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썩은 뿌리에서 탄생한 일그러진 영웅 3>
“인간들은 문명화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인간의 무관심 속에서 인신매매, 장기밀매, 살인, 강간 그리고 전쟁이라는 이유로 학살이 계속 이어지고 있지. 멸망의 길에 들어선 종이 서로를 죽이는 경우는···정말 놀라울 뿐이다.”
“···.”
“계속 이 땅의 식물 동물 모든 생명체가 줄어들고 멸종된 종도 많다. 인간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 있다고 해도 결국 멸망이 시작된 세계 속 필멸자일 뿐이지.”
“···.”
“멸망의 위기 속에서 각 생명체의 종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서로 다른 지역의 외래종이 되어서 생태계를 망가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끝없이 진화하고 잡아먹고 있지.”
“···.”
“그런데 비해서 인간은 같은 인류라는 카테고리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멸종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고···.”
“···.”
“그런 인간에게 희망을 가지는 것은 나의 미련이지.”
“희망이라고요?”
“나는 인간이 멸망을 가속화 하는 만큼 인간이 멸망을 늦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네.”
“타락하면서 멸망이 시작되었는데도 인간에게 희망을 가졌다는···.”
“회귀라는 행운이 자네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자네는 아직도 회귀가 행운이라고 생각하나?”
“···.”
“대답하기 어려울 테지. 회귀를 했음에도 후회되는 순간이 없었다고 완벽하지 못했던 순간이 분명 있을 테니까.”
내가 대백공의 말에 놀라 대백공을 바라보자 대백공이 허공에 떠 있던 거울을 다시 한번 조정하자 방금 거울을 통해 봤던 여성이 경찰에 끌려가는 장면이 나왔다.
“죄송합니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저···저는···죽일 의도는 없었어요.’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조금 훈육한 것뿐이에요.’
‘이렇게 일방적으로 저를 비난하다니. 자식을 키우면서 혼내지 않는 부모가 누가 있어요. 다들 위선자야. 세상이 잘못됐어. 이건 음모야.’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밀면 입을 꾹 다물거나 ‘죄송합니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습니다.’라고 했지만···대백공이 어떻게 한 것인지 물결이 강하게 요동치는 거울 속에서 그녀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거울을 깨버릴 것 같은 소음이 내 귀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전부 세상 탓이라고!!!’
그런 거울 속 여성의 말과 함께 유지되고 있던 물결 거울이 깨지고 허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네도 정말 세상 탓이라고 생각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데···세상이 험해서 살기 힘든 것 맞지만···그렇다고 모든 부모가 아이를 때리면서 훈육하지는 않습니다.”
“쉽게 살려고 한다면 한없이 쉽고 어렵게 살려면 한없이 어려운 게 인간의 삶이지.”
“···.”
“자네처럼 사람답게 살겠다고 하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어렵게 사는 것이고 부모 탓 세상 탓 모든 문제를 자신이 아닌 남 탓으로 돌리는 이들은 삶을 아주 쉽게 사는 것이지.”
“세상 탓 부모 탓 남 탓 하면서 편하게 산다는 겁니까?”
“내 잘못이 아니니 죄도 자신이 아닌 세상이나 부모 아니면 자신을 충동질한 남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건 말도 안 되는 궤변 아닌가요?”
“그런 궤변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
“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여도 술을 마신 자신이 아닌 술이 잘못이라고 하는 세상 아닌가?”
“···.”
“그에 비해서 자네는 너무 스스로를 몰아치고 있지. 자네는 김씨의 죽음마저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 않나?”
“···.”
“만약 거울을 통해 봤던 두 남녀가 자네의 입장이라면 세상 탓···김씨가 짊어진 운명 탓을 하며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할걸세.”
“그건···.”
“삶을 쉽게 살고 싶나? 전부 남 탓을 하면 된다네. 그런 삶은 본인은 편하겠지만 주변과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삶을 살겠지. 그렇다고···자네같이 어렵게 사는 삶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나?”
“···.”
“그건 인간의 오만이라네.”
“···.”
“인생은 쉽고도 어렵게 살아야 하는 법.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결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없지.”
“제가 잘못 살아왔다는 말씀인가요?”
“잘못이라···. 남에게 잘못했다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지. 묻겠네. 자네의 몸은 자네의 것이지만 자네가 갑자기 죽는다면 자네 혼자만의 슬픔인가?”
“어머니하고 동생···친구들이 슬퍼하겠죠?”
“너무 맑은 물에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네. 그런데 자네는 완벽하게 맑은 물을 꿈꾸고 있지.”
“···.”
“불완전한 필멸자가 스스로를 완벽으로 몰아붙이면 끝내 파멸밖에 남는 게 없다네.”
“···.”
“자네가 가진 술법이 자네를 전지전능한 불멸자로 만들어줬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그런데 왜 스스로를 출구도 없는 미로에서 헤매게 만드는가?”
“···.”
“무조건 남의 탓만 하는 자세도 나쁘지만···자신이 어쩔 수 없는 것을 스스로의 과오로 삼고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한 것도 바른길은 아니라네. 과하면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고 소화 시키지 못하고 탈이 나는 것처럼 말일세.”
“탈이라면···.”
