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멸사군(滅邪軍) (3)
‘뭐지?’
아광(亞狂)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짹짹.
여기저기서 산새가 지저귀고,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벌써부터 귀를 간질였다.
그 평화로운 분위기 속, 날카로운 눈매에 은밀한 살기가 번뜩였다.
‘이 감각…….’
묘하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호랑이가 이쪽을 주시하는 듯했다.
물론 그것은 그저 느낌이었다.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없었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나?’
그럴 리가 없다.
이곳은 하남성 최남단의 대별산맥 끝자락이었다. 무림맹은커녕 사냥꾼 하나 찾지 않는 오지였다.
지형이 험해서가 아니었다. 이 계곡은 산 정상에서도 보이지 않는 숨겨진 비처였다. 우연이 아니고서야 찾아낸다고 찾아질 장소가 아닌 것이다.
‘…….’
아광이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십니까, 방주님?”
“아니다.”
괜히 신경이 곤두서서 그랬던 모양이다.
음사방(陰死房)의 최정예 병력 백 명이 귀신처럼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수하들을 믿었다. 비록 도심 깊숙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음사방도들은 산악전에도 능했다. 이유인즉, 음사방의 방도들 대부분이 산적 출신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산적을 우습게 보지만, 산악전에 있어서 산적만큼 위험한 자들이 없다. 산적에게 힘이 생기고 눈이 뜨이면, 그때부터는 군대가 된다.
고로 음사방도들은 군대였다.
“방주님.”
“뭐냐?”
“저 친구, 괜찮겠습니까?”
아광이 뒤를 힐끔거렸다.
그곳에는 유독 건장한 말을 타고 있는 한 장년 사내가 있었다. 팔짱을 낀 상태의 상반신이 쇠사슬로 돌돌 묶인 채였다.
굉장한 덩치였다. 떡이 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기묘한 위압감만큼은 음사방도 중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보통 위험한 놈이 아니에요.”
음사방의 이인자, 상요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기도가 지나치게 사납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힘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등 뒤에서 호랑이가 어슬렁대는 것 같아요.”
호랑이라.
아광이 고개를 저었다.
“호랑이지. 반쯤 미쳐 버렸지만.”
상요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자가 왔을 때부터 여쭙고 싶었습니다. 대체 저자가 누굽니까?”
“‘그분’의 제자다.”
“예? 그분이요?”
“그래.”
“그분이라면…… 헉! 서, 설마?!”
아광의 얼굴에 은근한 두려움이 깃들었다.
“무공을 연마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져 미쳐 버렸다고 하더군. 다만 완전히 미친 건 아니야.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름을 불러 주는 자의 명령을 철저하게 따른다고 했다.”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분께서 직접 보내신 전언이다. 믿지 않을 이유 따위 없지.”
“허…….”
“제정신으로 돌아올 확률이 무(無)라고 하더군. 안타깝지만, 써먹기 좋은 말이니 한번 써 보라고 하셨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명령에 충실한 대호 한 마리를 얻은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분은 허언 따위를 입에 담으시는 분이 아니야. 밥만 제때 주면 된다고 했으니, 앞으로도 관리 잘하도록 해.”
“아, 알겠습니다.”
아광의 얼굴에 음침한 살기가 감돌았다.
‘우리는 흑도삼십육문(黑道三十六門) 중 최하위다. 그런 우리에게 위험한 폭탄을 주셨어. 이번 일을 성공리에 해낸다면, 그분께서 본방을 밀어 주실 거란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지.’
그분을 떠올린 아광은 내심 손바닥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분은 흑도 무림의 신화였다. 흑도 무림의 인물 중 천하에서 손에 꼽히는 고수가 나타난 것은 무려 삼백 년 만에 처음이었다.
흑도 무림에 몸담은 모두가 기뻐해야 마땅할 일이지만, 그들은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분은 용서가 없으신 분이다. 절대로 실수해선 안 돼.’
다만, 그분께서 임무를 주는 경우도 흔치 않다. 그리고 그분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흑도 방파에 엄청난 힘을 실어 주셨다.
