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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201화 (201/205)

<201화 썩은 뿌리에서 탄생한 일그러진 영웅 2>

너튜브만 아니라 TV 방송국 종합편성채널 이슈를 다루는 모든 채널에서 심판자에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슈가 이슈를 물어오면서 높은 산꼭대기의 눈이 구르기 시작해서 눈사태가 되는 것처럼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거대한 반항을 일으켰다.

팀장은 허형사를 앞에 두고 머리를 감싸더니 심각한 목소리로 질타했다.

누구의 잘못인지 누가 시작했는지는 이미 중요한 시점을 지나친 상태였다. 누군가 책임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였다면 팀장은 허형사를 불러서 화를 내기보다 권고사직 통보를 했을 것이다.

“허형사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 거야?”

“···.”

“이렇게 법질서가 무너졌는데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하면서 경범죄고 강력범죄고 지금···.”

“···.”

“너튜브에서 너도나도 심판자라고 나서면서 자랑스럽다는 듯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 영상을 봤나?”

“···.”

“심판자 관련해서는 언급하지 말자고 내가 했어. 안 했어?”

“···.”

“왜 입에 아교를 발랐어? 어? 그런 거야?”

“죄송합니다.”

“아휴···모르겠다. 난 본청에 들어가서 수습해볼 테니까. 어떻게든 이번 사건 빠르게 쳐내 알지?”

“하지만 이 사건은···.”

“범인이 자백하고 그럼 끝이지 왜 사건의 동기가 뭔지 의도가 뭔지 그런 걸 자네가 캐고 있겠다고 하는 건가?”

“···.”

“자네가 아니라도···방송국이니 언론이라고 떠드는 매체에서 자기들이 물고 뜯고 씹고 있으니까 더 길게 말할 것도 없고 사건 빨리 끝내고 다른 사건들 빨리 처리하라고 심판자니 뭐니 하면서 자꾸 범죄율 올라가서 지금 위에서 압박 장난 아니니까. 알겠어?”

“네···.”

팀장의 질책을 뒤로하고 나오는 허형사에게 유형사가 다가오면서 말했다.

“아니 언론에 흘리자고 할 때 상부에 보고도 없이 멋대로 진행한 것도 아닌데···.”

“그만···.”

“형님은 답답하지도 않아요?”

“후···그것보다 추가수사를 진행하기 힘들어지는 게 더 문제지.”

“천상 경찰이야···경찰. 지금 수사가 문제에요?”

유형사가 질색을 하면서 허형사의 답변에 질색을 하면서 정신차리라는 듯 커피잔을 넘겼다. 미지근해진 커피를 마시면서 허형사는 유형사가 자신이 나올 때까지 커피를 들고 팀장 사무실 앞을 서성였을 걸 생각하니 피씩 웃음이 나왔다.

“형님 웃을 줄도 알아요?”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사건 검찰에 넘어갔으니까. 추가조사는 사실 의미가 없다는 게 팀장의 생각이야.”

“그럼 추가수사는 접고 다른 사건들부터 처리하면 되는 건가요?”

“지금 검찰에 넘긴 사건에 대해 추가조사로 무언갈 밝힌다고 해도 그게 우리 팀 실적이 되지는 않으니까.”

“아니 사건 하나하나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아직도 그런걸···.”

“나처럼 승진 포기한 게 아니라면 신경 써야지. 유형사도 나하고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난 장기미제사건팀으로 빠질 것 같으니까.”

“그런 부서도 있어요?”

장기미제사건팀을 처음 듣는다는 듯한 유형사의 반응에 허형사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내 사수가 팀장으로 있어. 내가 가서 돕겠다는데도 결사코 막더라. 자기 정년퇴직하면 와서 자료나 받아달라고.”

“장기미제면 사건 해결률도 엄청 낮은 거 아닌가요? 미제가 왜 미제겠어요.”

“그러니 실적이 나올 리 없고 승진은 꿈도 못 꾸고 지원하는 사람도 없는 경찰 입장에서는 무덤 같은 곳이지.”

