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멸사군(滅邪軍) (2)
표정은 진지한데 말하는 내용은 상당히 과격했다.
여국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합지졸이라니?”
그때, 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 공자 말이 맞소. 우리는 오합지졸이지.”
여국을 위시한 후기지수 대부분이 윤호를 보았다.
윤호가 입맛을 다셨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해 봅시다. 이곳에 모인 사람 중 연 공자가 이끄는 유군에 몸을 담겠다고 확실하게 결심하고 온 사람이 얼마나 되겠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누구도 윤호의 말에 딴지를 걸지 못했다.
윤호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세상 어떤 집단이든 목적이 불명확한 조직은 오합지졸이라 불릴 수밖에 없소. 설령 조직의 구성원이 제각기 특출난 이들이라 해도 말이오.”
“으음.”
후기지수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윤호가 연호정에게 물었다.
“제 말이 맞습니까?”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반은 맞다.”
“반이라는 말씀은?”
“너희는 하나로 뭉치지 않아 오합지졸이고, 실력도 뛰어나지 않기에 오합지졸이다.”
윤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실력…….’
그는 화산파의 일대제자였다. 비록 화산의 모든 비기를 배우지 않았지만, 당장 강호에 나가도 어지간한 산적 무리쯤은 단신으로 토벌할 자신이 있었다.
‘분하지만.’
윤호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저 사람 앞에서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군.’
연호정은 며칠 동안 무수히 많은 후기지수의 도전을 받아 주었다. 그리고 그 모든 승부에서 승리했다.
심지어 모든 승부를 압도적으로 이겼다. 윤호 역시 연호정과 다섯 번을 붙는 동안 세 합을 넘긴 적이 없었다.
즉, 얼마나 높은 경지를 구축했는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윤호는 연호정을 이기지 못했다. 공격에 성공하기는커녕 위협조차 되지 못했다.
결국 윤호는 약했고, 연호정은 강했다. 그게 전부였다.
연호정이 말했다.
“한데 재미있는 말을 하더군. 각자의 목적이 다르다고?”
윤호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물론 그렇소이다.”
“물론?”
“……?”
“당연하다는 뜻인가? 왜 물론이라는 말을 하지?”
“무슨…… 말씀이오?”
연호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말은, 너희 중 대부분이 신중함을 변명 삼아 자신이 선택한 길에 목숨도 못 거는 하찮은 놈들이라는 뜻 아닌가?”
“……!”
후기지수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연호정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내, 너희에게 제안할 때 분명히 말한 바 있을 것이다. 독립유군은 수십 년 만에 다시 설립된 무림맹 최초의 조직이며, 맹의 정치에서도 벗어나 독단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라고 말이다.”
“…….”
“그만한 특수성이 있는 부대라면, 마땅히 그에 걸맞은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더욱 심사숙고하라는 말도 덧붙였지. 기억 안 나나?”
윤호가 말을 더듬었다.
“그, 그렇게 말씀은 하셨소만…….”
“우리 모두 칼날 위에서 거니는 인생들이다. 작정하고 왔으면 목숨을 걸어야지. 설마 너희, 강호 유람이나 하면서 적당히 놀다가 나중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거냐?”
후기지수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실제로 대다수가 그런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한 청년이 말했다.
“그럴 리가요.”
연호정이 고개를 돌렸다.
어린 청년이었다. 거의 연지평과 비슷한 또래로 보일 정도였다. 기껏해야 한두 살 더 많은 정도랄까.
‘점창파(點蒼派).’
놀랍게도 점창파에서 온 인물은 그 청년 하나가 다였다.
연호정이 물었다.
“이름은?”
“척강(戚綱)입니다.”
“점창파의 제자인가?”
“점창파의 일대제자입니다.”
“그래, 척강. 너는 목숨을 걸었다는 뜻인가?”
“물론입니다.”
유순한 외모의 어린 청년이지만 맑은 두 눈에는 강단이 넘쳤다.
