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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131화 (131/963)

131화. 욕심의 대가 (1)

“어떠냐? 맛이 좋으냐?”

“예, 좋습니다.”

모용군이 웃음을 터트렸다.

“바닷가에서 난 신선한 해산물도 제법 괜찮았을 것이다. 다만 나는 여전히 해산물보다는 고기가 더 입에 맞더구나.”

“그러시군요.”

모용군은 대견하다는 눈으로 모용우를 보았다.

모용우는 이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맛이 없는 척을 하는 게 아니었다. 모용우에게 음식이란 신체의 올바른 활동을 위한 섭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모용우는 그렇게 ‘단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언제 어느 때나 최상의 몸 상태를 가꾸도록.

절강지부장으로 지내면서도 무인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모용군은 그런 모용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아직 소황진기(燒荒眞氣)를 익히고 있더냐?”

“그렇습니다.”

“쯧, 네 기(氣)를 보아하니 대성한 지 제법 오래되어 보인다.”

“무공은 대성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참오해야만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소제(小弟)도 멀었습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소황진기는 네 그릇의 반도 채우지 못할 무공이다. 너의 자질과 노력이 뛰어나 이만큼 온 것이지, 남들이라면 언감생심 그 정도로 성장치도 못했을 것이다.”

감탄하던 모용군이 탁자 밑에서 두툼한 서책 네 권을 꺼내 들었다.

“오늘 아침 내가 직접 적은 것이다. 앞으로는 이 무공들을 연마하거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보면 안다.”

모용우가 책자들을 살폈다.

잠시 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건곤무해(乾坤武解)가 아닙니까?”

“그렇다. 본가의 가주지학(家主之學)이지. 후계자 외, 선택받은 몇몇 천재가 아니고서는 전반부도 전수하지 않는 절학이다.”

모용우의 눈이 떨려 왔다.

모용군은 그런 막내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나 점잖고 예의 바른 녀석도 무인은 무인이었다.

“네가 말했잖느냐? 내가 무림맹주가 되면 너에게 가주위를 물려주라고.”

“…….”

“너의 재능이면 십 년 내에 대성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가내의 누구도 네가 가주위를 물려받는 걸 반대치 못할 것이야.”

“……감사합니다.”

모용우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오 년 내로 제 것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뭐라? 하하하!”

모용군은 막내의 배포 넘치는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당연히 이래야만 한다. 쫓아가는 게 아니라 앞질러 버린다는 의지, 말은 쉬워도 그걸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한 줌에 불과하다.

모용군은 모용우가 누구보다 빨리 가주지학을 대성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네게 할 말이 또 있다.”

“말씀하십시오.”

“너, 혼인…….”

그때였다.

“가주님. 백풍단주입니다.”

“음, 무슨 일인가?”

“벽산연가의 장남이 가주님을 뵈러 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모용군의 눈이 번뜩였다.

“연호정이?”

모용우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 놀란 자신의 모습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모용군이 물었다.

“너도 연호정을 아느냐?”

모용우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근래 명성이 자자한 벽산호장이라는 후기지수가 아닙니까?”

“후기지수……. 그래, 후기지수지.”

“한데 그자가 어쩐 일로 형님께……?”

모용군이 고개를 저었다.

“너도 이제는 알아야 할 것이다. 그놈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

“나이는 어리지만 그 무공은 이미 구파일방, 육대세가의 장로급을 상회한다. 그리고 지닌바 심계와 지략은 나에 필적하는 놈이다.”

“……!”

“무공, 지략, 배짱, 실행력. 어떤 부분에서도 모자람이 없는 또 하나의 천재다. 내 지금껏 무수히 많은 인재를 만났지만, 그놈만 한 괴물은 본 적이 없었어.”

굉장한 고평가였다. 모용우는 형의 입에서 이러한 평가가 나왔다는 것에 순수하게 놀랐다.

모용군이 미소를 지었다.