한 걸음이라도 삐끗하면 죽는다. 반대로 성공하면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을 것이다.
‘몇 달만 버티면 된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계곡 입구를 지나 목적지가 보이는 수풀 인근에 도달했을 때.
‘……?!’
아광의 눈빛이 바뀌었다.
‘뭐지?’
목적지 안쪽에서 절제된 기도들이 느껴졌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었다. 아군보다 적은 것은 확실했다.
‘이 기도…….’
아광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 맹숭맹숭한 놈들은?’
목적지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자체가 기겁할 일이었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이 상요에 필적할 만한 무공의 소유자인 것 같았다.
하지만 왜일까? 놀랍지만, 위협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지닌 무공들은 대단했지만, 실력이 그에 못 미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애송이?’
상요 역시 무언가를 느꼈는지 아광에게 말했다.
“방주님. 저곳에서…….”
“나도 느꼈다.”
음사방의 진군이 잠시 멈추었다.
상요의 얼굴에 놀라움이 일었다.
“누군가가 있습니다. 설마 무림맹에 발각된 것일까요?”
아광의 눈이 차가워졌다.
이제 고작 세 번째 방문일 뿐이었다. 제아무리 무림맹이라도 이 비처의 존재를 눈치챌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하지만…….
“가자.”
“방주님!”
“여기까지 온 이상, 저놈들 역시 우리의 기척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어떤 놈들인지 확인부터 한다. 전원 얼굴을 가려라.”
방주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음사방도 전원이 시커먼 복면을 올려 써 눈 아래를 가렸다.
그렇게 아광의 지휘 아래 음사방의 병력이 이동했다.
화아악!
비로소 아광의 눈에 옹기종기 모인 오십여 명의 젊은 남녀들이 보였다.
아광은, 나아가 음상방도들은 한눈에 그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구대문파!’
그때, 연호정의 차가운 목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졌다.
“적을 섬멸하라.”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후기지수들은 당황하여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
그때, 가장 먼저 움직인 한 사람이 있었다.
파아악!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나간 사람은 척강이었다. 점창파가 자랑하는 분광신법(分光身法)을 펼치며 나아가는 자세에 이미 임전 태세가 가득했다.
아광의 눈이 번뜩였다.
그의 손이 번개처럼 허리춤을 훑었다.
쩌어엉!
“큭!”
일격에 힘의 우열이 갈렸다. 척강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후방으로 밀려났다.
아광이 박도(朴刀)로 척강을 겨누며 말했다.
“구파의 떨거지들이군.”
놀라운 발언이었다.
대개 흑도에 몸을 담은 자들은 무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구파일방을 두려워한다. 그들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광은 달랐다. 아니, 음사방은 달랐다.
이번 임무를 맡았을 때 이미 그들 모두가 목숨을 걸었다. 그 정도 강단도 없이 이번 임무를 받은 게 아니었다.
‘상관없다.’
놀랐지만, 금세 침착함을 유지했다.
아광은 한눈에 저들의 전력(戰力)을 파악했다. 쓸 만한 놈들도 몇 있지만, 대다수가 실전에 미숙한 놈들이었다.
뛰어난 무학을 익혔다고 모두가 강한 게 아님을 톡톡히 알려 주리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
파아아악!
움직임부터가 다르다.
당황하여 눈치만 살피고 있는 구파의 후기지수들과 달리, 음사방도들은 아광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사방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백여 명의 방도들이 순식간에 흩어져 퇴로를 봉쇄했다. 이런 일에 지극히 익숙한 듯,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후기지수들을 노려보는 그들의 눈빛은 짙은 살의로 번뜩이고 있었다.
연호정의 눈이 반짝였다.
‘과연.’
개개인의 무공 수위는 후기지수들보다 아래지만 진형을 형성하는 능력이 일품이었다. 흑제성 정예에 비할 바는 아니나, 제대로 된 실전을 겪어 보지 못한 자들에겐 넘치도록 위험한 적이었다.
“이놈!”
타다닥!
