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303화 (303/963)

303화. 해답은 하나다 (3)

쩌어엉! 쩌어어엉!

부자(父子)의 검이 부딪치며 울리는 소리는 몹시 경쾌하면서도 묵직했다.

파바바박!

짧은 거리를 무려 다섯 걸음이나 딛고 돌진하는 연지평의 속도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일부러 힘을 분배해 탄력을 극대화한 보법이었다. 그 탄력을 이용해 화살을 쏘듯 검을 찔러 가며 움직이는 모습이 실로 날카로웠다.

하지만 제아무리 놀라운 검격이라도, 연위에게는 별 놀라움을 주지 못했다.

연위는 연가 무공의 만능자, 판관검이라는 별호를 넘어 검종(劍宗)의 칭호를 넘보기 시작하는 초고수였기 때문이다.

연위의 장검이 반월을 그렸다.

쩌저저저정!

연지평의 눈이 흔들렸다.

찌르고 들어간 검이 어느새 땅에 박혔다. 반월을 그린 아버지의 검과 한 번 충돌했을 뿐인데, 충돌과 함께 무려 다섯 번 넘게 부딪친 충격을 느꼈다.

부르르르.

검을 쥔 손에서 쥐가 날 것 같았다.

‘굉장해!’

연지평은 굉장한 충격을 느꼈다.

‘부딪친 건 한 번인데, 내 검은 다섯 번이 넘는 저항을 느꼈다.’

찰나지간 검으로 전달한 발경을 다섯으로 쪼개 중첩시킨 것이다. 어지간한 고수는 한 번 마주한 것만으로도 검을 놓칠 것이며, 놓치지 않더라도 후속타는 생각도 못 한 채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연지평도 보통 검사는 아니었다.

연위가 연가 무공의 만능자라면, 연지평은 그런 연위의 뒤를 이어 연가의 모든 무공에 달통할 준비가 된 천재였다.

퍼엉!

연위의 눈이 반짝거렸다.

‘반룡장?’

무너진 자세를 대지에 장력을 쏘아 내어 바로 세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단숨에 자세를 제어한 연지평이 곧바로 철검대연삼십육식을 펼쳐 냈다.

파바바박! 쩌저정! 피슉!

몇 번의 검격을 피해 내고, 몇 번의 검격은 받아쳤으며, 또다시 피해 내려던 검 끝에 소맷자락 끄트머리가 잘려 나갔다.

연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빠르구나.’

성장이 그야말로 눈부시게 빠르다. 응변의 기지는 물론이거니와, 당장 며칠 전보다도 검격이 더 날카롭고 장중해졌다.

이건 연지평의 재능 덕분이 아니었다.

‘실전이로군.’

얼마 전 서역신녀를 맹으로 호위해 오는 길에, 연지평 역시 꽤 많은 암살자를 상대했다고 하였다.

검사는 실전을 겪을수록 검기(劍技)가 예리하게 연마되는 법이었다. 비록 한 번의 실전이었지만, 피를 본 검과 그렇지 않은 검은 천양지차인 법이었다.

연위의 검이 벼락처럼 휘둘러졌다.

쩌저저저정!

마음먹고 내친 연환오검(連環五劍)이었다. 그리 빠르진 않지만 한 호흡에 내친 유려한 검결에, 연지평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파아악!

그뿐만이 아니었다.

빤히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연지평은 연위가 후측방으로 이동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무공은 속도만이 전부가 아닌 법. 검력(劍力)으로 행동의 제약을 걸고, 신묘한 보법으로 방위를 선점하며, 날카로운 살기로 즉각 반응해야 할 반사 신경을 한 박자 늦추기까지 한다.

그 모든 일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몸에 밴 절정의 무공, 연지평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궁극의 검도(劍道)가 거기에 있었다.

툭!

연지평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멈추었다.

어느새 연위의 손끝이 그의 등에 닿아 있었다. 만일 손이 아니라 검이었다면 연지평은 즉사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후우.”

연지평이 나직이 숨을 내쉬었다.

길지 않은 비무였지만, 얼마나 긴장했는지 몸 전체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엄청나다!’

