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96화 (196/205)

<196화 피해자 3>

그녀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붉은 색 원피스는 잠시 옷장 속으로 넣어놓고 손수 준비한 비타민 음료를 꺼내 남편이 운영하는 헬스장 광고 스티커를 하나씩 붙이기 시작했다.

시내 중심지에 크게 운영하는 헬스장 덕분에 그녀에게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살 수 있었지만 남편의 고압적인 행동을 참아내야 하는 대가도 치러야 하는 관계였다.

모든 게 혼란스럽고 우울하기만 할 때 모든 문제의 발단이 그녀 때문이라는 남편의 놀라운 논리 덕분에 다니게 된 상담치료였지만 결국 정신병원 이력이 생긴 건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구원자 덕분에 그녀는 삶의 새로운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들을 왜 계속 참아 오기만 했는지···.”

여성은 멍하니 현관문에 설치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평소의 화려한 화장으로 무장했던 자신과 다른 수수하면서 어쩌면 평소보다 젊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손으로 쓸어내린다.

“이게 내 모습이었어. 나 이지민의 모습···.”

진한 화장으로 가려왔던 단단한 겉모습 뒤로 숨어 있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달라. 강해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그녀는 스스로의 말을 되뇌면서 준비한 비타민 음료를 들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로 나아갔다.

시내와 집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남편의 헬스장과 가까운 곳에 집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거칠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했으면서 생각마다 남편 남편···. 정말 지긋지긋해.”

평소의 우울하고 가라앉은 표정이 아닌 어딘가 어긋난 방향으로 달려가는 차량처럼 그녀는 시원하고 또 밝게 웃는 표정이었다.

그녀의 밝은 웃음을 본 사람들이 그녀에게 인사를 해올 때마다 그녀는 손안의 비타민 음료를 즐겁게 건넸다. 그리고 남편이 운영하는 헬스장에 도착했다.

“사모님 나오셨어요?”

“좋은 아침.”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 평소하고 다르게 보기 좋으신데요?”

“그래? 장 트레이너가 생각해도 어제의 나보다는 오늘의 내가 더 보기 좋지?”

“그런데 사장님은 오늘도 안 나오시는 건가요?”

“아마? 나한테 말하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잖아.”

“사장님이 어제부터 연락이 안 돼서요. 어제는 제가 예약이 없어서 대신 사장님 PT 손님들 받았는데 오늘은 시간이 겹쳐서···.”

“아? 그래? 그럼 내가 대신할게.”

“사모님이요?”

“왜? 내가 하면 이상해?”

“아니요. 평소에는 기회가 되도 안 하신다고 손사래 치셔서···.”

“남편이 옆에서 쓴소리해서 그렇지 나도 어디 가서 무시 받을 경력은 아니라고···.”

“그건 잘 알죠. 그냥 놀라워서 그런 거예요. 나쁜 게 아니라 좋은 쪽으로요.”

“좋은 쪽?”

“네. 그런데 가지고 오신 비타민 음료 저 먹으라고 가져온 거···.”

“아니야. 이건 손님들 먹으라고 가져온 거야. 절대 손대지 마. 내가 1층에서 커피 사 올 테니까.”

“아···네.”

조금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 트레이너였지만 이내 수긍했는지 헬스장 내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런 트레이너를 보곤 커피를 사기 위해서 자리를 피했다.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트레이너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더니 그녀가 방문객들을 위해 올려둔 비타민 음료 중 하나를 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윽···맛이 좀 이상한데? 어디 회사 거지? 새로 나온 건가?”

속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평소와 같이 트레이너가 헬스장 내부의 TV를 틀자 긴급속보가 나오기 시작했다.

평소에 틀어놓는 예능 방송 아래로 자막이 뜨더니 화면이 전환되었다.

“긴급속보 알려드립니다.”

“수도권 시내를 중심으로 알 수 없는 식중독 현상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여기는 응급실입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구토와 호흡곤란 어지러움을 호소하면서 병원에 방문하면서 그 숫자가 점차 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방송을 보신 분들은 이상 증상이 느껴질 경우 지체 없이 병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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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르르―.

익숙하다 못해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은 전화벨 소음에 박경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전화벨 소리 좀 바꾸면 안 되나?’

“박경사 전화 좀 받아.”

의자를 젖혀서 신문으로 얼굴을 덮고 발을 책상 위에 올린 팀장의 말에 박경사는 열이 받았지만 누구라도 울리는 전화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상대편은 누구라는 말도 없이 바로 질문부터 날렸다.

“TV 봤어?”

박경사는 목소리만 듣고도 상대가 누군지 짐작했지만 자신은 생활안전과 팀장이 아니라는 걸 밝히듯 말했다.

“생활안전과 박경사입니다.”

“박경사? 안팀장인데···자네 팀장 자리에 없나? 휴대폰도 안 받아서···.”

“지금 옆에 계십니다. 누구시라고 전해드릴까요?”

“그냥 안팀장이라고 하면 알 거야.”

“네.”

팀장도 박경사의 통화내용을 옆에서 들었는지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바꿨습니다.”

평소에 고압적이고 답답할 정도로 의자에서 벗어나지 않던 팀장이 수화기를 바짝 붙잡더니 낮고 빠르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궁금하네?’

박경사는 평소와 다른 팀장의 반응을 곁눈질하면서 보고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점점 청소년 범죄의 정도가 심해지는데 이대로 괜찮은 걸까?’

