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그리고···>
흔적을 최대한 지운다고 지웠지만···금고를 사용하지 못하는 현재로서는 시체가 현장에 그대로 있다는 건 시간문제일 뿐 명이준 의원의 살인죄로 체포될 게 분명했다.
“후···범죄자를 잡는데 필요한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지원한 게 이렇게 돌아오나?”
쓴웃음을 입에 물면서도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까지 이룩한 모든 안정적인 삶이 살인자라는 굴레로 무너질 게 확실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홀가분한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명준의 안가에서 나와 가장 먼저 찾은 건.
“엄마.”
“주인이니? 어머 연락도 없이 웬일이니? 몸은 괜찮아? 밥은 먹었고?”
“엄마는 식사하셨어요?”
“주인이가 엄마 소리하니까.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부른 느낌이다.”
“네?”
‘아···내가 엄마를 어머니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서운해하셨구나···.’
“우리 아들이 이렇게 잘 커 줘서 엄마가 기쁘기는 했지만···어머니라고 부르니까. 거리감 느껴져서 좀 서운했거든. 오늘 엄마라고 불러주니까. 기분 좋은데? 이참에 오늘 저녁은 나가서 외식할까?”
“그러려고 식당도 예약했어요.”
“네가? 엄마가 사고 싶었는데···.”
“다음에요. 오늘은 제가 맛있는 음식 대접하고 싶어서요.”
“왜 그러니. 꼭 어디 멀리 갈 것처럼.”
“아마 이번에 투자가 잘되면 미국에서 한동안 못 올지도 몰라요.”
‘죄송해요.’
“아···.”
내가 한동안 멀리서 얼굴 보기 힘들 수도 있다는 말에 어두워지는 어머니 표정을 힘들게 외면하고는 한우 명가로 운전하기 시작했다.
배부르게 식사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오늘은 본가에서 자고 가는 거야?”
“네. 오늘 자고 갈게요.”
“그럼 엄마가 아침밥 거리 좀 사야겠다.”
“집에 있는 걸로 간단하게 먹어도 돼요.”
“아니야. 아들이 집에 왔는데 엄마가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해야지.”
“그럼 제가 마트 들렀다 올게요. 오늘도 편의점에서 서 있느라 힘들었을 텐데 집에서 쉬고 계세요.”
“내가 사장인데···힘들게 어디있어.”
“요즘 사장님들이 더 힘들다고 하던데요. 뭐. 아르바이트생 구하기도 하늘에 별 따기고.”
“그건···.”
“괜찮으니까. 들어가서 쉬세요. 필요한 거 문자로 보내면 사서 갈게요. 그리고 좀 늦어도 걱정하지 마세요.”
“왜? 어디 들렸다고 오게?”
“아버지 산소요.”
“아들 요즘 힘든 일 있어?”
나는 오늘 어머니와 식사하는 내내 더 밝고 기운찬 목소리를 냈는데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말에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바보같이. 이러면 무슨 일 있다고 말하는 거하고 다를 게 없잖아.’
나이는 먹었지만···어머니 앞에서는 언제나 어린 아들이 되고 마는 내 모습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무슨 일 있는지는 모르지만···너무 무리하지 말고···그리고 엄마는 항상 우리 아들 편인 거 알지?”
“네···.”
평소에 하시던 말씀 그대로였는데 그 따뜻한 말 한마디에 나는 고개를 돌리고 급하게 차를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갈비하고···.’
어머니가 보내주신 한 보따리는 되는 장바구니 목록을 보면서 쓴웃음과 함께 소화제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올 때마다 이렇게 힘들게 음식 하는 걸 아니 자주 오기 부담스러웠는데···.’
사실 어머니가 힘들게 요리하는 게 눈에 선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그저 본가에 오기 귀찮았던 게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이제는 다시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평소와 다름없는 이 일상 하나 하나가 나에게 너무 소중하게 다가왔다.
‘내일은 동생 면회나 가볼까?’
면회 갈 때 가져갈 간식거리도 채우니 카트가 굴러갈지 의심스러웠지만 강화된 육체는 아슬아슬 중심을 잘 잡으며 차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하늘은 이미 한참 어두워져서 달도 숨어버린 날이었지만 안력도 강화된 나는 손쉽게 아버지 산소를 찾아 올라갈 수 있었다.
산소 앞에서 한참 묵념을 하고 눈을 뜨자 익숙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어르신.”
“허어···.”
대백공은 뒷짐을 진 채 나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달조차 사라진 하늘은 어둡기만 할 뿐인데···거기서 무엇을 보는지 알 길이 없었다.
