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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189화 (189/963)

189화. 고향으로 (1)

“뭐라고요?!”

묵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번 일의 총책임자?”

“정확히는 숨겨진 실세라고나 할까?”

연호정이 멋쩍은 듯 말했다.

“실무에서는 내가 좌장 역할을 맡긴 할 텐데, 어쨌든 후개도 함께 가기로 했으니까. 아마 최고 직함은 후개에게 떨어지겠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럼 뭐가 문제냐, 이놈아.”

묵비의 얼굴에 걱정이 깃들었다.

“투왕 양천은 아버님도 어쩌지 못하는 괴물이라면서요?”

이제 강호 무림에 대해 알 만큼 아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라도 직접 보지 못한 고수의 전력을 상상키는 어렵다. 다만 그녀가 아는 최고수 중 하나, 연위조차 감당키 힘든 고수라 하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진짜 걱정하는 바는 따로 있었다.

“그래도 가야 해.”

“가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쳐요. 하지만 작전 지휘를 모용가주가 한다면서요?”

그렇다. 묵비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간 묵비는 연호정 옆에서, 모용군이 저지르는 짓들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비록 연호정만큼 지략에 밝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충분히 위험한 사람이 아닌가.

“모용가주가 작정하면……!”

“이번에는 안 할 거야.”

“네?”

“이번만큼은 나를 노리지 않을 거야. 물론 장난질은 좀 칠 수도 있겠지만.”

“확신해요?”

“그렇다고 생각해.”

말하자면 확신은 못 한다는 뜻이었다. 천하의 연호정이라도 모용군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당연했다.

묵비의 얼굴에 심란함이 드리워졌다.

“이번에는 그냥 안 하겠다고 하면…….”

“내가 하겠다고 했어.”

“네?”

“원래 날 상정하지 않은 작전이었어. 내가 직접 모용가주한테 부탁했다. 그곳에 가겠다고.”

“……왜요?”

“이런저런 이유가 많지. 쓸데없는 희생도 줄일 수 있고, 훨씬 유연하게 움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정말 그것뿐이에요?”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지.”

묵비는 그 이상 자세히 묻지 않았다. 알려 줄 거였으면 캐묻기 전에 알려 줬을 사람이니까.

다만, 하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나도 갈게요.”

“안 돼.”

“…….”

“이번 작전에 널 데려갈 수는 없어. 당분간 쉬도록 해.”

“왜죠?”

“나나 너나, 특색이 너무 명확해. 흑도 문파를 궤멸시키면서 그쪽 동네에 너에 대한 소문도 많이 퍼졌을 거야.”

“그건 연 공자도 마찬가지잖아요.”

“난 도끼를 들지 않아도 제법 하거든.”

“…….”

“네 박투 실력도 그럭저럭 봐 줄 만하지만,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 써먹을 정도는 아니야. 자칫 잘못하다간 진짜로 목숨이 날아간다.”

“위험한 건 지금껏 겪은 무수한 실전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그 정도가 달라. 마을 화재를 진압하는 것과 산불이 난 곳에 뛰어드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야.”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정말 위험하긴 위험한 모양이었다.

연호정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다만, 네가 맡아 줬으면 하는 역할이 있다.”

“……뭔데요?”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이야. 변수가 많아도 너무 많거든.”

“…….”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양천의 영역에서 벗어나야 하지. 짐작건대 여유로운 도주도, 은밀한 탈주도 되지 못할 확률이 높아.”

“…….”

“일이 얼추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지원 요청을 할 거다. 그 지원 부대 소속으로 네가 참여해 줬으면 한다.”

묵비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기실, 자신이 꼭 지원 부대에 속할 필요는 없다는 걸.

연호정은 지금 자신을 설득하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가슴에 못 박힐 소리도 서슴없이 내뱉었을 텐데, 지원 부대로 남아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물끄러미 연호정을 보던 묵비가 한숨을 쉬었다.

“언제 출발해요?”

