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제왕의 귀환 (5)
“뭐, 뭐라고?!”
일행이 깜짝 놀란 눈으로 연호정을 보았다.
연호정은 침착했다. 이 정도 반응이야 당연히 예상했기 때문이다.
가득상이 눈살을 찌푸렸다.
“귀철검문의 후계자라……. 하면 그때 그 원숭이가 제대로 짚은 거였소?”
“그렇소.”
“아니, 도대체 왜?”
연호정은 술로 목을 축였다. 오늘따라 술이 참 잘 넘어갔다.
“괜찮은 인재이기 때문이오.”
“하지만 흑도인데?”
“흑도에도 괜찮은 사람은 많소.”
“뭐…… 그렇기야 하겠지만.”
가득상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귀철검문의 후계자라면 투왕 양천과 묵룡부를 향한 복수심이 무지막지하겠는데?”
“그렇소.”
“설마, 그 청년을 이용해서 묵룡부의 시선을 끌 생각이오?”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들어 보니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군. 녀석이 동의한다는 전제하에 고려해 보도록 하겠소.”
“쩝, 딱히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고. 어쨌든 지금 보니 진심으로 그를 아군으로 영입할 생각인 것 같은데.”
“정확히는 우리 일행이 아닌 내 사람으로 만들까 싶었소.”
“부하?”
“친구.”
가득상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가끔 느끼는 거지만,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소이다. 제아무리 사람이 괜찮다 한들 굳이 흑도의 후기지수를…….”
“미리 말해 주지 못해 미안하오.”
“됐소. 댁 성격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다만 중요한 게 있소.”
“말씀하시오.”
“그자와 함께 복귀한다고 칩시다. 그자, 정말 믿을 만한 자요? 무림맹으로 데리고 들어가도 정말 괜찮겠소?”
연호정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귀철검문은 흑도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이오. 흑도라고는 하나 대대로 호걸의 방파라 불릴 만큼 격식과 법도를 아는 문파외다. 그래서 같은 흑도 내에도 적이 많았소.”
“그건 알고 있소. 내가 말하고자 한 건, 우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강량이란 자가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다른 마음을 품으면 사태가 지나치게 커질 거요.”
“비록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녀석은 도리를 아는 놈이오.”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오. 연 공자의 안목은 믿소만, 사람은 언제든 변할 수 있소.”
어지간하면 이런 말도 안 할 것이다. 그만큼 강량이란 인물은 일행에게 있어 폭탄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마 일행 모두가 이 말을 하고 싶었을 터였다. 그걸 알기에 가득상이 대표로 나선 것이다.
연호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를 믿어 주시오.”
패율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가득상이 입맛을 다셨다.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필살기를 쓰잖느냐.”
“예?”
“자기를 믿어 달라는데 어쩌겠냐는 뜻이다. 저 녀석이 너 같은 머저리도 아니고, 믿어 달라는데 믿어 줘야지.”
그야말로 단순하고도 깔끔한 대답이었다.
가득상이 인상을 찡그렸다.
“저 머저리 아닙니다.”
“대드는 거냐?”
“대드는 거 아니거든요? 그냥 그렇다고요. 사람을 너무 무시하고 계시잖습니까.”
“마음에 안 들면 언제라도 한판 붙어. 나는 무(武)를 증명하지 않은 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됐거든요.”
가득상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패율이 연호정에게 물었다.
“쓸 만한 놈이냐?”
“그렇습니다.”
“칼질은?”
“미숙합니다만, 단순히 발전 가능성만 보자면 당상아 군병에 필적할 겁니다.”
“호오.”
패율의 얼굴에 흡족함이 깃들었다.
“나중에 칼부림이나 한번 해 봤으면 좋겠군.”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만족하실 겁니다.”
“좋아, 나는 찬성이다.”
당상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만약 그자를 맹으로 데려간다면, 단순히 일행으로 삼을 생각인가요? 아니면 멸사군에 영입할 생각인가요?”
“거기까지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어. 다만, 미숙하기는 해도 흑도제일검문의 후계자인 만큼 실력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야. 그만한 전력이 뚝 떨어지면 빠르든 늦든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게 되겠지.”
