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고백 (1)
모용군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공공대사라니?”
당관은 말없이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평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였다. 기세가 원체 날카롭고 독랄한 그였지만, 지금은 정말 사생결단을 낼 기세였다.
용화진인이 헛기침을 뱉었다.
“당가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앉아서 말씀하시는 것이 어떻소?”
등천교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소. 그리고 그 기세 좀 죽이시오. 자칫하다 음식에 독기가 섞이겠소.”
당관이 차갑게 웃었다.
“내가 음식에 독을 섞을 작정이었다면, 그대들은 눈치도 채지 못한 새에 다 죽었을 것이오.”
등천교가 눈살을 찌푸렸다.
“말씀이 심하시오.”
“나는 모용가주와 할 말이 있소. 관계없는 삼자는 빠지시오.”
“이보시오, 당가주!”
그때, 모용군이 손을 들었다.
“진정들 하시오.”
등천교는 말없이 당관을 노려보았고, 용화진인은 생각보다 훨씬 여유로운 기색이었다.
모용군이 당관을 보며 말했다.
“원체 이런 자리를 싫어하시는 듯하여 내 따로 당가주께 말씀드리진 않았소. 고작 이런 일로 서운해하진 않겠지만, 오해는 없었으면 싶소이다.”
“이따위 자리엔 관심 없소이다. 다시 묻겠소. 공공대사를…….”
“공공대사를 노리고 있냐고 하셨소?”
“그렇소.”
모용군이 미소를 지었다.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소? 공공대사는 함부로 건드려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고. 충분한 준비가 되어도 넘어트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소이다.”
“다시 묻겠소.”
당관의 눈이 서늘해졌다.
“공공대사를 노리고 있소?”
모용군의 표정도 살짝 굳어졌다.
“갑자기 그건 어찌 묻는 것이오?”
“나는 질문이 아니라 대답을 요구하고 있소.”
당관의 성정을 아는 모용군이라도 그냥 넘어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둘 간의 대화였다면 모를까, 보는 눈이 두 쌍이나 있었다. 심지어 용화진인과 등천교는 생각보다 훨씬 계산적이고 독한 사람들이었다.
약한 모습을 보여 줘선 안 되는 상황. 모용군의 목소리가 한층 낮게 가라앉았다.
“내, 귀하를 충분히 존중하고 있다 생각하오. 어떤 면에서는 여기 계시는 두 분보다도 더. 그것은 귀하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귀하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오.”
“그래서 대답은?”
“하지만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외다.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아주시오.”
당관이 차갑게 웃었다.
“자꾸 말을 돌리는 걸 보니, 정말 공공대사를 노리고 있긴 한 모양이군.”
“이보시오, 당가주.”
“솔직히 말하지.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소. 나나 당신이나 서로의 일에 관여치 않았으니까. 그러나 동맹이 아닌 패로서 날 이용하려 한다면 얘기가 다르지.”
순간 모용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패라니?’
용화진인과 등천교가 의아한 눈으로 모용군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말이오? 패?”
물끄러미 당관을 보던 모용군이 툭 던지듯 물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당관이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땅에 던졌다.
“이게 뭐요?”
“보면 모르시오? 손수건이오.”
“대체…….”
“그 손수건에는 본가 비전의 청음독이 묻어 있소이다.”
순간 용화진인과 등천교는 본능적으로 내공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모용군은 아니었다. 그는 투명한 눈으로 당관을 바라볼 뿐이었다.
당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역시 반응이 다르군. 여기 두 사람과는 달리 내공을 끌어 올리지 않았어.”
“당가주.”
“청음독의 특성을 알고 있었던 게야. 그게 아니고서야 그리 무덤덤할 수가 없지.”
그래서가 아니었다.
