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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87화 (187/205)

<187화 사람···그리고 사람 4>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뒤로하고 왼손을 펴서 앞으로 내밀었다. 익숙하게 두툼한 노란색 서류봉투가 턱하니···내 손 위로 올려지고 한참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 결국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그래. 한동안 안 오다가 왔어.”

오래된 건물 특유의 낡은 시멘트 내음 사이로 얼룩덜룩 먼지가 앉아 흐릿한 창문 사이로 빛줄기가 익숙한 공간을 그대로 투과하고 있었다.

한낮의 햇살이 공기 중에 떠도는 먼지를 하나하나 비추는 모습은 몽환적이지만···이곳에 그만큼 오래된 공간이라는 걸 상기시켜줬다.

흐릿한 창문이지만 창문에 걸린 익숙한 글자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초록 흥신소···.’

어울리지 않는 간판이지만 동시에 이곳에 무섭도록 어울렸던 옛 사장의 얼굴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러게 오랜만에 왔네.”

“인수인계는 전부 받은 건가?”

“뭐 그렇지. 처음 1년은 상주하다가 나중에는 베트남 아니면 태국에서 국제전화로 인수인계 받아야 했지.”

“전 사장은 잘 지내는 건가?”

“너만 안 만나면 잘 지내는 거겠지?”

“날?”

나와 흥신소 사장의 대화에 끼어든 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잔을 내려놓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다혜야. 사무실에 안 나와도 된다니까.”

나와 흥신소 사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하고 쓴웃음을 짓는데 오래된 집기 하나하나 먼지를 털어내면서 익숙하다는 듯 마스크를 쓴 얼굴로 무심하게 대답했다.

“청소도 안 하면서···이 먼지 좀 봐.”

나는 익숙하게 먼지가 더 들어가기 전에 단숨에 마셨다.

흥신소 사장은 나를 따라 뜨거운 커피를 마시다가 콜록거리면서 기침을 터트렸다.

“넌 도대체 이걸 한입에 마신 거야?”

“뜨겁다고 김 올라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괴물 보는 듯한 시선을 피하면서 다혜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소란스러운 초록 흥신소를 벗어났다.

‘사이비 교단에서 잘 빠져나와서 송태연과 잘 지내는 것 같네.’

송태연이 다혜를 구했지만 동시에 다혜라는 존재가 송태연에게 힘이 되어 준 것일지도 몰랐다.

덕분에 송태연이 자리잡고 갈풀에게 인수받은 초록 흥신소를 잘 운영하는 것 같았다.

‘나와의 약속도 잘 지켜주고 있는 것 같고···.’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재민이를 찾기까지 흥신소를 그만두지 않을 송태연이었기 때문에 그가 운영하는 이곳을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아직은 내가 조사를 요청하는 의뢰에 의구심을 가진 정도인 것 같으니까 괜찮으려나?’

언론에서 도시 전설 같은 심판자와 연관해서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투자목적으로 좀 특이한 의뢰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재민이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라면 송태연은 나와의 약속을 깰 인물이 아니니까.’

재민이가 살아있다는 희망은 이미 희미해졌다. 그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암매장되어 허무하게 쓰러지지 않고 굳게 가족이라고 믿는 송태연에게 장례를 치를 기회라도 주고 싶었다.

‘재민이 입장에서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기회마저 없다면 그건 너무 잔인한 처사가 아닐까?’

범죄자의 인권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시끄러워지는 세상이 되었는데 피해자는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허무하게 쓰러진다.

‘모두가 인권을 외치고 있는 와중에도 결국 인권이라건 힘 있는 존재들에게 주어진 단어이고 힘없는 존재에게는 그저 손에 잡히지 않는 관념인 현실.’

그저 어쩔 수 없이 사고처럼 시작된 심판자라는 일이 어느새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큰 뼈대가 되어 있었다.

피해자가 제대로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에 대한 혐오에 가끔 나도 스스로에게 놀라울 만큼 분노할 때가 있다.

‘도시 전설처럼 심판자라는 이름이 돌기 시작하면서 좀 조용히 지내려고 했는데···.’

