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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15화 (15/963)

15화. 사신(四神) 발동 (5)

퍼펑!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암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위력이 강력한 무공을 구사했지만 빈틈이 없다. 기의 질적 향상만큼이나 자세도 정교해진 것이다.

“호오?!”

뇌화방주, 마방(馬訪)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제갈준을 뒤로 하고 자세를 낮춘 제갈아연의 몸에서 새하얀 서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순하고 깨끗하면서도 강한 성질의 기(氣)였다. 도가(道家)의 신공이 아닌데도 무척이나 깊고 청정하다. 심지어 기분 좋은 박달나무 향이 나는 듯도 했다.

제갈세가가 자랑하는 현원전단신공(玄元栴檀神功)이었다. 가주와 장로들의 허가를 받지 않은 자는 절대 익힐 수 없는 비기(秘技) 중 하나였다.

“굉장하구나! 계집이라도 동생보다는 낫다 이거냐?”

“닥쳐라!”

터엉!

제갈아연이 마방에게 달려들었다.

숨겨 두었던 비기를 개방하니 운신의 속도가 더 빠르고 경쾌해졌다. 놀란 마방이 왼손에 쥔 비수를 거칠게 휘둘렀다.

핑! 피잉!

제갈아연의 상체가 유연하게 움직이며 비수의 궤적을 모조리 피해 냈다.

마방의 비수에는 독이 묻어 있었다. 일격이라도 허용하면 전투력이 대폭 삭감될 것이다. 그 위기감이 제갈아연의 오감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었다.

제갈아연의 손이 마방의 복부를 후려쳤다.

퍼엉!

‘들어갔다!’

마방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전단신공과 연계한 소천성장법이었다. 제갈준의 소천성장법보다 분명히 한 수 위, 게다가 진기의 힘이 훨씬 더 강했다.

‘곧바로 후속타를 연계해서……!’

그때, 한 줄기 섬광이 번뜩였다.

곧바로 공격에 들어가려던 제갈아연은 황급히 놀라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레 몸을 틀어서 하체에 엄청난 부담이 실렸다.

“쿨럭! 찢어 죽일 년이?!”

마방이 밭은기침을 하며 제갈아연을 노려보았다.

제갈아연은 당황했다.

‘어떻게 반격했지?’

전단진기(栴檀眞氣)를 실은 소천성장법의 진(震)자결을 적중시켰다. 내공으로 방어하지 않았다면 내장이 터졌을 것이고, 방어했다 한들 내부가 진동하여 움직이기도 힘들 것이다.

“캬악, 퉤! 쌍년! 좋게 좋게 상대해 주니 눈에 뵈는 게 없구나!”

파파팡!

아홉 개의 비수가 제갈아연의 사혈(死穴)을 노리고 쏘아졌다.

피리링!

이번에도 제갈아연은 비수를 피해 냈다. 대등한 고수와 실전을 겪은 경험이 없는데도 그녀의 반응은 상당히 기민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퍼어억!

“큭!”

옆구리에서 강한 충격이 일었다. 어느새 다가온 마방이 각법(脚法)으로 공격한 것이다.

본능적으로 막지 않았다면 갈비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물러난 제갈아연이 마방의 가슴팍에 주먹을 내질렀다.

퍽!

“으음!”

마방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하지만 충격은 받았으되 쓰러트리지도, 힘을 빼 놓지도 못했다.

‘이럴 수가?!’

대체 어떻게 돼먹은 몸뚱이지?

“후욱. 후욱.”

“역시 그랬군.”

스릉.

마방이 또 다른 비수를 꺼냈다.

“그 무공, 아직 네년에겐 무리였어.”

주르륵.

제갈아연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마방의 말이 옳았다. 현원전단신공은 회심의 한 수는 될 수 있어도 지속하긴 어려운 무공이었다. 아직 그녀의 수준이, 내공이 신공의 위력을 받쳐 주질 못하고 있었다.

마방이 주변을 보며 외쳤다.

“뭘 겁들 먹고 있어? 힘 빠졌으니까 그냥 다 덤벼들어!”

주춤거리던 뇌화방도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제갈아연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었다.

‘이렇게 끝인가?’

호흡이 흐트러진 순간 전단신공의 기가 끊어져 버렸다.

기(氣)란 언제나 의념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호흡이 불안정해지고 투지보다 걱정이 앞서니 자연 내공도 주춤하게 된 것이다.

