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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302화 (302/963)

302화. 해답은 하나다 (2)

쉬이이익!

휘두르는 검은 묵직한데, 검날이 바람은 가르는 소리는 몹시도 경쾌했다.

사악! 사아악!

검이 워낙 육중하고 두툼해서, 찌르는 것보다 베는 것에 더 적합해 보였다. 외날의 도(刀)와 같은 특성은 물론, 중병(重兵)인 창처럼 찌른 채 밀어붙이는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는 거검이었다.

“헉헉!”

강량의 몸이 땀으로 푹 젖었다.

호흡이 극단적으로 망가져 있었다. 호흡이 망가졌으니 근육에 전달되는 힘이 중구난방이었고, 완벽하게 체화된 보법 역시 서서히 헝클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의 수련은 의미가 없다. 지금 강량의 모습을 본 고수라면 십중팔구 그리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번쩍! 퍼억!

두툼한 검날이 제법 굵직한 나무 몸통에 박혔다.

강량의 내공 출력이라면 일검에 벨 수 있는 두께인데도 절반조차 베지 못했다. 마치 나무꾼이 무딘 도끼를 휘두른 듯했다.

“허억! 허억!”

혼신의 힘을 다한 마지막 일격, 폭발적인 호흡을 이용하니, 안 그래도 과격했던 호흡이 더더욱 거칠어졌다.

제아무리 독종이라도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검을 손에서 놓은 강량이 땅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제, 제기랄.”

주르르륵.

강량의 양손은 온통 찢어지고 터져서, 피가 줄줄 배어 나왔다.

그가 숨을 헐떡거리며 나무에 박힌 검을 바라보았다.

박힌 검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슬슬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무겁네.’

저 검은 연위가 맹과 거래한 철방에 하청으로 주문한 거검이었다. 그 크기가 다섯 자에 가까웠으며, 검신의 너비 역시 반 자가 훌쩍 넘었다.

이 정도면 들고 휘두르는 것 자체가 중노동이다. 내가고수라도 쉬이 다루기 힘든 병기였다.

강량은 그런 검을 무려 반 시진이 넘도록 휘둘러 댄 것이다.

“대체 연 형님은 팔십 근짜리 도끼를 어떻게 그리 휘둘러 대는 거지?”

강량 역시 직접 광룡부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연호정이 자신의 부모 형제를 모욕하지 않는 한, 앞으로 절대 개겨서는 안 되겠다고.

‘사람이 아니야.’

말이 팔십 근이지, 그걸 쾌검이라도 된 양 번쩍번쩍 휘두르는 건 초절정고수라도 힘든 일이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자꾸 그런 무공을 구사하다 보면 훗날 관절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내공은 만능이 아니다. 신체 내구력과 유연성을 극대화할 수는 있지만, 인체 구조를 변형시키거나 성질을 바꿀 수는 없다.

한데도 연호정은 광룡부를 한나절 이상 쓰고도 관절과 근육에 받는 부하가 없어 보였다.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필경 내가 모르는 엄청난 수련이 동반되었겠지.’

예전에 연가주님께서 과거 연호정의 수련 일정을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다.

자신은 그 일정을 듣고 무척 놀랐지만, 또한 전부 믿지는 않았다. 무종지벽을 돌파하지 못한 고수가 감당할 만한 수련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야 알겠다.

‘그 수련은 진짜야. 아니, 오히려 가주님께서 보지 않은 곳에서 더 지독한 수련을 했어도 이상하지 않아.’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강량이 한숨을 쉬었다.

“한심하군.”

연호정만이 아니다.

누님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묵비 역시 무림에서는 무척이나 젊은 나이였다. 그런데도 무종지벽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재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녀 역시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그 경지에 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지평이라고 했지.’

강량의 눈이 흔들렸다.

‘굉장했어.’

맹으로 복귀한 후, 강량은 줄곧 이곳 수풀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나보다 어리다고 했어. 그런데도 그런 무공을…….’

서역신녀 기우희를 호위해서 돌아오는 길.

