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232화 (232/963)

232화. 갈등 (2)

“전했소?”

“……그렇소.”

“잘하셨소.”

“연 공자.”

“말씀하시오.”

“모용군이 선을 넘었다는 건 알고 있소. 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겠소?”

“달리 문제라도 있소?”

“문제가 있소. 분명히. 당신도 알고 있잖소?”

“문제가 있다 해도 강행하겠소.”

“연 공자!”

“실무조장의 명령이오. 이견은 용납지 않겠소.”

“……!”

“미안하오. 이런 식으로 직권을 내세워서.”

“아, 젠장. 저번에도 그러더니 필살기를 자꾸 쓰네.”

“…….”

“이유나 들어 봅시다. 물론 그자가 크게 잘못하긴 했소만, 우리 임무는 성공리에 마쳐야 하지 않겠소? 굳이 무리해서까지 그의 등을…….”

“후개.”

“말씀하시오.”

“모용군은 원래 그런 자였소. 나도 알고 있었지. 그리고 내 자랑 같지만, 나는 이미 파악을 마친 상대에게 뒤통수를 맞는 사람이 아니외다.”

“알고 있소.”

“그런데도 거하게 한 방 맞았소. 이유가 뭔 줄 아시오?”

“……?”

“모용군은 나를 미래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 생각하고 있소. 그래서 그의 공격은 항상 ‘나’를 향했소.”

“……그렇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소. 장애물은 나중으로 미뤄 두고, 그저 본인의 목적을 위해 과격하게 움직였소.”

“…….”

“알겠소? 나를 노렸다면 상관없소. 하지만 그는 바둑판에 장기알을 가져와 돌을 치우고 있었소.”

“……즉, 장기알을 치워야 한다?”

“그렇소.”

“선을 넘었다는 건 그런 뜻이었군.”

“그자는 우리를 믿고 있소. 정확히는 우리의 능력을 믿고 있지. 지휘권자는 자신이지만, 실제로 임무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현장 요원들이라는 걸 아는 거요.”

“그래서 그런 짓을 벌일 수 있었던 거군. 자신의 실수도 충분히 보듬어 줄 수 있는 인재들이 투입된 거니까.”

“이번 한 번이라면 그럴 수 있소. 하지만 그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오.”

“결국, 연 공자가 이리 무리하는 것은 그의 의식을 다시 당신에게 돌려놓기 위함이오?”

“돌려놓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묶어 두기 위함이오. 앞으로도 영영.”

“…….”

“그 하나의 결과를 위해서라도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소이다.”

“후우.”

“미안하오. 다시 한번 사과하겠소.”

“왜?”

“……?”

“왜 연 공자가 사과하는 거요? 이 사달을 낸 건 모용군인데.”

“…….”

“나는 임무가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이 임무 때문에 아군이 죽는 건 두렵소. 임무를 달성하고 장렬히 산화했다? 개소리지. 분명 많은 게 걸려 있는 임무지만,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임무는 아니외다.”

“…….”

“하지만 모용군은 이 임무에 생사람을 끌고 와 죽였소. 심지어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도 않았어. 내 연 공자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건 마두(魔頭)나 하는 짓거리란 말이오.”

“…….”

“연 공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다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오.”

“말씀하시오.”

“괴물을 죽이기 위해 더 위험하고 악랄한 괴물이 되지만 말아 주시오. 이제 와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오.”

“후개.”

“……?”

“미안하오. 난 이미 모용군보다 더 치졸하고 악랄한 짐승이 되어 가고 있소이다.”

* * *

“오, 왔는가.”

연호정이 무릎을 꿇었다.

“부주님을 뵙습니다.”

“그래, 이 앞으로 오게나.”

양천은 평소와 달리 회랑 안쪽 거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연호정은 뚜벅뚜벅 걸어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양천이 짓궂게 말했다.

“오라고 했지, 앉으라고 한 적은 없는데?”

“앉으라고 잔도 하나 꺼내 놓으셨으면서 그 어인 장난이십니까?”

“하하하!”

양천은 크게 웃었다.

정말이지 연호정의 이 패기만만한 자신감은 보면 볼수록 마음에 쏙 들었다.

그것은 비단 연호정의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양천은 고독했다. 믿을 만한 수하들도 많고 강호에서 제일가는 명성도 얻었지만, 정작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만한 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 면에서 연호정은 참으로 신선한 상대였다. 그는 자신을 어려워했으나 두려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잠룡(潛龍) 중의 잠룡을 얻었어. 허허, 수년간 중원을 배회하던 고생이 이제야 열매를 맺는가?’

양천이 씩 웃으며 술병을 들었다.

“한잔 받게나.”

“예.”

빈 잔을 채우는 술은 아름다운 비취색을 띠고 있었다.

“향이 좋군요.”

“송풍주(松風酒)라고 하네.”

“직접 담그신 겁니까?”

“술 담그는 방법 따위 모른다네. 그저 내가 아는 지방에서 만드는 술인데, 중원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

“영광입니다.”

“자, 한잔하세나.”

연호정이 그대로 잔을 비웠다.

양천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참으로 호쾌하구먼.”

“주군이 따라 주신 술인데 남겨서야 쓰겠습니까.”

연호정이 술병을 들었다.

“한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좋지.”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몇 순배의 술이 오갔다.

“그래, 요 며칠 동안 몹시 바빴다고?”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문무겸전에 큰 공(功)을 세운 자라도 신임은 신임입니다. 제 소임을 다하려면 하루빨리 이 조막만 한 머리에 묵룡부의 모든 걸 담아야지요.”

“허허허.”