사지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서서히 다가오는 적들의 살기를 대하자 마음 깊숙한 곳에 생소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공포였다.

“쳐라!”

“으아아!”

파라라락! 퍼벅!

일대다의 난전이 펼쳐졌다.

* * *

“혀, 형님!”

“…….”

연호정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연지평이 이를 악물었다.

“형님이 안 가시면…… 저라도 갈게요!”

파악!

단숨에 난간을 뛰어넘은 연지평이 삼 층, 이 층의 난간을 밟고 일 층으로 내려섰다.

한참 동안 제갈아연에게 시선을 집중했던 연호정이 고개를 내렸다. 일 층에 내려선 연지평이 대문을 향해 다급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연호정이 한숨을 쉬었다.

화르르륵!

일 층에서 대문 밖의 불꽃이 보였다. 담의 높이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크기였다.

‘이익!’

연지평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이런 곳에 갇혀 있다간 몸은 멀쩡해도 정신은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았다. 당장 연지평도 움츠러드는 심신을 어떻게든 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별거 아냐. 어서 제갈세가 사람들을 구해 주고 불길을 잡아야 해!’

크게 심호흡을 한 연지평이 대문을 열고 나아가려 한 순간.

부아앙! 콰앙!

공기를 태우는 소리와 함께 대문의 빗장이 부서졌다.

부서진 대문 파편이 불꽃의 크기를 키웠다. 동시에 휘몰아친 강풍이 무섭도록 타오르는 불꽃을 앞으로 확 밀어젖혔다.

연지평의 눈이 커졌다.

맑고 깨끗한 그의 눈에 불꽃을 휘감으며 뛰쳐나가는 푸른 광영이 엿보였다.

“형님!!”

* * *

퍼억!

“쿨럭!”

옆구리를 강타한 철제 몽둥이에 제갈아연은 기어이 피를 토했다.

‘내장을 다쳤다.’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몸은 여전히 천근만근이었다. 뇌화방도들의 실력은 방주 마방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공격 하나하나에 진기를 실을 줄 알았다.

축적된 타격에 내부가 진탕했고, 이번 일격에 내장에 출혈이 일었다.

풀썩!

의지와 무관하게 무릎이 꺾였다. 극한의 싸움을 해 본 적 없던 제갈아연에겐 여기가 한계였다.

“쓰, 쓰러졌다!”

“크큭! 발정 난 암말처럼 날뛰더니!”

“방주님! 아예 이 자리에서 맛 좀 보시죠?”

저열한 음담패설이 귓가를 간질였다.

공포와 분노가 치솟았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제갈아연이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음침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방의 얼굴이 보였다. 정말 이 자리에서 겁간이라도 할 것 같았다.

‘자결을……!’

그때였다.

퍼어억!

뭔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시뻘건 액체가 제갈아연의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후두둑! 쿵!

“헉!”

“뭐, 뭐야?!”

뇌화방도들이 화들짝 놀라 쓰러진 시체를 바라보았다.

쓰러진 시체는 그야말로 끔찍했다. 마치 거인의 손에 짓이겨진 것처럼 목 윗부분이 거칠게 뜯겨 나갔다. 날아간 머리통은 산산이 조각나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머리가 날아갔지만 손가락은 여전히 까딱거리고 있었다. 그게 오히려 보는 이의 두려움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 시체 옆에는 길쭉한 철봉 하나가 땅에 꽂혀 있었다.

마방의 눈빛이 돌변했다.

“뭐냐?”

뇌화방도들이 초성루 대문을 바라보았다.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쉬며 걸어오는 청년이 있었다.

이제 약관에 이르렀을까? 상당한 장신이었지만 체구는 문사(文士)처럼 호리호리했다.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인상이었지만, 강하다기보단 대쪽 같다는 느낌을 주는 청년이었다.

마방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너 뭐야?”

“시끄럽다, 미친 방화범 새끼야.”

“……?”

“왜 멀쩡한 주루에다 불을 지르고 지랄이야, 이 꼴통 새끼야. 확 아가리에다 오줌통을 처박아 버릴라.”

그야말로 원색적인 욕설이었다.

마방은 당황했다. 이십 년이 넘도록 뒷골목을 전전하며 살았지만 저런 무지막지한 욕설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때, 방도 하나가 몽둥이를 들고 다가왔다. 폭력의 광기에 취한 듯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린놈의 새끼가 어느 안전이라고…….”