“역시 영입하는 쪽이 좋겠군요.”
“그렇다고 생각해.”
잠시 생각에 잠겼던 당상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찬성이에요. 사실 제가 되니 안 되니 하는 것도 우습고요. 다만 신경 쓰이는 건 이번 임무인데, 그거야 군장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죠?”
“물론이다.”
“네, 그럼 좋아요.”
이제 남은 사람은 하나였다.
모두의 시선이 제갈아연에게로 향했다.
담담하게 차를 홀짝이고 있던 제갈아연은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자 당황한 듯 눈을 끔뻑였다.
“왜 그렇게들 보세요?”
가득상이 헛기침을 했다.
“찬성이오?”
“찬성 못 하겠다고 어깃장 놓으면 안 데려갈 놈이에요, 저놈이?”
연호정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 사람으로 삼고 싶은 녀석이지만, 굳이 주변에 민폐를 끼치면서까지 데리고 갈 생각은 없어.”
“하지만 언젠가는 데려오겠지.”
“그래, 언젠가는.”
“거봐. 그럼 지금 반대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이왕 데려가겠다고 마음먹은 거면 그렇게 해야지.”
“정말 괜찮겠냐?”
제갈아연이 코웃음을 쳤다.
“상식적으로 괜찮겠어? 널 신뢰하는 것 이전에 그자는 흑도 명문의 후계자야.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해도, 걸었던 길이 다른 만큼 괜찮을 리가 없지. 많든 적든 갈등도 제법 있을 거고.”
“그렇겠지.”
“내가 아는 너는 백도라고 섣불리 믿지 않고, 흑도라고 함부로 등한시하지 않아. 결국 사람을 본다는 거지. 다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거니까, 이왕 데리고 갈 거라면 제대로 책임져.”
“고맙다.”
“개똥이다, 이놈아.”
가득상이 입맛을 다셨다.
“뭐, 생각보다 금방 결정됐네. 하기야 연 공자는 실무조의 조장이니까, 나중이면 몰라도 지금은 댁이 하는 일에 일일이 딴지 거는 것도 우습소.”
“실무조장이라고 독단적으로 행할 일은 아니오. 그래서 다 부른 거고.”
“킁! 웃기고 계셔. 그럼 미리 말이나 해 주든가.”
“면목이 없소.”
“됐네요. 어쨌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테니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자리 파합시다. 곧 묵룡부로 들어가야 하는데, 쉴 수 있을 때 푹 쉬어 두고 싶거든.”
“그러시오.”
그렇게 일행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연호정과 제갈아연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무거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미안하다.”
“알기는 아냐?”
“그래.”
제갈아연이 피식 웃었다.
“너 진짜 그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등에 칼 맞는다.”
“나도 가끔 등골이 싸해.”
“농담 아니야.”
“알아.”
한숨을 내쉰 그녀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데리고 오면서 느낀 건데, 그래도 애가 됐더라.”
“그래?”
“엉. 흑도 출신이고 나발이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하고 붙어서 오는데 상당히 신중하더라고. 선도 확실히 지키고, 배려도 할 줄 알고. 사람이 순박한 면도 있어.”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런 놈이지.”
물끄러미 연호정을 보던 제갈아연이 툭 던지듯 물었다.
“잘 아는 것처럼 말하네?”
“알 만큼은 알지.”
“전에 봤던 사람도 아닐 텐데.”
연호정은 그저 웃어만 보였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제갈아연이 고개를 저었다.
“솔직하게 말할게. 나는 그자가 크게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너도 그렇고.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데에서 문제가 터질 수도 있어.”
“모용군.”
“맞아.”
제갈아연의 얼굴이 흐려졌다.
“중원 무림의 판도가 뒤바뀔 수 있는 위험천만한 임무의 지휘권자로 왔으면서도 제 잇속을 챙기는 사람이야. 야망이나 욕심을 떠나서, 정말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그렇지.”
“더 섬뜩한 건, 그자가 너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나 역시 그자를 노리고 있지.”
“그래, 서로가 서로를 노리고 있지. 하지만 귀철검문의 후계자를 대동하고 가는 순간, 모용군은 어떻게든 널 물어뜯으려 할 거야.”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않을 거야.”
