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규율의 허점 (1)
연호정의 몸이 주춤거렸다.
연환장을 내지른 손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찰나지간 연위 역시 장(掌)으로 공격을 무마한 것이다.
우우웅!
내뻗은 연위의 손에서 은은한 서기가 일었다.
‘반룡장(反龍掌)!’
연가의 절정무공 중 하나였다. 일격, 일격의 위력도 뛰어나지만 특히 반격에 있어서 따라올 무공이 없다는 장공(掌功)이었다.
하지만 놀라기로는 연위가 더했다.
“연환비연장이냐?”
“그렇습니다.”
파아악!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호정이 재차 돌격했다.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는 줄 알았더니, 순식간에 자세를 낮춰 방천극을 휘둘렀다.
거리가 가까운데도 장병기인 방천극의 칼날이 정확하게 발목을 쓸어 온다. 길고 무거운 병기임에도 거리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연위의 검이 연무장 바닥을 스쳤다.
카가가각! 캉!
땅을 긁으며 나아간 검이 방천극을 쳐 냈다. 이번에도 방천극은 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튕겨 나가는 창대가 절묘한 호선을 그리며 연위의 옆구리를 노렸다. 칼날을 휘두를 때보다 더 빠른 공격이었다.
쩌저정!
완벽했다.
연호정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버지의 무공 경지는 완벽한 공방일체(攻防一體)의 경지에 들어서 있었다.
쩌정! 콰직! 파아악!
방천극을 몇 번이나 휘둘러도, 권각 산타(散打)로 허점을 만들어 공격해도 절대 뚫리지 않는다. 유효타를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연마하셨을 줄이야!’
내공이나 검력(劍力) 이전에 이루고 있는 무도(武道) 자체가 완벽에 가까웠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말 그대로 완전(完全)에 이른 무공이었다.
‘대단하시구나!’
흑암제 시절, 연호정의 무공은 연위를 한참 앞질렀다.
하지만 당시의 연호정도 지금의 연위만큼 완벽한 공방일체의 무도를 구현해 낼 수 없었다. 경지의 문제가 아닌 특기(特技)의 문제였다.
연호정의 무공이 장점을 극단적으로 살린 무공이라면.
연위의 무공은 단 하나의 단점도 용납하지 않는 강철의 성과 같았다. 정통 중의 정통, 백도 무학의 화신(化神)이라 할 만했다.
‘좋아.’
아버지와의 첫 비무?
그러한 생각은 이미 머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연호정은 무림사에 다시 나기 힘든 무도가(武道家)를 상대하며, 그 어느 때보다 불타는 호승심을 느꼈다.
파아앙! 파바박! 퍼엉!
연호정의 무공이 한층 격렬해졌다.
무거운 방천극이 가일층 속도를 높였다. 끊어지지 않는 흐름 속에 놓인 창봉술이 연위의 전신을 노렸다.
쩌저저저정!
묵직한 공격들이 모조리 막혔다.
그래도 괜찮다. 연호정은 믿었다. 아버지께서 절대 다치지 않으실 것이라는 걸.
부우웅! 부웅!
속도가 올라가니 파괴력이 증가하고, 파괴력이 증가하니 몸놀림에도 점차 탄력이 붙었다.
연위의 눈에 기광이 떠올랐다.
‘대단하구나.’
그는 아들의 무공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격렬하고 호쾌한 무공이라니.’
몸의 중심을 잡아 주는 건 벽라진결인데, 그 안정적인 벽라진결을 익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사나운 무공이었다.
그렇다고 공방의 균형이 무너졌느냐? 그런 것도 아니다.
쩌어엉!
짧게 후려친 강철검이 창봉에 막혔다.
공격으로 방어를 대신한다. 막으려고 막는 게 아니라, 상대의 공격까지 한꺼번에 휘감아 후려치는 극단적인 무공이었다.
이 정도면 공격만 지나치다고 꼬집을 수가 없다. 방어도 공격이요, 공격은 더 강한 공격이다. 끝없이 적을 몰아치는 실전 무공, 죽기 전에 죽여 생존을 도모하는 전장(戰場)의 싸움법이었다.