푹! 털썩!

다가오던 방도가 그대로 쓰러졌다.

마방의 눈이 커졌다.

‘뭐야?’

쓰러진 방도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기절이 아니었다. 죽었다.

‘대체 어떻게 죽인 거지?’

죽은 방도의 몽둥이를 든 연호정이 발을 굴렀다.

순간 마방은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을 느꼈다.

“막아!”

퍼어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도 하나가 쓰러졌다.

머리통이 깨져서 피가 줄줄 흘렀다. 피부가 찢어진 걸 넘어 몽둥이 자국 그대로 함몰이 됐다. 일격에 즉사였다.

연호정이 어깨를 매만졌다.

“어깨가 버텨 주려나 모르겠군.”

퍼어억!

넋 놓고 있는 사이 또 다른 방도가 쓰러졌다.

이번에도 머리였다. 처음 전사(轉絲)를 걸어 던진 철봉으로 머리통을 날린 것도 모자라 몽둥이로도 머리를 깨트려 죽인다.

서슴없는 살수(殺手)였다. 제갈아연의 격식 있는 무공과는 완전히 달랐다. 빈틈만 보이면 그 길로 일격필살의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이제야 상대의 능력이 범상치 않은 것을 깨달은 방도들이 저마다 병장기를 치켜들었다.

“이, 이놈이?!”

“죽여라!”

마방이 외쳤다.

“멍청이들! 인질을 잡고 협박을 해야……!”

퍼버버벅!

그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순식간에 방도들의 품 안으로 파고든 연호정이 신들린 듯 몽둥이를 휘둘렀다. 한데 그 몽둥이질이 기이했다.

빠르지도, 강하지도 않다. 겉으로 보기엔 눈 감고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몽둥이질이었다.

한데 방도들은 그 간단한 공격을 막지 못하고 쓰러졌다. 일격에 일살(一殺)이었다. 머리가 깨져 죽은 놈도 있지만, 가슴이나 요추를 맞고 죽은 놈들도 있었다.

‘사혈(死穴)!!’

그렇다.

연호정은 철곤(鐵棍)으로 적의 사혈만 골라서 후려치고 있었다. 머리를 노릴 땐 더 강한 힘을 실어 박살 내지만, 그 외의 부위는 가장 가까운 사혈을 찍어 죽이는 것이다.

마방은 믿을 수 없었다.

칼도 아니고 몽둥이로 사혈을 쳐서 죽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건 절정고수의 내력이 없으면 쉽게 시도하지 못한다.

‘한데?!’

아무리 봐도 절정고수는 아니다. 움직임이, 흘러나오는 내공이 그러했다. 잘 쳐줘야 자신과 비슷하거나 한 수 아래였다.

그런데 어떻게 저리 쉽게 사람을 죽이지?

“뭐야, 이놈들? 우리 집 뒷골목 건달패도 너희보단 조직적이겠다.”

어느새 스무 명의 방도들을 쓰러트린 연호정이 피 묻은 몽둥이를 던졌다. 그러고는 땅에 박힌 자신의 철봉을 뽑아 들었다.

마방은 이전처럼 웃을 수 없었다.

“너, 이름이 뭐냐?”

연호정은 대답 없이 제갈아연을 내려다보았다.

제갈아연의 눈이 희미하게 떨렸다.

“고, 고맙…….”

터억!

“크윽!”

연호정이 제갈아연의 손목을 낚아챘다.

가만히 맥문에 집중한 연호정이 혀를 차며 손목을 내쳤다.

“일단 아니라고 봐야겠군.”

“네, 네?”

“동생 챙겨서 뒤로 물러나라.”

“…….”

“거치적거리니까 빨리 꺼져!”

화들짝 놀란 제갈아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호정의 목소리엔 강한 힘과 권위가 실려 있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두 다리에 힘이 쫙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연호정이 마방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방의 얼굴은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햇병아리 놈이…….”

“음한백류(陰寒白類)는 아니고, 음화홍류(陰火紅類)냐?”

“……!!”

마방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불 지르고 다니는 이유가 있었군.”

“너, 너 어떻게 음화를……?!”

후우우웅!

묵직한 철봉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불(火)이라? 마침 잘됐군. 물(水)을 키우기 딱이야.”

“……?!”

“뭐 해?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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