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돌아온 탕아 (1)
“환장하겠군.”
조사당(祖師堂)에 갇힌 연호정이 푸념했다.
“자비 없는 건 여전하시네.”
제사가 끝나고 집무실로 온 아버지는 딱 한 마디로 벌을 결정지었다.
‘사흘 동안 조사당에 들어가 선조들께 사죄의 시간을 갖거라.’
그 말을 끝으로 아버지는 곧바로 업무에 들어갔다. 연호정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반가웠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이 축소되거나 부풀려지기 마련인데, 아버지는 기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감이 들었고, 과거로 돌아왔음을 확신했다.
……사흘이나 갇혀 있어야 한다는 건 마음에 안 들었지만.
벽에 머리를 기댄 연호정의 얼굴에 다시 한번 의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조사당에 갇힌 지 한나절 동안 가장 많이 고민한 게 그 부분이었다.
사후 세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과거로 돌아가진 않는다는 건 확실했다. 죽어서 다들 과거로 회귀했다면 세상은 아비규환이 되었을 테니까.
즉, 그의 회귀는 절대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이유를 알아야 해. 원인 모를 현상은 훗날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무공도 마찬가지다. 노력 이상의 성취는 반드시 이유가 있으며, 모르고 지나가다간 목숨이 위험해진다.
과거로 회귀했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였다.
한참 생각에 빠졌던 그는 한숨을 쉬었다.
“젠장, 이게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잖아.”
기반 지식이 있어야 유추라도 해 보지.
조금 더 생각해 보던 연호정은 결국 고민을 포기했다.
“어쨌든 수상한 낌새는 없으니 당장은 그걸로 만족해야지.”
과거로 돌아왔으니 당연히 그의 몸도 과거의 몸이다.
하지만 단련된 그의 혼(魂)은 여전히 흑제성주, 흑도대종사 흑암제(黑暗帝)의 그것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육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괜찮다고. 고민한다고 나올 답은 아니니 당장은 잊으라고.
고민을 버리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한 번 지나 버린 생을 다시 살 수 있다…… 과거의 후회도, 아쉬움도 털어 낼 수 있다는 건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어린 시절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사실 실수라기보다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소심한 자의 발악에 가까운 언행들이었다.
그래서 후회도 많았다.
조금만 차분했더라면, 조금만 신중했더라면, 조금만 용기를 냈더라면.
그랬다면 그의 과거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씁쓸함에 고소를 짓던 연호정이 일순 눈을 번뜩였다.
“잠깐만, 생각해 보니 이거 보통 일이 아니잖아?”
단순히 회귀에 대한 의문 때문이 아니었다.
연호정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지금 내 나이가 어떻게 되지?”
최소한 이십육 년 전보다 더 오래된 과거일 것이다. 가문이 멀쩡하고 평화로우니까.
그렇다면 내 나이도 스물이 되기 전이라는 건데?
‘지평의 외양을 봤을 때 대략 열다섯에서 여섯. 그럼 내 나이가 열여덟에서 아홉이라는 건데?’
아무리 대단한 무공을 쌓았다 해도 너무 오래된 과거였다. 아버지와 동생의 얼굴만 보고 언제인지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과거를 잊은 채, 앞만 보고 달린 세월이 너무나도 길었기 때문이다.
‘그럼……?’
날씨를 보면 지금은 가을.
그렇다면 가문의 멸문까지 짧으면 반년, 길어야 일 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빌어먹을!’
마음이 급해졌다. 벌이고 자시고 마음 편하게 앉아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연호정이 서둘러 조사당의 문을 열었다.
덜컹!
“어?!”
연호정이 놀란 눈으로 문밖에 선 소년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피부. 키는 제법 컸지만 맑은 눈과 귀여운 외모가 무척이나 앳되어 보였다.
“지평?”
“형님? 어디 가세요?”
“어? 어…… 그게…….”
생각해 보니 막상 가려고 해도 갈 데가 없었다. 시간의 촉박함을 깨닫고 저도 모르게 반응했던 것뿐이었다.
연지평이 연신 눈을 끔뻑였다.
“조사당에서 나가시면 안 되잖아요? 아버지께서 사흘 동안 벌을 내리신 거 아니었어요?”
