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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281화 (281/963)

281화. 그림자 전쟁 (1)

피이이이잉! 콰앙!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화포의 철구가 그대로 땅에 틀어박혔다.

오발이었다. 일행은 간발의 차이로 화포의 포격을 피할 수 있었다.

강량이 쌍욕을 토해 냈다.

“이런 시발! 도대체 저 화포는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그때, 모용우가 외쳤다.

“화포 쪽은 걱정하지 말고 일단 달리시오!”

“예? 저걸 어떻게 걱정 안 합니까! 저거 잘못 맞으면 성천십삼좌라도 즉사예요!”

“연 군장이 맡아 줄 거요!”

“에?”

그 순간, 허공을 직선으로 꿰뚫으며 나아간 붉은빛의 광채가 거대한 화포를 향해 돌진했다.

콰아아앙!

찌그러진 화포가 하늘을 날았다.

괴력의 무공, 극한의 파괴력을 담은 일격이었다. 거대한 광룡부에 백호기를 담아서 휘두르니, 천 근이 넘어가는 쇳덩어리가 걸레짝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강량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저게 사람이냐?!’

그때, 연호정이 외쳤다.

“더 빨리 달려! 화포가 많이 남았다!”

파아아아악!

모용우와 강량이 속도를 올렸다.

강량이 외쳤다.

“제기랄! 일직선으로 달려도 되는 겁니까?”

“그냥 달리시오! 연 군장이 저리 말했다면 다 이유가 있을 것이오!”

“제, 젠장!”

그때, 기우희가 입을 열었다.

“달려도 돼요.”

“예?”

“불안하지 않아요. 달려도 될 거예요.”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불안하지 않다니?

피피피피핑!-

계속 화살을 쏘아 대던 묵비가 연호정에게 외쳤다.

“연 공자! 차라리 방향을 트는 게……!”

콰아아아아앙!

순간 굉음이 울려 퍼지며 저 멀리 눈 덮인 숲속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묵비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뜨였다.

“연 공자!!”

촤르르르르륵!

그때, 불길을 뚫고 솟구쳐 오른 교룡쇄가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퍼억! 퍼버벅!

“크아아악!”

“아아악!”

섬뜩한 비명과 함께 새하얀 눈 위로 붉은 핏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쾅! 콰아앙!

일행이 달리는 방향 그대로, 숲에서 연신 폭음이 터져 나왔다.

강량의 눈이 흔들렸다.

‘뭐야?’

콰아앙! 콰아아앙! 퍼어엉!

천지가 개벽하는 폭음과 함께 쪼개지고 찌그러진 화포들이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잘못 터진 화약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가 하면, 산산조각이 난 시체들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피의 비(血雨)를 흩뿌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마치 거대한 공성 병기가 일행이 달리는 방향으로 깔린 화포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고 있는 듯했다.

실제로 연호정의 무공이 그러했다. 극단적인 살기로 불타는 혈익휘천을 포기하고, 극한의 전진력을 자랑하는 백호군림보와 현무공을 이용해 무지막지한 힘으로 화포들을 깨부수고 있었던 것이다.

“뭐, 뭐야?!”

“죽여라!”

새하얀 옷을 입고 눈밭에 숨어 은신하고 있던 이들이 제각기 화포를 돌렸다.

연호정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졌다.

그가 땅에 박힌 바위를 향해 광룡부를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사람의 힘이 아니었다.

제법 커다란 바위가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로 부서지며 화포와 은신자들을 향해 무차별로 쏘아졌다.

퍼버버버벅! 따다다당! 콰아앙!

비명도 없었다. 고속으로 쏘아진 돌 세례를 피하지 못한 은신자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으며, 화포는 움푹움푹 파였고, 화약이 터져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후웁.’

연호정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위이이이이잉!

벽라진결의 힘을 받은 사신기가 제각기 힘을 불사르며 연호정의 근골에 강력한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화포라니, 생각도 못 했지만.’

광기 어린 전진으로 깨부순 화포만 벌써 일곱 문이 넘었다.

이제는 대충 다섯 문 정도의 화포가 남았다. 저것까지 몽땅 망가트리면, 이제부터는 달릴 일만 남는 것이다.

‘왜 이곳에 화포가 깔려 있는지, 저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건 나중이야.’

연호정의 두 눈에 결의의 빛이 어렸다.

‘그리고, 서역신녀에 관해서도.’

