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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248화 (248/963)

248화. 부활의 시간 (4)

‘헉!’

사혼조장 경산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파바바바박!

비산하는 돌 조각과 나무 파편을 협봉검 한 자루로 모조리 쳐 냈다.

대단한 검술이었다. 베는 것이 아니라 찌르기에 특화된 협봉검으로 그 많은 돌과 나무를 쳐 낸다는 건 그의 검법이 경지에 올랐음을 뜻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혼조 전체가 검도의 고수였다. 게다가 그들은 특수한 내공을 연마하여 호흡 몇 번만으로도 소모된 내공을 회복할 수 있었으며, 경력 분쇄에 특화된 무공을 익혀 어떤 위력적인 무공도 분쇄해 버릴 수 있었다.

말하자면 대(對) 고수전(高手戰)에 특화된 무력 조직이 바로 사혼조라는 것이다. 게다가 사혼조는 지금껏 임무에 나서서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들이 상대하는 자들은 제힘만 믿고 날뛰는 고수가 아니라 군대(軍隊)였기 때문이다.

피유우우우웅! 퍼어어억!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어둠을 가르며 쏘아진 철전 한 발이 사혼조원 한 명의 머리통을 그대로 관통해 버렸다.

무시무시한 궁술이었다. 경산이 소리쳤다.

“궁사(弓師)가 있다! 거리를 좁혀 궁사부터……!”

퍼어어억!

한 자루 철창이 다른 사혼조원 하나를 그대로 튕겨 냈다.

실로 무서운 위력이었다. 군마의 돌진, 거기에 아미파의 상승 무공을 연마한 속가제일고수의 창술은 그 자체로 치명적인 위력을 자랑했다.

심지어 그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차차차창!

한 몸이 되어 휘몰아치는 창병 열 명의 창술은 엄청난 파괴력을 자아냈다.

진군의 창격, 송연경을 위시한 아미파 창수들의 돌진이었다. 기마 위에서 쏟아지는 탕마창(蕩魔槍)의 세례가 사혼조 전체를 뒤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무서운 위력, 살기 넘치는 무공.

“산개해라!”

경산의 외침에 사혼조가 좌우로 쫙 갈라졌다.

콰르르릉!

곧바로 공격 명령에 들어가려던 경산은 순간 입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중앙에서 밀어붙이는 창병 뒤로, 사십여 기의 기마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어 돌진해 왔다. 마치 그리 나뉠 줄 알았다는 듯 군마의 움직임이 즉각적이었다.

후우우우우웅!

어둠을 밝히는 빛이 섬뜩한 살기를 발했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병장기에 극한의 진기를 실었다. 도검(刀劍)의 예기가 달빛을 받아 빛나며, 널찍한 산길을 찬란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묵비가 외쳤다.

“돌격!”

히히히히히힝!

천지를 진동케 할 말 울음소리와 함께 군병들이 일제히 병장기를 휘둘렀다.

쩌저저저정! 콰앙!

경산의 눈가가 흔들렸다.

‘강하다!’

사혼조원들이 제각기 모여 적의 공격을 분쇄하거나 튕겨 냈다.

그런데도 밀렸다. 몰아치는 힘이 너무도 강해서 완벽한 방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제기랄! 지형이……!’

애초에 부딪쳐선 안 될 장소에서 부딪쳤다. 사혼조는 산길을 타고 올라가고 있던 반면, 느닷없이 등장한 멸사군은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고 있었다.

사혼조가 제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불리한 지형에서까지 십 할의 힘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살기?’

경산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피유우웅! 퍼억! 콰앙!

모골이 송연해지는 순간이었다.

경산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나아간 철전이, 사혼조원의 가슴을 뚫고 날아가 그 뒤의 나무 밑동까지 파괴해 버렸다.

정말이지 입이 떡 벌어지는 위력에 경산은 혀를 내둘렀다.

‘이건 강해도 너무 강하다. 세상에 이런 궁술이……?!’

콰르르릉!

“크아아악!”

마침내 비명이 울렸다.

멸사군이 아니었다. 사혼조원의 입에서 터져 나온 비명이었다.

서걱!

사혼조원 하나의 가슴에 검을 박은 여국이 그대로 그의 목을 날려 버렸다.

깔끔하고도 살기 넘치는 검격이었다. 도가 무공의 성지라 불리는 곤륜의 무학이 치명적인 살초로 전개되고 있었다.

경산이 악을 썼다.

“뭣들 하고 있는 거냐?! 집단전이라면 너희라고 뒤지지 않아!”

순간 사혼조원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파아아아악!

그들이 무서운 속도로 흩어졌다.