검극사기와 철검대연의 경지가 완숙에 이르렀다.

이 정도라면, 아버지의 상대는 되지 못할지언정 공방에서 적어도 세 번은 놀라게 해 드릴 자신이 있었다.

착각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아버지의 무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압도적인 강함도,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도 보여 주지 않으셨어. 그런데도 당했다. 속수무책이었어.’

이보다 몇 배는 더 강하고 빠른 검격을 구사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런데도 그만한 힘을 쓰지 않으신 것은, 굳이 힘을 뺄 만한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었으리라.

“어땠느냐?”

“……완패입니다.”

연위가 피식 웃었다.

“이 애비를 넘어서기에는 아직 한참 멀었느니라. 네 패배는 당연한 것이었어.”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연지평이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던 무공과는 전혀 다르네요.”

“음? 어떤 의미에서?”

“제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만…… 예전 아버지의 무공은 벼락처럼 빠르고 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중도(中道)에서 어긋나지 않았기에, 상대하는 이는 거대한 철벽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연위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한 무공을 보여 준 것이 무려 삼 년 전이다. 그런데도 명확히 기억하는 걸 보니, 둘째의 안목과 기억력도 제법 신통한 것이었다.

“하면, 지금은 다르더냐?”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연지평의 두 눈이 황홀감으로 젖었다.

“중도를 지키는 무공은 그대로지만, 앞서 말씀드린 넘어설 수 없는 철벽의 위용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때보다 훨씬 부드러운 무공을 구사하시는 듯한데, 격검(擊劍)의 순간에 이르면 마치 해일처럼 무거웠습니다.”

“허어.”

“자유자재의 무공 전환. 한없이 강하고 단단하기만 하셨는데, 이제는 언제 어느 때라도 유연하기 그지없는 무공을 구사하시는 듯합니다.”

연지평이 맑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발전한 것 이상으로, 아버지 역시 큰 깨달음을 얻으신 것 같아요.”

연위는 기어이 감탄을 토해 냈다.

“네 안목이 정녕 신통하기 짝이 없구나. 얼마 전, 나나 호정의 기도를 읽고 발전 정도를 알아본 것도 놀라운 일이거늘, 무공 성향의 변화까지 읽어 낼 정도라니.”

“예? 아, 그건…….”

“어지간한 재능을 가진 고수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경험도 부족한 네가 그걸 읽었으니, 과연 너의 감각은 타고났구나.”

연지평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버지께 이런 칭찬을 받다니, 너무나도 어색했다.

연위가 납검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안목에 어울리는 무공을 체득하는 것이겠지. 너의 안목은 분명 대단하다만, 그에 비해 무공은 아직 멀었구나.”

“아, 예.”

“하기야, 너의 그 무시무시한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 게다가 네 나이에 그만한 무공이라면 네 형에 필적하거나 그 이상이다. 이대로 꾸준히 연성한다면, 이립이 되기 전에 이 애비도 잡겠다.”

“아, 아닙니다!”

“다만 단호함이 부족하다.”

“예?”

연위가 저 멀리 떨어져서 두 사람을 멀뚱멀뚱 구경하던 묵비를 불렀다.

“비아야.”

“네, 아버님.”

“지평의 무공이 어땠느냐? 솔직하게 말해 주었으면 한다.”

이제 묵비는 예전처럼 연위를 크게 어려워하지도, 그 앞에서 자신의 속내를 애써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묵비가 담담하게 말했다.

“평이의 무공은 대단해요. 연가의 무공을 정통으로 계승했다는 느낌도 있고요. 아버님과 비슷하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네요.”

“음.”

“하지만…… 음.”

“문제가 보였더냐?”

“문제라기보다는…….”

묵비가 헛기침을 했다.

“만일 제가 지평과 진지하게 붙는다면, 세 합 이내에 제압할 수 있겠는걸요.”

연지평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자존심이 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 합이라 한다면 수준 차이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소리였다.

누님이 그렇게까지 강한 줄은 몰랐다. 연지평은 새삼 묵비의 무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연위가 고개를 저었다.