“어떤 의미로는 네게 좋은 상대가 될 수도 있겠다. 물론 네가 충분히 냉혹해진다면 말이다.”

“…….”

“허허, 쓸데없는 말이 길었구나. 남은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모용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무공, 감사히 받았습니다.”

“그래. 크게 기대하고 있다.”

모용군이 문밖을 향해 외쳤다.

“들라 하게.”

끼이익.

문이 열리고 연호정이 들어왔다.

순간 시선이 부딪친 연호정과 모용우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연호정이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모용우 역시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그를 지나쳤다.

“오랜만이구먼.”

“그렇군요.”

“거기 앉게. 차는 다시 타야겠군.”

“괜찮습니다. 조금 전에 마시고 와서.”

“허허, 그런가?”

쿵.

문이 닫히자마자 연호정이 물었다.

“누굽니까?”

“음?”

“방금 나간 사람 말입니다.”

모용군은 문득 궁금해졌다. 모용우에 대한 연호정의 첫인상이 어떨는지.

“자네가 보기에는 어떠한가? 괜찮아 보이는가?”

“대화 한번 나눠 보지 못한 상대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허허, 그냥 첫인상이 어땠는지가 궁금해서 그렇다네. 부디 대답해 줬으면 좋겠군.”

연호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주님과 동석할 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음?”

“무공은 굉장히 뛰어난데, 어째 성격은 좀 말랑말랑해 보입니다.”

과연 이놈의 안목은 보통이 아니야.

모용군은 웃으며 솔직하게 말했다.

“잘 봤네.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지.”

“의외로군요. 재능보다도 냉혹한 독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라 보았는데.”

“허허허! 그거야 나 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차로 목을 축인 모용군이 물었다.

“그래, 대낮부터 어떤 일로 날 찾아오셨는가.”

“알고 계시잖습니까?”

모용군이 빙긋 웃었다.

“왜? 내가 자네를 전투 부대의 수장으로 추천한 것이 그리 의심스러운가?”

연호정이 마주 웃음을 지었다.

“대놓고 의심스러워서 오히려 순수한 호의가 아닐까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허허허!”

연호정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떤 직책을 약속받으셨습니까?”

“음?”

“무림맹이 건립되면, 가주님께서는 어떤 직책에 앉으실 거냔 말입니다.”

“허허, 그거야 나도 모르지. 적어도 맹주는 못 될 것 같네.”

“전투 부대를 총괄하는 조직의 수장으로 활동하실 생각이십니까?”

모용군은 그저 웃어만 보였다.

두 눈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지만.

“…….”

잠시의 침묵 끝에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벌써 무리하실 필요는 없잖습니까?”

“무리라?”

“명가를 축출하는 데에 지대한 공을 세우셨으니 말 그대로 기호지세(騎虎之勢)로 보입니다만, 좌우도 살피지 않고 달리다가 잡초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찌하려 그러십니까?”

“허허, 잡초에 걸려 넘어질 만큼 만만하게 살아온 인생은 아니라네.”

“그래서, 이대로 밀고 갈 생각이십니까?”

“물론이네. 내 꿈은 이제 시작이거든.”

“자신 있으십니까?”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다만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모용군이 피식 웃었다.

“인생 다 그런 거 아닌가?”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믿는 구석이 있군.’

모용군은 혼자가 아니다. 필시 구파일방, 육대세가 중 몇몇과 손을 잡은 것이 분명했다.

‘이 잠깐 사이에 벌써? 역시 보통이 아니야.’

모용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찌 그리 빤히 보고 있는 겐가?”

“…….”

“그 건에 대해 내 진위를 파악하러 온 것이라면, 나는 달리 할 말이 없네. 그저 유능한 인재를 썩히는 게 안타까워 그런 것이니까.”

“이제 약관에 이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이를 무리하게 중책에 앉히려 하고 계십니다만.”

