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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157화 (157/963)

157화. 사신완성(四神完成) (1)

파군각의 후원이나 입구 앞 공터는 연무장이나 비무장으로 활용해도 될 만큼 넓었다.

그러나 연위는 연호정을 끌고 내성 광장 쪽으로 향했다.

왜 그러시냐 묻는 연호정에게, 연위는 이렇게 답했다.

“너의 모든 것을 보고 싶다.”

그 말 한마디로 연호정은 아버지의 생각을 이해했다.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의 자신만 해도 전력을 기울이면 그 여파가 상당히 커질 수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숙소에 피해가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껏 아버지와의 승부에서 밑바닥까지 꺼내 보인 적은 없었다.

묘하게 흥분이 된다.

“이쯤이면 괜찮겠다.”

연호정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용군과 비무를 하던 곳에서 제법 떨어진 거리, 무림맹 전용의 야외 연무장이었다.

당연히 오가는 사람이 상당수 있었다. 만약 충돌이 격해지면 많은 사람이 몰려들 것이다.

“왜? 부끄러우냐?”

연위의 장난스러운 도발에 연호정은 미소로 답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좋습니다.”

쿵!

강인한 진각에 사람들의 시선이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실전처럼 가겠습니다.”

“굳이 그런 말 할 것 없다. 오너라.”

무한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무공의 경지가 상승하며 이전과는 다른 여유를 가진 그였다.

우우우웅.

푸르른 진기가 연호정의 무공을 안정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 주었다.

신체, 내공 운용, 집중력 등 모든 것을 차분하게 이끌어 주는 벽라진기였다. 연호정이 익힌 벽라진기는 철저하게 그만의 단련법에 따라 그의 중심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연위의 눈이 반짝였다.

‘과연.’

벽라진결이 구 성을 넘어 십 성을 넘보기 직전이다.

놀랍게도 아들은 벽라진결을 순수한 바탕으로만 발전시켰다. 벽라진결을 통해 무공을 구현하는 게 아니라, 몸 전체를 안정화시키는 데에만 주력하여 몸이 받는 부담을 최소화한 것이다.

‘그것이 너의 선택이었구나.’

경이로운 창의력이었다. 천하의 신공인 벽라진결을 밑바탕으로 깔아 둔다는 생각 자체가 놀라웠다. 그걸 실제로 구현하기까지 했으니, 과연 뭐가 달라도 다르다.

후우웅.

광룡부를 중단으로 올린 연호정의 눈빛이 돌변했다.

‘온다.’

콰앙!

첫 일격은 역시나 폭발적인 진각과 함께하는 돌진 일격이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연호정이 곧바로 광룡부를 내리찍었다.

일도양단(一刀兩斷)의 단순한 공격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속도요, 위력이었다. 이 살벌함은 부자지간의 비무에서 나올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 연위의 오른손이 요대를 스치고 올라갔다.

쩌어어엉!

연호정의 몸이 그대로 튕겨 나갔다.

팔십 근이 넘는 광룡부, 벽라진결을 바탕으로 힘을 받은 백호공 일초가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강하다.’

광룡부의 창대를 쥔 손이 은은하게 떨려 왔다. 검격의 충격 여파가 손을 타고 흘러 몸 전체로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예전과는 탄력이 달라.’

이것이 성장한 아버지의 무공이구나.

연호정은 새삼스레 감탄하며, 재차 일 보(一步)를 밟았다.

파바바박!

경쾌하다.

힘의 진각, 백호군림보를 밟아 나가면서도 예전과 다른 경쾌함을 살렸다. 그러면서도 대지에서 뽑아내는 힘은 전혀 줄지 않았다.

무거움과 경쾌함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이치를 한데 묶어 나아간다.

연호정의 광룡부가 폭풍처럼 움직였다.

쩌저저저정!

굉장한 수비였다.

양손으로 쥔 광룡부를 엄청난 속도로 휘두르는데, 연위는 오른손에 쥔 평범한 장검 한 자루로 그 모든 공격을 쳐 내고 있었다.

지고(至高)의 경지에 이른 수비세(守備勢)였다. 한 치의 틈도 엿보이지 않는 무적의 방어였다.

순간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쿠르르릉.

북쪽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하다.

공격적인 백색의 진기가 무겁고 단단한 흑색의 진기로 바뀌는 것은 순간이었다.