“저는 세상에 나갈 겁니다. 세상에 나가 저의 무공을 연마할 겁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지 않은 무공이 강할 리가 없지요.”
척강의 목소리에는 강한 확신과 신념이 담겨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연 대장님이 저희에게 오셨습니다. 저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온 겁니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생사의 간극에서 무공을 연마하고 싶다?”
“순수한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그 부분, 분명한 사과를 드립니다. 하지만 이곳에 뼈를 묻을 각오로 온 것은 사실입니다.”
척강이 포권을 취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기개 넘치는 모습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어린 척강이 그런 모습을 보이자 후기지수들의 얼굴에도 부끄러움이 어렸다. 그들에게는 저 정도 진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독립유군의 특수성과 심사숙고할 것을 말했다. 그러나 우리 부대가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해 말한 적은 없어. 그런데도 목숨을 걸고 입대를 희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연호정이 척강에게 포권했다.
“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장이 되겠다. 함께해 줘서 고맙다.”
고개를 든 그가 후기지수들을 둘러보았다.
대다수는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몇몇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내가 왜 척강에게만 고개를 숙여야 하지?”
연호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희는 나의 인사를 받았어야만 했어. 하지만 난 저 척강이란 친구를 제외하고, 너희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아졌다.”
“…….”
“부끄러운 줄 알아. 너희는 무공 이전에 삶의 자세에서 척강에게 진 거야.”
그때, 여국이 입을 열었다.
“그 부분은 분명히 사과하겠소.”
“이름이?”
“곤륜파의 여국이오.”
여국이 말을 이었다.
“그래, 기억나오. 당신은 진지했지. 하지만 나는 당신만큼 진지하지 않았소. 당신 눈에는 괜스레 간만 보는 얼치기로 보일 수 있음을 알았소. 사과하겠소.”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사과는 받지.”
“하지만 삶의 자세 운운하는 것은 우리를 모욕할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소.”
여국의 눈이 깊어졌다.
“저 척강이란 친구는 분명 대단하오. 연배를 떠나, 목적도 명확하지 않은 조직에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로 오는 것은 보통 대단한 일이 아니오.”
“맞는 말이지.”
“그러나 그만큼 어리석다고도 할 수 있소. 목숨도 거는 것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곳에 걸어야 하는 것이오. 개개인의 목숨이란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니외다.”
여국이 연호정을 가리켰다.
“그 무거움을 알기에 당신도 척강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것 아니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그 역시 맞는 말이다. 똑똑하군.”
“그렇소. 하지만 모두가 같을 수는 없소. 그 개인의 차이는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법이오.”
여국이 고개를 저었다.
“모욕에 대한 사과는 받지 않아도 괜찮소. 다만, 우리가 가벼운 마음으로 온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 주었으면 좋겠소.”
듣기에 따라 신경에 거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여국의 말엔 나름의 일리가 있었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여국이라 했나?”
“그렇소.”
“자네는 이왕이면 끝까지 남았으면 좋겠군.”
여국이 눈살을 찌푸렸다.
끝까지 남다니? 이게 무슨 말이지?
연호정이 팔짱을 꼈다.
“만약 너희가 처한 특수한 환경만 아니었다면, 나 역시 너희의 자세를 지적하진 않았을 것이다.”
후기지수들의 눈이 커졌다.
특수한 환경이라니?
연호정의 목소리가 서늘해졌다.
“여국.”
“말씀하시오.”
“곤륜파로 돌아가면, 혹은 무림맹에 남으면 충분히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왜 여기에 들어온 거냐?”
“……!”
“최고가 되지 못해서인가? 아니면 도피하고 싶었나?”
여국의 얼굴이 확연히 굳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후기지수 대부분의 표정이 여국과 비슷해졌다.
연호정이 혀를 찼다.
“너희가 파군각 후원으로 모였을 때 내가 늦은 이유는, 너희가 각파에서 어떤 위치인지를 확인하고 왔기 때문이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각파에서 꽉 쥐고 있는 인재가 제멋대로 나한테 올 리가 없잖아? 궁금했지. 어떤 사정들이 있는지를.”
