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범죄 수익2>
차르르륵―.
화려하게 반짝이는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면서 민국당 수석대변인의 발표가 이어졌다.
“명이준 의원에 대한 소환은 정치적 탄압으로 이전 정권에 대한 정치 수사입니다. 검찰의 서면조사 요구를 받아들여 서면 진술 답변을 했으므로 출석요구 사유가 소멸돼 출석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검찰이 이 대표에 대한 출석요구는 서면조사에 불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온 가운데 서면으로 답변을 보낸 만큼 출석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앞서 검찰은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 고발사건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으로 서면 답변서를 요청했지만 계속 거절하자 출석할 것을 요구한 바 있었다.
기자들이 손을 들어 질의 응답을 요청했지만 민국당 대변인은 입장문만 발표하고 자리를 떴다.
민국당 수석대변인이 자리를 뜨면서 기자들이 없는 자리에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명이준 국회의원의 비서를 보면서 어제 밤늦은 시간에 그를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눈을 피해도 식은땀이 흐르면서 어젯밤 늦게 자신이 백비서를 찾아가 명이준 의원을 만났던 강렬했던 어제의 기억이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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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준 의원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의원님은 당 회의실에 자리하고 계십니다.”
회의실 상석에 앉아서 차를 한잔 마시고 있는 사내의 모습은 도저히 내일 검찰의 출석을 요구 받은 정치인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의원님 이게 도대체 다 무슨 일입니까? 당총회 결정으로 검찰 출석요구를 거절한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겁니까?”
사내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면서 말끔하게 빗어올린 머리를 한차례 쓸어올리더니 당 수석대변인을 눈짓으로 자리에 앉게 유도했다.
수석대변인도 그제야 자신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질문을 던진 걸 알고 자리에 앉았다.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지사 시절 어째서 국회 국정감사에 직접 출석해서 그런 발언을 하신 겁니까?”
“뭐 내가 허언이라도 했다고? 증명이나 할 수 있나?”
“검찰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으니 야당 소속 국회의원에게 소환통보를 하는 거지 그렇지 않다면 정치적 리스크를 짊어지고 소환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검찰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문제가 아니야. 생각을 해보게···내가 지사 시절에도 허위사실유포로 1심, 2심 전부 유죄가 나왔지. 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무죄 취지로 환송했어."
“그건···.”
“그때 헌재의 결정문을 봐도 나에게 공개석상에서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명분을 만들어 준거야. 아니 모든 정치인들에게 공식 석상에서 허언을 좀 해도 괜찮구나 하는 법리를 만들어 준거지. 난 이 나라의 정치를 한 단계 더 선진화하게 만들었다는 걸세.”
“하지만 당시 헌법재판소는 저희가 여당일 때 심어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문인수 재판관을 3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관련 업체에 고문으로 모시면서 언론의 뭇매를 맞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지금 문인수 재판관에 대해서 떠드는 언론이 지금 있기나 하나?”
“그건···.”
“잠깐은 시끄러울 수 있어. 하지만 결국 국민들은 우리가 보여주길 원하는 방향만 바라보게 되어 있다고.”
“그럼 검찰에서 말하는 고 김이석 차장 하고는 정말 모르는 관계인 거겠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제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검찰이 하는 이야기는 전부 정치적으로 해석될 텐데···.”
“···.”
“검경수사권조정에 내가 왜 그렇게 많은 로비자금을 쏟아부었는지 아직 모르겠나?”
“···.”
“다들 생각하는 게 너무 작아.”
“네?”
“범죄 수익 범죄 수익하면서 언론에서 몇천억씩 말하는데···그런 돈보다 더 중요한 걸 놓치는 거지.”
“···?”
“나를 도와주는 이들이 그깟 돈 몇 푼보다 더 큰 자산이라는 걸 모른다면 정치인을 하면 안 되는 거지. 당에서 나를 지지하는 이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걸 보면서도 느끼는 게 없다면 자네 정치 감각도 거기까지인 거야.”
“···.”
“돈 몇 푼 더 받아먹겠다고 달려드는 인간들···그들은 별로 위험할 것도 없어. 정말 위험한 놈들은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머저리들이 위험하지.”
“그게 무슨···.”
“사람들은 생각이 좁아. 돈 몇 푼? 내 사람들만 확실하면 버는 건 순식간이야.”
