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화. 성화(聖火)를 밝히는 자 (7)
쿠르릉!
“음?”
연위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허어, 이런 날에 천둥이라니. 참으로 기괴합니다.”
“그렇구려.”
제갈문호가 한숨을 쉬었다.
“어찌 되었든, 연 군장이 그간 바쁘기도 바빴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워낙 일을 잘하니 그러려니 했는데, 가주의 말씀을 들어 보니 이 사람도 너무 무심했습니다.”
연위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 말씀하지 마시오. 군사께서 처리할 일이 한두 가지겠소? 오히려 내 아들보다 바쁜 분이 그리 말씀하시면, 내가 얼굴을 들 수가 없소이다.”
“허허.”
제갈문호가 입맛을 다셨다.
“일단 그런 식으로 일을 분담한다 했으니, 당분간 연 군장도 제 일에 집중할 수 있겠군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마찬가지요. 광신삼교를 향한 녀석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소. 그러다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괜히 조바심이 드는구려.”
“허허! 연가주도 아버지는 아버지인 모양입니다. 다 큰 사자라도 아비 눈에는 아이일 수밖에 없긴 합니다만.”
“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연 군장은 강력한 추진력만큼이나 냉철한 이성이 돋보이는 천재입니다. 혹여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살길을 모색할 터이니, 걱정은 내려놓으시지요.”
“그렇긴 하오만.”
그때였다.
“아버지!”
멀리서 제갈아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갈문호가 놀라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연아? 네가 이 시간에 여기는 어찌……?”
파아악!
제갈아연이 단숨에 창가로 뛰어올랐다. 연호정에 비해 부족할 뿐, 그녀의 신법 공부도 상당히 뛰어났다.
“큰일 났어요! 정이가 적측 고수의 뒤를 따라갔어요!”
“뭐?”
“한데 그 고수, 경지가 심상치 않아요. 정이가 긴장할 정도의 고수인 것 같아요! 정이가 그렇게 긴장하는 거, 처음 봤어요!”
“……!”
“은밀하게 사람을 보내야 해요!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요!”
드르륵!
연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그의 눈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군사. 가득상 고문을 불러 주시오. 그리고 아연이는 날 안내하거라.”
* * *
콰아앙! 후욱!
폭음과 함께 불길이 좌우로 쫙 갈라졌다.
퍼어어어엉!
고속으로 회전하는 권풍이 불꽃을 박살 내며 그대로 허공을 뚫었다.
퍼퍼펑! 콰르릉!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이 사실인 듯, 규적의 손에서 터져 나오는 화력발경(火力發勁)은 그 위력이 실로 대단했다.
발경의 위력도 대단했지만, 충격파를 터트리며 비산하는 화기 자체가 위협적이었다. 사신무의 주작기 역시 열양공으로는 천하 으뜸이라 할 만하지만, 규적이 뿜는 화기에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파르르륵!
연호정의 몸이 빠르게 회전하며 청로진화(靑爐眞火)의 불꽃을 흘려 냈다.
치이이이익!
전신에 현무기를 둘러쳤는데도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청로진화의 화력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이놈!”
규적의 손이 연호정의 등판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퍽! 촤아아아악!
사선으로 올려 친 도끼의 일참(一斬)에 열화신장의 장력이 반으로 쪼개졌다.
화력 대 화력 승부에서 밀린다?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 연호정에게는 화기에 상성인 현무공이 있고, 현무공의 뒤를 받쳐 주는 청룡공과 전진에 특화된 백호공도 있다.
사신기를 탄탄하게 조율하는 연가신단의 힘도 누구보다 깊었으며, 나아가 신들린 전투 능력과 극상의 깨달음이 규적의 무공을 철저하게 분해하고 있었다.
연호정이 재차 도끼를 휘둘렀다.
퍼억! 퍼억!
엄청나게 빠른 참격이었다.
광룡부가 아니라 질 좋은 철로 만든 수부(手斧)였다. 무게는 광룡부의 오 푼밖에 안 되지만, 덕분에 신속(神速)의 도끼질이 가능했다.
퍼버버벅!
광룡부보다 위력이 약하지만, 속도로 그것을 보완한다. 미친 듯이 휘둘러지는 도끼가 규적이 뿜는 화기를 모조리 베거나 터트리며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이놈이……!’
규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표정한 얼굴, 냉정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며 도끼질과 장력을 퍼붓는 연호정이 사람처럼 보이질 않았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단 말인가?!’
뿜어내는 화기와는 달리, 머리가 점차 차갑게 식어 간다.