모용군은 당관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얼핏 무모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그는 나름대로 때를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런 자리에서 독을 퍼트릴 만한 인사가 아니다. 모용군이 내공을 끌어 올리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당관에게는 그런 모용군의 행태가, 불처럼 솟구치던 의심을 확신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당신을 믿었던 것은 잔머리만 굴릴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지나치게 생각이 많지만, 그것이 소심해서가 아니라 의심이 많고, 똑똑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소.”
당관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 살벌한 미소에 용화진인, 등천교는 물론 모용군까지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오. 아군마저도 장기의 말로 여기는 사람이라……. 그런 사람하곤 같이 일 못 하지. 안 그렇소?”
모용군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려다 멈칫했다.
‘…….’
그는 용화진인과 등천교의 안색을 살폈다.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위에 드리워진 것은 의구심과 불안함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이 대화가 어떤 의미인지, 왜 이 난리가 난 건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지극히 깊다는 것만큼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갈등의 시발점이 모용군으로부터 기인했다는 것도.
‘안 좋군.’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차라리 혼자 있을 때 찾아왔다면 모를까, 같은 당파의 일원들이 있는 자리에선 뭔가를 해명하기도 애매하다.
‘게다가 공공대사라니.’
모용군의 눈이 흔들렸다.
‘대체 그것을 이자가 어찌 알았단 말인가?’
공공대사의 여론을 악화시키기 위한 밑 작업을 이제 막 시작한 판국이다.
그가 당관에게 말하지 않은 건, 그의 반응이 지나치게 솔직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라면 공공대사의 안목을 피할 수 있지만, 당관은 무조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관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의 능력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내린 판단이었다.
한데 당관은 어떻게 그것을 알았으며, 이 손수건은 또 무엇이고 청음독은 또 무엇인가?
“당가주.”
“…….”
“길게 말 안 하겠소.”
모용군의 눈이 차가워졌다.
“공공대사 건, 누구한테 들었소?”
당관의 볼이 씰룩거렸다.
“이제야 인정하는가.”
“누구한테 들었느냐 묻고 있소.”
“내가 그걸 왜 네놈한테 말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용화진인이 소리쳤다.
“당가주! 말씀 조심하시오! 아무리 화가 나도 같은 봉공에 그 무슨……!”
“당신들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저자가 당신들에게 보여 주는 웃음은 철저하게 꾸며 낸 웃음이오. 함정을 판답시고 당신들을 발판으로 쓸 날이 머지않을 것이오.”
“뭐라?!”
“안 그런가, 모용가주?”
모용군이 인상을 찌푸렸다.
“말조심하시오.”
“조심하지 않으면? 그 더러운 검으로 내 몸에 생채기라도 내시겠다는 겐가?”
당관은 필요 이상으로 날 선 대응을 하고 있었다.
모용군은 분노가 치솟는 와중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사람이 아닌데?’
설령 혈육 문제가 얽혀도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나올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제아무리 당가주라도 이렇게까지 막 나가는 인물이었다면, 모용군 측에서 먼저 내쳤을 것이다.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당관은 분명 지나치게 과민 반응을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뭐가 어찌 되었든, 당관은 이미 자신에게서 마음이 떠났다.
감정이 틀어질 대로 틀어져 버린 상황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따져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럴 바에야 각자의 자존심만 챙기고 휴전하는 것이 낫다.
모용군이 차갑게 말했다.
“더 이상 얘기할 필요 없는 것 같소. 이만 나가 주시오.”
당관이 코웃음을 쳤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앞으로 네놈 낯짝을 마주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전에 하나만 묻겠소.”
모용군의 눈이 깊어졌다.
“연호정, 그놈을 만났소?”
당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왜? 네놈과 연을 끊고 그놈에게 갈까 봐 겁이라도 나느냐?”
……만났군.
‘빌어먹을.’
필경 연호정이 뭔가 수를 쓴 것이리라.
다만 의아한 것은, 자신이 공공대사를 노리고 있다는 걸 연호정이 어찌 알았느냐였다.
‘……아니다. 결정타는 연호정이겠지만, 이 판을 만든 것은 놈이 아닌 제삼자다.’
