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갈등은 어디서 오는가 (3)
촤아아아아악!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퍼엉! 퍼어어엉!
후미의 강물이 폭발하며 쾌속선의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강량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괴, 굉장하신데요, 형님?”
“지금은 말 시키지 마라. 집중해야 해.”
“옙!”
연호정이 묵직한 동작으로 양손을 번갈아 내질렀다.
퍼어어어엉!
강물의 표면이 또다시 폭발을 일으키며 쾌속선에 속도를 더했다.
‘오랜만에 하려니 꽤 힘들군.’
이것은 타격을 위한 장법이 아니었다.
수면을 지그시 밀면서 적절한 순간에 폭발을 일으키는 장법이었다. 내력 소모가 심한 방식은 아니지만, 일반 장법보다 훨씬 더 세밀한 조절이 필요했다.
부웅!
한순간 쾌속선이 살짝 기울어졌다.
연호정이 외쳤다.
“형님!”
“미안하네, 연제! 잠시 중심을 잃었어!”
“무게를 더 낮고 넓게 퍼트려야 해!”
“알겠네!”
막강한 장력을 터트리는 것만으로 쾌속선이 속도를 얻는 건 아니었다.
쾌속선이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나아가기 위해선 선두에 앉은 모용우의 역할도 중요했다. 천근추와 비슷한 수법으로 무게를 늘려 주되, 속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묵비와 강량이 좌우에서 노를 젓고, 후미에서는 연호정이 섬세한 장력으로 속도를 올린다. 쾌속선은 유례가 없는 속도로 장강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연제, 내공은 괜찮은가?”
“괜찮아. 중간에 내공이 떨어지면 그땐 좀 쉬지, 뭐.”
시간이 없다고 각자의 역할에서 벗어날 필요는 없다. 자칫 사고가 날 위험이 있으며, 그리되면 더 늦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용우는 연호정의 그런 점이 새삼 놀라웠다. 얼핏 보면 막 나가는 듯하면서도 전체를 보는 눈이 확실했다.
어찌 되었든, 시간이 지나자 각자가 맡은 역할에 익숙해졌다. 네 사람의 얼굴에 차츰 여유가 깃들기 시작했다.
“연제.”
“응?”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원의 그 말.”
연호정이 인상을 찡그렸다.
“의신회에서 손을 쓴 것 같기는 한데, 확실하진 않아.”
“흐음.”
그때, 묵비가 말했다.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가요.”
“뭐가?”
“의신회라는 조직, 그렇게 대단할 수가 있나요? 그래 봤자 의원들이 모인 조직인데……. 물론 자금력은 뛰어날 수 있다고 보지만요.”
묵비는 생각보다 의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물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건 아니었고, 관일곡에 있을 때 자체적으로 상처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술 지식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이해하진 못하는 것이다. 의원이 얼마나 각광받는 직종인지, 얼마나 대단한 대우를 받는지.
“무림인의 시선으로 봐도 의원들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야. 당연하지. 상처를 입으면 치료를 해야 하잖냐. 어지간한 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도, 크게 다쳤을 땐 의원의 존재가 절실해.”
“음.”
“하지만 황궁이나 관부, 민간에서 보는 의원은 무림에서 보는 의원과 차원이 달라.”
“더 중요하다는 뜻이겠죠?”
“물론이지.”
모용우가 연호정의 말을 받았다.
“실력 좋은 의원은 고관대작 등 높으신 분들의 주치의로 가는 경우가 많소. 당연히 영향력도 강해지며, 상당한 재물은 물론 어지간한 관리보다도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게 되는 셈이오.”
묵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 정도인가요?”
“어느 정도를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묵 부장이 생각하는 것 이상일 것이오. 무사나 군인이 죽음을 다루는 자들이라면, 의원은 생명을 다루는 자요. 당연히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지.”
“으음.”
“아닌 말로, 우리가 서역신녀를 호위하러 가는 이유도 그와 비슷하잖소? 그처럼 실력 좋은 의원이라면, 천금을 주고 모셔 와도 모자랄 지경이오.”
“그렇군요. 이제 이해가 가요. 말하자면 그들의 힘은 실질적인 무력이 아니라, 본인의 가치를 이용한 영향력이로군요.”
“정확하오.”
연호정이 입을 열었다.
“또한, 우리 중원의 의원들은 자신의 지식을 타인에게 함부로 전수하지 않아. 실제로 그런 시도를 한 사람들은 종종 있었지만, 다른 의원들이 의학의 가치를 낮추는 행위라며 따돌리거나 위협을 가하곤 했어.”
묵비가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뭐가 그리 아깝다고.”
“아까울 만도 하지. 말하자면 그게 그들의 지적 재산인 셈이니까. 하지만 타인의 자유 의지를 지나치게 무시해서 문제라는 거야. 하긴, 의술 자체가 난해한 학문이라 배우고 싶어도 쉽게 배우기 힘들겠지만.”
강량이 입을 열었다.
“쉽군요.”
묵비가 강량을 보았다.
“쉽다니?”
“과정이요.”
“무슨 과정?”
“뱃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가할 수 있는 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아? 그래?”
“예. 혹시 누님도 아십니까? 저 녹림처럼, 장강에서 수적질하는 놈들이 있어요.”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장강수로채(長江水路寨).”
“그렇습니다.”
강량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녹림이나 장강수로채나, 모두 흑도의 무리입니다. 그리고 흑도는 백도보다 관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거든요. 대문파급 전력을 자랑하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음, 그래서?”
“관부에 줄이 있는 자들은 흑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게 뭐 어쨌…… 아?!”
묵비가 탄성을 질렀다.