“선재라···. 넘치면 모자란 만 못한 것을 내가 너무 넘치게 줬구나.”
“아닙니다. 제가 도구에 휘둘린 탓인 거죠.”
내 대답을 들은 대백공이 나를 한참 내려보더니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회귀는 많은 지기를 소모하는 나로서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계약이었다.”
“···.”
“그런데 자네 아버지에게 그 대가를 자신이 지겠으니 자신의 아들에게 기회를 달라고 했지.”
“···.”
“아들이 행복하게 사는 삶.”
“···?”
“지금 자네는 행복한가?”
“나로서는 손해날 것이 없는 계약이라고 생각했지만···그것이 아니었던 것이지.”
“네?”
“행복이란 건 돈이 많고 가족이 건강하고 친구가 많다고 해서 행복이 아니지. 돈이 없고 가족도 없고 친구가 없어도 행복하게 사는 이도 있지.”
“···?”
“허허···선재라···내가 자네 아버지에게 제대로 당했구만···허허허···”
대백공은 아버지와의 계약이 불공정했다고 하면서 오히려 웃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백공을 바라보자. 하늘을 가르키면서 나에게 말했다.
“자네가 저지른 업이 지금 자네를 쫓고 있다네.”
“알고 있습니다.”
“허허···정의의 저울을 올바르게 사용했다면 생기지 않을 일.”
“전 더 이상 도구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구만···.”
“···.”
“나는 자네의 아버지와 계약 때 자네의 행복을 기원했네. 저 업이 자네를 덮친다면 죽음보다 더한 괴로움 속에서 살다 단명하게 될 것일세.”
“제 잘못 때문이라면···.”
“어디 자네의 잘못만 있겠는가? 넘치면 모자란 만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네에게 모조품이라고는 하기만 신기를 넘긴 나의 잘못도 있는 것이지.”
“그건···.”
“욕심이 눈 앞을 가린 것이지.”
“···?”
“정의의 저울을 통해서 꽉 막혀있는 인세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를 바란 것은 내 욕심이었네.”
“하지만 그 도구를 사용한 건 접니다.”
“처음부터 인간의 삶에 정답이 없거늘···내가 원하는 곳으로 향하길 바랬으니 그에 대한 대가가 온 거겠지.”
“어르신?”
“나는 소멸할걸세.”
“···!”
“천기를 내 뜻대로 하려 했으니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겠지.”
“···?”
“자네 춘부장과의 계약을 이행하려면 자네를 다시 회귀시켜야 하네만···지금의 나로서는 불가능하네.”
“회귀를 또 할 수 있다고요?”
“회귀를 하는데 드는 지기가 많이 소요되어서 그렇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네. 다만 지금의 나로서는 할 수 없을 뿐.”
“···?”
“내가 왜 인세의 꽉 막힌 흐름을 풀려고 했는지 아는가?”
대백공의 허허로운 신선 같은 모습만 보다가 소멸을 논하는 지금이 오히려 더 가깝고 어떻게 보면 회귀 후 나의 삶에서 가장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던 친구처럼 느껴졌다.
“날이 뜨거웠다. 추웠다. 홍수와 지진 폭우와 가뭄이 한꺼번에 몰아쳐 오고 있지.”
“그건 지구 온난화 때문에···.”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니지. 인간의 업이 돌아온 것이니 말일세.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생긴 것도 분명하다네.”
“근본적인 문제라면···?”
“지구가 인간을 배제하려고 하네. 멸망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네?”
“멸망이 시작되었는데···인간이라는 종을 멸종시킨다고 멸망에서 살아남을 수 있나요?”
“지구는 멸망이 예정된 세계에서 최대한 멸망을 유예 시키려고 하는 것일세. 필멸이 예정되었다고 해도 수 천년 수 만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필멸자의 입장에서는 아주 긴 시간의 유예가 될 테니 말일세. 공룡이 멸종한 것도 같은 맥락이지.”
“지구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신을 소멸시킬 수 있나요?”
“멸망이 시작되기 전의 세계라면 신들은 불멸이지. 하지만 멸망이 시작된 세계의 신은 그 불멸성이 깨진다네.”
“불멸성이 깨진다고요?”
“필멸하는 세계의 신이 불멸이라면 모순이 아닌가?”
“아···.”
“인간이 생존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별의 멸망이 가속화된다고 판단하고 이미 수 천 년 전부터 인간이라는 종을 멸종하기 위한 지구의 의지를 예지한 신들이 있었지.”
“그럼···.”
”라그나로크 신화를 써서 다른 세계로 떠난 신들은 전부 인간과 연관된 신들이었다네.”
