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갈등은 어디서 오는가 (1)
쿵!
광룡부가 땅을 찍는 소리는 언제나처럼 위협적이었다.
딱히 위협하려 했던 게 아니더라도 병기 자체가 가진 위압감이 대단했다. 가역소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연호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신회라?”
“그렇습니다.”
“의원 연합, 뭐 그런 거요?”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물론 들어 봤지.”
연호정은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았다.
“서역신녀에게 약재를 주지 않으려고 약재 유통을 통제하는 집단이 있다고 하더군. 의원 연합이니 뭐니 하더니만, 그 이름이 의신회였소?”
가역소의 눈이 깊어졌다.
“알고 계셨군요.”
“이름은 몰랐지.”
“그렇습니다. 의신회는 중원 전역에 퍼져 있으며, 중원의 의맥을 이은 자들에게 많은 지원을 해 주는 집단입니다.”
가역소가 숨을 몰아쉬었다.
우우우웅.
연호정의 몸에서 은은한 기파가 흘러나왔다.
광룡부의 둔검 수련 때문에 근력은 물론 내공 소모도 상당했다. 평소 완벽하게 제어해 둔 진기가 저도 모르게 새어 나가니, 불처럼 거센 기파가 저절로 위압감이 되어 가역소의 정신을 흔들고 있었다.
“의신회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 전에.”
“예?”
연호정이 웃으며 말했다.
“의원이시라 해도 중원 사정에 밝으신 듯하고, 경력이 오래되었다면 무림인도 많이 접해 보셨을 터인데.”
“……?”
“무림인의 수련을 몰래 훔쳐보는 것은 큰 실례라는 것을 모르실 분 같지 않소이다.”
“아! 죄송합니다. 그 부분, 먼저 사죄를 드립니다.”
“사죄가 좀 늦었소이다.”
“괜한 방해가 될 듯하여 먼저 말을 걸지 못했습니다. 호장(虎將)께서 믿으실지 모르겠으나, 고개를 돌리고 있었으니 부디 화를 푸시지요.”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칩시다. 기실, 의신회인지 뭔지 나는 딱히 알고 싶지도 않소. 중요한 것은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날 왜 찾아왔는가, 그것 아니겠소?”
가역소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 부분을 말씀드리려 했으나, 호장의 경계심부터 푸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또한 저의 불찰, 사죄드리겠습니다.”
상당히 저자세로 나온다.
그러나 연호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선입견을 품어선 안 되겠지만, 이미 의신회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알고 있었다. 호의를 갖기 어려운 상대였다.
“설명은 됐소. 그래, 무슨 일로 날 찾아왔소?”
가역소가 입맛을 다셨다.
‘벽산호장의 성정이 불같다고 하더니만, 과연 강호의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군.’
불같다는 말이 다혈질이라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빙 돌려 말하는 것을 싫어하며 빠른 본론을 원한다.
그것이 바로 연호정이리라. 가역소는 상대의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역신녀에 대한 호위, 잠시 내려놓으실 수 있겠습니까?”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가시오.”
“연 군장님.”
“의원 연합에서 왔다길래 뭐 좋은 영약이라도 주는 줄 알았지. 이만 가시구려.”
가역소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중원을 위해서입니다.”
“음?”
“중원을 위해서 그녀는 사라져야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무림맹으로 가서 승승장구해서는 아니 됩니다.”
“어째서?”
“그녀가 익힌 의술은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공부입니다. 무공으로 치자면 사파의 마공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왜? 서역신녀가 사람을 강시로 만든다거나, 환자를 약물에 중독시키기라도 하는 게요?”
가역소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럼 대체 왜 그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오?”
“그녀의 의술은 중원 의맥에 크나큰 혼란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지금껏 의신회에서 그녀의 존재감을 억제했지만, 만일 그녀가 무림맹에서 크게 명성을 떨친다면 실로 엄청난…….”