나무를 타고 오르는 조원이 있는가 하면, 허공 높이 날아오른 이도, 땅 밑으로 깊게 파고들어 가는 자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적군의 등장에 냉정을 잃었던 사혼조가, 비로소 죽음의 부대라는 이명에 걸맞는 실력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흩어진 그들이 제각기 멸사군을 향해 협봉검을 휘둘렀다.

그때였다.

피피피피핑! 퍼버버버벅!

“크악!”

“컥!”

허공에서 내리찍는 공격을 가하려던 사혼조원 일곱이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묵비의 눈에서 한기가 뿜어졌다.

“어딜 감히.”

무형탄(無形彈) 칠연사(七連射).

내공을 이용해 무형의 화살을 쏘는 상승의 경지다. 실제 화살만큼의 위력은 못 내더라도 파괴력은 충분했고, 특히 연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쿨럭!”

튕겨 나간 사혼조원들이 재차 피를 토했다.

누구 하나 죽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내상은 단 한 명도 피하지 못했다.

경산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묵비가 외쳤다.

“눈치 보지 말고 다 죽여라!”

콰르르릉!

신기(神技)의 궁술 이후에는 파괴력 넘치는 기마 돌진이었다. 멸사군병이 제각기 흩어져 사혼조원들을 향해 병장기를 휘둘렀다.

쩌저저정! 쾅! 퍼어어억!

무서운 위력이었다.

그전에도 강했지만, 지금의 멸사군은 과거와는 또 달랐다.

요 몇 달 사이 어떤 훈련을 한 것인지, 기동성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산악전(山岳戰)에서도 자연스레 적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인마일체(人馬一體)가 따로 없었다. 마치 처음 무공을 배울 때부터 기마전을 상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백전노장의 전투를 보여 주는 그들이었다.

키이이잉!

사혼조원이 뻗은 협봉검이 윤호의 견갑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운이 아니었다. 윤호가 절묘하게 몸을 틀어 견갑으로 협봉검을 막아 낸 것이었다.

휘둥그레지는 사혼조원의 눈.

윤호의 검이 불을 뿜었다.

촤아아아아악!

소름 끼치도록 날카로운 검격이 사혼조원의 몸을 다섯 갈래로 찢어 버렸다.

돌진하는 기마의 힘과 단련된 살법, 거기에 화산의 내공까지 더해지니 경력 분쇄고 뭐고 통하질 않는다. 사혼조의 강점은 반응이 빠르고 협동력이 강하다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뿔뿔이 흩어져서야 제대로 된 힘을 낼 수가 없었다.

퍼어어억!

척강의 살벌한 검격이 사혼조원의 팔과 다리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

콰아앙!

빈틈을 노린 동호의 죽엽수가 사혼조원의 안면을 으깨 버렸다.

잔혹한 공격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흔들림은 없었다. 어느새 그들은 그렇게 달라진 것이다.

한없이 열정적이기만 했던 척강, 피 냄새에 토악질하기 바빴던 동호, 언제나 장난기가 넘치던 윤호.

그들 모두가 전장의 살귀(殺鬼)로 변모해 버렸다. 실제 성격이 어떠하든, 전투 시의 그들은 그저 어떻게 하면 적을 도륙 낼 수 있는지만 고민하는 살인 병기처럼 움직였다.

화아아아악!

불꽃처럼 타오르는 기파가 산이라도 부술 것처럼 패도적인 폭풍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횡으로 휘둘러진 막강한 도격(刀擊)에 사혼조원 셋이 뒤로 튕겨 나갔다.

괴력의 무공, 철혈의 도법이었다. 팽만호의 거도가 만들어 낸 광경이었다.

“이 새끼들이…….”

팽만호는 다른 군병과 달랐다.

한껏 일그러진 얼굴, 불처럼 타오르는 그의 눈빛은 그야말로 악귀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감히 형님을!!”

그렇다.

본디 멸사군은 이보다 더 효율적으로 적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들은 효율보다 위력에, 잔혹한 공격에 더 중점을 두고 있었다.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속으로 삭이고 또 삭이는 차가운 분노. 바로 사혼조가 연호정을 죽이려 했기 때문이었다.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연호정이란 존재는 단순한 상관 이상이었다. 그가 있었기에 멸사군이 있었고, 그 덕분에 멸사군에 속한 군병들 모두가 진짜 고수로서 보물 같은 경험을 얻었다.

그들에게 있어, 연호정은 실로 대장다운 대장이었다.

그런 대장을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를 기괴한 놈들이 죽이겠다며 쫓고 있었던 것이다. 분노를 참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팽만호가 외쳤다.

“다 으깨 주마!”

