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수사 2>
피곤에 찌든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무실로 까치집을 한 남자가 한 손에 서류파일을 들고 머리 높이까지 쌓여있는 파일 위로 던지듯 올려놓고 말했다.
“허형사 이번 사건 우리 쪽으로 넘어왔어.”
“제가 담당입니까?”
“지금 다들 바쁘잖아. 자네가 좀 더 수고해줘.”
“알겠습니다.”
“식중독 테러였죠?”
“희재야. 최초 신고자 만나러 가보자고.”
“네.”
허형사는 자신의 옆에서 좀비가 되어가는 유희재를 부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형사가 외투를 손에 들고 나올 때쯤 희재는 관절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유형사가 차 키를 들고 시동을 걸자 허형사는 파일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우선 병원에서 치료 중인 최초 신고자부터 만나보자.”
“네.”
이제 퇴원을 준비하는 듯 6인실 침대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짐을 정리하던 피해자에게 질문했다.
“그럼 비타민 음료를 먹고 이상이 생긴 것 같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새벽기도 나갔다가 집에 가는 길이어서 물 말고는 아무것도 안 먹었거든요. 물도 집에서 생수를 마신 거라···집에 오는 길에 마신 비타민 음료 외에는 먹은 게 없어요.”
“그 비타민 음료병 혹시 보관하고 있으신지.”
“분리수거 하려고 길에 버리지 않고 집에 뒀는데···제가 입원해서 그대로 있을 거예요.”
“그럼···태워드리면서 증거물로 수거하겠습니다.”
“택시 타고 가려고 했는데 태워주시면 고맙죠. 애들 아빠는 오늘도 출근한다고 오지도 않았는걸요.”
골목길 주택가에 차를 주차하고 피해자의 집에 따라갔다.
“이 중에 아···이거 큰 사이즈였어요. 비타민 음료가 양도 많네 하고 생각했으니까요.”
“길에서 주는 건데···아무런 의심이 없었나요?”
“자기네 가게 광고하려고 여기 스티커까지 붙어있는데 이상한 제품으로 광고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아···.”
탐문을 마치고 나서자 유형사가 말했다.
“아무래도 광고에 나와 있는 헬스장부터 가야겠죠?”
“그래야지.”
유형사가 차를 출발시키기 전에 피해자가 태워줘서 고맙고 준 커피음료를 보다가 차 안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점점 서로를 못 믿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참···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식은 먹지도 말고 이제 버리라는 소리가 나오겠어요.”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한 걸까요?”
“식중독 테러 말이야?”
“다들 처음 상태는 심각했지만 다행히 크게 이상이 생긴 사람들은 없잖아요. 단순한 장난일까요?”
“장난도 이 정도 규모면 처벌을 면하기는 어려울 거야. 그리고 비타민 음료 용량이 크다고 했잖아?”
“그럼···.”
“아마 양을 조절하지 못해서 약한 복통에 그친 것일 수도 있어···사실 인명 살상을 노린 거라면···.”
“살인미수인가요?”
“우선 범인부터 찾아보고 조사하다 보면 밝혀지겠지. 형사는 처음부터 단정하고 조사하면 나올 것도 안 나오니까.”
“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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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자는 다릅니다.
그는 구원입니다.
세상의 악을 처단해서 세상을 밝게 하는 자입니다.
헬스장이라고 믿을 수 없는 문구가 적혀있는 곳을 들어가자 중년여성이지만 운동을 충실하게 했는지 건강미가 느껴지는 여성이 홀로 헬스장을 지키고 있었다.
“경찰입니다. 이번에 식중독 테러 때문에 조사차 왔습니다. 헬스장은 평소에 혼자 운영하십니까?”
“아뇨. 남편하고 직원이 한 명 있는데 남편은 연락이 안 되고 직원은 병원에 입원했어요.”
“입원이요?”
“연락이 안 된다고요?”
중년여성의 말에 허형사와 유형사가 각자 질문을 던졌다. 그러다가 유형사가 허형사에게 발언권을 넘기자 허형사는 직원에 대해서 질문했다.
“직원분은 그럼 식중독 테러에 당한 겁니까?”
“그것까지는···.”
“그럼 남편분하고 연락이 안 된지는 얼마나 되신 겁니까?”
“이틀···오늘 지나도 연락이 안 되면 삼 일째 될 거예요.”
“이렇게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신가요?”
“네. 일의 특성상 자주 연락을 안 받아도 그러려니 해요.”
“일의 특성이요?”
“개인 PT 같은 경우에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중간에 방해받으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연락이 안 돼도 이해하라고 했거든요.”
“그런가요?”
중년여성의 말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질문하자 자신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도 개인 PT를 방문으로 해본 적은 없어서···.”
“그럼 삼 일 동안 연락이 전혀 없었나요?”
“아뇨 직원한테는 방문 PT 일정 때문에 한동안 가게에 못 나간다고 연락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좀 더 질문하고 싶어 하는 유형사의 어깨를 툭툭치고 데리고 밖으로 나오자 의아하다는 듯 허형사를 돌아본다.
“직원에게 연락하고 와이프한테 연락을 안 하다니 이상하잖아요. 삼 일간 연락도 못 받았는데 걱정하는 기색도 없고.”
“부부간에 별거 아닌 별거로 지내는 경우도 드물지 않아. 자네도 형사일 하다 보면 알게 될걸?”
“그럼 부부 사이가 안 좋다는···?”
“그렇지. 아무래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어.”
“부부 사이가 안 좋으면 연락이 없어도 걱정 안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건 이해할 수 있지만···직원이 식중독 테러로 입원했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안일하잖아?”
“네?”
