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자백>
“글세···자네가 그자를 막을 수 있을까?”
“그게 무슨 말씀이죠? 제가 그자를 막지 못할 정도의 권력자라는 말씀입니까?”
투자회사가 크게 성공해서 돈에 연연하지 않게 된 이후로 심판자에 대한 소문 덕분인지 강력범죄가 줄어들면서 웬만한 범죄는 자신이 직접 심판하지 않아도 초록흥신소를 통해 증거를 모아서 신속하게 법률 테두리 안에서 처벌받게 눈에 띄지 않게 활동했다.
‘혹시 명이준 의원?’
명이준 의원은 증거가 불충분한 게 아니라 경찰과 검찰을 쥐고 흔드는 다수당을 방패로 수사를 교묘하게 방해를 하고 있다. 다수당을 전국구 조폭 조직처럼···범죄자들을 위해 법적 질서를 혼란하게 만드는 곳처럼···만든 나쁜 방향으로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다.
‘근원적 죄를 밝히지 못해서 봉인만 해둔 거짓된 모든 것의 사도···.’
나는 대백공의 대답을 미리 듣기라도 한 듯 마음을 다잡고 기다렸다.
대백공이 그런 나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대백공이 말한 이를 찾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
낯설지만 내가 알고 있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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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수···.”
“당신이 진짜 심판자?”
“···.”
“정말 날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는데···. 당신의 이름을 이용한 게 기분이 나빴나?”
내가 생각했던 심은수와의 만남은 이런 게 아니었다.
대백공이 말한 ‘인간의 삶의 흐름은 참으로 예측하기 힘들다.’라는 의미가 이런 걸까?
어두운 방 한 가운데 서서 나와 심은수는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혼자 사는 집에 복면을 쓴 그것도 덩치가 자신보다 큰 남자가 인기척도 없이 나타난다면 두려워할 법도 한데 심은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자랑하듯 소파 옆 미니 냉장고에서 탄산수를 꺼내 보는 내가 시원해질 정도로 개운하게 마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하는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을 내뱉는 건지 거실 한쪽을 차지한 야경을 한참 바라보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심판자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직감했지. 이거라면 엄마를 빼낼 수 있겠다.”
“···.”
“심판자라는 말에는 지금의 법적 심판이 얼마나 무능력하고 무질서한지를 상징하고 있어.”
“···.”
“아무도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사실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거지.”
“···.”
“힘 있는 자들은 같은 죄를 지어도 무죄를 받고 힘없는 자들은 힘 있는 자들이 만든 법안에서 처벌을 받는다는 걸.”
“···.”
“그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지금의 상황 아니야?”
“···.”
“다수당의 의원은 명백한 정황과 증인이 있어도 권력자라는 이유로 거리를 활보하고···증인과 사건 증거를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세상···. 불쌍한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만 잡아 쳐넣는 세상···.”
“···.”
“음주운전을 해도 국회의원이 되고···.”
“···.”
“세금을 내지 않아도 국회의원이 되고···.”
“···.”
“국회의원은 거짓말을 해도 거짓말이 아닌 세상.”
“···.”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심판자라는 존재를 원하고 바라고 무의식적으로 요청한 거지.”
“···.”
“지금의 상황을 바꾸고 싶다. 하지만 평범한 나로서는 바꿀 수 없다. 그러니 평범하지 않고 강력한 누군가가 지금의 상황을 바꿔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의식을 표면으로 끌어올린 것에 불과해.”
“그게 네가 말하는 심판자라는 건가?”
“그래. 내가 한국에 들어온 이유는 엄마를 보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불쌍한 우리 엄마 같은 사람만 괴롭히는 지금 한국의 잘못된 법질서를 부숴버리고 싶었어. 그런 나의 상황에서 심판자라는 도시 전설은 나한테 심판자가 한 줄기 빛이 된 거지.”
“심판자라는 이슈를 크게 키워서 잘못된 지금의 법질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겠다는 게 네 의도라고?”
“그래. 한국이라는 나라의 평범한 이들이 굳게 참고 지키려고 노력했던 질서는 결국 권력자들에게 그런 노력조차 착취당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 그리고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 때문에 조작되고 조명받지 못한 잘못된 판단으로 억울한 사건을 다시 평가해서 불쌍한 우리 엄마처럼 억울한 사람을 풀어줘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고 싶었던 거지.”
“네 어머니는 억울하게 붙잡혔다는 말에는 공감이 간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너희 어머니라는 분이 바라실까?”
“엄마는···.”
나는 종혁이에게 부탁을 통해서 사건 자체가 그리고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조춘희 씨의 자백에 의구심을 느끼고 사건에 대해서 초록흥신소를 통해서 재조사를 했었다.
“심판자라고 자처하는 이유가 뭘까? 제대로 재심을 신청하려고 하면 할 수도 있는 어머니 사건을 왜 억울하다고만 말하고 정작 사건 당사자는 제대로 된 진술조차 안 하려는 걸까. 고민했어. 그 모든 걸 설명해줄 수 있는 건 믿기 힘든 가설뿐이었지. ”
“그래. 우리 엄마는 나 때문에 감옥에 가 있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말했어. 내가 여기서 자백을 한다고 해도 엄마가 유죄 주장을 계속적으로 할 거야 그래서 내가 자백한다고 해도 결국 엄마는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다고···.”
“어째서···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이미 경험해 봤으니까···난 이해가 안 가. 나는 당시에 형사미성년자였어. 그 개새끼를 죽인다고 해도 사고사라고 판명 나면 잠깐의 감시처분이면 끝이었다고 그런데도···.”
“어머니는 내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시길 바랬군.”
“난···.”