“아니 허형사님 실적이면 광수대로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바라지도 않아. 광수대에 보낼 거였음 예전에 보냈겠지. 거기다 장기미제사건팀에 내가 조사하고 싶은 사건도 있고···.”

“허형사님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한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가끔 팀장님 쓴소리가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요?”

“그런가···어쩌면 내가 너무 공과 사가 엄격한 건지도 모르지.”

“그러니까요.”

“그런데 내가 공과 사를 이렇게 칼같이 구분하는지 알아?”

“···?”

“내가 순경 시절에 했던 실수 때문이야.”

“형님이 실수를 했다고요?”

철두철미한 허형사만 봤던 유형사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내가 사건에 대한 정보를 너무 쉽게 말해서 아직 어렸던 아이가 위험에 처한 적이 있어.”

“그럼 그 아이는···.”

“결국···.”

허형사의 침묵이 길어지자 유형사는 긴장으로 손이 차가워졌다.

“용감한 시민상까지 타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경찰이 되길 바랐는데···투자에 재능이 있는지. 미국에서 큰 투자회사 차려서 잘나가고 있지. 나한테 이것저것 투자조언도 해줘서···덕분에 내가 승진에 연연하지 않는 건지도 몰라.”

“네?”

1년 넘게 페어로 활동하면서도 제대로 대화도 못 했었던 유형사의 입장에서는 허형사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왜? 그 아이가 어디 잘못됐을까 봐?”

“허···.”

“잘 풀려서 다행이었지만···당시에 표현은 안 했지만···심장이 철렁거렸어. 나 때문에 아직 어린 친구를 위험에 빠지게 한 게 아닌지. 그때부터 공사를 철저히 구분해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럼 그 위험한 사건에 휘말렸다는 아이한테고 이렇게 딱딱 공사 구분해서 철저하게 대하고 그래요?”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 어렸을 때 봐서 그런가? 좀 동생 같기도 하고.”

“동생 있으세요?”

“있었지. 아니 있을뻔했지.”

“네?”

다시 굳게 입을 다문 허형사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고 유형사는 허형사의 눈치를 보면서 사건 현장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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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날이 아니어서 그런지 성묘하러 가는 길은 평소처럼 적막하고 인적이 드물었다. 산길을 타고 올라가고 있다 숲을 보던 시야를 하늘로 향한 순간 그림 같은 오두막이 저 멀리 모이면서 맑은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르신···.”

“오랜만이구만.”

대백공은 옛 모습 그대로였지만 오랜 시간 방황하다 집에 들어온 탕자가 이러할까?

표현하지 못할 무언가 가슴을 뜨겁게 했다.

“고민이 많은 표정이로군.”

너무 할 말이 많아지면 오히려 입을 열기 어려운 걸까?

내가 쉽게 입을 열지 못하자 대백공이 나를 지긋이 보더니 말했다.

“살인자는 영웅이 아니지만···영웅은 살인자지.”

“그게 무슨···.”

“살인자가 반드시 영웅은 아니지만···영웅은 반드시 살인자라는 말일세. 그리고 영웅은 만들어지는 것이지.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영웅이 만들어진다고요?”

“인간의 삶이 피폐해지면 언제나 인간 세상에는 영웅이 나타났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일세.”

“저는 영웅 따위가 아닙니다.”

“그럼 살인자인가?”

“저는···.”

“쉽게 살려고 한다면 한없이 쉽고 어렵게 살려면 한없이 어려운 게 인간의 삶이지.”

“쉽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번 돈으로 백수처럼 살면 될 텐데 왜 고민하고 있나? 자네는 스스로 쉽지 않은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일세.”

“하지만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숨만 쉬고 있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이 어렵게 사는 것이네.”

“네?”

“쉽게 사는 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

대백공이 허공에 지팡이를 짚자 동그란 물이 뭉치더니 거울처럼 변했다.

머리에 산발을 한 남자가 모니터를 노려보면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세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달칵달칵―.