파아아아앙!

백호군림보에서, 천종운행비로.

산뜻하기까지 한 신법으로 멀리 떨어진 화포에 접근한 연호정이 재차 백호군림의 일 보를 밟았다.

콰앙! 콰아아앙!

순식간에 화포 두 문이 찌그러졌다.

‘제기랄.’

연호정이 제아무리 강해도, 도끼와 쇠사슬만으로 화포를 이리 많이 망가트리는 건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힘으로 밀어붙이는 무공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대신 극심한 체력 소모와 내공 소모를 기반으로 한다.

그 당연한 이치는 연호정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지금껏 철저하게 단련한 심폐와 근육, 안정적인 벽라진결이 없었다면, 지금쯤 호흡이 다 망가져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쩌어어어어어엉!

내리친 일격에 화포가 비스듬하게 쪼개졌다.

‘네 문.’

콰아앙!

땅거죽과 함께 뒤집힌 화포가 저 옆으로 날아가 바위를 부수고 처박혔다.

‘세 문.’

그때였다.

쿠르르릉!

연호정의 눈이 흔들렸다.

남은 세 문의 화포가 모조리 연호정에게로 향했다. 서역신녀가 아니라 연호정부터 죽이고 볼 생각인 것이다.

치이이이이익!

짧은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우우우우웅!

연호정의 몸 전체를 둘러싸고 있던 백호기가 사라지고, 동시에 청록빛 상서로운 빛이 어렸다.

청룡기(靑龍氣)였다.

쾅! 콰앙! 콰아앙!

연달아 쏟아진 포격 세 발이 그대로 연호정에게 퍼부어졌다.

콰르르르릉!

숲이 순식간에 초토화가 되었다. 녹지 않은 눈과 엉킨 흙더미가 팔방으로 튀었고, 몇 그루의 나무가 뿌리부터 뽑혀 나와 쓰러졌다.

“죽었나?!”

“죽었을 거다! 다시 화포를 돌려! 재장전해라! 목표물이 벌써 오 선(五線)까지 접근했다!”

“좋아!”

끼기기긱!

화포의 포구가 빠른 속도로 옮겨졌다.

강철로 만들었으니 그 무게가 엄청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포구가 돌아가는 속도와 움직임은 몹시 유연했다. 구조적으로 유연하게 만든 물건인 듯싶었다.

‘저런 물건은.’

어느새 나무 꼭대기로 날아오른 연호정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관부, 그것도 군부 측 물건이 아니고서야 저럴 수가 없어.’

연호정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것들, 관부와 연결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깊은 관계였던가.’

군부의 화포는 절대 사사로이 반출할 수 없다. 군부 최고 실권자의 공식적인 명령 없이는 어떤 고위급 관리도 화포를 빼낼 순 없는 것이다.

물론, 암암리에 화포를 빼돌린 관리들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 만에 하나를 위해 빼돌렸을 뿐, 지금처럼 사람 하나 잡자고 꺼냈을 리는 없었다.

‘화려하게 돌아가는군.’

연호정이 재차 숨을 들이쉬었다.

우우우우우웅.

시린 공기가 코를 타고 폐장으로 들어와 잔뜩 긴장한 오장육부를 부드럽게 풀어 주었다.

번쩍!

연호정의 안광이 찬란하게 빛났다.

터어어어엉!

땅을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진 그가 현무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방어가 아니었다. 극한의 반탄력을 이용한 절대의 방어술을 공격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현무공, 북천십이벽(北天十二壁)의 절초.

진무대제중벽(眞武大帝重壁)이 벽라진기의 힘을 받아 최대치까지 발현된 현무기로 구현되었다.

연호정이 화포 세 문의 가운데 지점을 향해 광룡부를 휘둘렀다.

퍼어어억!

기이하게 휘어진 목전 한 발이 암살자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기우뚱거리는 몸, 묵비는 곧장 무형탄을 날려 암살자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퍼어억!

그렇게 모든 암살자가 목숨을 잃었다.

강량이 외쳤다.

“누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말은 괜찮다 하지만, 절대 괜찮지 않은 상태였다. 무리한 내공 운용으로 상당한 내상을 입은 탓에, 더 이상 강량의 어깨에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때, 거대한 충격파가 사위를 휩쓸었다.

콰르르르릉!

“헉!”

“조, 조심!”