연위의 눈이 빛났다.

‘무겁다?’

연호정이 광룡부로 상체를 가리며 전면으로 뛰어들었다.

쾅!

연위의 몸이 들썩였다.

검으로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위력의 문제가 아닌 거리의 문제였다.

‘몸통 박치기?’

심지어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쾅! 쾅! 쾅!

연무장 바닥이 연호정의 강한 진각에 쩍쩍 갈라졌다.

연달아 세 번이나 치고 들어오며 연위를 밀어붙인다. 천하의 연위조차도 이 공격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방어초가 분명하다. 한데 방어초를 공격으로 쓰고 있어.’

공방의 상식을 뛰어넘는 무공이었다. 반탄력이 어찌나 거센지 저절로 자세가 낮아질 정도였다.

연위는 아들의 뛰어난 기지에 감탄하며, 검을 쥐지 않은 좌수를 휘둘렀다.

퍼퍼펑!

‘헉!’

웅혼한 장력에 연호정의 몸이 연무장 끝까지 주르르 밀려났다.

타격이 아닌 밀어 내는 일격이었다. 몸에 남는 충격은 없었지만, 덕분에 연위가 자유를 얻었다.

‘반룡장!’

반룡장의 배(排) 자 결이었다. 그 역시 음사방주가 데리고 온 평산이란 놈에게 이 공격을 쓴 적이 있었다.

‘전혀 다르군.’

위력과 깊이에서 차원이 다른 역량을 보여 준다.

이건 경지의 차이가 아니라 익힌 무학의 차이였다. 반룡장은 연가의 오대신공 중 검극사기나 용포기와 가장 궁합이 좋았다.

번쩍!

연위가 돌진했다.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로 달린다 싶더니 어느새 코앞이다. 육안으로 좇기 힘든 속도, 진정한 천종운행비(天縱運行飛)였다.

‘온다!’

연위의 검이 빛살처럼 움직였다.

쩌저저저저정!

그물처럼 덮쳐 오는 살벌한 검격이었다.

천라(天羅), 하늘의 그물이다. 극속의 쾌검과 끈끈한 환검(渙劍)의 조화가 피할 수 없는 감옥처럼 연호정을 에워쌌다.

‘이런!’

광룡부의 부신으로 중심부 공격을 튕겨 내고, 북천십이벽의 장형(掌形)으로 잔여 공격을 흩어 냈다.

치리리리링!

실낱같은 검기가 부서지고 흩어져 소멸했다. 천라검형(天羅劍形)을 어떻게든 막아 내고 있는 것이다.

연위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대단하다.’

기가 막히는 응수였다. 거칠고 섬뜩한 공격이 들어오자마자 몸이 알아서 반응한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흑도 문파를 깨부수며 감각이 한층 더 예민해진 것 같았다. 백전노장(百戰老將)이 아니고서야 이토록 기민한 대응이 나오긴 힘들다.

‘하지만.’

연위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이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서걱!

연호정의 몸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더 빨라졌다.’

쩌저저정! 서걱! 푸화악!

검의 그물이 어깨, 쇄골,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다.

너무 빨라서 막을 수가 없다. 깊지는 않지만 충분한 출혈을 일으키는 검격들, 아버지가 이리 거칠고 빠른 검법을 구사하실 거라 곤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역시.’

굉장하신 분이다.

백검만무(百劍萬武)의 달인, 한데 치우치지 않은 중도(中道)의 무공이 활짝 개화하여, 어떤 수법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천검(天劍)의 위엄을 발한다.

‘실로 검(劍)의 화신(化神)!’

쾌검(快劍), 강검(强劍), 유검(柔劍), 중검(重劍), 경검(輕劍), 환검(幻劍), 정검(靜劍)은 물론 활검(活劍)에 사검(死劍)까지도 구현할 수 있는 자.

천하 모든 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강동제일의 검인(劍人), 판관검 연위의 진짜 무공이 여기에 있었다.

파바바박!

허공으로 퍼지는 핏물의 양이 점점 많아졌다.

베이는 순간 진기를 조절하여 지혈했지만, 이 상태로 가다가는 출혈 과다로 쓰러지고야 말 것이다.

필요했다. 돌파구가.

회피는 물론 반격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한 수가 필요했다.