‘저 연배에 이토록 무시무시한 전투술을 구사해?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단순히 실전 능력만 탁월한 게 아니었다.
거리가 꽤 벌어졌는데도 도끼와 권장을 적절히 이용해 진기의 막을 베거나 터트려 공격선을 잡으려 든다.
이건 기공에 도가 튼 천재나 경험 많은 노고수가 아니고선 절대 쓸 수 없는 방법이었다. 애초에 규적 역시 이런 수법 자체를 깨달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놈!”
콰르릉!
열화신장의 위력이 쏟아지는 파도와 같다면, 염왕팔권의 위력은 속이 꽉 찬 망치와도 같다.
퍼어어어억!
연호정의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시기적절하게 내친 일격에 정통으로 맞았다. 연가신단에 녹아 있는 벽라진결이 아니었다면 치명상에 가까운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파아악!
단숨에 거리를 좁힌 규적이 연호정의 어깨를 잡았다.
치이익!
어깨의 옷깃이 타들어 갔다. 연호정의 두 어깨가 순식간에 화상으로 얼룩졌다.
잡은 상태 그대로 열화신장을 침투하려던 규적은, 순간 알 수 없는 섬뜩함에 손을 놔 버렸다.
촤아아악!
“이익!”
관절이 없는 것처럼 축 늘어진 손이 상단으로 올라오며 규적의 상반신에 기다란 상처를 만들어 냈다.
도끼의 참격이었다. 그것도 피육만 상한 수준이 아니었다. 날이 없어서 그런지, 좌측 고관절에서부터 우측 어깨까지 이어진 상처는 고랑이 파인 것처럼 깊었다.
규적은 극심한 고통을 참아 내고 냅다 주먹을 내질렀다.
퍼어억!
연호정의 입에서 재차 피가 터졌다.
규적의 눈이 빛났다.
‘반응이 늦어졌다.’
상대의 반응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애초에 품고 있는 내력의 깊이가 달랐다. 오히려 지금껏 버티며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낸 상대의 전투 능력이 말도 안 되게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힘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법.
실전 능력 등의 전투술은 연호정이 확연히 위였다. 그러나 규적 역시 뛰어난 전투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그는 연호정보다 내력이 더 깊었다.
그 차이가 바로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다. 속전속결의 승부였다면 모를까,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력이 달리는 연호정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규적의 두 주먹에 더 강한 힘이 실렸다.
쾅! 콰르릉! 퍼억!
연호정이 연신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났다.
살벌한 권격을 내치면서도 규적은 상대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녕 무서운 놈이로구나!’
승부의 추가 확실하게 기울었다. 피해량과 내공 소모량을 보면 이미 상대는 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도 출력을 올린 염왕팔권을 일일이 쳐 내거나 피해 내고 있었다. 충격파에 내상이 축적되고 있지만, 결정적인 일격은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규적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괴물 같은 놈! 이놈은 반드시 여기서 죽여야 한다.’
타오르던 호승심은 어느새 사라졌다. 규적의 마음은 어느새 연호정을 향한 경각심으로 꽉 채워졌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 나이에 이런 무공을?’
얼핏 보기에 이제 약관을 갓 넘긴 듯하다.
그리 젊은 놈이 품고 있는 내공은 십팔무장에 근접해 있으며, 구사하는 전투술은 오히려 십팔무장 이상이다.
신화교 역사상 손에 꼽히는 천재라 불렸던 교주님의 어린 시절이 이러했을까? 규적은 연호정의 실력보다 그 말도 안 되는 잠재력에 섬뜩함을 느꼈다.
‘중원제일 후기지수라는 연호정이란 놈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이놈은 필경 은퇴한 어느 노고수의…….’
순간 규적의 눈이 흔들렸다.
‘잠깐, 연호정?’
그의 눈이 상대의 손에 닿았다.
‘도끼다. 하지만 놈은 거대한 전부(戰斧)를 쓴다고 하지 않았던가?!’
콰앙!
움찔한 그 잠시의 순간을 읽고 곧장 반격을 해 온다. 규적이 재빨리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퍼퍼펑!
한순간 퇴로를 열었지만, 규적은 만만치 않았다. 청로순화공의 출력을 최고조로 유지한 채 열화신장을 이용, 재차 연호정을 밀어붙였다.
이제 승부는 확실히 났다. 방심하지만 않으면 질 리가 없다. 규적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물론 놀라움은 여전했다.
‘그래, 이놈이 연호정이구나!’
그의 머리에 동각이 준 서신의 내용이 떠올랐다.