“고생은 좀 했습니다만, 밤잠을 설친 보람은 있었습니다.”

자신만만한 목소리였다.

양천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말만 들어도 연호정이 얼마나 일 처리가 확실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환사가 혀를 내두르더구먼. 한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더라고.”

“환사 선배가 엄살이 좀 있군요.”

“선배?”

“선배지요. 공적인 자리라면 모를까, 연배도 연배고 부주님을 모신 세월도 저보다 오래되었으니 선배라 하는 것이 마땅하지요.”

“허허, 자네가 뭘 좀 아는군. 뛰어난 자일수록 오만해지기 쉬운 법, 그런 사람들은 대개 생각지도 못한 위협을 받기 마련이야. 하나 자네는 처음부터 그리 굽히고 들어갈 작정을 했으니, 조만간 자네를 보는 눈초리들도 순해질 것이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성질대로 하기에는 맡은 바 임무가 너무 무겁습니다. 이 거대한 조직을 떠받칠 기둥이 되기 위해서는 허리와 무릎을 유연히 해야지요.”

“크하하하!”

광소를 터트리던 양천이 재차 연호정의 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그래, 어찌 되었든 잘 생활하고 있다니 다행일세. 그건 그렇고…….”

“말씀하십시오.”

“그간 정보원에서 보고 느낀 게 많았을 텐데.”

“그렇습니다.”

“어떻던가? 자네가 보는 묵룡부는 어떤 조직인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면 될지가 아주 궁금해.”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애초에 사음교와 손을 잡지 말았어야지.’

실제로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아니, 따지고 싶었다. 진정 천하를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면 정체도 모르는 조직의 도움을 받아선 안 되었다고. 투왕이라는 명성이 아깝지도 않냐며 몰아치고 싶었다.

‘당신은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어.’

연호정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지금 이대로는, 조직을 개편한다 하더라도 백도 무림맹과의 격차를 좁히기 힘들 겁니다.”

양천의 눈이 번뜩였다.

“이유는?”

“무림맹은 말 그대로 연맹인지라 장단점이 뚜렷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장점이 너무나도 커서, 적대 세력으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요.”

“장점이라?”

“대의(大義)입니다.”

“대의?”

“실제 백도 정파를 이끄는 수뇌부들의 마음이 어떻든, 그들은 협과 도의를 위해 움직입니다. 달리 말하면 협과 도의를 위해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도 돈과 병력을 가져다 바칠 문파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

“무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자금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협의와 정의라는 간판을 내세워 공짜로 곳간을 불리고 있는 셈입니다.”

양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그렇습니다. 나아가, 세상을 평정하고자 하는 이들보다는 평화를 바라는 이들이 훨씬 많지요. 묵룡부의 성장세만큼이나 무림맹의 성장세 역시 만만치 않을 겁니다.”

“…….”

“성장세가 비슷하다면, 묵룡부는 영영 무림맹을 넘을 수 없겠지요.”

양천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면, 자네는 우리가 어찌해야 한다고 보는가?”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세 가지? 말씀해 보시게.”

“우선 첫 번째.”

연호정이 검지를 들었다.

“눈에 띄는 성장세를 위해 외부 조직을 끌어들이는 방법입니다.”

“이 이상 어떤 조직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말인가?”

연호정은 자신의 목소리에 살기가 담기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했다.

“사음교입니다.”

“……!”

“그들이 묵룡부를 지원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부주님께서는 제게 그것까지 말씀해 주시진 않으셨지요.”

“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들을 흡수할 수 있다면 능히 무림맹과도 대적할 수 있게 됩니다. 병력으로는 뒤질지라도, 자금력에서 압도한다면 피 흘리지 않고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지요.”

양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불가하네.”

“역시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연호정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럼 두 번째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이 방법을 추천해 드리지는 않습니다.”

“말씀해 보시게.”

“민심입니다.”

“민심이라니?”

“천하 명공이 만든 도자기에도 때가 묻기 마련이고, 털어서 먼지가 안 나는 사람은 없는 법입니다.”

양천이 인상을 찡그렸다.

“무림맹 수뇌부들의 뒤를 캐자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쉽지 않네. 설령 그게 가능하다 해도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할 거야. 나아가, 그만한 자금력을 쏟아부을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군.”

“가치는 있습니다. 다만 이쪽의 인내심이 충분하다는 가정하에 말이지요. 게다가 장강 이남의 백성들을 위해 돈을 더 많이 풀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양천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민심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네. 하지만 자네 말마따나 그건 지나치게 큰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이야. 더하여, 민심은 없어선 안 될 요소이긴 하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라고는 할 수 없다네.”

“승패를 가를 수 있을 만큼 인내하면 됩니다. 다만, 저 역시 앞서 말씀드린 대로 추천해 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렇구먼. 나 역시 반대일세.”

“그렇다면 마지막 방법밖에 없군요.”

연호정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양천은 직감했다. 연호정이 지금 하려는 말이야말로 진짜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라는 것을.

“마지막 방법, 그게 무엇인가?”

“무림맹이 창설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맹주 자리는 아직 공석이고요.”

“그렇다네. 듣기로, 내년에 맹주를 선출한다고 알고 있네만.”

“…….”

“……자네 설마?!”

“예, 바로 그겁니다.”

연호정이 서늘한 미소를 띠었다.

“선거 개입.”

“……!!”

“무림맹주를 우리의 입맛에 맞는 인사로 세우면 됩니다.”

“그것은…….”

“그리고 놀랍게도, 현재 호남에는 차기 맹주 후보로 유력한 자가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양천의 눈이 커졌다.

연호정이 잔을 들었다.

“모용가주, 모용군을 이용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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