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암투(暗鬪)의 본질 (6)
후우우우.
내뿜는 연기는 은은한 녹색을 띠었다. 기괴하다기보다는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색이었다.
물론 사람의 폐에 들어갔다가 나온 연기인 만큼 몸에 좋을 리는 없을 것 같았다.
당관이 곰방대를 툭툭 쳤다.
흩날리던 재가 바람을 따라 하늘 높이 올라갔다.
“가주님.”
당관이 말없이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서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무엇이 말인가.”
“제가 어찌 가주님의 경지를 추측이나마 하겠습니까마는, 학정홍(鶴頂紅)은 다소 과하지 않을는지요.”
당관이 고개를 저었다.
“독공(毒功)의 성취가 답보 상태야. 이 정도 조치는 취해 줘야 몸이 긴장하지.”
“……그래도 학정홍은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약한 독으로 독성(毒性)을 기른 후에 쓰시는 게 어떻습니까?”
당가주는 사천당가의 주인이며 제왕이다.
제왕에게 이 정도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흔치 않다. 그가 당가 소속이라면 더더욱.
당관이 재차 고개를 저었다.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사내, 약왕전주(藥王殿主) 당영신(唐嶺信)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당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내가 이 정도도 못 버틸 것 같은가?”
“가주님이시라면 분명 버티실 것입니다. 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드린 말씀이니,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흥.”
당관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정체기란 곧 한계를 뜻해. 난 느끼고 있다네. 이번 한계를 넘어서서 독공이 상승하면, 예상보다 오 년은 더 빨리 아버지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당영신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어졌다.
‘아직도 태상가주님께…….’
당관은 좋은 군주였다.
물론 자비롭거나 사람을 포용하는 군주는 아니었다. 애초에, 당가인으로서 그런 군주를 바라는 것은 사치였다.
당관은 강했다. 재능이 뛰어나고 사업 수완도 좋았으며, 강호 경험도 풍부하여 어지간해선 방심하는 일이 없었다.
적에게는 자비가 없었고, 당가인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보면 이유를 막론하고 상대를 박살 낼 줄 아는 화통함도 갖추었다.
전형적인 당가인, 당씨의 핏줄을 제대로 이은 군주가 바로 당관이었다. 그래서 당영신은 당관을 진심을 다해 모셨다.
그러나 그런 당관에게도 단점이 있었다.
‘태상가주님과의 관계를 좋게 푸셨다면 좋았을걸.’
당관은 편협하고 독선적인 면이 있었다.
문제는 그 성격이 혈육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자식에게는 그러지 않았지만, 아버지이자 태상가주인 당형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암왕 당형.
무림 최고의 고수들이라는 성천십삼좌 중 일인이자 당대 강호에서 가장 위험한 고수라는 평가를 받는 절대고수.
‘어쩔 수 없는가.’
태상가주님 역시 가주님 못지않게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 것인지, 끝없이 발전하는 무공과는 달리 그분의 성격은 꽤 부드러워지셨다.
그래서 더더욱 부자지간의 충돌이 심화되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편협함에 혀를 찼고, 아들은 아버지의 방종한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다.
만일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았다면?
‘그랬다면 지금 가주님의 성취가 구파일방, 육대세가의 수장 중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을 텐데.’
태상가주님께서는 아들인 가주님께 모든 무공을 전수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후계자인 당양선도 성품이 덜됐다며 가르치질 않았다.
태상가주님께서 유일하게 애정을 쏟아 가르친 사람은 단 한 명, 당상아뿐이었다.
‘아쉽구나.’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당영신의 주인은 당형이 아닌 당관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불만을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정오까지 얼마나 남았지?”
“예? 아, 예. 반 시진 정도 남았습니다.”
당관이 곰방대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곧 손님이 올 것이네. 들이게.”
당영신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손님이라 하심은…….”
“그런 놈이 있네.”
당관의 얼굴에 나른함이 엿보였다.
표정을 보니 중요한 손님은 아닌 것 같다. 당영신이 고개를 숙였다.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러게.”
당영신이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마자 당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군.’