‘이놈이 정말 연호정이라면, 그 반쪽짜리 망할 년이 이놈의 가짜 정보에 당했다는 뜻이다. 대체 이놈은 어떻게 우리에 대해……?’
그때였다.
폭음을 내며 퍼져 나가는 시퍼런 불꽃 사이.
규적은 연호정의 두 눈이, 오히려 처음 봤을 때보다 더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위험!!’
파악!
이유 모를 섬뜩함에 쏟아 내던 공격을 접고 후측방으로 물러났다.
그때, 연호정이 손을 뻗었다.
퍼엉!
“억?!”
규적은 당황했다. 어느새 그의 등을 반투명한 수벽이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수력(水力)이 어찌나 강했는지, 등 전체가 차갑다 못해 따가울 정도였다. 한순간 청로순화공 자체가 뒤흔들릴 정도였다.
당황한 규적이 재차 청로공을 바로잡을 때였다.
퍼어억!
“커헉!”
규적이 입을 쩍 벌렸다.
빛살처럼 날아온 도끼가 그의 우측 어깨뼈를 부수고 박혀 들었다.
입이 떡 벌어지는 속도였다. 이 정도 속도로 도끼를 날리려면 거의 청로순화공의 최고 출력에 해당하는 힘이 필요하다. 저렇게 연신 피를 토하고 내력이 떨어진 놈이 보여 줄 힘이 아니란 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촤아아아악!
“크아아악!”
도끼를 뽑으려 한 순간, 도끼에서 뿜어진 현무기가 단숨에 우측 상체 전체로 파고들었다.
엄청난 침투력이었다. 애초에 도끼에 침투경의 발경 공력을 묶어 둔 후에 던진 것이다.
연호정이 땅을 박찼다.
콰앙!
폭음과 함께 불길이 뒤로 확 밀려 나갔다.
번개처럼 날아온 연호정이 규적의 머리채를 틀어쥐곤 그대로 무릎을 휘둘렀다.
빠각!
이번엔 비명조차 없었다. 커다란 슬개골이 그의 코와 좌측 광대, 좌측 안구까지 통째로 으스러트려 버린 것이다.
푸화아악!
코와 입에서 피를 뿜은 규적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 허공에 뜬 연호정이 규적의 좌측 빗장뼈로 손을 휘둘렀다.
퍼어어억!
하나 남은 규적의 눈이 부릅 뜨였다.
살을 뚫고 좌측 빗장뼈를 쥔 연호정, 그의 왼팔 팔뚝에 거미줄 같은 핏줄이 불거졌다.
콰드드득!
“아아아악!”
빗장뼈를 생으로 잡아 뜯겼다.
그야말로 잔혹하기 짝이 없는 수법이었다. 백도는 물론 흑도의 고수들도 이렇게까지 끔찍한 수법은 쓰지 않는다.
주르르르륵!
좌측 상반신의 출혈이 상당했다. 빗장뼈를 따라 이어진 혈관들이 다친 것이다. 그나마 동맥이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일까.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헐떡거리던 호흡이 빠르게 정상을 되찾았다. 연가신단의 힘이었다.
“감이 좋군. 화력을 최고 출력으로 뽑아낼 때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물러서다니.”
조금이라도 덜 다치고 승부를 내기 위해 약간의 피해를 감수하고 있었을 뿐이다. 내외상이 상당하긴 하지만, 치명적인 상처는 하나도 입지 않은 것이 그 증거였다.
만약 규적이 더욱더 강하게 몰아쳤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규적의 모공으로 현무기를 침투시켜 그대로 승부를 역전시킬 생각이었다.
“뭐, 그래도 이겼으니 됐나?”
“쿨럭!”
밭은기침을 토해 낸 규적이 하나 남은 눈으로 연호정을 올려다보았다.
지이이잉! 지이이이이잉!
흔들리던 연호정의 기도가 무서운 속도로 정상을 되찾아 갔다.
후우욱!
낮게 깔리는 연호정의 기파.
규적의 망가진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이럴 수가!’
느껴지는 상대의 기도는, 놀랍게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자신에 비해 크게 모자라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자신에 필적할 정도의 내력이었다.
‘설마 힘을 숨기고 있었단 말이냐?!’
그의 마음을 읽은 듯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맛 좋은 음식을 즐기려거든, 약간의 배고픔은 감수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지.”
“……!!”
“그건 그렇고.”
쩌어억!
규적의 어깨에서 도끼를 뽑아 든 연호정이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썰릴 준비는 됐나, 애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