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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102화 (102/963)

102화. 발상의 전환 (2)

쿵.

도끼를 놓은 연호정은 상당한 피로를 느꼈다.

‘충격이 너무 강했군.’

아버지의 검은 중도의 검이다. 그 말은, 필요할 땐 누구보다도 강한 무공을 구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강검은 팔십 근 중병으로 휘두르는 도끼의 위력을 한참이나 상회했다. 강인한 내공과 철저하게 단련된 육체, 깨달음을 풀어내는 운용 능력이 정점에 달했다.

‘아쉬워.’

연호정이라고 못할 바가 없다. 아니, 연호정은 그 이상도 넘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단련이 부족했다. 고차원적인 무도(武道)를 파헤치기 위해선 고뇌와 깨달음이 필수지만, 결국 그것을 담아내는 것은 육신이다.

‘아직 많이 부족해.’

근육, 체력, 유연함은 충분하다. 그러나 몸이 높은 순도의 기를 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단점을 명확하게 본 느낌이었다. 이번 비무로 얻은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연호정은 자신의 무공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단점을 보았고, 고쳐야 할 부분을 직시했다.

그러나 연위가 보기에 연호정의 무공은 이미 달인의 경지에 들어선 것이었다.

“참으로…….”

“예?”

“참으로 강해졌구나.”

연호정이 씁쓸하게 웃었다.

“멀었다니까요.”

“아니, 오히려 과하다. 과해도 너무 과해. 당대 무림, 네 연배에 그와 같은 무공을 쌓은 자가 또 어디에 있겠느냐. 쌍룡삼봉이라 한들 너와 견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구대문파가 비밀리 키운 후기지수들이 있다 한들 너에 비견할 수 있을까 싶다.”

흔치 않은 극찬이었다.

연위는 그 대상이 누구라도 이리 칭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연호정은 예외였다. 성장 속도가 완전히 규격을 벗어나 버렸다. 나아가, 이 정도 칭찬에 만족하거나 오만해질 아들이 아니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미 무공(武功)의 틀을 벗어나 너만의 무도를 일구어 냈다.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완할 게 한둘이 아닙니다.”

“몸은 그렇지. 그러나 너의 깨달음은 이미 태산의 팔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다.”

연위가 고개를 저었다.

“형이나 동생이나, 육신이 깨달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똑같구나.”

다르다.

연지평은 연호정처럼 수십 년의 경험이 없었다. 그러고도 깨달음이 과해 육체가 따라오질 못하고 있었다

반면 연호정은 실제로 피와 살점이 튀기는 아수라장에서 무공을 익힌 세월이 있다. 실전으로 얻은 깨달음을 기반으로 무공을 연성하니, 자연 육체의 발달 수준이 그것을 따라오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연위의 얼굴에 호기심이 일었다.

“새로운 무공을 정련했더구나. 본가의 무공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듯한데.”

“아.”

“보법은 두 가지고, 병장기술의 외가 무공은 하나구나.”

“정확히는 보법 셋, 병장기술 셋입니다.”

연위가 발끝으로 연무장 바닥을 두들겼다. 연호정의 주먹으로 구멍이 뚫린 곳이었다.

“이 권법은?”

연호정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주먹을 들어 보였다.

“병장기술을 권법의 형(形)으로 바꾼 겁니다. 오늘 처음 펼쳐 보는 건데, 다행히 제 위력이 사는군요.”

연위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검법을 검법이라 부르고, 권법을 권법이라 부르는 데엔 이유가 있다.

병장기술을 맨손으로 펼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다만 진기의 운용과 투로, 모든 부분에 있어서 적지 않은 변화를 겪어야 하는 법이다.

한데 이 놀라운 아들 녀석은 맨손으로 병장기술과 차이가 나지 않는 위력을 발산했단다.

‘만류귀종(萬流歸宗)…….’

연위는 저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연호정이 눈을 끔뻑였다. 그는 아버지가 저리 웃으시는 걸 처음 보았다.