“비아가 널 세 합 만에 제압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비아의 무공이 너를 압도할 정도로 대단해서만은 아니다.”

“예?”

이게 무슨 소리일까?

묵비가 볼을 긁적거렸다.

“비교를 할 사람이 얼마 없기는 한데…… 아! 너도 량이 알지?”

“아, 강 형님이요?”

“형님? 벌써 형 동생 하면서 지내는 거야?”

“그건 아니고…… 어쨌든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까요.”

“뭐, 그래. 어쨌든 량이랑 몇 번 붙어 본 적이 있었어. 진지하게 말이야.”

묵비가 고개를 저었다.

“난 그때, 열다섯 합 만에 량이를 제압했어.”

“……!!”

“이상하지? 무공의 경지, 특히 방어적 측면에서 보면 지평이 네가 량이보다 위에 있는데도, 진짜로 붙으면 넌 량이를 이길 수가 없을 거야.”

“그것은……?”

“아버님께서 말씀해 주셨잖아.”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전을 겪은 네 검은 분명 예전보다 더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검기(劍技)는 날카로워졌으되, 너의 성정이 그 검기를 제대로 살리질 못하는구나.”

“성정이요?”

“상대를 제대로 베겠다는 마음가짐.”

연지평의 눈이 흔들렸다.

“너는 네 형을 위해 누군지도 모르는 적을 베었다. 그것은 혈육으로서 당연한 행동이다. 그러나 꼭 누군가를 위해서만 피를 보는 것 또한 검사의 올바른 마음가짐이라 보기는 어렵다.”

연위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피는 적게 볼수록 좋은 법. 그러나 검사는 언제 어느 때든,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벨 수 있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이유를 아느냐?”

“모, 모르겠습니다.”

“검은 병장기다. 사람을 죽이는 흉기야. 거기에 정(正)이니, 사마(邪魔)니 하는 말을 붙여 봤자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니라.”

“……!”

“중요한 것은 누구를, 무엇을, 왜 베느냐다. 하지만 그것도 일단은 벨 수 있어야만 논할 수 있는 것이지.”

연위가 연지평의 가슴을 가리켰다.

“나는 네가 앞으로도 피를 보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부모로서 자식이 험한 길을 가지 않기를 바라는 당연한 마음이야. 그러나 이미 피를 봤다면, 더는 망설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그것이 검사다. 그것이 무사인 것이다.”

연지평은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기술만 닦는다고, 경지만 깊어진다고 그것을 검사라 부르진 않는다.

진정한 검사는 자신이 검을 뽑아야 할 순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뽑아야 할 순간이 오면, 그때는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조금 전 아버지와의 비무에서, 그는 철저하게 기술적인 면을 보여 드렸다. 어떻게든 아버지를 베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누구와 비무를 하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연지평은 함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이 두려웠다.

“량이는 그러지 않았다. 비록 녀석의 무공은 너보다 한 수 뒤졌지만, 승리와 생존을 향한 열망을 가슴속에 안고 있었다.”

“…….”

“무공은 노력하면 누구라도 발전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집요한 독기와 냉정한 판단력은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할 때 보여 줄 수 있는 단호함. 기왕지사 실전을 겪었다면, 연가의 이공자 연지평이 아니라 순수한 검사 연지평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면 싶다.”

연지평이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아직 그 단호함과 냉정함의 정체를 모르는 그였다.

하지만 문제점이 무엇인지는 알았으니, 앞으로 그것을 고치는 데에 큰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비록 그 과정이 고달프고 힘들지언정 밟아 보지 않는 것과 못하는 것은 천지 차이라 할 수 있겠다.

“그나저나.”

연위가 뒷짐을 지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호정 이 녀석은 어딜 간 것이냐? 비아 네가 여기 있는 걸 보니, 멸사군을 훈련시키고 있는 건 아닌 듯한데.”

묵비가 저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겠어요. 또 누구 골 아프게 하려고 음험한 계략이나 세우고 있겠죠.”

연위와 연지평이 눈을 끔뻑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묵비의 얼굴은 구겨진 종이처럼 꽤 살벌하게 변해 있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