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발상의 전환 (6)
도끼를 보자마자 느낀 것은 경이(驚異) 그 자체였다.
어떤 재질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그간 수천 자루의 병기를 부수고, 수만 자루의 병기를 봐 온 연호정으로서도 무슨 철을 썼는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알겠다.
‘엄청난 강도다.’
햇빛조차 빨아들일 듯 시커먼 창대가 눈에 띄었다.
검고 검다. 단순한 흑색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범상치 않은 광택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도 빛을 빨아들이고 있으니,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신비로움을 느끼게 했다.
절대 부러지지 않을 압도적인 강도. 동시에 무게감을 충분히 잘 받을 것 같은 기묘한 유연함.
강유의 조화로움이 한데 깃들었다. 고작 창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연호정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저건?’
창대 끝에 성인 남성 주먹보다도 큰 고리가 달려 있는데, 창대와는 재질이 달라 보였다. 물론 그 역시 강도는 창대에 뒤지지 않을 듯했다.
‘무게추다.’
고리임과 동시에 무게 중심을 맞추는 추 역할을 하고 있다. 저 고리의 무게만도 굉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호정의 시선이 다시 위로 올라갔다.
거대한 도끼날을 보는 순간, 그는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내 자네 성품이 담백한 것을 아네. 다만 그냥 두기에는 너무 아쉽기에, 조금 화려하게 만들어 보았다네.”
조금 화려한 정도가 아니었다.
도끼날의 너비는 이전에 다루었던 철부보다 조금 더 작았다. 대신 두께가 늘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도끼날 중심에는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사나워 보이는 용머리가 붙어 있었다. 용머리 주변으로는 붉고 푸른 아지랑이 같은 세공이 자리 잡아 한층 화려함을 더하고 있었다.
걸작이다.
전사의 투지와 군왕의 위엄이 한데 느껴지고 있었다. 형용할 수 없는 위용이었다.
“이름이야 주인이 짓는 것이지만, 그냥 두기 아까워 광룡(狂龍)이라 부르고 있었다네.”
광룡. 미친 용이다.
다소 험악한 이름이지만 그 단순한 두 글자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천년이 지나도 녹이 슬지 않을 듯, 장인 기술이 집대성된 신병(神兵)이었다.
연호정은 홀린 듯 걸어가 창대를 잡았다.
‘무겁다.’
굉장한 무게요, 두께감이었다. 이전에 휘두르던 철부와 비슷한데도 더 두껍다는 느낌을 받았다.
‘풍뢰부(風雷斧)와도 달라.’
풍뢰부는 흑암제 시절의 애병이었다. 그 역시 흑도 최고의 장인이 만든 신병이었다.
풍뢰부가 벼락이라면 광룡부는 바람이다.
풍뢰부가 서늘하다면 광룡부는 강렬하다.
풍뢰부가 절제된 미학을 보여 주었다면 광룡부는 절제 없이 뻗어 나가는 패기가 일품이었다.
어떤 전투에서도 주인을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함이 느껴졌다. 전쟁의 신(神)이 깃들기라도 한 듯 보는 것만으로도 피가 끓어올랐다.
연호정이 광룡부를 들었다.
후웅.
팔목, 팔꿈치, 어깨에 이어 상반신 전체로 전해지는 무게감이 굉장했다.
놀랍게도 이전에 썼던 철부보다는 왠지 더 가벼운 듯했다. 실제로는 더 무거울 텐데, 몸에 전해지는 부담이 적었다.
연호정은 저도 모르게 벽라진결을 운용했다.
우우우웅!
도끼가 울었다.
그것은 용음(龍吟)과 비슷했다. 도끼날 중앙에 자리 잡은 사나운 용이 입을 벌리고 포효하는 것 같았다.
편일강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도끼도 자네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네. 어떤가? 느낌이 괜찮나?”
천하에 존재하는 어떤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여도 부족했다.
결국 고민하던 연호정은 한마디를 뱉었다.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편일강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굉장하다, 최고다 등의 수식어는 필요치 않다. 다만 주인이 쥐고 휘두르기에 딱 맞다면, 그것이야말로 장인에겐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자네 마음에 들 줄 알았지. 마음껏 휘두르게. 자네 내공이 얼마나 사납든 너끈히 버텨 줄 것이야.”
연호정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허허, 주인이 기뻐해 주니 나 역시 기쁘다네.”
편일강이 묵비에게 손짓했다.
“소저는 나를 따라오게.”
“네? 아, 네!”
