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159화 (159/963)

159화. 사신완성(四神完成) (3)

‘음? 무슨 말이냐?’

‘균형이 안 맞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사신무?’

‘예.’

‘더 자세히 말해 보거라.’

‘사신(四神)의 기(氣)는 장기 중 각기 간장(肝臟), 폐장(肺臟), 심장(心臟), 신장(腎臟)을 담당합니다. 오장 중 비장(脾臟)을 제외한 네 개의 장기를 활성화하여 신체의 강건함을 극한까지 끌어올리지요.’

‘그렇다.’

‘저는 아직 두 가지 기운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신체 내부의 균형에 이상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예?’

‘사람은 체질에 따라 심장이 강하게 타고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폐장이나 간장이 강하게 타고난 사람도 있다. 하면 그런 사람들 대부분이 장기의 불균형으로 일찍 죽는단 말이냐?’

‘아…….’

‘인간의 몸은 지극히 복잡하게 만들어졌지만, 동시에 극한의 효율성을 띠도록 진화했다. 인간만이 아닌 모든 생물이 그러하다. 외부 요인으로 신체에 이상이 생기거나 병에 걸리지 않는 한, 인체는 현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기 마련이다.’

‘유독 강하게 타고난 장기가 있다면, 다른 장기들도 그에 따라 신체를 활성화하는 데에 알아서 초점을 맞춘다는 말씀이로군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장기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 파괴되거나 절제되어도 사람은 살 수 있다.’

‘인체라는 건 참 신비하군요.’

‘신비하지. 그중 가장 신비로운 장기를 꼽자면, 나는 서슴없이 간장(肝臟)이라 말할 것이다.’

‘간이요?’

‘간은 심폐(心肺)나 신장처럼 위험하지 않다. 그런데도 인체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지. 대표적으로 해독 작용이 있다.’

‘해독…….’

‘그렇다. 그 밖에 근육을 합성하거나 음식물을 통해 섭취한 영양을 저장하기도 하며, 각종 질병에 대한 면역을 높인다. 심지어는 재생 능력 역시 탁월하다.’

‘대단한 장기네요.’

‘사신무를 모두 익힌 뒤에는 그 무엇 하나도 소홀해선 안 된다. 하나 확신하건대, 네가 강호에 나가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인다면 간장을 담당하는 청룡기(靑龍氣)의 덕을 가장 많이 볼 것이다.’

‘…….’

‘물론, 네 몸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면 말이다.’

* * *

츠츠츠츠.

먼지가 가라앉았다.

우우우웅.

반투명한 청록의 광채가 명멸을 반복하며 꿈틀거리는 용의 형상을 만들다 사라졌다.

연호정의 얼굴에 묘한 활기가 어렸다.

충분한 수면으로도 풀지 못한, 그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극히 미세한 피로를 포착했다.

피부가 서서히 맑아졌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색은 그대로였지만, 왠지 모르게 광채가 나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비로소, 이제야.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그간 청룡기를 건드리지 않은 이유는 명백했다.

삼신의 기운을 성숙시키고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오장육부의 기능을 한도 내에서 극한까지 키워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단 청룡기라서가 아니었다. 무엇이든 간에 마지막 하나의 기운은 결정적인 순간에 뽑아낼 작정이었다.

‘유독 강하게 타고난 장기가 있다면, 다른 장기들도 그에 따라 신체를 활성화하는 데에 알아서 초점을 맞춘다는 말씀이로군요.’

삼신기(三神氣)로 인해 심장, 폐장, 신장의 기능이 극도로 활발해지니, 청룡기가 없어도 간의 해독 기능이 덩달아 탁월해진다.

그렇게 능력을 한계까지 키운 뒤 청룡기가 얹어지면, 간장 능력이 한층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증대된 간장 능력을 따라 남은 삼신기의 농도 역시 무섭게 증폭되는 것이다.

사신(四神) 모두를 불러 안정적인 기반을 쌓아 나가는 것이 아닌, 상생(相生)의 묘리를 이용해 사신무(四神武)의 완성을 도모하는 방법.

‘생각보다는 다소 일렀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간장이 심장, 폐장, 신장의 우월함을 따라가지 못해 알게 모르게 피로를 쌓아 두었다. 장기의 능력 상승에도 한계가 왔다는 뜻이다.

즉, 청룡을 불러 장기 능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기에 알맞은 시기였다는 것.

지이이이이이잉!