번쩍!

연호정의 동공이 시뻘건 화염을 토해 냈다.

쾅!

연위는 깜짝 놀랐다.

‘발을?’

천라검형을 막아 내던 아들이 자신의 발등을 노려 진각을 구사했다.

본능적으로 발을 빼지 않았다면 그대로 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그리되면 한쪽 다리가 봉쇄되었을 테니, 검력(劍力) 역시 대폭 감소했을 것이다.

‘독특하군.’

육체적, 심리적 부담을 동시에 안겨 주는 공격이었다. 정도(正道)의 무공이 아닌 실전의 싸움법이었다.

쾅! 쾅!

끝까지 천라검형을 막으면서 발등을 노린다.

그 자세, 그 수비 중에 어떻게 이리도 위력적인 진각을 뽑아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신체의 유연성이 상상을 초월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화르르륵!

촘촘한 검형 속에서 붉은 화기가 넘실거렸다.

쩌저저저저정! 서걱!

이번에 베인 것은 연호정이 아니었다.

‘소매가……?’

광룡부의 섬뜩한 도끼날이 소맷자락을 반으로 쭉 갈라 놓았다.

검극사기로 팔뚝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근육까지 파열될 뻔했을 정도로 살벌한 참격(斬擊)이었다.

‘살기 넘치는 일격! 이 역시 사신무란 말인가.’

그때였다.

콰아앙!

연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천라검형의 검기망(劍氣網)이 무서운 속도로 흩어졌다.

이유는 하나였다. 연호정의 진각 일발에 연위의 자세가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이건?!’

재빨리 천라검을 회수, 삼 보 뒤로 물러난 연위는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설마 내 발등을 노린 게 아니라 연무장의 지반을 부수기 위함이었느냐?”

번쩍!

사신무 최속의 보법, 혈익휘천으로 다가온 연호정이 광룡부를 올려 쳤다.

“둘 다입니다.”

콰르릉!

철검대연을 뚫고 들어온 살기 넘치는 참격이 연위의 상반신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살공(殺功).’

주작공의 절대살공 홍염육살공(紅焰六殺功)이었다.

자세가 흔들려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연위의 소맷자락이 수십 조각으로 잘려 흩어졌다.

연위가 연호정을 보았다.

“후우.”

화르르륵!

한쪽 무릎을 꿇고 그 위에 광룡부를 올린 채 숨을 몰아쉬는 연호정.

그의 몸에서 시뻘건 기운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벽라진결, 백호기, 현무기 등과 함께 안정적으로 구사했던 이전과 달리 오직 주작기만을 전신에 퍼트린 것이다.

쿠구구궁!

무시무시한 압력에 연무장 바닥이 재차 갈라졌다.

남천의 제왕, 태양신(太陽神)의 강림이다. 무서운 살기와 폭발적인 투기로 이글거리는 연호정의 몸은 터지기 직전의 화약을 보는 것 같았다.

진짜 죽일 기세로 가겠다는 아들의 선전 포고였다. 이전과는 뿜어져 나오는 기파의 질 자체가 달랐다.

‘좋구나.’

그런 아들을 보는 연위의 얼굴에 멋진 웃음이 드리워졌다.

‘이제야 이 애비를 인정해 주는 것이냐.’

실전처럼 오겠다?

말이 실전이지, 지금껏 아들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진짜’ 살초를 쏟아 낸 적이 없었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다칠까 무서워 일말의 사정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연호정은 연위의 무공이 진정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 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지금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모욕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 확신이, 투기가, 눈빛이 연위에게는 최고의 찬사와도 같았다.

‘걱정하지 말고 와라.’

아직은 젊은이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아비의 손을 떠나 어느새 크게 성장한 아들이, 다시 돌아와 아비의 힘을 인정했다.

신뢰의 교차였다.

무인으로서, 강호인으로서 지금 이 순간에야말로 관계가 완성되었다. 무(武)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 중 이와 같은 신뢰를 보여 주는 부자는 달리 없을 것이다.

연호정이 붉은 눈으로, 동시에 든든한 미소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갑니다.”

연위가 연록빛 눈으로, 동시에 넉넉한 미소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십 년을 기다렸느니라.”

꽈앙!

두 사람의 병장기가 부딪치며 연무장 바닥을 뒤집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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