“지금 금고가 사용이 안 되는 상황 아닌가? 나를 마주하기 거북했지만 금고에 대해서 물어보기 위해서 온 것 일 테지?”
나는 깜짝 놀란 시선으로 대백공을 바라보다 이내 깊은 숨을 들이쉬고는 그저 담담하게 바라봤다.
“저에게 많은 기회를 주셨는데···저에게 화가 나지 않으십니까?”
“자네에게 화가 날 이유가 없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런 존재 중 운명에 대적하고 하는 이를 선택한 것이 나일세.”
“제 삶은 어르신이 주신 회귀라는 기회를 그저 일신의 영달과 제 가족의 안위만 챙기는 삶인데도요?”
“그것이 인간이 가진 욕망이니 그것을 탓할 이유가 없지. 영달과 안위를 챙기고 타인의 삶을 가엽게 여길 줄 아는 이. 불의를 참지 못하고 충동적이고 자책하는 어리석은 인간.”
“···.”
“그럼 저는 어르신이 준비한 운명에 맞게 살고 있는 겁니까?”
각성 이후 대백공을 스스로 찾은 적이 없는 이유는
내 삶은 정말 순수하게 나의 것인가라는 질문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대백공이 나를 운명에 맞서는 존재이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질문하고 답하기를 멈출 수 없었다.
‘나의 삶이 대백공이 설계한 운명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나의 속마음을 읽어내듯 대백공의 말이 이어졌다.
“자네는 운명에 반항하고 운명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존재라네.”
“···.”
“내가 자네에게 영향을 미친것이라고는 회귀라는 기회를 준 것뿐 일세. 술법은 자네가 한 발작 한 발작 자신의 인생을 살기 시작하면 만든 특이점으로 얻은 것이고 그 술법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자네가 결정하였지.”
“···.”
“물론 자네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고 했다는 말은 하지 않을 거네. 그건 거짓이지. 나는 자네가 내가 바라는 삶. 타락자를 두려워하고 배척하고 종례에는 이 세계의 흐름이 원활하게 되는 삶을 조화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면서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했지.”
“···.”
“자네는 자신의 삶이라고 해서 다른 이의 영향을 없이···온전히 자신만의 삶이라고 생각하나?”
“···?”
“자네가 현대에 태어나 8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선생들에게 교육을 받고 신파가 많은 드라마를 보면서 커온 자네의 삶에 누군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나?”
“아···.”
“서로의 삶이 교차하는 순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영향을 미친다네. 하지만 그 영향으로 자신의 삶을 망칠지 아니면 그 영향 속에서도 자신의 심지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지는 본인 스스로가 결정하는걸세.”
“···.”
“자네의 삶은 타인의 영향으로 엉망이 되었나? 다른 이의 조언 때문에 자네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 어그러졌나?”
“모르겠습니다. 그저 후회가 남는 순간이 있습니다···.”
“인간은 후회를 하는 동물이지. 왜 후회라는 사고구조가 흐르는지 아는가? 이런 일에 이렇게 반응했을 때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러니까 다음에는 다른 방법을 선택해보자. 라는 고등생물의 사고방식일세.”
“···.”
“후회가 없는 인간의 삶은 없다네. 아니 오히려 후회가 없다면 자신의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지.”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심판자에 대한 여론이 들끓어서 신경이 쓰이나? 나를 지지하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의 다툼이···신경 쓰이나?”
“···.”
“삶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영향을 받는다고 해서 자신의 목표를 굽힌다면 자네는 만족할 수 있나?”
“모르겠습니다. 혼란스럽습니다. 나를 알아주거나 지지해주길 바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
“심판자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범죄는···.”
“막고 싶나?”
“네.”
“이것도 운명일지 모르지.”
“네?”
“심판자를 사칭하여 일을 벌인 자에 대해서 알려주겠네. 이제까지 자네가 쌓아온 특이점이면 충분하다네.”
“사칭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요?”
“심판자라는 존재를 이용하고 사칭해서 이런 여론의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조장한 사람이 있다면?”
“일부러 조장했다고요?”
“인간의 삶의 흐름은 참으로 예측하기 힘들지.”
“그자를 막으면 지금의 사태를 조용히 시킬 수 있나요?”
“글세···자네가 그자를 막을 수 있을까?”
“그게 무슨 말씀이죠? 제가 그자를 막지 못할 정도의 권력자라는 말씀입니까?”
투자회사가 크게 성공해서 돈에 연연하지 않게 된 이후로 웬만한 범죄는 자신이 직접 심판하지 않아도 초록흥신소를 통해 증거를 모아서 신속하게 법률 테두리 안에서 처벌받게 활동해왔었다.
“내가 영웅은 살인자일 수밖에 없다고 했지? 그 이유를 아나?”
“···?”
“누군가는 손에 피를 묻히고 욕을 먹어가면서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리더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 위기 상황일 때는 더욱.”
“위기 상황···.”
“멸망이 시작된 건 이 별이 탄생과 동시에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네.”
“···?”
“별의 탄생과 죽음을 관측할 정도의 과학력이 되었으면서 모르겠나?”
“그게 무슨···.”
“지구라는 별이 탄생 되었고 인간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해서 이 별의 운명이 불멸이 될 수 는 없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