뭐랄까…… 왜인지 모르겠지만 괜히 소름이…….

연위가 웃음을 멈추고 물었다.

“그래, 네가 얻은 그 무공을 무엇이라 부르면 되느냐?”

순간 연호정은 말문이 막혔다.

‘말씀을 드려도 될까.’

사신무.

삼백 년 전 혈교지란을 종식한 희대의 무인이자, 누천년 무림사 최강자를 논할 때 첫손에 꼽힌다는 사방무제의 무공이라 추정되는 절학.

기실, 이미 다른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걸 아시는 분에게 말 못 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사신무는 스승님께 직접 전수한 일인비전의 무공이었다. 일인비전이라면 부모형제도 외인(外人)인바, 스승님께 허락도 받지 않고 외부에 알리는 것이 과연 옳은가 싶었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자.’

어차피 회귀 후 스승님을 뵌 적이 없었다. 게다가 스승님은 정처 없이 떠돌며 도(道)를 구하시는 분이었다.

속세의 다툼에는 관심이 없다. 사신무 자체도 뛰어난 절학이라 생각할 뿐,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해도 신경 쓰지 않으실 것이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 이거 좀 묘하지 않은가?

연호정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사신무의 계승자인 지금의 나는 선조의 규율 따위에 얽매일 필요가 없지 않나? 애초에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면 결국 내 무공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전적으로 내 마음 아닌가?

“……호오.”

지금 보니 애초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문제가 아닌가.

‘자유로군?’

호오, 호오.

턱을 잡고 음흉한 웃음을 짓는 아들을 보며 연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찌 그리 흉하게 웃는 것이냐?”

“예? 아, 아닙니다.”

연호정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익힌 무공은 사신무(四神武), 사신공(四神功)이라 합니다.”

“사신무?”

“예.”

연위의 눈이 반짝였다.

“동방청룡(東方靑龍), 서방백호(西方白虎), 남방주작(南方朱雀), 북방현무(北方玄武)의 그 사신이냐?”

“그렇습니다.”

“네가 펼친 무공의 투로와 형은 범접기 힘들 만큼 완벽했다. 비록 공격에 치우쳤으나, 공격(攻擊)이라는 틀 안에서만큼은 그 이상이 없을 만큼 발달해 있었지.”

“그것이 바로 백호의 무공, 호왕구벽세입니다.”

“백호의 무공이라…… 하면 다른 무공들도 각 분야의?”

“예. 이게 얼마나 골 때리는 무공이냐면요.”

“언사를 바로 해라.”

“이 무공이 얼마나 웃긴 무공이냐면요.”

연호정은 사신무의 특성을 연위에게 상세하게 설명했다.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연위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공격, 방어, 즉살, 회피 및 반격에 특화된 네 가지 절공을 무기로 삼는다…….”

“그렇습니다.”

“공수와 살법, 회피와 반격에 극도로 특화된 무공들을 하나의 울타리로 삼는 무공은 많지 않지. 본가의 무공이 바로 흔치 않은 중도(中道)의 무공이다. 다만, 네가 얻은 사신무란 무공이 중도를 걷는 것 같지는 않다.”

“중도가 아니라 각 분야를 극한까지 발달시킨 전장의 무공입니다. 본가의 무공과는 달라요.”

“그래, 그리 보인다.”

연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어째, 들으면 들을수록 한 사람의 무공이 생각나는구나.”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사방무제.”

“그렇다.”

“아버지께서도 사방무제에 대해 아십니까?”

“당연한 것 아니더냐. 그는 백도 무림사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족적을 남기고 간 희대의 협객이요, 존경할 만한 무인이다. 그를 모르고서야 무림사를 논할 수 없지.”

“…….”

“설마 안 지 얼마 안 되었단 말이냐?”

연호정이 헛기침했다.

연위가 혀를 찼다.

“아무리 그래도 기본 상식은 있어야 할 것 아니더냐. 그는 위인이다. 위인의 업적 정도는 알아 둬야 함이 옳다.”