당시 연호정과 묵비가 보여 준 무공은 가히 신기(神技)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연호정이 근접 전투를 벌이며 전투 지휘로 적들을 붙잡아 두면, 묵비가 원거리 공격으로 적들을 사살하며 아군 호위의 백미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몰려드는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연호정과 묵비, 두 괴물의 무공에서 벗어난 자들이 기우희를 업은 모용우를 수도 없이 공격했다.

바로 그때, 연지평이 나섰다.

‘엄청난 검학(劍學)이었다. 검법의 특성을 따지기 이전에, 그 수준은 이미 달인의 경지에 들어섰다 해도 좋을 정도…….’

연지평의 검법은 완벽했다.

아니, 실제로 완벽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강량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 무엇도 뚫을 수 없는 철옹성의 검법이었다. 적의 공격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어떠한 공격도 차단하는 철벽의 검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약관에도 들지 않은 나이에 그와 같은 검법을 구사하다니, 그야말로 천하가 놀랄 일이었다. 강량은 자신보다 어린 연지평의 보호 아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림맹까지 귀환해야 했다.

그 충격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연호정에게 현실을 직시하라 호통을 들었을 때도, 그 정도 충격을 받진 않았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연호정이나 연지평이나, 그야말로 괴물들이라고. 연가의 가주님의 무공이 원체 뛰어나시니, 그 피를 이은 두 사람의 재능 역시 엄청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도피에 불과할 뿐이었다.

‘아버지도 강하셨어.’

귀철검문의 주인. 흑도검문의 자존심.

돌아가신 아버지의 무공 역시 흑도에서 손에 꼽힐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아버지의 자식이었다.

강량은 눈을 감았다.

‘물론 재능도 있겠지. 가르침의 차이도 있을 거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강함의 획득을 위해 얼마나 혼을 바쳤느냐겠지.’

노력은 누구나 한다. 중요한 것은 노력 이상의 무언가를 아는가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강량은 며칠 동안 숲에서 검을 휘둘렀다.

결과는?

“……모르겠군.”

강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 이렇게 멍청한 놈이었나.”

흑도에서 손에 꼽히는 후기지수라 불리던 자신인데, 지금 보니 참으로 멍청하기 짝이 없다.

“이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며칠 간의 자학으로 인해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해야지.”

그때,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깜짝 놀란 강량이 벌떡 일어나 뒤를 바라보았다.

언제 온 것인지, 그곳에는 연호정이 쪼그려 앉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혀, 형님?”

“오냐.”

“언제 오셨습니까?”

“네가 저 근엄하기 짝이 없는 검으로 나무에 도끼질할 때쯤?”

강량이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추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추하기는. 아주 멋졌다. 혼(魂)이 실린 일검이었어.”

“혼이 실리긴요. 그냥 이판사판으로 내친 것에 불과한데요. 심지어 나무를 쪼개지도 못했어요.”

“그러니까 혼이 실렸지.”

“예?”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꼭 목적이 있어야만 힘을 실을 수 있는 거냐? 화를 내거나 슬퍼해야만 검에 너 자신을 실을 수 있는 거냐고.”

“……!”

“때로는, 아무런 생각 없이 휘두른 일검이 네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적나라하게 보여 줄 때도 있는 법이지.”

강량이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때까지도 슬슬 빠지고 있는 검은, 크기만 컸지 너무나도 볼품이 없어 보였다.

“검이 아니라 그 검을 휘둘렀던 순간, 그때의 너 자신을 떠올려 봐.”

“그때의 나 자신…….”

“적어도 내가 봤을 때의 그 일검, 혼란스러운 네 마음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지만 검이 그린 궤적만큼은 몹시 솔직하고 깔끔했어.”

강량의 눈이 흔들렸다.

연호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동생, 강했지?”

“예. 정말 강하더군요.”

“비교를 안 하려 해도, 자꾸만 너 자신과 비교하게 되지?”

“그렇더라고요.”

솔직한 답변이었다.