연호정의 육신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렸다.

그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흐읍.”

사아아악!

들이쉬는 숨에 백호기(白虎氣)가 요동쳤다. 고농도의 자연기(自然氣)가 폐장으로 들어와 혈행에 영향을 주었다.

두근두근!

심박수가 조금씩 빨라지며 주작기(朱雀氣)가 활발해졌다. 강력한 심근(心筋)으로 뿜어지는 피가 사지에 폭발적인 힘을 안겨 주었다.

“후우우.”

위이이잉!

간이, 인체 최대의 생화(生化) 창고가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한다. 청록빛 청룡기(靑龍氣)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 낸 간은 상처 입은 근육에 영양을 공급하고 잔여 힘을 비축했으며, 미세한 피로를 배출하기에 용이한 성분으로 바꿔 버렸다.

투우웅!

십이(十二) 시진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신장은 간에서 만들어진 피로 성분을 분뇨 기관 쪽으로 몰아넣었다. 즉시 현무기(玄武氣)가 발동하며 그 성분을 팔만사천 모공(毛孔)을 통해 완전히 기화시켜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사신기(四神氣) 중 어느 하나도 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 주는 벽라진기가 연호정의 몸을 완전(完全)에 이르게 하였다.

콰지지직!

안 그래도 온통 금이 가고 박살 난 연무장 바닥에 또 한 번 금이 갔다. 비로소 완벽하게 모인 사신기가 상생(相生)의 힘으로 응축되며 무지막지한 압력을 발생시킨 것이다.

연호정이 선 곳 반경 오 장 안의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뒤흔들렸다.

푸스스스.

부스러진 검을 내려놓은 연위가 연호정을 보았다.

‘바뀌고 있다.’

아들의 몸이, 기가,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웅크린 사자처럼 상체를 말고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연호정의 몸에서 반투명한 사색(四色)의 기운이 번갯불처럼 명멸했다.

그리고 그 기운은, 제각기 꿈틀거리며 기묘한 형상을 이뤄 내고 있었다.

‘눈이 부시는구나.’

연위가 좌측, 동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두 개의 거대한 뿔과 허연 수염을 지닌 커다란 용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웅장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였다.

‘청룡(靑龍).’

이번에는 우측, 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둥처럼 굵고 거대한 네 발로 대지를 지탱하고 선 야수가 무시무시한 포효를 터트리고 있었다. 넘치는 위엄과 사나움이 엿보였다.

‘백호(白虎).’

연위가 고개를 들어 남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홍염의 날개가 천지를 뒤엎을 듯 강렬한 열기를 발했다. 아름다운 자태 속, 감당키 힘든 흉포함이 절로 느껴졌다.

‘주작(朱雀).’

그리고 마지막, 그의 눈이 북쪽 하늘을 향했다.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그 존재감을 키우는 세 신수(神獸)와 달리 침묵으로 천하를 굽어보는 육각 괴수가 있었다. 움직이지 않기에 도를 더해 가는 무게감, 현천(玄天)의 화신(化神)이었다.

‘현무(玄武).’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지금에 이르러 사신의 모든 무(武)를 손에 넣은 연호정.

놀랍게도 변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우우우우웅!!

연위의 눈이 커졌다.

‘벽라진결?’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수(水)의 현무기가 목(木)의 청룡기를 성장시키고, 청룡기가 화(火)인 주작기를 성장시킨다.

금생수(金生水), 금(金)의 백호기로 커진 현무기가 기의 성장에 탄력을 더한다. 백호를 제외한 모든 기가 극상(極上)의 질로 연마된 것이다.

그렇다면 백호는?

금(金)을 살려 줄 토(土), 토생금(土生金)의 기반이 되는 기운은 어디에 있는가?

파아아아악!

벽라진기다.

극상의 질로 연마된 세 개의 진기와 격을 맞추도록 벽라진기가 백호기를 증폭시켰다. 오행 상생의 이치의 빈 조각을 벽라진기가 채워 주고 있는 것이다.

번쩍!

사색의 사신기(四神氣)를 에워싸는 천공의 빛.

“굉장하다.”

연위의 얼굴에 경이로움이 어렸다.

“벽라진결을 대성했구나!”

우우우우웅!

온갖 빛깔의 진기가 연무장 전체를 맴돌다가 서서히 잠잠해졌다.

“후우우우.”

그 어느 때보다 깊은숨을 내쉰 연호정이 눈을 떴다.