“왜?”
“더 이상 날 자극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알 테니까.”
“확신해?”
“확신해. 괜히 패율 선배를 보낸 게 아니야.”
굳이 몽의의 존재까지 알리면서 패율을 보낸 것은, 모용군을 향한 선전 포고인 동시에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 위함이었다.
모용군은 분명히 알아챌 것이다. 더는 상대를 자극해선 안 된다는 걸. 이건 선을 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피를 보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게다가 나는 묵룡부의 정보부장이야. 선전 포고까지 때렸으니 필시 맞받아칠 준비를 하고 있겠지. 내 짐작대로라면, 모용군은 지금 세가의 정보단을 철통같이 방비하고 있을 거다.”
“긴장하고 있다?”
“아닌 척하겠지만 분명 그럴 거다.”
제갈아연이 쓴웃음을 지었다.
“참나, 천하의 제갈세가 혈육이 되어선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네.”
“작정하고 발을 들이지 않았으니까. 그건 당연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좀 쉬어야겠다. 주변을 일일이 살피면서 오느라 엄청 힘들었어.”
“고생 많았다.”
“알면 나중에 근사한 술이라도 사.”
“언제든지.”
“정아.”
“그래.”
제갈아연의 눈이 일렁였다.
“우리, 같은 편 맞지?”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내 인생 첫 친구가 너다.”
“……히히.”
“좀 강제성이 있긴 했지만.”
“닥쳐.”
* * *
“……이상, 무종문의 정(定)을 본부의 정보부 수장으로 임명한다.”
상당히 엄숙한 분위기였다.
묵룡부의 수많은 수뇌부가 지켜보는 자리였다.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연호정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할 것을 천지신명께 맹세합니다.”
양천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일어나게.”
자리에서 일어난 연호정이 양천을 올려다보았다.
양천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부가 어수선하여 임명식을 간단하게 끝냈지만, 기실 새로이 개편될 본부의 정보부는 그 위상이 이전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묵직하게 깔린 음성에 굉장한 위엄이 묻어 나왔다.
“무종문의 정은 지닌 바 지모(智謀)가 출중하고 무공 또한 누구 못지않게 뛰어난바, 문무겸전의 인재임에도 내부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공(功)을 세우겠다고 나서는 신중함마저 겸한 사람이다.”
“…….”
“재능, 능력, 성과, 어떤 면에서도 그대들에게 뒤지지 않는 자이니만큼 쓸데없는 분란으로 부의 기강을 무너뜨리지 않기를 바란다.”
굉장한 총애였다.
제아무리 정보부장 임명식이라지만, 그를 위해 이런 설명까지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양천은 그리했고, 그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이곳에 모인 수뇌부 중 대다수는 절대 연호정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능력을 떠나 부주가 이렇게까지 총애하는 사람이라면,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목이 달아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그리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으로 정보부장 임명식을 마치겠다.”
수뇌부 전원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이제 마무리 단계다.’
정보부장은 묵룡부 내의 모든 정보를 총괄하는 자다.
부의 병력과 자금력은 물론 부내 정보원들이 어디까지 뻗어 나갔는지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이니만큼, 짧은 시간 내에 대량의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곧바로 일에 착수해야겠어.’
그때, 양천이 말했다.
“정보부장은 남고, 나머지는 모두 퇴전하라.”
수뇌부들이 묵룡전을 나섰다.
연호정이 의아한 눈으로 양천을 보았다.
“정보부장.”
“예, 부주님.”
“기실, 사흘 전에 말해 줄까 싶었네만 관뒀네. 정식으로 정보부장이 된 건 아니니까.”
“…….”
“하지만 임명식까지 마쳤으니 이제는 말해 줘도 되겠다 싶네.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굳이 혼란을 주긴 싫으니까.”
“말씀하십시오.”
양천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본부를 돕는 모종의 세력이 있네.”
“……?!”
“그리고 그들은 중원이 아닌 새외에 있다네.”
“……그들이 누굽니까?”
“사음교(邪淫敎)라는 단체인데, 들어 본 적 있나?”
순간 연호정의 안광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