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범죄 수익>
찰칵 찰칵―.
눈부신 플래쉬 세례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눈살을 찌푸리거나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특유의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들어 언론이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의원님 이번에 사건조사 때문에···.”
“법인카드 사용처 중 선거 당시 민국당 의원 부인들과 점심 식사를···.”
“사모님이 소고기를 집 앞에 두라고 했는데 정말 같이 안 드셨습니까?”
“당시 몸이 안 좋아서 집에 있으셨다고···.”
“의원님···의원님···”
기자들의 질문세례에도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고 묵묵하게 차로 걸어가서 탄 사내는 기자들의 시선이 멀어지고 나자 무섭게 목을 죄고 있는 넥타이를 풀더니 기사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백 비서 이게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그게···.”
“저런 뜬소문으로 기자들이 몰려와서 되겠어?”
“이건 전부 정치보복으로 이번 정권 앞잡이가 된 검찰의 음모잖아. 그런데 저렇게 사람들이···원···.”
“···.”
“왜 대답이 없어?”
“아닙니다. 의원님 어디로 모실까요?”
“뭐야? 목적지도 안 정하고 출발한 거야?”
“기자들의 기세가 워낙 드세서 우선 출발했습니다.”
“안남시 집으로 가자고. 이제 그 집도 처분할 때가 된 것 같아.”
“아···.”
“물론 경기도 지역공사 공관은 정리하고 처분해야지.”
“네.”
“그리고 법인카드 의혹은 너무 자잘한 거 아닌가?”
“그러게 말입니다.”
“집에서 음식 좀 시켜 먹을 수도 있는 거지 그런 사소한 것 가지고 이렇게 언론이 잡아먹으려고 드니 정작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는 거 아니야.”
“무슨···.”
“이렇게 말귀가 어두워서야.”
“이수민 대통령 부인 김영희여사 말이야. 이번에 너튜브 보니까 수천만 원짜리 팔찌에 반지에 아주 호화롭게 순방 다녀온 것 같은데 그런 게 초밥이니 샌드위치니 하는 문제보다 더 큰 문제 아니야? 수천만 원하고 수십만 원하고 비교가 되냐고.”
“그렇지만 자기 돈으로 산 물건하고···.”
“아니···국민은 수천만 원짜리 호화로운 액세서리를 한 부자를 싫어한다니까? 말귀가 어두워 내 말을 못 알아 들었냐고.”
“아닙니다.”
“내 비서관이라면 알아서 내가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그런 능력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네···.”
“그리고 보니까. 백 비서관이 언론사 출신이라고 했던가?”
“네.”
“잘 아는 친구들하고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잘 말해보란 말이야. 이래도 못 알아들어?”
“아닙니다.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래···그래야 직원이지. 국민 혈세로 월급 받으면서 벌레 새끼 마냥 월급만 축내면 되나?”
“아닙니다···.”
“그래. 도착했나?”
“네. 저는 주차하고 올라가겠습니다.”
“뭘···오늘 바쁠 텐데···올라오려고 해? 주차하고 바로 퇴근하라고.”
“아···네···.”
“그럼 내일 보자고. 내일은 웃는 표정으로 알지?”
“네 의원님 내일 뵙겠습니다.”
배 비서라는···사실상 운전사로 밖에 대접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이전의 자신의 행동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듯 덕담 나누는 표정으로 배 비서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차에서 내렸다.
사내가 내리자 이웃으로 보이지 않는 군중 속에서 큰 소리로 사내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양손을 들어 화답한 사내는 간단한 연설을 하고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집에 들어가자 밖의 환호 소리와 다르게 초조한 듯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 무표정한 얼굴로 외투를 벗으면서 말했다.
"네일숍 갔다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손톱을 물어뜯는 거야?”
“당신은 걱정되지도 않아요? 내일 참고인 조사로 내가 경찰서에 가는데?”
“그러게 적당히 쓰지 그랬어.”
“당신도 좋다고 했잖아요. 생활비도 절약하고 선거운동비에 보탬 된다고.”
