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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151화 (151/963)

151화. 악명과 협명 (1)

“현재 멸사군이 섬멸한 흑도 세력을 순차적으로 나열하겠습니다. 음사방을 필두로 녹림의 교구채, 염검방(炎劍房), 철사보(鐵死堡), 귀도문(鬼刀門), 강량문(鋼梁門), 그리고…….”

가득상이 문서를 접었다.

“홍요회(紅妖會). 이상입니다.”

좌중은 깜짝 놀랐다.

“홍요회라면, 설마 암살 조직 홍요회를 말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봉공들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홍요회는 강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거나, 수장의 무공이 누구 못지않게 뛰어나다거나 하는 암살 조직은 아니었다.

그래도 홍요회는 위험했다.

강호의 암살 조직에는 저마다 선이 있다. 어린애를 죽이는 의뢰는 받지 않는다든지, 관부의 고위직은 건드리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들.

홍요회는 그 계율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말하자면 돈만 내면 누구라도 죽여 주는 지독한 살인 청부업자 조직인 것이다. 게다가 어디서 구했는지, 목표물을 죽이기 위해서 화약까지 들고 다니는 게 홍요회였다.

그런 홍요회가 오십도 안 되는 멸사군에게 당했단다. 삼백의 교구채와는 질이 다른 싸움이다.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말이 되는가. 홍요회가 그리 악랄한 짓을 저지르고도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건, 누구도 그들의 본거지를 모르기 때문이오. 설마 멸사군에서 그걸 알아냈단 말이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면? 설마 개방 측에서?”

“그것도 아닙니다.”

가득상의 눈이 서늘해졌다.

“홍요회 측에서 먼저 멸사군을 습격했습니다.”

“뭐, 뭐라!”

쾅!

몇몇 봉공들이 탁자를 후려쳤다. 무성전 안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멸사군은 다시 설립된 무림맹 최초의 조직이며, 유군으로서도 최초였다. 그런 부대를 홍요회가 습격하다니, 이건 무림맹의 체면 문제였다.

“홍요회의 습격으로 인해 멸사군의 군병 십여 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습니다.”

“이, 이런 무도한 놈들을 봤나!”

청성의 풍벽자가 다급히 물었다.

“치료 중이오? 많이 다친 거요?”

멸사군의 군병 대부분이 구대문파 소속이었다. 풍벽자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만도 했다.

가득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빨리 명의들을 수배해 붙였습니다. 워낙 무공이 뛰어난 이들인 만큼 회복세도 빠르다고 합니다.”

“허어.”

의자에 앉은 풍벽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구나. 그야말로 다행이야.”

독, 암기, 폭약 등 온갖 위험천만한 금용 물품을 쓰는 놈들이다. 제아무리 고수라도 극독에 당하면 죽고, 화탄이 터지면 치명상을 입는다.

사망자가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한데.”

제갈문호가 물었다.

“대체 누가 홍요회에 의뢰를 했단 말이오?”

가득상의 얼굴에 언뜻 심란함이 깃들었다.

“그것은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음.”

“멸사군장 연호정이 소수의 병력을 끌고 살수들을 추적, 뒤를 밟아 기어이 강서 북부 본거지까지 치고 내려갔다고 합니다.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던 와중, 누군가가 본진을 폭파했다고 합니다.”

“허!”

“홍요회 암살자 대부분이 죽고 기반도 날아갔으니, 멸문이라 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다만, 의뢰자의 정체는 오리무중이 되어 버렸습니다.”

“폭파는 홍요회 측에서?”

“정확한 사정은 알 길이 없지만…… 그럴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제갈문호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오. 살수들을 추적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터인데.”

“예. 홍요회의 본거지를 뚫은 것은 전적으로 연 군장의 공(功)입니다.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고 합니다.”

“그렇구려.”

제갈문호는 일부러 추적 건에 대해 말했고, 가득상은 절묘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연호정의 자격 논란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지만, 다친 사람이 구대문파 출신이니 충분히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두 사람이 혹시 모를 여지를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가득상이 적극적인 자세로 말했다.

“안타까운 일은 있었지만, 결과만 보면 요 몇 달 사이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것도 맹의 지원을 거의 받지 않았는데도요.”

용화진인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었소이다. 무림맹은 이제야 제대로 운용되기 시작했소. 자금의 흐름이나 예산안을 짜기에는 상황이 너무 어수선했소이다.”

가득상이 미소를 지었다.

“예, 그렇지요. 그건 연 군장도 알고 있을 겁니다. 제 말씀은, 이제라도 그들에게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음.”

“지금까지 멸사군의 행보를 보셔서 알겠지만, 그들은 더 강해지고 철두철미해질 수 있습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했으니, 정보부(情報部)의 고문으로서 이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요청합니다.”

좌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뜻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지만, 그들은 거친 강호를 누비며 살아온 이들이었다. 한 조직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이들이 이만한 전공을 세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두가 안다는 것이다.

그때, 소림 방장 공공대사(空空大師)가 입을 열었다.

“탕마군의 인재 선발도 끝났고, 각 부대와 조직별 인선도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좌중이 숨을 죽였다.

공공대사를 보는 모용군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역시.’

무림맹이 창설된 후 지금껏 참 바쁘게도 지냈다. 그 바쁨은 전적으로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저 위치에.

‘말에 실린 힘이 달라.’

세상은 구파일방과 육대세가를 같은 급으로 쳐주지만, 그 안에서도 명백한 우열이 나뉘어 있다.