거대한 도검과 창, 휘몰아치는 경력이 사혼조를 휩쓸었다.

콰르르릉! 콰아앙!

확실히 사혼조도 보통은 아니었다.

흩어져서 제힘을 내지 못한다 한들 그들은 묵룡부 산하 정예 중 하나였다. 작정하고 사신기를 발산하지 않았다 한들, 천하의 연호정조차 반 시진이 지나도록 전멸시키지 못한 이들이었다.

“죽여! 죽여!”

“밀리지 마라! 버텨라!”

“뭣들 하고 있는 거야?! 말을 노려!”

생각지도 못한 접전이었다. 사혼조 역시 양천의 명령을 받고 움직인 죽음의 부대다. 쉽게 밀릴 리가 없었다.

그때, 묵비의 홍련궁이 위협적인 불꽃을 토해 냈다.

퍼어어억! 퍼어억!

이러한 난전에서 묵비 정도의 궁수가 발하는 힘은 승부의 추를 기울게 하기 충분했다.

신중한 일격, 일격으로 벌써 사혼조원 다섯의 머리통을 날려 버린 그녀였다.

워낙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이라 미처 경력을 분쇄할 틈조차 없다. 어쩌면 사혼조에게 있어서 연호정보다도 상대하기 어려운 고수가 묵비일는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이년!”

후욱!

묵비의 눈이 번뜩였다.

어느새 경산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은신술이라도 펼친 건지, 이리 가까이 올 때까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죽어라!”

순간 묵비의 몸이 화려하게 움직였다.

쾅!

“큭!”

경산이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한 손으로는 고삐를, 다른 손으로는 말의 머리를 잡고 각법을 구사한 그녀였다. 흔들리는 기마 위에서 이 정도 위력의 각법을 구사하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이내 묵비가 시위를 당겼다.

타타타타탕!

무형탄 다섯 발이 땅과 나무를 터트렸다.

경산 역시 달리 조장이 아니었다. 묵비의 무형탄을 모조리 피해 내며 접근하는 그의 신법은 절로 감탄이 나올 만큼 절묘했다.

훅!

재차 접근한 경산이 묵비의 다리를 노렸다.

묵비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쩌어어어엉!

경산의 눈이 커졌다.

묵비의 허벅다리를 그대로 관통해야 했을 협봉검이 무언가에 가로막혀 뒤로 튕겨 나갔다.

‘화살?’

아니다. 이건 화살이 아니었다.

서둘러 묵비의 손을 확인한 경산이 입을 쩍 벌렸다.

‘창(槍)!!’

그렇다.

어느새 홍련궁을 등에 건 묵비의 손에는 한 자루 단창(短槍)이 들려 있었다.

아미파 창수들이 다루는 장창이 아니었다. 넉 자 길이의 단창은 일견 너무 짧아 보였지만, 그만큼 가볍고 탄력적이었다.

묵비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짝 접근하면 수가 생길 줄 알았어?”

“……이년!”

묵비가 힘차게 단창을 찔렀다.

후욱! 쩌어어엉!

경산이 이를 악물었다.

‘뭐 이런 내공이?!’

침투하는 공력이 무지막지했다.

경력 분쇄가 제대로 되질 않는다. 내공만 보면, 아니 실력 자체가 초절정고수를 상대하는 것처럼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묵비가 버럭 외쳤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다 죽여라! 분풀이하러 온 게 아니잖아!”

그녀의 위엄 넘치는 외침에 멸사군 모두의 눈이 번뜩였다.

콰아아앙!

마음을 달리 먹고 최단 시간 내의 섬멸에 집중하는 멸사군.

화려하기 짝이 없는 돌진으로 사혼조를 몰아붙이니, 늦게나마 제대로 대응하기 시작하던 사혼조의 기세가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한순간에 위태로워졌다.

퍼억! 퍼어억! 서걱!

사혼조원들이 하나, 둘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결국 경산은 판단을 내려야 했다.

절대로 내리고 싶지 않은 그 명령을, 이제는 내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 퇴각……!”

그때,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는 안 되지.”

촤르르르르륵! 퍼어어억!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철쇄가 경산의 아랫배를 그대로 뚫어 버렸다.

“커헉!”

신음과 함께 무릎을 꿇은 경산 앞으로, 거대한 도끼를 어깨에 걸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멸사군장, 사신무장.

연호정이라는 이름보다 그 살벌한 칭호가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죽음의 장수가 이제야 제힘을 되찾은 것이다.

“내 얼굴을 봤으니 살려 보낼 수 없다.”

묵비가 그 즉시 단창을 던졌다.

퍼어억!

경산의 가슴에 단창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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