“후···그거야 적당히 해야 좋은 거지. 내일 경찰에 가서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 비서가 알아서 한 거라고 그렇게 말해.”
“한 비서야 내가 시킨 일만 처리한 건데···그렇게 눈 감고 아웅 한다고 넘어갈 수 있겠어요?”
“안 될 건 뭐야?”
“네?”
“변호사하고 어제 통화했는데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 명백해서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고 금액을 낮춰서 국고손실죄만 벗어나도 최선이라고 했다고요.”
“뭐를 해도 내가 정치인이고 국회의원인 이상 당신한테도 일정이상 강하게 압박할 수 없어.”
“하지만···김영희 그 여자는 비싼 옷 입고 비싼 액세서리 사용했다고 마녀재판 하듯이 언론에서 저 난린데···나는 법인카드 그것도 국고손실죄라고요.”
“그런 건 다 의미 없어. 당신이 김영희보다 날씬해? 예쁘냐고?”
“그게 무슨···.”
사내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는 기분 나쁘다는 듯 사내를 향해 인상을 찌푸렸지만 사내는 무표정인 상태로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나라는 말이야. 눈에 보이는 거에 약해. 자기보다 예쁘고 어려 보이는데 비싼 것까지 주렁주렁 걸치고 남편도 대통령이다? 그건 모든 여자의 적이란 말이라고 뭘 해도 안 좋게 언론에서 취조하듯 취재할 거고 그런 언론에 여론도 편승할 거야. 당신은 집에서 두 아들을 키운 아주 훌륭한 가정주부고”
“···?”
“출산율이 저조한 나라에서 아들 2명을 그것도 가정주부로 훌륭하게 키워냈으니 언론에서 뭐라고 하든 정치적 공세라고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야.”
“하지만 첫째는 온라인도박 그것도 직접 운영하기까지 하고 그 돈으로 여자까지···.”
“그거야 유언비어지. 당신이 그 사실을 확인해줄 거야? 언론에 제보할 거냐고.”
“내가 미쳤어요?”
“그런 이야기가 돌아도 증거를 가지고 오기 전까지는 정치적 모략일 뿐이야. 누가 뭐래도 우리는 훌륭하게 가정을 지켜온 중산층이고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아름다운 가족애를 보여주기만 하면 돼.”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도 어쩜···.”
“거짓말 아니야. 진실은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중장동은 이전 정부···그리고 이수민 대통령 게이트인 거지 내 문제가 아니라고 먼저 이야기하면 모든 사건에 이수민이 붙어서 나가게 되어 있어. 진실이야 아무래도 좋아. 언론은 조회수와 이슈만 선점하면 그만이니까.”
“그렇지만···. 간혹 아픈 곳을 찌르는 기사가···.”
“그런 기사는 한 시간도 상단에서 버티지 못해. 포탈 사이트나 언론사도 전부 국회의원의 과반수가 넘는 민국당의 힘 앞에서는 그저 조금 거슬리는 거스러미···그 정도일 뿐이니까.”
“···정말 괜찮을까요?”
“분명 오늘은 법인카드로 시끄러울 테지만···내일은 김영희 여사의 외국 방문 때 입었던 옷차림이 전 뉴스를 도배할 테니까···걱정 안 해도 돼.”
“그런 난 당신만 믿을게요.”
“믿으라고···그때 나하고 결혼하기로 선택하고 나서 내가 약속을 안 지킨 적 있나?”
“아니요.”
“근데 아주버님 일은···.”
“수항원 사건도 적절하게 덮었으니까. 내 형님이 거기 수감 되었다가 이송되었다는 것도 관련자들도 모르게 조용히 처리했어.”
“나는 수항원이 그 정도 일 줄은···.”
“정신병원이 거기서 거기지 뭐.”
“하지만 강제입원으로···.”
“강제입원 한 번으로 그 인간 입을 다물게 했으니 성공적인 거지.”
“정말···수항원에서 빗물만 마시고 버텼데요?”
“그거야 그 인간의 헛소린데 어떻게 믿어. 어쨌든 거기 다녀온 인간 중에 멀쩡한 놈 없으니까. 그 인간이 어떤 소리를 해도 헛소리로 밀어붙이면 돼.”