그중 소림은 단연 최고다. 무림의 태산북두(泰山北斗)라 칭해지는 천년 소림의 위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빈승이 보기에, 멸마군은 탄생부터가 지나치게 파격적이었습니다. 아직 맹의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상태였던지라 용인되었지만, 기실 탕마멸사의 유군 부대 중 하나가 아무런 제어도 받지 않고 세상에 나간 것은 분명 바르지 못한 일이지요.”

좌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멸사군이 이동할 때마다 그들을 주시하는 정보원들이 따라붙기는 했다. 그것이 무림맹에서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였다.

조직이라는 것은 그래선 안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용인되었지만, 더는 그럴 수 없다.

“그러나.”

공공대사가 옅은 미소를 띠었다.

“열혈의 군장과 그를 따르는 군병들이, 혈기가 들끓는 나이에도 목표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고작 몇 달 새에, 이토록 커다란 전공을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

“여기 계신 봉공들께서는 어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지만, 빈승은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특례를 인정해 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심정입니다.”

아미파의 장문인 복호사태(伏虎師太)가 동조했다.

“특례라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게다가 저는, 설령 멸사군이 전공을 세우지 않았더라도 그들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풍벽자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찌 그리 생각하십니까? 특례라는 것은 자칫 타 조직에서 불만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불만은 가질 수 있지요. 그러나 저는 우리 모두가 멸사군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빚이요?”

복호사태의 눈이 아련해졌다.

“그들은 이곳에 있는 봉공들은 물론, 백도 무림 전체가 쉬쉬하고 있던 악인들을 징벌하러 나섰습니다. 그것도 이립이 안 된 젊은이들이요.”

“…….”

“다른 건 몰라도, 그 뜻만큼은 높이 사야 함에도 우리는 멸사군을 제어하려고만 했어요. 당연한 행동이지만,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호사태의 말에 무성전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녀가 웃으며 연위를 보았다.

“연가주께서는 참으로 좋으시겠습니다.”

“예?”

“벽산의 호장이라, 그 명성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강호의 소문이란 믿을 게 못 된다는 말로 애써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요.”

“…….”

“그러나 일련의 사태를 겪고, 보고, 느낀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연가주께서 아드님을 참으로 훌륭하게 키우셨습니다. 그만한 인재가 벌써부터 협을 위해 기치창검(旗幟槍劍)을 들었으니, 실로 중원의 홍복입니다.”

흔치 않은 극찬이었다.

연위가 고개를 숙였다.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아이입니다. 훗날 연 군장이 돌아오면 칭찬보다는 질책과 엄정함을 앞세워 가르침을 내려 주시길 바랍니다.”

공공대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사태의 말씀이 옳습니다. 배우려거든 우리가 배워야지요. 연가주께서 겸양이 과하신 듯합니다.”

가득상은 아무도 몰래 미소를 지었다.

멸사군을 향한 호의가 깊어지고 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이 정도면 멸사군의 존재 이유를 따지고 들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가득상은 그걸로 만족했다.

그때였다.

“그렇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바로 모용군이었다.

“말씀하셨듯 멸사군은 큰 전공을 세웠습니다. 마땅한 포상이 필요할 것입니다.”

공공대사가 웃으며 말했다.

“모용가주께서도 기분이 좋으시겠습니다.”

독립 유군의 창설을 제안하고 연호정을 천거한 사람이 바로 모용군이었다. 공공대사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모용군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좋고 말고요. 하지만 어느 정도는 예견했습니다. 섣부른 말이지만, 연 군장은 제가 본 최고의 인재 중 하나입니다. 이 정도 결과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지요.”

“허허.”

“다만, 지난 몇 개월 동안 중원을 종횡한 멸사군의 피로도 상당하리라 생각합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멸사군은 쉬지 않고 흑도 방파들을 격파해 나갔다. 흑도 무림에선 이미 멸사군을 죽음의 부대, 마귀의 부대라 부르고 있었다.

“해서 말씀드립니다.”

모용군의 두 눈에 아무도 모르는 음험함이 깃들었다.

“탕마군의 창설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참에 포상도 내리고 휴식도 줄 겸, 멸사군을 맹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어떨는지요?”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복호사태가 즉각 동의했다.

“사람이 항상 긴장하며 날을 세우고 살다간 심신이 피폐해지기 마련입니다. 이참에 불러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봉공들 대다수가 모용군의 말에 동의하고 나섰다.

가득상이 제갈문호를 보았다.

제갈문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지만, 그 눈은 은근한 긴장을 띠고 있었다.

가득상이 입을 열었다.

“일단 멸사군의 향후 행방부터 알아본 연후에 부르심이…….”

그때, 당관이 말했다.

“개인적으로도, 고생한 멸사군을 위해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

봉공들은 깜짝 놀랐다. 자존심 강하고 독하다는 당가주가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니, 그들을 속히 부르시지요.”

가득상의 눈이 흔들렸다.

재빨리 모용군의 얼굴을 살핀 그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모용군의 웃음이, 눈빛이 실로 의미심장했기 때문이다.

가득상이 다시 한번 입을 열려 할 때였다.

“봉공분들의 뜻이 그러하시니, 오늘 바로 멸사군에 연락을 취하시지요.”

가득상이 깜짝 놀라 제갈문호를 보았다.

제갈문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고문님께서 힘 좀 써 주시길 바라오. 최대한 빨리 연락이 갈 수 있도록.”

제갈문호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더는 나서면 안 된다. 지금은 위화감을 조성할 때가 아니다.

가득상이 이를 악물었다.

“……지금 바로 멸사군에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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