“중원 의맥에 큰 혼란을 주고 있다고? 고작 색다른 의술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연 군장님.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그녀가 익힌 의술은 사도(邪道)입니다. 무림의 협사님들께서는 어찌 생각하실지는 모르지만, 환자의 몸에 섣불리 칼을 대는 것은 굉장한 후유증을 일으킵니다.”
“후유증이라? 칼로 종기를 긁어내기도 하는데, 그게 후유증이 크다는 말이오?”
“칼을 댄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개흉(開胸)?”
가역소의 얼굴에 놀라움이 일었다.
“개흉술을 알고 계십니까?”
“어쩌다 들은 적이 있소이다. 환자의 상태가 지나치게 악화되어 약과 침만으로는 다스릴 수 없을 때, 개흉술로 병의 원인이 되는 악종을 제거한다고 하던데.”
“놀랍군요. 연 군장님의 지식과 안목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입에 발린 소리는 됐소.”
“예, 서역신녀는 개흉술의 달인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드리기에는 뭣하지만, 개흉술은 극심한 후유증을 동반하는 의술로서 중원 의맥에서는 철저하게 금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연호정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보시오, 가 의원.”
“예.”
“개흉술이니 중원의 의맥이니, 그런 소리는 됐소. 어차피 의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 없는 내가 당장 이해하기도 힘들 테고, 그런 설명이나 듣고 있을 상황도 아닌 것 같소.”
“연 군장님.”
“분명히 말하겠소. 우리의 임무는 서역신녀를 호위하여 무림맹으로 무사히 데려가는 것이오. 그 임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완수되어야만 하오.”
“…….”
“서역신녀의 호위를 포기하라고? 지금 그게 내 앞에서 할 말인가?”
가역소의 얼굴이 굳어졌다.
“연 군장님께서 화를 내시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 얘기를 더 들어 주지 않으시겠다고 하니, 그 부분을 해명하기도 힘든 상황이로군요.”
“화는 났지만, 당신에게 풀지는 않겠소.”
꽤 소름 돋는 말이었다. 천하제일 후기지수가 화를 푼다는 것, 모르긴 몰라도 피는 확실하게 볼 것이다.
“상황이 급하다 한들, 당신은 지나치게 무례했소. 정 그것을 원했다면 내가 아니라 무림맹으로 찾아갔어야지.”
“…….”
“그러나 당신 역시 나름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을 테니, 이 대화는 여기서 끝내도록 합시다. 이만 가시오. 더는 별말 안 하리다.”
가역소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그곳에서 계속 서 계시든지. 나는 이만 가겠소.”
“연 군장님.”
광룡부를 견봉에 걸친 연호정은 거처를 향해 휘적휘적 걸어갔다. 더는 가역소를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가 한껏 묻어 나왔다.
가만히 연호정의 뒷모습을 보던 가역소가 말했다.
“저희는 그 마녀에게 제재를 가해야 합니다.”
연호정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가역소가 말을 이었다.
“그리 위험한 존재를 가만히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연 군장님은 물론 무림맹과 대립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척.
연호정이 걸음을 멈추었다.
가만히 서 있던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참나, 좋게 넘어가려고 해도 꼭.”
“……?”
연호정이 광룡부를 내렸다.
쾅!
광룡부의 도끼날이 땅에 한 자나 박혀 들었다. 가역소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연호정이 입을 열었다.
“묵비.”
스르륵.
어느새 연호정 옆에 묵비가 나타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각자 쉬고 있었던 일행 모두 어둠 속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가역소는 깜짝 놀랐다. 저들이 언제부터 저곳에 서 있었는지, 눈으로 보고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연호정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개방 지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네.”
“가서 지부장에게 전해라. 지금 이 시간부로 서역신녀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은 물론, 그녀에게 가해지는 모든 억압의 배후에는 의신회가 있다고.”
가역소는 깜짝 놀랐다.
“연 군장님!”