제갈문호.
맹에서 도는 소문을 귀신처럼 잡아낸 제갈문호가 사전 조사를 전부 끝낸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연호정을 만나 이번 건에 대해 상의를 했겠지.
연호정은 뛰어난 두뇌만큼이나 행동력도 발군이었다. 아마도 제갈문호에게 그 얘기를 듣자마자 즉시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다만 평소라면 자신에게 직접 와서 알아볼 것을, 당관부터 찌르고 들어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모용군은 속으로 탄식했다.
‘방심했다.’
자신에게는 누구보다도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극한의 위기 상황을 엄청난 기회의 장으로 만들어, 기어이 흑도 최강자와 손을 잡게 되었다. 스스로는 긴장하자고 생각했지만, 너무나도 큰 뒷배에 자신도 모르게 방심한 것이다.
‘그 일이 없었다면 공공대사를 공략하는 것도 더 신중하게 진행했을 터. 제갈문호가 한창 긴장했다는 것도, 연호정의 공격이 지극히 파격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거늘.’
모용군이 고소를 지었다.
‘상대가 잘한 게 아니라, 내가 못한 것이로군.’
바보 같은 실수였다. 자신답지 않은 일이었다.
그로 인해 괜찮은 패 하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뼈아픈 실책이었다.
‘양천이라는 뒷배를 얻고 당관이라는 패를 잃었다……. 그래도 이득이라면 이득이지만.’
중요한 건 잃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순간 모용군의 얼굴이 극도로 차가워졌다.
“동맹을 끊을 생각이라면 어쩔 수 없지.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구려.”
당관이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대답도 없었다. 그걸로 모용군과의 연을 다 털어 버린 것이다.
당관의 등을 보던 모용군은 아무도 모르게 전음을 날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감정이 풀리면 말씀해 주시오. 내 직접 찾아가 자초지종을 들어 보리다.]
문을 열던 당관이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용화진인이 서둘러 물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오?”
“별일 아니오.”
모용군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저……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며 힘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소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취소합시다.”
모용군이 눈을 감았다.
‘……나부터 냉정을 찾아야겠구나.’
* * *
제갈문호가 감탄한 얼굴로 연호정을 보았다.
“내, 더는 자네에게 놀랄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네.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정말이지 자네의 계책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이간질에 불과하지요. 계책 축에도 못 끼는 잔머리입니다.”
“이간질도 상대를 파악하지 못하면 최대 효율을 뽑아내기 힘든 법일세. 정말 대단하네.”
연호정이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제갈문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는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가주가 모용군과의 연수를 끊은 것은, 말하자면 최상의 결과라고 볼 수 있네. 결과론적으로는 잘된 일이지만, 자칫 모용군에 대한 당가주의 믿음이 더 깊었다면 오히려 둘 사이를 더 끈끈하게 만들 수도 있었네.”
“그렇지요.”
“자네가 그걸 몰랐을 리는 없지. 하면, 두 사람이 갈라설 거라 예상한 것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신이 아닙니다.”
“헛? 하면?”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모용군의 이번 공격은 꽤 어설펐습니다. 그답지 않은 실수였지요.”
“그렇지.”
“하지만 당가주로 인해 이번 일을 알아챈 사람이 나왔다는 걸 알았으니, 분명 신중을 기할 것입니다.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겠지요.”
“그럼 더 위험한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신중함 덕에 알아챌 수 있는 것도 있지요.”
“음?”
바로 양천과의 관계다.
조용히 지내는 모용군에게, 양천은 분명 뭔가 신호를 보낼 것이다. 그것만 지켜보고 있으면 모용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
“하지만 당가주도 쌓인 게 많았던 모양입니다.”
연호정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당가주 역시 속으로는 모용군을 마뜩잖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그 자존심에 뒤로 물러나 있기도 힘들었겠지요.”
“허!”
“어쨌든 복귀 후 초전은 이겼습니다. 당분간 쥐 죽은 듯 지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