모용우가 기우희를, 강량이 떨어지는 묵비를 감싸며 등을 돌렸다.

휘이이이이이잉! 쿠구구궁!

화포가 깔렸던 숲에서 터진 충격파가 일대에 지진을 일으켰다.

화약이 아니었다. 극한의 진기로 구현된 폭발적인 경력이 이만한 충격파를 만들어 낸 것이다.

묵비가 외쳤다.

“연 공자!”

쿠구구궁! 쾅!

철제 화포가 튕겨 나가는 소리와 함께 또 한 번 불길이 치솟았다. 이번엔 화약이 터진 것이다.

모두가 숲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르르르르륵.

불길은 마치 하늘까지 닿을 듯 엄청난 기세로 타오르고 있었다.

강량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혀, 형님!!”

그때였다.

마치 그의 목소리를 기다렸다는 듯, 청년 한 명이 시뻘건 화마(火魔)를 헤치고 걸어 나왔다.

후욱. 후욱.

내뿜는 숨결에 하얀 김이 묻어 나왔다. 그 김은 마치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운 맹수의 거친 호흡을 보는 듯했다.

모용우의 얼굴이 밝아졌다.

“연 군장!”

“후우. 후우.”

마침내 연호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밝은 얼굴로 그를 맞아 주려던 일행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연호정의 몰골은 상당히 끔찍했다. 당가 비전으로 만든 경갑 쪽은 멀쩡했지만, 몸 전체가 피투성이였으며 의복 곳곳이 찢어지거나 터졌고 화상을 입은 곳도 있었다.

그들은 연호정이 이렇게까지 심하게 다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동시에, 그들은 크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열 문이 넘는 화포를 모조리 박살 낸 것도 모자라 그 많은 폭발 속에서도 기어이 살아남았으니,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무위였다.

“연 군장! 괜찮은가?”

“안 괜찮습니다. 온몸의 관절이 다 어긋난 것 같아요.”

“고생했네. 정말 고생 많았어.”

“아닙니다. 고생은 모두가 했지요.”

연호정이 묵비를 보며 말했다.

“정말 고생했다. 네가 아니었으면 여러모로 고달파질 뻔했어.”

걱정 가득했던 묵비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어렸다.

“거봐요. 내가 필요할 거라고 했죠?”

“앞으로는 네가 하는 말을 잘 새겨들어야겠다.”

“당연하죠.”

연호정이 품에서 작은 단약 하나를 꺼내 들었다.

“혹시 몰라서 챙긴 거다. 먹어.”

“뭔데요?”

“내상약이야.”

“아니에요. 나보다는 연 공자가…….”

“나는 그런 거 없어도 빨리 회복할 수 있어. 그리고 앞으로의 길, 나보다는 너의 궁술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네 내상부터 다스리는 게 먼저야.”

“하지만…….”

“멸사군장으로서의 명령이야. 받아.”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별수 없었다. 묵비가 연호정에게 받은 내상약을 그대로 삼켰다.

연호정이 웃으며 강량을 보았다.

“잘 따라붙던데?”

“……형님은 잘 부수던데요?”

“때려 부수고 죽이는 게 내 일이다. 이 정도야 뭐.”

강량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죽기 살기로 수련해야겠습니다. 형님 발끝이라도 쫓아가려면 평범한 수련으로는 어림도 없겠어요.”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면 됐다. 여하간 고생했어.”

“예, 형님도요.”

연호정이 이번에는 모용우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간에는 대화가 없었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게 전부였다.

마지막으로, 연호정이 기우희를 바라보았다.

움찔!

기우희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모용우가 그녀를 다독였다.

“연 군장의 모습이 다소 험해서 놀라신 모양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모두가 신의의 호위입니다.”

“……네.”

기우희는 피투성이가 된 연호정의 몰골에 겁을 먹은 게 아니었다. 피를 보는 것은 의원의 숙명, 이 정도로는 별 감흥도 없었다.

다만, 그의 눈빛이 무서웠다.

사람의 속내를 단숨에 꿰뚫어 보는 듯한, 저 투명하고도 날카로운 눈빛이.

물끄러미 기우희를 바라보던 연호정이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일단 움직이시지요.”

“아, 네, 네! 그, 그런데 몸은 괜찮으신가요?”

고개를 숙인 연호정의 눈이 서늘하게 번뜩였다.

“괜찮습니다. 더할 나위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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