후기지수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본 것이 사실이라면, 너희는 오히려 더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가 여국을 보았다.
여국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여국.”
“…….”
“다시 말해 봐. 내가 너희를 척강만큼 대우해 줘야 할 이유가 있는 건지.”
여국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네 말도 틀리진 않아. 나 역시 좀 흥분했어. 딱히 너희를 모욕할 의도는 아니었지만, 받아들이는 이들에겐 충분히 모욕으로 들릴 수 있겠군.”
“…….”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사과하겠다. 사람마다 천성이 다르고 성장한 환경이 다른데, 너무 내 위주로 너희를 판단했군.”
“…….”
“미안하다.”
연호정의 사과는 진지했다.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였다. 그 사과를 받으면, 그들은 정말 못난 사람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후기지수들이 한없는 부끄러움과 알 수 없는 분노로 가득 찼을 때였다.
[연 공자. 무림인들이에요.]
묵비의 전음에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숫자는?]
[백이 넘어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무림맹 소속이 아닌데요?]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대별산맥은 세 개 성에 걸쳐져 있었다. 대별산의 한 지점에 무림맹이 자리했을 뿐이다.
다만, 무림맹 창설 소식이 중원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 수상한 이동과 그들의 정체를 알아낸 사람이 바로 가득상이었다. 그리고 가득상은 그 정보를 곧장 연호정에게 알려 주었다.
연호정이 유군 일행을 데리고 이곳으로 온 이유였다.
“그리고 또 하나 사과하지.”
후기지수들이 연호정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그들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연호정의 눈빛은 무섭도록 차가웠다. 동시에 그만큼 뜨겁기도 했다.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눈빛에는, 그들이 지금껏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기묘한 위엄이 타오르고 있었다.
“너희가 어떤 사정으로 이곳으로 왔든, 난 절대 너희의 이탈을 허락하지 않겠다.”
“……?!”
“할 일이 없어서? 간을 보려고? 시건방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너희만 한 병력을 내가 포기할 것 같으냐? 중원 어디를 둘러봐도 너희 정도의 힘을 갖춘 젊은 고수를 찾긴 어려워.”
연호정이 희게 웃었다.
“너희는 파군각 후원에 모인 그 순간부터 나의 수하다. 나를 거부한다? 그럴 수는 없어. 내 휘하로 들어온 이상, 내게서 벗어날 방법은 죽는 것밖에 없다.”
무시무시한 발언이었다. 자존심 강한 구파의 후기지수들에게는 너무 심한 자극이었다.
이를 악물고 입을 열려던 여국은, 순간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그의 눈이 흔들렸다.
‘저 사람, 나한테 끝까지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누구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죽지 않는 이상 내게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던 걸까?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 아닌가?
‘대체 무슨 생각……?’
그때, 묵비가 연호정에게 재차 전음을 날렸다.
[계곡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게다가 저들…… 강해요. 고수들이라고요!]
연호정이 입을 열었다.
“이제 본 유군의 창설 목적에 대해 말해 주지.”
[계곡 입구로 들어섰어요!]
“앞으로 너희가 맞이해야 할 적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책과 악랄함으로 절정고수조차 쉽게 죽일 수 있는 악귀들이다.”
[빨라요! 조금 있으면 금방 그곳에 도착할 거예요! 어떻게 하죠? 적인가요? 적이라면 견제 사격이라도 해야……!]
“진짜배기들과 붙기 전에 몸풀기라고 생각하고 싸워 봐라. 미리 말해 두는데, 죽이지 않으면 너희가 죽을 수도 있다.”
[연 공자!]
“자, 첫 번째 임무다.”
후욱!
협로 안쪽에서부터 살기 넘치는 무리가 등장했다.
피 냄새가 짙은 자들이었다. 무력 이전에 발산하는 기세에 소름 끼치는 살기가 그득했다.
연호정의 안광이 파랗게 물들었다.
“적을 섬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