무림맹에 온 지 벌써 몇 달째이던가.
그간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만, 당관으로선 온통 피곤한 일뿐이었다. 권력 기반을 형성하고 당가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대리인을 보냈을 것이다.
‘조만간 떠나야겠어.’
이제는 충분하다.
무림맹의 봉공이 되었고, 권력 기반도 잘 잡았다. 게다가 몇 달 동안 끌어온 딸내미의 일도 어제를 기점으로 해결되었다.
이제야 홀가분함을 느꼈다. 남은 일은 모용군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 내달쯤 사천으로 가면 되겠구나 싶었다.
‘…….’
창밖의 맑은 하늘을 보던 당관은 문득 당상아를 떠올렸다.
당관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당가에 네가 설 자리는 없다. 나름대로 괜찮은 보금자리인 듯싶으니, 그곳에서 행복을 찾아보거라.’
당관은 당상아를 아꼈다.
실제로 그는 당양선보다 당상아를 훨씬 더 아꼈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녀는 당가 사람답지 않게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매력이 있었다.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어여쁜 아이다.
당상아가 열다섯을 넘기기 전까지, 당관은 천하제일의 기린아가 아니면 결코 제 딸과 맺어질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 태상가주 당형이 당상아를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바로 그때부터 모든 게 변했다.
푸스스스.
탁자에 올려 두었던 손 밑으로 가루가 날렸다.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독기(毒氣)가 탁자 표면을 갈아 버린 것이다.
당관의 눈이 서늘해졌다.
“알고 계십니까? 아버지께서 본가를 망친 주범이라는 것을.”
어렸을 땐 닮고 싶었고, 커서는 당씨 성을 가졌단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만들어 준 사람. 그리고 지금은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세상이 두려워하는 당가제일고수, 암왕 당형은 당관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조만간입니다. 머지않아 당신을 꺾을 수 있어요. 당가의 태상왕(太上王) 자리에 앉아 계실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는 겁니다.”
아버지는 독이다. 독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고 위험한 독이었다.
당관은 그런 아버지를 당가에서 내쫓아 버리는 것이 당가를 위하는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문득 그의 시선이 탁자 위에 나뒹구는 곰방대로 향했다.
그의 동공에서 은은한 녹광이 번뜩였다.
‘가문으로 돌아가면 무형지독(無形至毒)으로 바꿔야겠어.’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기를 한참.
훅.
나른함으로 가득했던 당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
누군가가 오고 있다.
창밖에서부터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파가 있었다. 아직 자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천하의 무림맹에서도 쉬이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기도의 소유자였다.
‘설마 이놈이?’
당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제된 기도였다. 불과 며칠 전에 무종지벽을 뚫었다고 들었는데,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야 정상인 기파를 벌써 이 정도로 수습한 것이다.
‘예사롭지 않군.’
그 모용군이 괴물이라고 부르던 놈이다.
모용군은 간웅이자 효웅이다. 그의 두 눈에는 천하가 담겨 있었다.
그런 이가 그리 말할 정도면, 자신 역시 절대 만만히 봐선 안 될 놈이란 뜻이리라.
잠시 후.
“가주님. 손님이…….”
“들어오라 하게.”
“예.”
끼이익.
문이 열리고 청년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관의 눈이 빛났다.
하얀 무복에 연녹빛 장삼을 걸친 청년의 자태는 상당히 수려했다.
무인보다는 문사처럼 보였다. 외양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그러했다.
하지만.
‘짐승이군.’
당관은 청년을 보자마자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폭군의 기질을 읽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야수 중의 야수였다. 수틀리면 한순간에 목을 물어뜯어 버릴 것 같은 흉포한 본성을 숨기고 있었다.
당관의 눈에 은근한 흥미가 일었다.
어쩐지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놈이었다. 종은 다르지만, 맹수인 건 같다. 당관에게 청년은, 연호정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반면 연호정의 눈에 비친 당관은 어떨까?
‘드디어 보는군.’
연호정의 눈빛은 부러진 칼날 조각이 섞인 한풍처럼 거칠고 위험해 보였다.