물러난 척강은 그대로 아광에게 달려들었다. 조금 전의 실책을 만회하려는 듯 검에 실린 진기가 막강했다.
아광이 외쳤다.
“다 묻어 버려!”
차차차창!
제각기 병장기를 뽑아 든 음사방도들이 무서운 속도로 포위망을 좁혀 왔다.
“이런 제길!”
“대, 대체 이들은 뭐요?!”
당황하는 후기지수들.
그때 송연경이 외쳤다.
“공격해요! 이들은 우리를 죽일 생각이라고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아미문도는 전원 불광선창(佛光禪槍)으로 대응해라!”
“네!”
열다섯 아미 창수들이 다가오는 음사방도들을 향해 힘차게 창을 내질렀다.
살기 넘치는 도검과 아미파의 불광선창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쩌저저저정!
“으아아아!”
“모조리 죽여!”
순식간에 싸움이 격해졌다.
윤호가 외쳤다.
“동호! 화산양의진(華山兩儀陣)으로!”
“네, 네?!”
“당장 움직…… 이런 제길!”
쩌어어엉!
윤호가 신속하게 검을 휘둘렀다.
‘이럴 수가!’
화산육합검(華山六合劍)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언제, 어떤 순간이라도 펼칠 수 있을 만큼 간결하고도 유연한 검법이었다.
한데 그 검이 일격부터 막혔다. 음사방도 셋이서 동시에 그의 검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 검을 셋이서 막았는지,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이익!”
쩡! 쩌엉! 퍼억!
윤호가 음사방도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검을 휘둘렀다.
“사, 사형!”
서걱!
“악!”
동호의 어깨에 한 줄기 검상이 새겨졌다.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살았다. 피하지 않았다면 어깨가 통째로 꿰뚫렸을 것이다. 언제, 어떻게 공격이 들어왔는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동호의 검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푸화아악!
놀랍게도 가장 먼저 음사방도를 죽인 것은 동호였다. 단숨에 목을 그어 버린 검이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헉!”
동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죽고 싶지 않아서 내친 일검에 사람이 죽었다.
느닷없이 겪은 첫 실전. 그리고 최초로 느껴 본 살인의 끔찍함.
비틀거리던 동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충격이 너무 큰 탓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음사방도들은 전의를 상실한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다.
파아아악!
난전 속에서 동호에게 접근한 네 명의 방도들이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동호는 그때까지도 멍하니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눈빛은 극도의 혼란과 충격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때, 한 줄기 유연한 검결이 방도들의 공격을 막았다.
치리리리링!
태극의 원을 그리는 송문고검의 검력이 방도 셋의 공격을 흘려 냈다.
퍽!
“크윽!”
동호의 눈이 커졌다.
“오, 옥청 도사님!”
그의 전면을 막은 옥청의 허벅지에 음사방도의 검이 박혀 있었다.
옥청이 이룬 경지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죽고 죽이는 실전의 과격함이 어깨에 과도한 힘이 실리게 하고, 어떻게든 동호를 살리기 위해 펼친 무리한 검격이 평소의 검형(劍形)을 지독하게 일그러트린 탓이었다.
옥청이 이를 악물고 손을 뻗었다.
퍼엉!
혼원기가 담긴 태극산수 일격에 음사방도 하나가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마지막에 옥청이 본능적으로 손에서 힘을 뺐기 때문이었다.
죽일 능력이 되는데도 죽이지 않는다. 실전에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 바로 손속에 사정을 두게 하는 너그러움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국도, 송연경도, 이곳에 있는 구파 누구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근본적인 힘의 차이 덕분에 근근이 막아 내고는 있지만, 음사방의 살기 넘치는 공세는 시시각각 그들을 당황케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당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아무런 준비 없이 겪게 된 살기 넘치는 실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덜덜 떨던 동호가 외쳤다.
“여, 연 공자님! 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어떻게든……!”
순간 동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연호정은 팔짱을 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머리통이 깨진 음사방도 세 명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동호를 노려보는 연호정의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기 싫으면 죽여.
푸화아아악!
시뻘건 피가 하늘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