“아직 확실하진 않아. 빠르면 이레, 길어야 보름 안쪽이라고 들었다.”

“이레에서 보름…….”

묵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미안하다.”

“연 공자가 뭐가 미안해요.”

연호정이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했다.

“사람 머리통 날리는데 맛 들인 희대의 마두에게 참아 달라 했으니 미안…….”

퍼억!

“컥!”

연호정이 비틀거렸다. 복부를 제대로 맞았기 때문이다.

“이, 이 새끼가 쳤어, 지금?!”

묵비가 콧방귀를 퍽 소리가 나도록 뀌었다.

“가서 꼭 뒈져욧!”

“저 망할 놈이!”

묵비는 쾅쾅 발소리를 내며 숙소로 들어가 버렸다. 연호정의 되먹지 못한 농담에 진절머리가 난 모양이었다.

연신 배를 문지르던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짜식, 그래도 걱정이 되긴 하나 보군.”

일순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거 근데 언제 저렇게 또 단련했지? 아오, 시발 아파 죽겠네. 진짜 토할 뻔했잖아?”

박투술은 몰라도, 주먹의 위력 하나만큼은 대단하다고 아니 말할 수 없겠다. 그냥 쳐도 이 정돈데, 작정하고 내지르면 바위도 쪼개 버릴 수준이다.

평상에 앉은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이건 뭐 쉴 새가 없군.”

사실 이게 맞다.

광신삼교가 호시탐탐 중원을 노리고 있으니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전력의 보강과 밀집 등 적의 침공에 대한 확실한 대비가 필요하다.

연호정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쩌면 이번 일로 백도 무림이 하나로 묶일 수도 있어.’

양천이 광신삼교와 연결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그리된다면, 자신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새외로 눈을 돌릴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텐데.’

물론 흑도도 하나로 묶어야 할 것이다. 그 작업만 해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연호정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제길, 일단 지금은 복잡한 생각 같은 건 접어 두자. 당장의 일에 집중해야 할 때야.”

그때,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의 일이라는 게, 그런 일일 줄은 몰랐구나.”

연호정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미 아버지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그래.”

연위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번 일의 중추로 끼어들었다고?”

“그렇습니다.”

연위는 잠시 말이 없었다.

연호정은 내심 긴장했다. 아버지 역시 예전과는 무척 달라지셨지만, 사람 본연의 성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호통이 날아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그렇게 반 각의 시간이 지났다.

“하나 줬으니, 하나를 뺏어오겠다고 하였다. 한데 지금 보니, 뺏어오기는커녕 적의 아가리에 불쑥 뛰어들어 버린 격이로구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무슨 뜻이냐?”

“그 아가리를 잘 이용해서 적의 살점을 물어뜯을 생각입니다. 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미처 이빨을 세우기도 전에 먹혀 버릴 것 같아서요.”

“…….”

“물론, 이것 외에도 가져올 게 있긴 했습니다.”

“그게 무엇이었느냐?”

“당원이요.”

연위의 눈이 반짝였다.

“당원이라면?”

“모용군과 한배를 탄 당원 중 하나를 뺏어오려 했습니다.”

“그게 가능한 것이더냐?”

“물론입니다. 뭐, 당장 마음을 돌리게 할 순 없었겠지만 말이지요.”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아들의 머리가 뛰어나긴 한 모양이었다. 그러한 방법이 실제로 먹히느냐를 떠나, 사고의 방향 자체가 자신과는 달랐다.

연위가 한숨을 쉬었다.

“미리 말이라도 해 주지 그랬더냐.”

연호정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번 건에 대해서는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후우.”

답답하기도 했을 것이다.

무림맹 최초의 유군 부대의 수장? 그거야 물론 축하할 일이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영광된 자리라도, 전투 부대에 들어간 이상 누구보다 실전을 많이 겪을 수밖에 없다.

혹자는 말한다. 무림인으로서, 보다 많은 경험을 쌓게 되는 것은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라고.