‘여전해.’
만독제(萬毒帝) 당관.
과거 무림맹주 모용군은 검신(劍神)이라 불리며 백도제일인으로 추앙받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바로 밑, 무림맹 부맹주를 맡았던 당관은 만독제라는 별호로 불리며 천하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검신 모용군과 만독제 당관이 이끄는 백도무림맹은 그야말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 싸움으로 정점에 섰지만, 정점에 선 이후 탁월한 통치력으로 백도 무림을 이끈 거인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리고 모용군이 나서기 힘든, 나서서는 안 될 곳에는 언제나 당관이 있었다.
천하제일인은 아니지만, 천하에서 가장 무섭고 독하다는 평을 받았던 자.
나아가 연호정의 죽음을 한 발 앞당긴 자.
두근두근.
치솟는 살심을 억눌렀지만, 기어코 새어 나온 살심이 주작기를 자극했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주작기가 저절로 솟구쳤다.
화르르륵.
연호정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화기(火氣)와 살기로 범벅이 된 두 눈은 무시무시한 흉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명가의 무인들을 만났을 때와는 또 다른 원한이었다.
‘……?’
당관의 눈빛이 돌변했다.
‘이놈 봐라?’
웃으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연호정, 그런 그의 눈에서 들끓는 살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얼마나 대단하느냐?
치이이익.
당관의 손이 기어이 탁자를 뚫어 냈다. 저도 모르게 발산한 독기가 탁자를 손바닥 모양으로 갈아 버린 것이다.
‘…….’
연호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당관의 표정이 또 한 번 변했다.
‘이놈…….’
츠츠츠츠.
주작기가 백호기를 부르고, 백호기가 현무기를 끌어당겼다.
묵직한 현무기가 청룡까지 자극하니, 이내 사신의 신기(神氣)가 모조리 발동하며 연호정의 기도에 무지막지한 중량감을 실어 주었다.
콰직! 콰지직!
두 사람의 흉흉한 기파가 부딪치며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작정하고 기파를 발산했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탁자가 쪼개지고 의자가 날아갔을 것이며, 나무 바닥 전체가 잘게 으스러졌을 것이다.
초절정고수의 기파로 자아내는 상상 초월의 압력.
이 기세 그대로 충돌해도 이상하지 않을 살기 넘치는 분위기다. 내공의 강약을 떠나, 두 사람의 독한 성격이 공기를 한층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당관의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꿈틀거렸을 때.
“처음 뵙는군요.”
“……?”
당관이 주춤했다.
츠츠츠츠.
연호정의 몸에서 사신기가 가라앉았다.
주작기를 시작으로 잠재웠던 모든 기운이 폭발했지만, 지금은 당관과 싸울 때가 아니었다.
연호정이 절도 있게 포권했다.
“벽산연가의 장남 연호정이 사천당가의 주인을 뵙습니다.”
당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당장이라도 죽일 기세로 손을 쓸 것 같았던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기세를 죽이고 포권하는 연호정의 모습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청아해 보였다.
물끄러미 연호정을 보던 당관 역시 서서히 기세를 죽였다.
스르르르.
어느새 당관의 표정이 특유의 나른함으로 젖어 들었다.
“연호정?”
“그렇습니다.”
당관의 입매가 꿈틀거렸다.
못난 아들놈을 제대로 혼내 준 놈이었다. 분명 아들의 잘못이지만, 이놈이라고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초면에 살기를 드러내다니……. 그것도 다름 아닌 내 앞에서?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광오하기 짝이 없는 언사였다.
과연 당가의 가주라고 해야 할까. 상대가 멸사군장이든 뭐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박살을 낼 뿐이었다.
흉포하고 독한 성정.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무기.
그리고 그러한 성품에서, 연호정은 당관에 뒤지지 않았다.
“손님 접대가 박하시군.”
“……뭐?”
“술이나 한잔 얻어 마시러 왔습니다. 밥도 든든하게 먹고 왔으니 독한 놈으로 한 병 부탁드립니다.”
“…….”
“아, 이왕이면 오량액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