“……맞지.”
“으이구! 안 돼요. 요 주변에 비응대(飛鷹隊)가 순찰을 돌고 있다고요. 걸리면 바로 아버지한테 이거예요, 이거.”
연지평이 손날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제법 살벌한 흉내였지만 워낙 표정이 순진해서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너는 여기 왜?”
“헤헤, 제 거처에서 조사당 뒤 숲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있거든요. 개구멍 하나 팠죠.”
“개구멍을?”
“네.”
“뭐 하러……?”
품에서 두툼한 보따리를 꺼낸 연지평이 자랑스레 앞으로 내밀었다.
“요잇!”
“……?”
“…….”
“뭐냐?”
연지평이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주먹밥이요.”
“주먹밥?”
“아무리 벌이라도 밥까지 굶는 건 좀 심하잖아요. 사흘 동안 물만 마시고 지내라니, 그건 아니라고 봐요.”
“그러다 아버지한테 혼나면 어쩌려고.”
“에이, 설마 이런 거로 혼내시려고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분이란다.
어찌 되었든 주먹밥까지 들고 온 마당에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들어와라.”
“넵!”
희희낙락하며 조사당으로 들어온 연지평이 재빨리 보따리를 풀었다. 그러자 옅은 김을 뿜는 주먹밥 세 덩이가 나왔다.
연호정이 주먹밥 하나를 들었다. 거의 자신의 얼굴만 한 크기였다.
“배고프시죠? 많이 드세요. 제가 내일 또 가져올게요.”
물끄러미 주먹밥을 내려다보던 연호정이 연지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연지평은 연신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연호정은 동생의 웃는 낯 속에 드리워진 묘한 초조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초조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평아.”
“네?”
연호정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고민이 됐다.
막상 이렇게 마주하니 과거의 잘못이 더욱 생생하게 떠올랐다. 후회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가 가장 후회하는 것이 바로 동생에 관련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을 끌 일이 아니었다.
고심하던 연호정이 솔직하게 말했다.
“그간 미안했다.”
뜬금없는 사과였다. 연호정은 당황했다.
“네? 뭐가요?”
“나는 못난 놈이다. 국거리도 안 되는 자존심 때문에 동생을 질투한 소인배지. 동생의 성장을 응원해 줘야 함에도, 나는 그것을 못 했다.”
연호정이 고개를 숙였다.
“미안했다.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거야.”
“혀, 형님! 갑자기 왜 이러세요?”
“용서받으려고 사과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그리하지 않겠다는 걸 말해 주고 싶어. 다만 그것뿐이야.”
과거, 연가가 멸문하기 전.
연호정은 연지평을 극도로 증오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연지평의 재능이 가문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뛰어났기 때문이다.
연호정의 재능 역시 부족한 편은 아니었지만, 동생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연호정이 오 년 동안 피땀 흘려 쌓아 둔 탑을, 연지평은 삼 년도 되지 않아 여유롭게 쌓을 정도였다.
그래도 치기 어린 시절엔 두 사람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여느 형제보다도 우애가 깊었다.
그러나 연호정의 나이 열다섯.
가문에서 소가주(小家主)직을 형제 중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을 때.
바로 그때, 연호정은 마음의 문을 닫았다. 동생을 질투했고, 증오했으며, 나아가 없는 사람 취급까지 했다.
‘멍청한 놈.’
그놈의 소가주라는 직책이 무엇이기에.
가문이 무너지고 혈육이 죽은 뒤에야 깨달았다. 가족 사이에, 서로가 맡은 직책 따위에 의미를 두는 것만큼 한심한 일이 없음을.
그리고 또 깨달았다.
스스로 돌아보지 못했던 무의식에, 여전히 그는 아버지와 동생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너무나도 늦게 알아 버린 진심이었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그는 가족에게 사과할 순간을 놓쳐 버렸다.
그렇게 평생을 가슴에 담아 둔 진심이었다.
“구구절절 긴말은 하지 않겠다. 그저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앞으로 네가 죽을 때까지 날 증오한다고 해도, 나는 그에 대해 섭섭해하거나, 원망하려 들지 않으마.”
“형님.”