“그리고 이것도 전해. 의신회는 언제든 무림맹을 건드릴 수 있는 조직이라고.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키 위해 의신회에 대한 모든 정보를 샅샅이 조사해야 할 거라고 전해 둬.”
가역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연 군장님!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연호정이 몸을 돌렸다.
스르륵.
동시에 묵비가 사라졌다. 개방 지부로 떠난 것이다.
연호정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이보시오, 가 의원.”
“…….”
“나더러 호위를 그만두라고? 서역신녀에게 제재를 가하겠다? 그 말은 곧 그녀를 죽이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
“사람 목숨 구하는 게 댁들 일 아니던가? 그 침술과 약학을, 사람 죽이기 위해 익힌 게요?”
가역소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은 제 업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중원을 위해……!”
“중원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중원 의맥의 정통성을 위해서인가?”
“……!!”
“전자라면, 제대로 설명해 보시오. 만일 그녀가 심각한 역병을 퍼트릴 수 있다거나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마공을 익혔다면, 내 철저하게 조사해 보겠소. 하지만 후자라면…….”
쿠르르릉.
땅에 박힌 광룡부가 기다란 고랑을 만들었다.
광룡부로 가역소를 겨누는 연호정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이 시간 이후로, 의신회는 무림맹의 적이 될 것이외다.”
가역소가 침을 삼켰다.
“연 군장님.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의신회는 결코 무림맹을…….”
“무림맹의 명령을 수행하는 호위에게 다가와 그 호위 대상은 마녀라고, 죽어야 할 자라고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사람을 보았소이다.”
“연 군장님!”
“거기서 끝났다면 개가 짖었다 생각하고 무시할 수 있었소. 한데 뭐라? 무림맹과 대립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고?”
연호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는 세상이 다르다고 생각했거늘, 의신회가 무림 집단인 줄은 몰랐소이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어선 안 되지. 그대들이 죄 없는 여인의 목숨을 앗아 가려는데, 의협(義俠)의 화신이라는 무림맹 소속 군장으로서 그냥 넘어가선 안 될 일이 아닌가.”
“……!!”
물끄러미 가역소를 노려보던 연호정이 고개를 돌려 모용우를 보았다.
“모용 군장님. 이 작자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 자리에서 머리통을 날려 버릴까요?”
모용우의 얼굴도 무섭게 굳어져 있었다.
“참으시오, 연 군장.”
“참아야 합니까? 다 들으셨잖습니까? 저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자는 물론 저자가 속한 집단 자체가 살인마 무리입니다.”
“연 군장. 일단은 참으시오.”
연호정이 다시 가역소를 노려보았다.
가역소의 얼굴은 이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와중에도 입술을 깨문 채 주먹을 쥐고 있는 걸 보니, 배포 하나는 인정해 줄 만했다.
모용우가 말했다.
“가 의원이라 하셨소?”
“…….”
“그대의 말은 아무런 설득력도 지니지 못했소. 당연히 논리도 없었으며, 실례만 잔뜩 저질렀소이다.”
“…….”
“내 분명히 말하지. 연 군장 말마따나, 이 시간 이후로 서역신녀에게 어떠한 종류의 위해가 가해진다면 그 배후를 의신회라고 생각하겠소.”
“그것은!”
“멸사군장 혼자라면 모르되, 거기에 탕마군장까지 합세한다면 맹의 봉공분들도 무조건 움직이실 것이오. 그리되면, 의신회도 꽤 골치가 아파질 테지.”
모용우가 서늘하게 웃었다.
“우리가 갈 때까지, 서역신녀는 그대들이 지키시오. 그녀가 원하는 게 있다면 전부 들어 주시오. 약재 유통을 통제하고 있다? 이틀 안에 그녀에게 약재를 주지 않으면, 그 또한 본맹을 향한 도발로 받아들이겠소.”
“……!!”
“뭐 하시오?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