사내의 소름 끼치는 말에 당 수석대변인은 입을 열지 못했다. 동시에 이런 이야기를 당 회의실에서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당에 대한 영향력을 손에 넣었다는 말이었기 때문에 식은땀과 함께 이제까지 언론과 검찰에게 재기했던 모든 의혹이 단순히 정치적인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진짜 거물들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야. 영향력이지. 지사 때 선거법 위반에서 내가 헌재판결까지 가서도 살아 돌아 올 수 있었던 건 전부 내 영향력 덕분이지. 뭐 돈도 그 영향력 안에서 손쉽게 벌 수 있는 것이고···홍정민 수석대변인 자네가 현기준 대통령을 위해서 뭐든 해줬다고 들었지.”
“그건 제가 존경하던···.”
“후후···. 그 존경까지 내가 사도록 하지.”
“네?”
“이전 정권에서는 정치자금이 부족해서 라몬 사태에 한발 걸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이대로 바뀐 정권에서 제대로 수사팀 꾸리면 따뜻한 햇볕 보는 것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
“내가 바라는 건 별로 없어. 당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주면 된다는 거지. 언론에 나를 이명준 의원을 노린 검찰이 정치적 수사이고 탄압이고 김영희 특검법만이 나라를 위한 제대로 된 법치국가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정치적 노력이다. 뭐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홍정민 당 수석대변인이 사내의 말에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이 사유화되었다. 당이 명이준 의원 방탄 노릇을 한다 떠들 수 있지. 그럴 수 있는데 당신은 아니야. 그럴 수 없어. 왜냐고? 범죄에 한 발을 담갔기 때문이지.”
“말도 안 되는···.”
“정말 말이 안 된다면 이 자리에서 나에게 욕을 한바탕 퍼붓고 회의실을 떠나야 옳은 것 아닌가?”
“···.”
“할 말이 없겠지. 다 알고 치는 포커나 다름 없으니까. 한국당 의원들조차 라몬 사태의 실체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정치 자금 모으기라는 이유로 눈을 감아줬으니까. 같은 당내 식구끼리 먼저 나서서 총대를 멜 생각은 없었겠지. 하지만 정권은 바뀌어 버렸고 적폐청산을 외치던 우리당이 오히려 적폐가 되었네?”
“···.”
“과거 자네가 한 짓과 내가 짊어지고 있는 사법 리스크가 무슨 차이지?”
“···.”
“결국 법의 잣대로 평가하면 전부 죄인인데···.”
“···.”
“하지만 우리 같은 의원들은 잡혀가지 않아요. 왜? 서로 이런 자질구레한 일로 귀찮게 하면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거든. 이수민이 검찰 출신이라서 아직 여의도 문법에 눈이 어두워 그래서 검찰을 그렇게 좋아하니까. 이수민 아내를 위해서 특별히 특검까지 도입해주겠다고 하는 거잖아?”
“···.”
“자네가 해줄 일은 하나야. 내 사건은 정치적 탄압이고 우리 당의 입장은 김영희 특검으로 대응하겠다는 거지.”
“라몬 사태는 당이 정말 힘들었을 때···.”
“뭐? 당이 힘들면 서민들 피눈물 나게 하면서 정치자금을 모아도 된다는 건가?”
“하지만···.”
“당이 힘들다면 불법적으로 정치자금을 착복하는 건 되고 내가 정치자금이 필요해서 한 작은 일들은 죄가 된다는 건가?”
“작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중장동 담당자 중 김이석 처장은 왜 자살한 겁니까?”
“살기 힘들었나 보지. 내가 앞에서도 말했지만···범죄 수익···범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단순한 돈뿐이라고 보는 머저리는 아니라고 믿네.”
직접적인 사내의 위협에 홍정민은 입을 굳게 다물 뿐이었다.
“단 한 푼도 내 통장에서 찾을 수 없을 거라네. 범죄 수익을 자기명의 통장에 떡하니 넣는 머저리는 아니니까.”
“···.”
“다시 한번 말하지만 범죄 수익이 단순히 돈에 국한되어 있다고 믿는 멍청이가 아닐 거라고 믿네. 그리고 보니 나하고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몇 명 자살하기는 했지만 그건 나에 대한 충성심이 약해져서인 거지. 자네가 그런 충성심이 줄어들지 않는 이상 자살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야.”
“충성심에 대한 판단은···.”
“주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
“이런 우리 당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친구가 이렇게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다니 놀랍군. 그만큼 내가 우리 당에 영향력이 있다고 믿어도 되겠지?”
“···.”
“내일 언론 브리핑을 믿고 맡기도록 하지. 그럼 나는 바빠서.”
회의실 문을 열고 사라지는 사내의 뒷모습을 두렵다는 듯 쳐다보는 당 수석대변인의 모습을 눈에 담으면서도 백비서는 떠나는 사내의 뒤를 쫓아 빠르게 회의실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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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석대변인 홍정민의 언론브리핑과 당의 결정에 반발한 소신 있는 의원들이 있었지만···그들도 당의 큰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