‘게다가…….’
파파파파팡!
연호정은 창봉술만 잘 다루는 게 아니었다.
창격이 날아든다 싶은 순간 발길질이 날아오고, 발길질을 막으면 기다렸다는 듯 권장(拳掌)을 썼다. 권장을 회피하면 다시 방천극이 날아왔으며, 극을 쳐 내는 순간 절묘한 발 기술이 들어왔다.
병기를 들었다고 병기술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싸움이었다. 강력한 무공으로 상대를 누르는 게 아니라, 적의 허점을 파고들어 쓰러트리는 투술이었다.
더 대단한 것은, 허점을 노리고 들어오는 박투술의 정체였다.
‘기본공?’
연가십삼권, 연환비연장, 고공각(拷空脚), 추풍보(秋風步).
하나같이 연가의 기본 무공이었다.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진 못해도 무인의 기본 소양을 쌓을 수 있는 무공들이었다.
그런 무공들로 이만큼 효율적인 공격을 가한다?
‘나라도 이렇게 할 수 있을는지.’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 말은 바로 아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몸을 단련시켜 주는 체조 같은 무공으로 칠대세가의 가주를 상대하고 있다.
연위의 눈빛이 돌변했다.
쩌어어엉!
강하게 후려친 검격에 연호정의 몸이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아들의 무공은 충분히 봤다. 이 정도만 봐도 아들이 이룬 경지를 알 수 있었다.
연위가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파아아앙!
이전에는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던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온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연호정이 도끼로 찍듯 방천극을 휘둘렀다.
연위는 깜짝 놀랐다.
‘이럴 수가!’
이번 검격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강한 탄경(彈勁)을 실어 상대방을 물러나게 하는 술수였다. 몸의 중심을 잡는 것만으로도 벅차야 정상이었다.
한데 이런 속도로 접근하다니?!
연위가 급격하게 검을 쳐올렸다.
쩌어어어엉!
창검이 부딪친 소리가 연무장을 넘어 가주실 바깥까지 퍼져 나갔다.
지금까지의 공격 중 가장 폭발적이고 강력한 일격이었다. 연위의 검이 미세하게 떨렸다.
훅!
번개처럼 자세를 낮춘 연호정이 무서운 연환기(連環技)를 퍼부었다.
파파파파파.
신들린 솜씨로 아들의 무공을 막아 내는 연위.
‘그랬구나.’
연위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들이 왜 그런 극단적인 수련을 자행했는지.
‘이 체력을 얻기 위해서였어.’
연호정의 공격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이뤄졌다.
일타, 일타가 강력한 힘을 발산하는 아들의 무공은 전형적인 일격필살(一擊必殺)형의 무공이었다. 하지만 그 폭발적인 일격을 만들어 내려면 내공 외에 신체의 강건함과 지구력이 필수였다.
연호정의 무공은 말하고 있었다. 아니, 증명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나다.
내가 추구하는 무공은 이러한 것이다. 타협 따위 없는 극한의 공격력을 추구한다.
연위의 눈이 감겼다.
콰앙!
무서운 진각과 함께 강철검이 뇌전(雷電)의 형상을 그려 냈다.
콰릉!
“음.”
연호정의 몸이 연무장 끝으로 밀려 나갔다.
종전의 탄경일검(彈勁一劍)과는 격이 다른 위력이었다. 방천극을 쥔 양손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일었다.
“여기까지.”
스르릉.
어느새 연무장에서 벗어난 연위가 검을 회수했다.
연호정은 아쉬움을 느꼈다.
‘거의 보였는데.’
아버지의 철벽같은 무공을 공략하며, 그는 백호(白虎)를 뽑아낼 수 있는 실마리를 잡았다.
구결과 깨달음만으로는 부족한 사신 소환. 공격에 특화된 백호기(白虎氣)를 뽑아내면 내공, 신체, 무공 전반이 크게 성장할 것이 분명했다.
‘아쉽지만, 별수 없지.’