연지평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용기를 내서 주먹밥을 가져온 것도, 제사 때 자신을 보던 형의 눈빛이 이전과 달라졌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형이 자신을 용서했을까 싶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찾아온 길이었다.
다행이었다. 형은 더는 자신을 싫어하지도, 혐오하지도 않았다.
“으흐흑.”
북받친 듯, 연지평은 펑펑 울었다.
연호정은 연지평의 눈물이 내심 안쓰러우면서도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동생은 착한 녀석이었다. 이 정도 반응은 당연했다.
그러나 흑도의 군림자로 살아온 연호정에게 이런 반응은 몹시 희귀한 것이었다.
약자는 동정을 받는다? 헛소리.
약자를 밟고, 죽이고, 이용해서 힘을 키우는 것은 흑도 무림의 생존 원리였다.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사냥감에 불과한 것이다.
그 메울 수 없는 시간과 감정의 괴리에서, 연호정은 다시 한번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음을 확신했다.
잠시 후, 연지평이 감정을 수습했다.
“죄송해요. 제가 형님 앞에서 추태를 부렸어요.”
“추태는 무슨. 내가 미안하다니까.”
“아닙니다. 다 제 잘못인데 왜 형님이 사과를 하세요.”
빈말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더욱 미안했고, 고마웠다.
제법 진정이 된 연지평은 헤벌쭉 웃었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우애가 회복되어 기분이 좋은 것이다.
연호정이 저도 모르게 툭 던지듯 말했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던데.”
“네?”
“…….”
“……?”
연호정은 농담에 재능이 없었다.
역시 사람은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된다. 멋쩍은 듯 헛기침을 해 대던 그가 일순 표정을 굳혔다.
그 표정의 변화만으로도 연지평은 긴장했다.
“지평.”
“네?”
“네 나이가 지금 어떻게 되지?”
뜬금없이 나이는 왜?
얼떨떨했지만 연지평은 순순히 대답했다.
“열다섯이요.”
“그럼 내가 열여덟이구만?”
“네? 그, 그렇죠?”
아주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다. 반년이 아니라 일 년 하고도 반년이 더 남은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너, 비연심법(飛燕心法)을 얼마나…….”
그때, 조사당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이공자님.”
사무적이고 딱딱한 목소리였다. 연지평의 얼굴이 급속도로 창백해졌다.
“안에 계신 것 알고 있습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끼이이익.
조사당의 문이 열리고, 건장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좌측 요대에는 장검, 등에는 묵직한 박도(朴刀)를 멘 사내였다. 눈빛은 날카로웠고 전신 가득 피워 내는 군기는 엄정했다.
비응대주(飛鷹隊主) 강윤(姜倫)이었다.
“이만 나오시지요.”
강윤은 연호정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
“……사흘 뒤에 뵐게요, 형님.”
“알았다.”
연지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윤이 말했다.
“가지고 오신 짐도 모두 들고 일어나셔야 합니다.”
“네?”
강윤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저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연지평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연지평이 입술을 깨물었다.
“애써 가져온 주먹밥이에요. 사죄도 체력이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저는 그런 것은 모릅니다. 그저 연가의 신상필벌(信賞必罰)이 혈육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만 알 뿐입니다. 가주님께서 직접 내리신 명이니, 그대로 행해져야 마땅합니다.”
이견을 용납지 않는 딱딱한 목소리였다.
연호정은 주먹밥을 모두 싸서 연지평에게 건넸다. 연지평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제가, 제가 사흘 뒤에 맛난 거 사 드릴게요.”
“알았다.”
강윤의 눈이 번쩍였다.
형제 사이가 좋지 않음은 연가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한데 오늘은 좀 다른 것 같았다.
“가시지요.”
“알았어요.”
발이 떨어지지 않는 듯, 연지평의 걸음은 느릿하기만 했다.
강윤이 조사당의 문을 닫으려 할 때였다.
“강 대주.”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주먹밥은 내가 가져오라 시킨 것이다. 보고 올릴 때 그 부분 참고하도록 해.”
강윤의 눈이 다시 한번 빛났다.
“참고하겠습니다.”
쿵.
조사당의 문이 닫혔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무지막지하게 딱딱한 분위기가 이렇게 설렐 줄은 몰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