“나이와 실력은 별개일세. 자네는 구주명가를 상대하면서, 그리고 명허림을 잡으면서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입증했다네.”

“…….”

“더 할 말이 없나?”

“글쎄요.”

“할 말이 없다면 이만 가 보게나.”

“독립유군(獨立遊軍).”

“음?”

연호정이 표정을 풀었다.

“이미 저를 추천하셨으니 어지간해서는 다시 빼지 못하시겠지요. 아버지 체면을 생각해도 그래선 안 될 것 같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겐가?”

“제가 수장이 될 전투 부대는 독립유군으로 활동할 겁니다. 마땅히 무림맹 소속이지만 온실 속의 화초는 안 됩니다. 자유로이 들판을 거닐다가, 강호 무림에 크나큰 사건이 터지면 수장의 판단하에 움직이는 독립 조직의 성격을 띱니다.”

“……?”

“물론 지나친 방임은 곧 방종이나 다를 바 없지요. 저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맹주님뿐입니다. 혹여 따로 의결 기관이 설립된다면, 과반수의 의견에 따라 움직일 수도 있을 겁니다.”

“허허허!”

모용군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설마 내가 자네 요구를 들어줄 거라 생각한 겐가?”

“안 됩니까?”

“당연히 안 되지. 설령 그런 마음이 있다 한들 나는 일개 가문의 가주일 뿐이라네. 내 독단으로 그런 일을 진행할 수는 없단 말이지.”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지만 우리는 서로를 제법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예전부터 생각했네만, 자네 말버릇은 그냥 참고 들어 주기에는 지나치게 무례한 감이 있다네.”

“거추장스러운 가면은 벗어던지고 얘기하시지요.”

연호정의 동공이 파랗게 물들었다.

평소에는 그리도 아름다웠던 벽라진기의 색이 오늘따라 유독 섬뜩해 보였다.

“할 수 있잖소?”

“…….”

“당신도 나도, 아직은 서로의 한계를 몰라.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지. 그 정도 힘도 못 쓸 만큼 무능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

모용군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연호정에게 처음으로 보여 주는 냉혹한 야심가의 진짜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작정하면 못 할 것도 없지. 하나 내가 왜 자네에게 그러한 전력을 붙여 줘야 하지? 나는 선의로 남 좋은 일을 시켜 주는 자선가가 아니야.”

“아니까 이러는 거요.”

“주판 한 번 더 튕겨 보자 이건가?”

“점창파와 사이는 어떻소?”

모용군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말인가?”

“내가 전에 말한 바 있었을 것이오. 사람을 쓰려거든 입이 무거운 놈으로 쓰라고.”

“……?!”

“경각심을 심어 줄 생각이었다면 멋지게 성공했소. 덕분에 두어 달은 집 안에 틀어박혀 도끼만 휘둘렀으니까.”

“…….”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하지 않소? 당신이 한 대 쳤으니, 이제 나도 한 대 쳐야지. 당신이 쏘아 보낸 그 화살, 잘 다듬으면 이쪽에서 다시 날려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연호정이 활짝 웃었다.

“몽의라는 이름의 화살을 당신 가슴에 쏘면 되는 거요? 아니면 점창파를 과녁 삼아 쏘면 되는 거요? 입맛대로 주문하시오. 조리 담당은 나니까.”

모용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연호정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설령 거짓말이라 한들, ‘몽의’라는 이름이 나온 이상 무시할 수 없다.

“붙잡고 있나?”

“뇌옥에 고이 모셔 두고 있지. 많이 망가지긴 했소만.”

모용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놈을 점창파로 보낸다 한들 과연 대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그런 놈이라면 보내지도 않았네.”

“실전된 사일검법을 구사하던데?”

“……!!”

“모르셨나 보구먼. 몽의가 말 안 해 줍디까?”

모용군의 얼굴이 티 나게 일그러졌다.

연호정이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내 판돈은 준비됐소. 주판 가져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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