맑다.

예전에도 맑았지만, 지금까지와는 뭔가가 완전히 달라진 눈빛이었다. 흑백이 또렷하게 나뉜 눈동자 속에 폭진(暴進)의 준비를 마친 강력한 무력이 잠재되어 있었다.

연위가 웃으며 물었다.

“이놈아.”

연호정 역시 마주 웃었다.

“아들에게 큰 벽이 되어 주기 위해 그 고생을 하며 쌓아 올린 무(武)이거늘, 벌써 거기까지 올라오면 이 애비더러 어쩌란 말이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뿌듯함을 감추지 못한다. 연위의 눈빛이, 한껏 올라간 입꼬리가 기쁨의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더 나아가셔야지요. 아버지도요.”

“앞으로 잠을 더 줄여야 한단 말이냐?”

“그거야 아버지 사정입니다.”

“뭐라? 하하하!”

건방진 말투임에도 연위는 책잡지 않았다. 오히려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던 큰 웃음을 터트렸다.

실로 그럴 만했다. 이 괴물 같은 아들은 지금 이 순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궁극의 여정으로 나아가는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초절정.

무종지벽(武終之壁)이라 일컬어지는 한계를 깨부수고 마침내 구파일방, 육대세가 수장들이 선 무대로 올라왔다.

아직은 어리다. 이제 막 첫발을 디딘 만큼 초절정의 길에서 오랜 기간 연마한 고수들에 비하긴 힘들다.

그러나 약관의 나이에 그 길에 올라섰다는 것 자체가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수천 년 무림사를 뒤져도 저 나이에 이와 같은 경지를 구축한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호정아.”

“예, 아버지.”

“축하한다.”

“아버지 덕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호정아.”

“예.”

“장하구나.”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저랑 술 한잔하시는 겁니까?”

평소 짓궂은 기색을 자주 보여 주던 연호정이 아버지께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던 말.

연위는 크나큰 웃음으로 아들의 당돌한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다. 이런 날이 아니면 언제 너와 마셔 보겠느냐? 오늘은 거하게 한잔하자.”

그렇게 무수히 많은 무인이 보는 앞에서, 벽산연가의 명성이 또 한차례 세상을 뒤흔들었다.

* * *

무림맹 내성 연무장에서 벌어진 연씨 부자의 비무는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당연히 그것은 모용세가 측에도 전해졌다.

“연 군장이 말입니까?”

“그렇다.”

모용우는 혀를 내둘렀다.

“대체 어떻게 벌써?”

진심으로 놀랐다. 놀라움이 너무 커서 감탄조차 나오지 않았다.

초절정.

무공이란 끊임없이 깊어지는 것이라, 굳이 일류니, 절정이니 구분을 나눌 필요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겪는 절대적인 한계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한계를 무종지벽이라 부르며 난감해했다.

무종지벽을 뚫고 신세계(新世界)로 나아가는 자는 극히 드물다.

헤아릴 수 없는 천하 무림인 중 일 푼이라도 될까. 그 정도로 넘어서기 어려운 것이 바로 무종지벽이었다.

그걸 약관에 이른 청년이 돌파했단다.

천하가 떠들썩해질 만한 일이었다. 벽산호장이라 불리며 명가를 뒤집어 놓았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놀라움이었다.

“굉장하군요.”

“그래, 굉장하다.”

모용군의 눈빛은 싸늘하다 못해 흉흉하게 보일 정도였다.

매서운 눈빛이지만, 의외로 그 속에는 솔직한 감탄도 깃들어 있었다.

‘괴물 같은 놈.’

여기가 한계다 싶었더니 어느새 저 멀리 도망가 버리고, 잡았구나 싶어 안심하니 이젠 하늘을 나는 묘기까지 보여 준다.

이런 놈은 또 없다.

모용군은 순간적으로 위기를 느꼈다. 애초에 뿌리부터 뽑아 버릴 생각이었지만, 연호정의 성장 속도를 보니 더 이상 지체해선 안 될 것 같았다.

‘독초 중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죽는 놈이 있는가 하면, 차 한 잔 마시는 사이에 쑥쑥 커 버리는 괴물 같은 놈도 있소이다.’

모용군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우야.”

“예, 형님.”

“출정 후 멸사군을 묻어 버려야겠다.”

“……!”

“어설프게 해선 안 되겠어. 끝을 내야겠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