“그렇다면 의신회가?”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신회가 중원의 유명한 의원들이 만든 연합체라면, 그들은 관부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니, 우리가 장강에 도달하기까지 사흘밖에 안 걸렸는데 벌써 그렇게……?!”
“무림의 정보력이나 관부의 정보력이나 크게 다를 것 없어. 작정하고 정보를 퍼트리려면 못할 것도 없지.”
연호정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일정한 박자로 장력을 내쏘는데, 이제는 완전히 몸에 익은 것 같았다.
“그래서 빨리 이동하려고 한 건데.”
“대체 서역신녀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그네들 사정이야 우리가 알 필요 없지. 중요한 건, 한시라도 빨리 강서성에 진입해야 한다는 것뿐이야.”
어찌 되었든 쾌속선을 얻었으니, 결과적으로 나쁘진 않았다.
노를 젓던 묵비가 일순 드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엉? 뭐가?”
묵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인데, 아무리 연 공자나 모용 군장님 같은 유명인사 앞이라도 너무 저자세로 나오지 않았어요?”
“가역소?”
“네. 사흘 만에 물길을 막을 정도의 영향력은 아무나 발휘할 수 없잖아요. 게다가 얘기를 들어 보니, 의신회라는 집단이 무림맹을 겁낼 이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무력의 문제가 아닌 영향력의 문제다. 의신회는 관부와 연이 깊으니, 애초에 서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것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 때의 얘기였다. 관부든 무림이든, 수틀리면 상대측 인사를 노릴 능력이 충분하다.
“아마도…….”
모용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가역소 개인의 문제가 아닐까 싶소. 가역소란 사람이 그때 우리에게 보여 줬던 표정은, 아무래도 연기 같지는 않았거든.”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면 연제 말마따나 서역신녀가 위험할 수가 있네. 가역소가 선조치 후보고 형태로 일을 처리했다면, 의신회에선 그걸 무시하고 곧장 타격을 가할 수도 있어.”
“그래, 그럴 수 있겠군.”
“이렇게 의견을 나눠 보니 확실히 연제 말마따나 빨리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네.”
“그래.”
연호정이 강량에게 말했다.
“당분간은 신법 수련이다. 뒤처지면 놓고 갈 테니까 제대로 따라붙어.”
강량이 투덜거렸다.
“첫 만남 때도 그러더니만, 자꾸 놓고 가겠대.”
“확.”
“알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연호정이 한숨을 쉬었다.
“제기랄,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하늘은 그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순탄하게 장강을 넘고 무지막지한 신법으로 순식간에 강서성에 들어선 일행은, 개방 지부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큰일 났습니다! 의문의 무리가 서역신녀가 머물고 있는 의방을 습격했다고 합니다!”
“이 개새끼들이!”
“천만다행으로 서역신녀는 도주 중입니다! 습격자들이 환자는 건드리지 않고 서역신녀만 추적 중입니다!”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은?!”
“개방입니다. 혹시 몰라 직접적인 개입은 피하고 있으며, 습격자들의 눈을 교란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잘하셨소. 이제부터 우리가 해결하리다.”
“서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운이 좋은 건지 뭔지 서역신녀가 습격자들이 노리는 곳을 절묘하게 피하면서 이동 중입니다만, 그 행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즉시 출발하겠소. 다만, 이거 하나만 물어봅시다.”
“습격자들의 정체 말씀이시지요?”
“그렇소. 추정이라도 가능하오?”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빌어먹을. 알겠소이다. 조금 더 고생해 주시오.”
“무운을 빌겠습니다. 다행히 서역신녀 역시 북상 중이기 때문에, 하루만 더 달리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파아아앙!
일행은 남하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다행히도 일행은 연호정의 신법을 잘 따라와 주었다. 모용우야 원체 다방면에 능한 무인이니 그럴 만도 했고, 묵비는 신법 한정으로는 연호정보다 뛰어났으며, 강량은 극한의 인내심으로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모용우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연제!”
“나도 느꼈어!”
좌측 분지 옆, 멀리 떨어진 숲길에서 날카로운 살기가 감지되었다.
연호정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저 정제된 살기는 영락없는 암살자의 그것이라고.
그리고 그 암살자가 쫓는 대상의 인기척이, 신비로울 정도로 형형하다는 것도.
두근!
심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두근두근!
주작기가 불타오르며 심박출량이 증가했다.
후우우우웅!
백색의 바람이 그의 두 발밑으로 모여들었다. 전신 근육이 잔뜩 부풀었고, 진기가 신경을 오가는 속도가 두 배로 빨라졌다.
놀랍게도, 그의 사신기는 출맹하기 전보다 조금 더 짙은 농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제는 딱히 수련하지 않아도 진기가 알아서 성장하는 경지에 들어선 것이다.
위이이이이잉!
강력한 사신기를 감당키 위해 벽라진결 역시 한층 왕성한 힘을 뿜어냈다.
성장한 사신기를 담기 위해 벽라진기까지도 성장한다. 얽히고설킨 진기 간의 상생, 흑암제 시절에도 몇 번 겪어 보지 못한 발전 속도였다.
연호정의 오른발이 단단한 바위를 박찼다.
콰아앙!
불꽃처럼 달려 나가는 연호정의 눈에, 온몸이 긁힌 상처투성이인 금발의 여인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서역신녀!’
대번에 밝아지는 연호정의 표정.
그러나.
‘어?’
밝아졌던 연호정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헉헉!”
숨 가쁘게 달려오는 서역신녀.
그녀의 몸에서 불안정하게 일렁이는 기운에 연호정의 눈이 미친 듯이 뒤흔들렸다.
“……삼교(三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