혈기 넘치는 이십 대 나이, 자존심 때문이라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량은 분하고 씁쓸해할지언정 스스로에게는 몹시 솔직했다.

“비교하는 거야 상관없지. 다만, 그로 인해 네가 그간 걸어왔던 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되겠지?”

“……?!”

“넌 내게 있어서 외인이었다. 지평은 달라. 녀석은 내 혈육이야.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둘 다 내 동생이다.”

강량의 눈이 커졌다.

“알겠나? 다를 수는 있어. 하지만 둘 다 틀린 건 아니야.”

“그, 그렇군요.”

“그릇을 키우라는 말은 않겠어. 하지만 미망에 너무 오래 갇혀 있지는 마라. 너는 너만의 길이 있잖냐.”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하나 더. 적어도 실전 능력에 있어서만큼은, 아직은 네가 지평이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

“……!”

강량의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피할 수 없는 전투에 임하게 되었을 시, 상대의 무공이 나보다 뛰어나다고 해서 얌전히 칼을 맞아 줄 수는 없는 법이지. 방법은 언제나 있어. 다만 그 방법을 얼마나 빨리 찾느냐, 어느 정도로 극대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지.”

“그렇지요.”

“그건 무공 수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연호정이 손을 뻗었다.

강량이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이 정도 자학했으면 충분하다. 검 들고 따라와.”

“어, 어디 가시게요?”

“처음 했던 말 기억 안 나냐? 널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잖아.”

연호정의 얼굴에 살벌한 미소가 어렸다.

“실전 같은 비무, 넘치도록 화려한 깨달음만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 아닌 법이지. 흑도 최강의 검호(劍豪)라는 명성을 되찾고 싶다면, 시야를 더 넓힐 필요가 있어.”

* * *

깨끗이 씻고 주먹밥으로 허기까지 달랜 강량을 데리고 연호정이 향한 곳은 바로 군사부였다.

제갈문호의 눈이 커졌다.

“오, 연 군장 오셨는가.”

“예, 군사님.”

“한데 옆에 그 청년은……?”

제갈문호의 눈이 반짝거렸다.

“호남의?”

“그렇습니다.”

강량이 절도 있게 포권했다.

“강량이 제갈 군사님을 뵙습니다.”

무척이나 사내다운 인사였다. 드러나는 목소리에 아무런 편견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제갈문호는 강량에 대한 첫인상이 생각 이상으로 괜찮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자네가 아득바득 데리고 올 만한 인재일세.”

“하하.”

“한데 이 친구를 내게 소개해 주려고 온 것 같지는 않고, 어인 일로 오셨는가?”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당가주님의 후원자 둘, 등록 완료된 것 맞지요?”

“물론일세. 자네가 직접 서역신녀를 데리고 오지 않았는가. 바로 등록해 두었네.”

“그렇군요.”

“그나저나, 바로 물어보고 싶었는데 분위기가 너무 살벌해서 차마 못 물어봤네만. 자네 대체 기 의원에게 뭐라고 한 건가? 기 의원 얼굴이 거의 졸도하기 직전…….”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제가 찾아온 이유부터 말씀드리지요.”

제갈문호가 피식 웃었다.

“사람 참, 또 무슨 추진력을 발휘하시려고 이리 공격적으로 나오는지 모르겠군. 알겠네. 어디 들어 보세.”

“모용가주와 독대를 청하려고 합니다.”

“……!!”

제갈문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모용군, 그 사람과?”

“그렇습니다.”

“……이유는 묻지 않겠네. 한데 그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예까지 오셨는가? 찾아가 만나자고 하면 그만일 것을.”

“맹의 정보력을 호북 남부로 모조리 집중시켜 주십시오.”

“응?”

연호정이 강량을 가리켰다.

“이 친구와 함께 모용군을 털어먹고 오겠습니다. 성공하면, 모용군의 아군이 호남에서 올라와 무림맹으로 향할 것입니다.”

“……!!”

“모용군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 그중 무림맹으로 오는 사람. 그 사람들의 면면을 모조리 파악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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