“평범하게 산다는 건 옆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고난한 일이란 걸 몰랐는지도 모르지.”
“···?”
“어머니도 평범한 삶을 산 건 아니니까. 그저 평범하게 그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쓰레기 같은 남자지만 결혼해서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참고 산 게 아닐까? 참고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평범하지 못하다는 걸 모르고 말이야.”
“엄마가···평범한 삶을 살아본 적 없어서 내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랬다는 말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딸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랬기 때문에 모든 오욕을 자신이 짊어지고 딸은 평범한 삶을 살길 바라신 게 아닐까?”
“그건···. 그렇다고 해도 난 엄마의 자유를 포기할 수는 없어.”
“지금의 네 선택을 네 어머니가 바라실까?”
“그건 몰라. 하지만 나하고 엄마는 달라.”
“···?”
“나한테는 엄마가 그런 선택을 하는 게 너무 아팠어. 난 충분히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었어. 무조건적인 자수를 하는 엄마만 아니었다면. 나 때문에 엄마가 잡혀가는 상황은 계산되지 않는 상황이었어.”
“너는···.”
“그때 알게 되었지.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건 맞지만 그 방식이 항상 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닐 수 있다는 걸 말이야.”
“···.”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을 엄마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슬퍼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하고 같이 있고 싶다는 건 사실이야. 그 방식이 엄마가 원하는 방법이 아닐지라도 말이야.”
“정말 이렇게까지···.”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거 알잖아? 엄마가 슬퍼하고 걱정할 거라는 건 예상했어. 하지만 진짜 심판자가 그것도 이렇게 빨리 나를 찾아낼 거라고는 나도 예측하지 못했어. 심판자라는 소문이 그저 떠도는 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나도 안나의 동생이 심판자에 관한 소문을 듣고 이용하려고 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언니 참 좋은 사람이야. 그래서 엄마의 존재에 대해서 모를 때는 언니를 엄마처럼 따랐지. 하지만 엄마에 대해서 알게 된 순간 알아버린 거야.”
“···.”
“언니는 나를 사랑하지만 내가 원하는 진실을 주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주지는 않는다는 걸.”
“···.”
“그렇다고 언니나 엄마를 미워할 수 있냐고? 아니. 그럴 수 없어. 왜냐면 나를 사랑해서 그렇게 한 행동이니까.”
“···.”
“그게 얼마나 답답하고 고통스러우면서···동시에 안도감이 드는지···.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
“하지만 힘들었겠지.”
“넌···도대체···차라리 처음부터 네가 너와 먼저 만났다면 지금의 상황이 조금은 바뀌었을까?”
“나는 심판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어째서 나 같으면 너와 같은 능력이 있다면 내 기준에 맞지 않는 불량품들을 전부 쓸어버렸을 거야.”
“불량품이라는 기준은?”
“내가 객관적으로 정하는 거지.”
“혼자서 하는 주관적 판단 어디에 객관이 있다는 거지?”
“···.”
“안타까울 뿐이야. 처음부터 내가 심판이라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아니.”
“···!”
“만약 심판자라는 존재가 없었다고 해도 난 지금의 잘못된 법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 뭐든 했을 거야. 엄마가 감옥에서 당당하게 나올 수만 있다면···.”
“너는···.”
“차라리 내가 자수를 하는 것도 꿈꿔봤어. 하지만 엄마가 그걸 용납 할 리 없다는 걸 깨달았지.”
“무슨···.”
“엄마가 감옥에서 자살시도를 한 것 알아?”
“···.”
“심판자인 너도 그것까지는 몰랐나 보구나?”
“···.”
“엄마가 자살시도를 한 건 내가 자수를 하겠다는 말을 듣고 난 후였어. 난 두려웠지. 나 스스로가 이렇게 나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 난 엄마를 이길 수 없어.”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들었는데···.”
“나와 엄마는 반대였지. 나는 엄마를 이길 수 없었어. 더 사랑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내가 엄마를 많이 사랑한 거야. 그래서 그게 합리적이지 않고 이기적이기 까지 한 선택이라는 걸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었어.”
“합리적이지 않다···.”
“그래. 내가 촉법소년이던 시절의 내가 사고사로 조사를 받았다면 무죄판결까지도 바랄 수 있는 상황이었어. 그런데 모든 게 바뀌어버렸지. 나를 발견한 안나는 신고를 했고 엄마는 자수를 했지. 전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내 계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어.”
“···.”
“그런데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슬퍼지더라···그리고 나를 그런 막다른 골목까지 밀어 넣고 도움의 손길은 내밀지도 않으면서 날카로운 법적 잣대만 내세우는 이런 나라 따위 망하게 만들고 싶었어.”
“···.”
“거의 성공할 수 있었는데 또 생각지도 못한 변수 때문에 내 계획이 엉망이 되어버렸네.”
“···.”
“심판자잖아? 내 죄에 대해서 뭐라고 판단했어?”
“···.”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어. 만약 심판자가 도시 전설이 아니라 정말 존재한다면···심판자가 실종시킨 범죄자들 전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지.”
“···.”
“심판자는 범죄자의 시체조차 남기지 않는다고 했는데···내 시체조차 찾지 못하려나? 최소한 엄마나 언니가 내 장례는 치를 수 있게 유품이라도 남기게 해줘.”
낯선 사람이 자신의 집에 들어왔을 때 담담하다고 생각했던 건 어쩌면 이미 자신의 삶에 미련을 놓아서 보인 행동이 아닐까?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경고의 의미가 강한 붉게 물든 눈앞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붉게 물든 경고 메시지 너머 가느다랗고 어린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도와달라고 양팔로 흔들고 외쳐도 아무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던 그래서 이제는 메말라버린 소녀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 위로 붉은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진다.
[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