“알겠습니다.”

“어찌 되었건, 네가 얻은 무공이 사방무제의 절학인지는 모르겠다만 뛰어난 무학인지는 알겠다. 그리고 네가 그 무공을 깊게 파고 있다는 것도.”

연위가 진지하게 물었다.

“묻겠다. 너는 그 사신무로 끝을 볼 생각이냐?”

“그렇습니다.”

“……그래, 알겠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께서 왜 저 질문을 하셨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문의 무공을 소홀히 하진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연위가 고개를 저었다.

“내 일견 보기에도 사신무는 본가의 절학에 비해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그만한 무공을 대성키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야. 네가 그것으로 끝을 보겠다고 생각했다면, 굳이 다른 무공에 눈을 돌릴 필요는 없다.”

애써 서운함을 드러내지 않고 하는 말이었다. 진심이기도 했다.

연호정이 말했다.

“제 말씀은 그게 아닙니다.”

“음?”

“가문의 무공을 다 알고 약간이라도 배워 둬야, 사신무를 가르칠 가인(家人)들을 선별할 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순간 연위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네 말은, 네가 얻은 그 무공을 본가에 편입하겠다는 뜻이더냐?”

“저는 연가의 사람입니다. 연가의 사람이 자신의 것을 가인들과 공유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진심이냐?”

“물론입니다.”

연가는 강하다.

하지만 세력이 작고 주축 고수는 많지 않다. 실제로 연호정의 숙부들은 전부 분가(分家)하여 나가 있었으며, 제사가 아니면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다.

말하자면 연가가 강한 것은 무학의 뛰어남과 민중의 지지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 전력을 생각하면 타 문파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연호정은 생각했다.

‘본가의 전력이 더 강해져야 해.’

광신삼교가 마각을 드러낼 때, 중원은 피바다가 될 것이다. 그것은 확실했다.

당장의 멸문을 막았다곤 해도 미래의 재앙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연가의 전력을 키워야 했다.

“다만, 사신무는 감각이 없으면 입문조차 못 하는 절공입니다. 가문의 무학으로 편입한다 해도 이것을 익힐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겁니다.”

연위는 잠시 말이 없었다.

‘가문…… 가문이라.’

아들이 이만한 무공을 얻은 것은, 말하자면 기연(奇緣)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놀라운 무공을 얻었다면 마땅히 개인의 절학으로 삼는 것이 상식이다. 한데 아들은 제 무공도 가문의 절기로 편입하자고 한다.

문득 그는 예전 아들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뜻은 달라도 제 마음은 언제나 이곳에 있습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설령 마두(魔頭)라는 오명을 들을지언정 세상을 향해 칼을 겨눌 것입니다.’

연위는 눈을 감았다.

아들의 말을 곱씹고, 또 곱씹어 본 그가 눈을 뜬 것은 반 각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너의 뜻, 잘 알겠다.”

연위의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유해진 듯했다.

“네 마음이 그와 같다면, 연가의 가주로서 감사를 표하겠다. 뛰어난 무공을 전해 주어 고맙다.”

“아닙니다.”

“미룬 일들이 제법 많다. 사흘 안에 전부 마무리할 생각이니, 이후에 이 부분에 관해 회의를 해 보자.”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아버지! 형님! 여기 계세요?!”

연호정의 얼굴이 밝아졌다.

“왔구나.”

연무장 저편에서 연지평이 뛰어오고 있었다. 아버지와의 비무 전에 먼발치에서 봤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하니 반가움이 새로웠다.

웃으며 연지평을 맞아 준 연호정.

연지평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웃음이 증발한 것은 순간이었다.

“형님! 축하드려요! 형수님께 인사는 드렸어요!”

“……뭐, 뭐라?”

“엄청 예쁘시던데요! 선녀예요, 선녀!”

연호정이 입을 쩍 벌렸다.

연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묘한 그의 미소는 어쩐지, 연지평을 응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아버지였다.

그렇게 삼부자가 아주 오랜만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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