“저번에 욕설한 음성 파일은···.”
“가족끼리 감정 상하면 욕도 할 수 있고 그렇지 뭐가 걱정이야?”
“···.”
“내일 경찰 출석요구 때 입조심이나 해 그게 더 중요하니까.”
“알겠어요. 변호사가 하라는 데로만 할게요. 그런데···이번 변호사비는 어떻게 해요?”
“쯧.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집을 팔아서 내야지.”
“아니. 이게 어떤 집인데 팔아서 변호사비를 내요? 저번처럼 성웅 그룹에서 대납은 안되는 거예요?”
“언론을 한번 탔으니까. 서로 조심해야지. 아니 내가 돈을 얼마나 벌어다 주는데 적금이 천만 원도 안 돼?”
“당신 월급이야 천만 원이나 됐어요? 이제 국회의원 돼서 세비 받으면 한 달에 천오백만 원 정도 되겠네요.”
“그 정도면···.”
“그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요? 5천억씩 차명으로 가지고 있다면서 그러면 뭐해요? 제대로 쓸 수가 없는데.”
“지금은 조심해야 하니까. 그래도 생활은 이전수준 유지할 수 있을 거야. 다만 이사는 꼭 가야 해.”
“여기에서 얼마나 정이 들었는데 이사를···.”
“그럼 아는 지인한테 매매계약 허위로 작성해서 넘기고 전세로 돌려서 당신하고 애들은 여기서 지네···. 나는 지역구에 집 한 채 얻을 테니까.”
“뭐···그러면야···.”
“이번 일만 잘 넘기면 내가 언제 당신 힘들게 한 적 있어?”
“그건 없죠···. 난 솔직히 당신이 나하고 결혼하자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데.”
“그렇게 놀랄 일인가?”
“그럼요. 나 말고 좋은 집안 여자들이 얼마나 많아요.”
“아무리 그래도 3팀장한테 내 목줄을 넘길 수는 없지.”
“하긴 나도 그런 영상이 찍힌 줄은 몰랐어요. 그냥 찐하게 놀게 해주고 용돈도 준다고 해서 간 건데···.”
“후···그 일은 그만 말하자고···.”
“어쨌든 난 앞으로도 지금 같은 생활 수준 유지 안 되면 바로 이혼이니까 알아서 해요.”
“알았어. 내가 약속 안 지킨 적 없잖아.”
“흥···. 나도 당신이 밖에서 처첩을 들이든 무슨 사업을 하든 협조하면 협조했지 뭐라고 한 적 없잖아요.”
“그러니까. 나하고 천생연분 아니겠어?”
“하하핫. 큰형님한테 욕설 내뱉을 때 내가 옆에서 거들어서 그래요?”
“뭐 그것보단 서로 사생활은 터치하지 않고 지킬 것만 지키면 평범한 다른 부부들보다 훨씬 풍족하고 자유롭잖아? 답답한 과거의 유물인 결혼생활보다 훨씬 낫지 않아?”
“알았으니까. 약속이나 지켜요. 그리고 저번처럼 뉴스에서 망신이나 당하지 말고.”
“나도 내 주니어를 법정 가서 확인시켜야 하는 일이 발생할지는 몰랐지.”
“무슨···근데 진짜 판사가 확인했어요?”
“판사가 확인할 이유가 없잖아?”
“그럼?”
“더럽고 힘든 일은 다 서기관 시키는 거야. 그리고 그런 서기관들은 이게 좋다고.”
사내가 머리를 톡톡 치면서 다른 손으로는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자 여자는 알만하다는 듯 콧방귀를 뀌더니 이내 손을 흔들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머리 좋은 게 아니라 돈을 밝히는 거겠죠.”
“뭐가 자신의 미래에 제대로 된 투자인지 잘 아는 거지.”
“난 내일 경찰출석 때를 대비해서 불쌍하고 서러운 표정 좀 연습하다가 피부 마사지하고 자야겠어요.”
“알겠어. 너무 붙잡았네. 변호사 말 꼭 듣고 알았지?”
“알았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