박경사가 잠깐 상념에 들려고 하는 차에 팀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박경사 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누가 찾으면 현장 나갔다고 해.”

“네?”

팀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박경사는 팀장의 다급한 행동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평소에는 지진이 나도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같은 팀장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길래?’

박경사가 생각한 질문에 대답해주듯 질서과의 이경사가 팀장과 바톤터치라도 하듯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박경사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이요?”

“방금 너희 팀장도 뛰어나가는 것 같은데 아무 말 없었어?”

“저는···.”

“하여튼 다들 박경사 애지중지하느라 너무 감싸고 도는 거 아니야?”

“저를요?”

“박경사 아버지가 총장까지 하다가 정년퇴임하셨다며···.”

“아···그건 아니고···.”

“그게 그거지···아무튼 높은 지휘부까지 올라갔다가 퇴임했으니까 다들···.”

박경사는 자신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위화감을 이경사가 적나라하게 말하는 것에 불편함과 함께 답답함을 느꼈다.

“식중독 테러 때문에 전부 비상사태잖아.”

“식중독 테러요?”

“아직 죽은 사람은 없는데 전부 응급실 실려가서 상태가 위중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생활안전과에 소속된 경찰들 전부 긴장해서···.”

“누군가 일부로 테러한 거라면 형사과에서 맡아서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범인이 있다면 그렇지만 식품으로 생긴 문제면 생활안전과 쪽으로 넘어오겠지. 그래서 팀장님들이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나간 거잖아. 범인 잡으러.”

“범인을 잡는다고요?”

“식중독으로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가고 거기다가 인명피해라도 커진 상태에서 이 사건이 생활안전과로 온다? 생활안전과는 완전히 관짝이 되는 거지. 저 멀리 한직만 돌다가 정년퇴직해야 할걸?”

“그게 중요한가요? 사람들이 많이 다쳤는데···.”

“이래서 공주님이랑은 말을 못 해요. 공무원이 진급이 누락 될 경력이 따라붙는데 어떻게든 다른 팀이나···과로 넘겨야지. 다른 과로 넘기기 위해서 증거수집 하려고 발바닥에 불붙은 것처럼 뛰어나간 걸 텐데?”

“···?”

“이 식중독 테러가 한 사람의 짓이라면 그건 범죄지···그럼 아마도 형사과로 가지 않을까? 범죄 사건이니까.”

“···.”

“그 와중에도 고이 사무실에 박경사 앉혀놓고 간 거 보면 다들 지극정성이야 지극정성···.”

“저는···.”

“그럼 사무실 잘 지키고 난 일이 바빠서 이만.”

박경사에게는 팀장도 이경사도 나가버린 사무실은 평소와 달리 너무 넓게 느껴졌다.

그 적막감을 덮기 위해서였을까 박경사는 사무실 내에 비치되어 있는 TV를 틀었다. 이경사의 말처럼 식중독 테러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이번 식중독 사태의 범인이 심판자가 아닌가 하는 전문가의 의견이 나왔습니다.”

“심판자에 대한 이야기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심판자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이전에 방영되었던 MC 수첩에서의 영상이 같이 올라왔다.

그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한 박경사는 급하게 휴대전화를 꺼내 익숙한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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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당 내부로 보이는 화려한 금색과 붉은색으로 장식된 내부로 들어가자 먼저 와서 자리하고 있었는지 종혁이가 와 있었다.

나는 종혁이가 아버지와 같은 교수가 될 거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종혁이는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졸업 후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인권변호사지.’

“갑자기 부탁했는데도 시간 내줘서 고맙다.”

“갔다 오기는 했는데···.”

종혁이가 말을 늘리면서 회전 탁자를 돌리더니 내 쪽으로 찻주전자를 밀어줬다.

나는 주전자를 들어 따뜻한 차를 한 잔 따르고 종혁이의 고심 어린 표정을 바라봤다.

“왜? 제대로 대화를 못 했어?”

“계속 자기가 유죄라고 같은 진술만 반복하는데···.”

“변호사 접견은 녹화나 지켜보는 사람 없다고 말하고 시작한 거 아니야?”

“내가 인권변호사 노릇을 한지 얼마 안 됐지만 이 사건 이상한 것 같아.”

“어떤 점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허술해.”

“허술하다고?”

“피의자의 자술서 그러니까 자수하면서 진술한 내용뿐이야.”

“번복이라도 한 거야?”

“아니···그래서 더 이상한 거지.”

“···?”

“지금으로선 사건 자체를 자세히 살펴볼 생각도 안 하고 피의자를 만난 것뿐이니까. 제대로 한번 살펴봐야겠어.”

“변호사 접견 요청한 건데···사건으로 접수로 해도 괜찮겠어···? 인권단체 자금 모으고 거기에 인권변호사 한다고 했을 때···지혜는 괜찮데?”

“지혜야. 내가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거 찬성하지.”

“내가 기억하기로 지혜가 욕심이 많았던 것 같은데···너한테 바라는 거 없데?”

“욕심이라기보다는 열망이지.”

“네가 좋게 본다면 좋은 거고···.”

“부모님도 그렇고 지혜도 그렇고 내가 하고 싶다자 하는 걸 지지해주니까···. 거기다가 네가 마련해준 자금 덕분에 인권단체도 이제 궤도에 올라서 잘 운영되고 있고···.”

“국내에도 제대로 된 인권단체가 있다면 좋을 텐데···.”

“빈민국 인권지원보다 한국에 인권단체 설립하는 게 더 어려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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