묵비 역시 광룡부의 눈부신 자태에 넋이 나간 모양이었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편일강을 따라가면서도 광룡부를 힐끔거렸다.
연호정은 광룡부를 들고 대장간 밖으로 나갔다.
찌이이잉!
쏟아지는 햇빛을 받은 광룡부의 도끼날이 선명한 광채를 발했다.
빛을 흩뿌리지 않고 수렴한다. 그 빛을 빨아들인 도끼날이 용머리와 아지랑이를 더 빛나 보이게 해 주는 듯했다.
창대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
꾸욱!
강하게 쥐면 쥘수록 광룡부의 패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 같았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과분한 선물을 받았구나.”
이거 하나면 되었다. 이것 이외의 도끼는 필요치 않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휘둘러 보고 싶었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평평한 바위에 앉아 홀린 듯 광룡부를 살피기 바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까드드드득.
시위 당기는 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피이이이잉!
목전 한 대가 무지막지한 속도로 쏘아졌다.
연호정은 그대로 광룡부를 휘둘렀다.
촤아악! 쾅!
쏘아진 목전을 정확히 반으로 가른 광룡부가 땅에 쑥 박혔다. 힘을 얼마 주지도 않았는데 도끼날의 절반이 넘게 박혔다.
연호정이 도끼를 뽑았다.
돌과 흙을 가른 도끼날에는 먼지 한 톨 묻어 있지 않았다.
“역시, 그 무거운 걸 쥐고도 빠르네요.”
연호정이 저 멀리 서 있는 묵비를 보았다.
묵비의 손에는 붉은 각궁이 들려 있었다. 광룡부처럼 활대와 시위의 재질이 무엇인지는 불명이었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엄청난 장력이구만?”
“화살에 내공을 싣지도 않았어요.”
그런데도 쏘아지는 속도는 벼락을 방불케 했다. 활의 완성도가 광룡부 못지않았다.
편일강이 설명했다.
“홍련궁(紅蓮弓)이라는 보물일세.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절정고수의 내공이 아니면 시위를 끝까지 당기기 어렵다더군. 귀하기로는 광룡부보다 더할 걸세.”
연호정과 묵비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편일강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감사할 게 무에 있겠는가. 좋은 병기를 얻었으니, 자네들이 뜻있게 써 주었으면 좋겠네. 그거면 된 것이야.”
좋은 장인이 좋은 무인에게 희대의 보물을 선물했다.
장인은 물질적인 보답을 바라지 않았다. 다만 그가 바라는 것은 자신이 만든 보물을 든 무인들이 천하를 질타하는 광경일 것이다.
두 무인은 장인의 기대에 부족하지 않을, 위대한 무인이 될 것을 약속하며 자리를 떴다.
“활 좋냐?”
“엄청요.”
“그래 뵌다.”
“도끼 좋아요?”
“말해 뭐해.”
“그래 보여요.”
“자, 그럼 난 이만 갈 테니까 나중에 보자고.”
“어디 가요?”
“절강에 볼 일이 있어. 늦어도 이번 해 지나기 전에는 도착하겠군.”
“그럼 같이 가요.”
“너도?”
“왜요? 같이 가면 안 돼요?”
“그럴 건 없지만…… 괜한 고생만 하는 거 아니야?”
“활을 얻었으면 시위도 당겨 봐야죠.”
“싸우러 가는 거 아니다.”
“봐야 알죠. 왠지 연 공자는 온갖 사건, 사고에 휘말릴 것 같거든요.”
“내가 애냐.”
“그냥 그렇단 말이에요. 혹시라도 일 터지면 제가 큰 도움이 될걸요?”
“좋아, 굳이 고생하겠다는데 말릴 필요 없지.”
“말을 참 아름답게 하는 재주가 있어요. 항상 감탄스럽네요.”
“몇 번을 말한 것 같은데, 난 네가 그렇게 말 잘하는 애일 줄은 몰랐다. 어두침침해서는 밥 먹을 때 빼곤 입 한번 안 여는 놈이었는데.”
“제가 언제요?”
“……그런 때가 있었겠지.”
“없어요, 그런 적.”
“뭐, 어쨌든 그럼 또 한번 달려 보자고.”
“좋죠.”
* * *
“지부장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바쁘다고 전하게.”
“그것이 아니오라…….”
“왜 그러는가?”
“본가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한참 붓을 놀리던 청년이 손을 멈추었다.
붓을 놓은 그가 고개를 들었다.
“가문에서?”