“형사가 두 명이나 찾아와서 이곳이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면 헬스장에 비치된 음식물 중에 뭔가가 이상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고 혹시 조심해야 하는 음식물이 뭔지 형사에게 물어보는 게 당연한 반응이지.”
“어?”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어. 궁금하지 않다는 듯.”
“그럼···.”
“그저 내가 유별난 건지도 모르지만 평범한 반응은 아니니까 조사해보자고.”
차로 향하면서 말하는 선배 형사의 말에 허형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뒤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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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사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박성주입니다.”
“성주야?”
“누나?”
“웬일이야? 나 바쁜데.”
“바쁘면 내가 사무실로 갈까?”
“오늘 야근이라···.”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지.”
“알겠어. 올 때 참치 초밥 세트 알지?”
“넌 박봉의 공무원 월급 알면서 그러냐?”
“그래도 따박따박 월급 나오잖아. 아버지처럼 연금도 나올 거고 그런 면에서 동생이 불쌍하지도 않아?”
“너는 나보다 두 배는 더 받으면서.”
“대신 언제 잘릴지 알 수 없지.”
“후···알았어. 그럼 조금 이따가 보자.”
“웬일이야? 순순히 사 온다고 하고?”
통화가 끝나고 박성준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다시 바쁜 업무에 몰두했다.
“이야 사무실 좋다.”
“여기 근무하고서 한 번도 안 왔었나?”
“원래 국회의원 보좌관 하지 않았어? 여기는 지역구 선거관리위원회라고 되어 있는데···여기로 온 거야?”
“저번에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거 몰라?”
“아빠가 힘들어하긴 하더라.”
“보좌관 자리도 국회의원이 있어야 생기는 거지. 다시 지역구 사무실로 들어온 거야. 그런데 누나는 지역구 사무실에 한 번도 온 적 없어?”
“순찰구역이 이쪽이 아니었으니까. 너나 나나 자리 잡기 바빴고 그런데 이제 많이 익숙해졌나 봐?”
“뭐···그럭저럭 인턴개념이라서 힘든 일은 안주니까.”
“그런데 야근까지 해?”
“힘든 일은 아닌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귀찮은 일은 많이 떨어지지. 특히나 요즘은 더해.”
“왜?”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고 지방선거에서 압도적이었잖아?”
“아빠가 얼굴이 피기는 했더라.”
“이게 질 때는 서로 으쌰으쌰 하면서 힘을 모으는데 조금이라도 승기가 보인다 싶으면 권력 잡겠다고 이전투구 하는데 아주 가운데 낀 직원들만 죽어난다니까.”
“권력이라고 할만한 게 있어? 다수당도 아닌데?”
“어쨌든 대통령은 한국당이 가져왔다 이거겠지.”
“바보 같은 일이네.”
“그런데 누나가 초밥까지 사 들고 올 정도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집에서도 본채 만 채 하잖아.”
“나만 그러냐? 너도 그러잖아. 일 끝나고 집에 가면 만사가 다 귀찮다고.”
“그래. 귀찮은데 여기까지 행차하시고 무슨 일인데?”
“너 심판자 특집방송 봤어?”
“보지는 못하고 대충 풍월로 듣기는 했지.”
박경사는 너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상을 틀면서 동생에게 보여줬다.
“이거 모르겠어?”
“이걸 보여주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어두운 밤에 그림자가 스친 거 아니야?”
“아니 잘 봐···이거 뒷모습 익숙하지 않아?”
“누구? 남녀 구분도 안 되는데.”
“이거 분명 오빠 뒷모습이라고.”
“누나가 오빠라고 할만한 사람이면···주인이 형?”
“그래 딱 오빠 뒷모습이지 않아? 카리스마와 멋짐이 폭발하면서 뒤돌아서면 다시 보지 않는 단호함과···.”
“그만해 귀가 썩을 것 같아.”
“응?”
“한 몇 년 잠잠하더니 또 왜 그러는데?”
“그냥 뒷모습만 봐도 누군지 알 것 같지 않냐고.”
“방금 들은 귀를 팔고 싶다. 누나도 중증이다. 이 뒷모습만 가지고 특정을 어떻게 해?”
“난 그냥 딱 보면 알겠는데···.”
“누나가 형사가 아니란 게 다행이다. 딱 억울한 사람 잡아다가 가두겠어.”
“내가 그럴 리 없잖아?”
“이게 진짜 주인이 형 뒷모습이라고 해도 객관적으로 남들에게 다 의심 없이 믿을만한 증거여야지. 이건 남자 뒷모습 같기는 하지만 키가 좀 큰 여자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거야. 영상 자체가 너무 멀리서 그것도 너무 어두운 상태라···. 그런데 단순히 뒷모습만 봐도 누군지 알아요. 하면서 사람을 의심한다는 건···.”
“의심이라니!”
“심판자가 주인이 형 같다면서···. 그럼 형을 범죄자로 의심하는 거 아니야?”
“그게 무슨···심판자 멋지지 않아?”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데 누나 경찰이잖아.”
“솔직히 경찰로 일하면서 드는 생각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더 심각해져서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거야.”
“뭐?”
“형사미성년자 애들은 자기들에게 형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권력을 이용해서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기성세대는 권력자가 되어서 증인들을 매수해서 처벌받지 않는 거지.”
“과학수사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는 법만 그런 게 아니거든.”
“허···.”
“일선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건 점점 평범한 사람들만 더 피해를 받고 고통받는다는 거야.”
“나도 지역구 의원 사무실에서 일하지만···의원들 사고방식이 평범하지는 않더라.”
“범죄를 저지르고도 당당한 피의자들 행태를 보면 선택받은 종족이니까. 너희와 다른 기준에서 판단 받아야 한다는 선민의식? 현대판 귀족주의? 그런 느낌이랄까?”
“그런데 왜 심판자는 지지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