가 이내 하품을 쏟아 냈다.
“그래도 간만에 좀 달렸더니 속이 시원하군. 저쪽은 영 답답해서 말이지.”
누구한테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애초에 요뢰는 동각과 노인을 같은 사람으로 여기질 않았다.
나른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던 요뢰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물었다.
“근처에 마을이 있었지?”
“예.”
“흐음.”
요뢰가 턱을 쓰다듬었다.
“회포를 좀 풀고 싶은데, 무림맹이 지척이니 그러긴 좀 뭣하고…… 차라리 지금 무림맹으로 진격하는 게 나을꼬?”
요뢰의 눈이 번쩍거렸다.
푸른 화염으로 가득한 그의 눈빛은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따분하기 그지없군. 뭐 재미있는 일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