사신 중 둘을 다룰 수 있다면, 수련만으로 다른 사신(四神)을 소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백호까지는 아니다. 생사의 대적이 아니면 쉬이 뽑아낼 수 없을 것이다. 사신무(四神武) 자체가 전장에서 태어난 무공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버지의 무공이 대단한 거야. 생사의 결전이 아닌데도 백호를 끄집어낼 수 있을 정도로.’
자세를 푼 연호정은 묘한 눈으로 연위를 보았다.
‘어떻게 이런 무공을 연성하셨을까.’
터엉!
거치대에 검을 놓은 연위가 물었다.
“어떠하냐?”
“예?”
“네가 보기에, 이 애비의 무공은 어떠했느냐.”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완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완벽?”
“예. 강해질 여지는 있지만, 단점 하나 없는 완전무결함을 추구하시는 것 같습니다. 공격과 방어, 회피와 반격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中道)를 원하시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강해질 여지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아들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도 기분이 상하지 않은 것은, 아들의 말이 정곡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리라.
“알아보았느냐?”
“모르기가 더 힘들지 않습니까? 무인에겐 저마다 특기가 있기 마련인데, 아버지에겐 그러한 특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
“만상(萬象)을 아우르는 무공.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무공입니다.”
연위의 얼굴에 솔직한 놀라움이 어렸다.
“네 안목이 정녕 대단하구나. 누구도 꿰뚫어 보지 못한 나의 무도(武道)를, 내 아들이 알아볼 줄 몰랐다.”
“그렇습니까?”
“그렇다.”
가만히 아들을 보던 연위가 탄식을 흘렸다.
“나는, 네가 나를 따라오길 바랐다.”
“예?”
“반년 전, 제사 때를 기점으로 너는 변했다. 무엇 때문에 그리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 가문의 수장으로서 너의 변화가 달가웠다.”
“아, 예.”
“그러나 지금은…….”
“…….”
“조금, 아쉽구나.”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든 고치겠습니다.”
“너는 잘못한 것이 없다. 그래서 아쉽다.”
연위의 얼굴에는 아들에 대한 대견함과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 나왔다.
“가주이기 전에 두 아들의 아비로서, 나는 나의 아들들이 나와 같은 길에 올라서기를 바랐다. 그것을 욕심이라 말해도 좋고, 아집이라 말해도 좋다.”
“…….”
“그러나 너는, 이미 나와는 다른 길로 올라섰구나. 나는 너의 무도(武道)를 통해, 네가 추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너는 본가의 가주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연호정의 얼굴이 굳어졌다.
정곡을 찌른 건 아들만이 아니다. 연위 역시 아들의 무공을 보며, 아들의 속내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변화한 이후의 네 모습을 보며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오늘에야 확신할 수 있었다. 너의 뜻은 이곳이 아닌, 천하를 향해 뻗어 있다는 것을.”
“…….”
연위가 뒷짐을 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는 그의 눈빛은 평소와 달리 알 수 없는 애잔함을 담고 있었다.
“내가 너의 무공을 보고 싶어 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
“……방금 하셨던 말씀이 끝이 아닙니까?”
“아니다.”
“하면 이유가 무엇입니까?”
“네가 소가주(小家主)로서 부족하지 않은 마음가짐을 가졌는지, 너의 무공을 통해 엿보고 싶었다.”
“……!”
연호정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소가주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직책이었다.
연위가 고개를 저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 가주로서 너의 역량을 시험해 보고 싶었거늘, 아비로서 너의 뜻이 가문에 묶여 있지 않음을 알고 답답해하다니.”
“…….”
“역시,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연호정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참 하늘을 올려다보던 연위가 몸을 돌렸다.
“멋진 무공이었다. 앞으로 종종 이 애비와 손속을 나눠 보자꾸나.”
“……예.”
“수고했다.”
연위가 가주실을 향해 걸어갔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던 연호정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연위가 등을 돌렸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뜻은 달라도 제 마음은 언제나 이곳에 있습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설령 마두(魔頭)라는 오명을 들을지언정 세상을 향해 칼을 겨눌 것입니다.”
“허튼소리.”
연위가 다시 가주실로 발길을 옮겼다.
“세상이 내 아들을 마두라 부른다면, 그 세상이란 놈을 내 검 아래 둘 것이다.”
“…….”
“쉬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