연위 역시 그 말에 동감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이성대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연호정은 자식이었다. 자식이 크게 배우는 것을 떠나, 매번 목숨이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것은 부모로서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그 어느 때보다도 위험한 작전에 투입되는 것도 모자라 아군의 배신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할 상황이라면 더더욱 걱정될 수밖에 없다.

“후개가 함께한다고 들었다.”

“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후개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비록 경박한 면이 없지 않지만, 겪어 보니 속이 깊고 정이 많은 사람이더구나. 능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렇습니다.”

“그런 인재가 함께한다니, 와중에 다행이구나.”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무사히 돌아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을 안 할 수가 있어야지.”

연위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곧 있으면 해가 중천에 떠오를 것이다. 회의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위험…… 위험이라.’

연위가 눈을 감았다.

아들이 사지로 간다는데 챙겨 줄 만한 것이 없다. 능력이야 워낙에 출중한 녀석이지만, 뭐라도 더 챙겨 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다.

“도끼는 놓고 가겠지?”

“그렇습니다.”

연위가 몸을 돌렸다.

“따라오너라.”

부자가 향한 곳은 바로 공공대사와 비무를 벌였던 공터였다.

연호정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달라졌군.’

그간 누군가가 이곳에서 거친 수련을 지속했던 모양이다.

그때 봤던 것과는 정경이 전혀 다르다. 땅을 다지고 부러지거나 베인 나무를 정리했지만, 격전의 흔적을 모두 덮지는 못했다.

‘음?’

순간 연호정의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저건……?’

베인 나무의 밑동에 섬뜩한 흔적이 나 있었다.

십여 개의 자상(刺傷)으로 가득한 밑동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러질 것 같았다. 흔적 자체는 대단할 게 없지만, 그 흔적을 통해 들어간 진기의 침투가 엄청났다.

‘침투검경(浸透劍勁)…… 대단한 수준이야. 보아하니 일격에 저런 흔적을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만일 저 검격이 사람의 몸뚱이에 작렬했다면?

‘자상을 통해 들어온 검경이 전신의 신경을 찢고 오장육부를 산산조각 냈겠군.’

섬뜩하기 이를 데 없는 무공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검격의 흔적에서 느껴지는 익숙함이었다.

“그래, 애비가 했다.”

연호정의 마음을 읽은 듯 연위가 말했다.

“철검대연을 연마하며, 검의 살상력을 극대화하는 수련을 했다.”

연호정의 눈이 흔들렸다.

“아버지답지 않은 무공입니다.”

“그렇다. 동시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예?”

“내가 추구하는 것은 중도(中道)의 무공이다. 중도는 곧 만무(萬武)에 닿아 있는 법. 유려한 활검(活劍)을 휘두를 줄 안다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살검(殺劍)도 휘두를 줄도 알아야 한다.”

“……!”

“지금껏 애써 외면해 왔던 그 흉살(凶殺)의 길도 안고 갈 생각이다.”

“……그렇군요.”

대단하다.

마음가짐을 달리 먹은 것만으로도 저토록 무시무시한 검법을 펼칠 수 있다. 일가(一家)를 넘어, 정점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한 검인(劍人)의 무도였다.

연위가 유독 딱딱한 얼굴로 물었다.

“그간 애비와 꽤 살벌한 비무를 벌이곤 했었지?”

“그랬지요. 살초까지 썼으니까요.”

“그랬지. 하지만 이 애비는, 단 한 번도 네게 진심 어린 살초를 써 본 적이 없다.”

“…….”

“오늘은 써 볼 생각이다.”

연호정의 눈이 재차 흔들렸다.

우우우우웅.

연위의 손끝에서 연녹빛 아름다운 광채가 피어올랐다.

“검을 뽑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나마 내 자식을 죽여 마땅한 적이라 생각하고 승부에 임할 것이다.”

“……!”

“준비해라. 미리 말해 두지만,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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