키보드의 단축키와 마우스를 움직이는 소리만 계속 들려오다가

똑똑―.

작은 노크 소리가 들리자 남자는 크게 소리쳤다.

“C8 지금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문만 열어봐 나도 죽고 너도 죽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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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 남자는 초중고대 전부 부모의 지원을 받고 졸업했지. 하지만 직장은 구하지 못했어. 아니 구했지만···직장생활이라는 걸 버티지 못했지.”

대백공이 다시 시선을 거울로 돌리자 이번에는 그 남자가 방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방문 앞 식기를 들고 방안에 들어오더니 너저분한 침대에 거의 눕듯이 하면서 식사를 시작했다.

방문을 열고 그릇을 내다 놓는데 그 앞에 노년의 여성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식기를 받기 위해 서 있었다.

남자는 발작하듯 그릇을 던지더니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C8 내가 문 열 때 거실에 있지 말라고 했지.”

“진서야···.”

“그렇게 보지 말라고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엄마 탓이야.”

“진서야···. 흑···.”

“엄마고 뭐고 다 죽어버려.”

남자는 다시 컴퓨터 모니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얼마나 무의미한 시간들이 흘러갔을까.

꼬르륵―.

“배고픈데 뭐 하는 거야?”

노크하지 말라고 했던 자신의 말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듯 문을 열고 문 앞을 내려다봤다. 포장 빵 하나와 우유가 놓여있었다.

“C8 내가 집에만 있다고 빵 쪼가리나 주는 거야?”

신경질을 부리면서도 배가 고픈지 빵을 들어 올려 한입 크게 먹었는데 곧장 뱉어내고 말았다.

“아C···이거 맛이 왜 이래?”

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난동을 피우려다 빵 아래 놓인 쪽지가 보였다.

‘진서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

아주 짧은 메모였지만 진서라는 남자는 머리가 쭈뼛선다는게 어떤 심정인지 느낄 수 있었다. 10년 넘도록 방 안에서만 생활하던 그 남자는 거실로 나와 안방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엄마?”

노년의 어머니는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진서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자신이 원망하고 화를 내도 받아주던 무조건적인 자신의 편이 이제는 없다는 걸 말이다.

내가 눈앞에 보이는 진서라는 남자의 감정까지 읽어내자 나는 내 뺨을 스스로 때리고 대백공을 보았다.

“호오···이제 술법이 발동될 때 감정을 걷어내는 법이 좀 익숙해졌구나.”

내가 말없이 대백공을 노려보듯 가늘게 눈을 뜨고 쳐다봤지만 대백공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울을 다시 한번 터치했다.

그러자 물결치듯 화면이 바뀌면서 어떤 젊은 여성이 화를 내면서 발길질을 하는 장면으로 전환되었다.

‘인형에 화풀이를 하는 건가? 화가 많은 사람이네.’

다시 자세히 바라보자 내가 인형이라고 생각했던 건···아주 어린 여자아이였다.

“뭐?”

내가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자 대백공이 말했다.

“저···아해는 이제 곧 죽을 운명이다. 자신의 어미한테 버림받아 사흘을 내리 앓다가 결국 죽겠지.”

“아직 저렇게 어린데. 도대체 어딥니까? 의사를 아니 구급차를···.”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거울에 가까이 다가가자 대백공의 지팡이가 내 앞을 막았다. 단순히 보기에는 나이든 노인네가 든 지팡이 하나 밀어내지 못할까 싶지만 강화된 내 육체로도 한 발자국도 밀어내지 못했다.

“거울에 비친 상은 이미 과거에 흘려간 일일뿐이다.”

“과거라고요?”

“그래. 너는 조금만 관심이 있었다면 짤막한 뉴스로 들어볼 수 있었겠지.”

“이런 일이 정말로···.”

“인간들은 문명화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인간의 무관심 속에서 인신매매, 장기밀매, 살인, 강간 그리고 전쟁이라는 이유로 학살이 계속 이어지고 있지. 멸망의 길에 들어선 종이 서로를 죽이는 경우는···정말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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