“···.”
“나조차 중립을 유지하고 긴 세월을 지냈건만 인간이라는 존재의 헛됨. 욕심. 어리석음. 그러나 그 짧은 생을 태우는 열정에 점차 감화되어버린 것이지.”
나는 살인죄로 잡혀갈 것을 고려해서 신변정리를 하기 위해 올라온 선산에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에 정신이 멍해졌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방법이 하나 있다네.”
“네?”
“신들이 떠난 세상으로 가는 것일세.”
“다른 신들처럼 말입니까?”
“그래. 그렇다면 나는 소멸하지 않고 봉인된 상태가 되겠지. 물론 지금보다 훨씬 약하고 의사도 표현하지 못하는 존재로 오랜 시간 잠들어있어야 할지도 몰라.”
“···?”
“그런 나를 깨우고 신격을 찾게 도와준다면 나도 자네를 다시 한번 회귀할 수 있게 도와주겠네.”
“네?”
“회귀를 하는데 필요한 지기와 다시 지구로 돌아올 지기 그리고 내 봉인을 풀 지기를 모아온다면 말일세.”
“지기요?”
“쉽게 말해서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네.”
“제가 처음 회귀했을 때 소모된 지기만으로도 어르신이 감당하기 힘들어하셨는데 제가 살아있는 동안 그 지기를 전부 모을 수 있을까요?”
“이 별을 떠난 순간 자네는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존재가 될걸세.”
“네?”
“그렇다고 함부로 죽어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
“이곳 세계가 자네의 영육이 속한 곳이네. 그런 자네가 다른 세계로 가게 된다면 그곳에서 영이나 육이 손상을 입어도 이 땅에서처럼 죽음에 이르지 못한다는 걸세.”
“그럼···.”
“늙지도 죽지도 않은 상태에서 내 봉인을 풀고 회귀할 수 있는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는 말이지.”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쉽게 결정하지 말게나. 인간이 홀로 수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정신이 마모되고 미쳐버릴 수 있는 문제니까.”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나요?”
“이곳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의 존재이기 때문에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라면 이곳 세계의 에너지가 아닌 다른 세계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더 많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단점도 존재한다네.”
“더 많은 양의 에너지라면?”
“내가 사용하는 지기로 환원하는 도중에 흩어지는 에너지를 생각할 때 교환비가 좋지 않을걸세. 거기다 세계마다 다르겠지만 지독하게 지구의 기운을 얻기는 힘들 걸세.”
“···?”
“다른 세계 그것도 멸망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세계의 기운을 다른 세계에서 채우는 게 쉬웠다면 멸망하는 세계가 있겠나?”
“아···.”
“쉽지 않은 여정이 될걸세. 그래도 도전해보겠나?”
“이대로 죽어도 싼 명이준 같은 놈을 죽였다는 이유로 저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오욕을 당하게 하느니 도전해보겠습니다.”
“나는 이곳 세계를 벗어난 순간 신격에 손상을 입게 되어 지금처럼 자네와 대화를 할 수는 없을 걸세.”
“그럼 어르신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겁니까?”
“흠···그것보단 쉽게 말해서 자네가 하던 게임의 상태창과 비슷할걸세.”
“상태창이라고요?”
“나의 기운이 자네와 함께할 테니. 자네의 상태는 내가 실시간 보여줄 수 있을 듯 하네만···. 그 이상은 힘들 걸세.”
“그럼 금고는 지금처럼 사용이 불가능 합니까?”
“다른 세계라면 이곳과 다른 제한을 가지고 술법이 발동될걸세. 다만,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나겠지.”
“···”
“나조차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알 수 없으니 주의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지금 바로요?”
“···?”
“아직 어머니만 뵙고 동생이나 친구들은···.”
“나도 자네에게 더 시간을 주고 싶지만 깨진 정의의 저울 속 업들이 자네를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고 있다네. 쉽게 말해서 시간이 없어.”
대백공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지금 출발하지 않는다면 다음 기회는 없다네. 이 고행을 시작하겠는가?”
“네.”
“그럼 마음 단단히 먹게나. 이 공간을 통과하고 나면 나조차 내가 어떻게 자네와 함께하게 될지 알 수 없으니.”
나는 대백공과 한번 눈을 마주하고
대백공이 만들어낸 시커먼 구덩이 같은 공간으로 몸을 던졌다.
내가 지구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난 도전한다.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한 또 다른 기회를 잡기 위해···
삶이 끝나기 전까지 발버둥 치고 또 발버둥 칠 것이다.
삶이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했던가?
질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나는 사람답게 사는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