“그렇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청년이 손을 내밀었다.
“이리 주게.”
“예에.”
청년은 서신을 단숨에 읽어 내렸다.
서신을 읽는 청년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지는 것을 본 이건(李乾)이 물었다.
“이번에도 자금 문제입니까?”
“…….”
“지부장님?”
“음? 아, 자금 문제는 아닐세.”
“한데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청년이 고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형님께서 알아차린 것 같네.”
“……!”
“여기까지인 모양이군.”
“……한 번 더 서신을 보내는 것은 어떨는지요? 아시다시피 절강 무역상들 사이에서 전쟁이 터지기 직전입니다. 이 와중에 서역 상인들과의 거래를 독점하면 이곳은 순식간에 전쟁터가 됩니다.”
“그렇겠지.”
청년, 모용우가 탄식을 뱉었다.
“하나, 형님께서 그런 것을 알아주실 분이던가. 만일 그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형님께선 즉시 병력을 파견하실 걸세.”
“…….”
“그럼 끝이야. 형님의 말에 반하는 모두가 죽을 걸세.”
이건이 한숨을 쉬었다.
“제가 지부장님을 신뢰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만…… 설마 정말 그러시겠습니까?”
“그러시겠지.”
“…….”
“형님이라면 무조건 그리하실 거야. 어지간한 일은 대화로 풀지만, 정도를 넘어서면 협박과 계략으로 상대를 철저하게 짓누르는 것이 형님의 방식일세.”
모용우의 눈이 깊어졌다.
“그것조차 통하지 않으면, 그때는 무조건 칼을 뽑지. 그리고 베어 버린다네. 문제의 원인이 된 핵심을.”
“…….”
“조율은 여기까지인 듯싶네. 차라리 뒤에서 그들을 돕는 것이 낫겠어. 애먼 칼에 목이 달아나는 걸 보는 것보다는 나을 것 아닌가.”
“그렇……군요.”
모용우가 탄식했다.
“이럴 때마다 내 능력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실감하게 된다네.”
이건은 내심 안타까웠다.
‘지부장님의 능력은 충분히 대단하십니다.’
빈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다.
모용우는 아직 이립(而立)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도 어지간한 대문파 장로급을 상회하는 무력을 갖춘 천재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일룡삼봉의 명성이 과거의 쌍룡삼봉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용우는 무공만이 아니라 상재(商材)도 뛰어났다. 게다가 성품 역시 군자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유례없는 천재라도 가문의 힘에 짓눌리면 날개를 펴기 어려운 법이었다.
천하가 알아주지 못하는 비운의 천재. 그게 바로 모용우였다.
“지부장님.”
“말씀하시게.”
“차라리……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음?”
이건이 조심스레 말했다.
“절강과 인접한 강소의 무역상들 역시 날이 곤두선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조율하고 있는 것은 연가지요.”
모용우의 눈이 빛났다.
“벽산연가.”
“예. 그들의 조율이 얼마나 뛰어난지, 당장 터질 것 같던 강소 무역상들 간의 갈등이 두 달 사이에 꽤 많이 봉합되었다고 합니다.”
“한데?”
“이왕 이렇게 된 것, 그들을 살리려면 연가와 손을 잡는 것이 어떻습니까?”
“절대 안 되네.”
“예?”
모용우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럴 순 없어. 그건 무역상들은 물론 자네나 지부 휘하 무인들까지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야.”
“……그렇습니까.”
“어떤 식으로든 형님을 속일 순 없을 걸세. 게다가…….”
모용우가 한숨을 쉬었다.
“근래 연가의 명성이 천하를 위진하고 있네. 그리고 그 이유는 연가의 대공자 덕분이지.”
“그렇습니다.”
“연가의 대공자는 홀로 명가와 마주했어. 하나, 그들을 결정적으로 무너트린 것은 형님이야. 필시 형님과 연가의 대공자 사이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걸세.”
“…….”
“아주 약간의 위험이라도 치명적이야. 적어도 지금은.”
“하면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까.”
모용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을 지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보게. 형님이 재촉한 이상, 이곳 일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네.”
그때였다.
지부장실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부장님!”
“무슨 일인가?”
“연화 아가씨가 항주(杭州)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모용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연화, 그 아이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일간 지부로 들른다고 합니다!”
이건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지부장님.”
모용우가 의자에 등을 묻었다.
그의 얼굴에 씁쓸함이 어렸다.
“다 끝난 것 같네.”
그날 밤.
연호정과 묵비가 절강으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