하지만 이번 수항원 사건의 원장은 도저히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지 않을까? 아니면 악마?’

대백공이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세계이기 때문에 악한 기운이 더욱 강성해질 거라고 말하기는 했지만···세상은 내 예상보다도 빠르게 사악하고 이기적이면서 멸망이 가속화되어가고 있었다.

‘이래서 지구는 인간이라는 이기적인 존재를 거부하는 게 아닐까?’

상념에 더 빠지기 전에 차에 올라탄 나는 초록 흥신소에서 받아온 노란 서류봉투를 꺼냈다. 수항원 사건에 대한 간략한 내용과 그와 관련된 관련자들을 전부 조사한 내용이었다.

‘우선 제대로 된 사실을 파악하려면 당사자에게 듣는 게 가장 빠르겠지?’

수항원 원장의 소재지가 적힌 페이지를 보고서 바로 출발시켰다. GPS가 장착되어 있지 않은 오래된 중고차를 타고 휴대폰과 노란 서류봉투는 금고에 넣었다. 옷차림은 초록 흥신소를 들리기 전부터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기 때문에 손볼 곳이 없었다.

한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번뇌에 휩싸였던 시간을 헤아리면 지금의 담담하고 어떻게 보면 밀린 일을 처리한다는 느낌 정도만 드는 지금이 훨씬 이상해야 했다.

처음에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부정과 분노에 휩싸여서···

나중에는 떠밀리듯 스스로와 협상하고 결국에는 우울해하면서도 현재의 상황을 수용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결국은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지 않았을까?’

회귀를 통해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아니면 새로운 힘에 취해서?

기존과 같은 삶을 살았다면···나는 김 씨 아저씨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해도 지금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깊어지는 상념을 억지로 갈무리하면서 엑셀에 힘을 준다.

부앙―.

차는 빠른 속도로 나가지만 나의 상념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결국 외면한다고 해도 결론은 같았으니까.’

밝았던 햇살이 점차 기세를 죽이면서 노랗고 붉은색으로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하자 계속 외면하던 안남시 그것도 아버지 묘소를 찾아가 대백공과 대화를 했던 기억이 물밑 뜻이 떠올랐다.

‘그날도 이렇게 노을이 지던 날이었던가?’

대백공이 나에게 힘을 준 이유?

멸망이 시작된 세계가 질서를 잃지 않기를 바란 것이지 않을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계약에 걸린 제약 때문이겠지.’

정의의 저울을 레플리카 같은 모조품을 만들어서 넘겼을 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신들이 사용하던 신기를 모조해서까지 넘긴 건 단순한 보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GPS가 달린 신형은 아니었지만 차는 부드럽게 내가 목적지로 삼은 곳으로 향했다.

‘대백공은 처음부터 심판자에 대한 계획이 있었던 것일까?’

그에 대한 질문을 미루고 미루지만 결국 언젠가 터트리듯 물어볼 거라는 걸 나도 대백공도 알고 있다.

저무는 노을 사이로 보이는 차장 밖의 가로수 길이 꼭 나를 이곳이 아닌 장소로 초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잘 아는 존재니까.’

힘에는 대가가 필요하다고 했던···대백공의 말에서 유추하자면 나는 힘을 가지게 되었고 그 대가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범죄자들을 정의의 저울을 통해 심판하고 있다.

차창 밖으로 빠르게 부딪쳐오는 차가운 공기가 내 폐부를 시리게 만든다.

사법 정의가 있는데 사적 제재를 허용한다면 그건 또 다른 범죄자가 하는 자기변명일 뿐이라던 경수의 말이 떠오른다.

‘뭐 변명할 생각도 없지만···.’

나는 범죄자다. 다면 인간들의 사법체계나 신들이 보는 카르마의 제재를 피한 것일 뿐이다.

차가운 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어두워지는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린다.

‘결국···언젠가···내가 벌인 죄의 대가를 치르게 되지 않을까?’

대백공은 어려운 말로 나를 현혹하거나 속이려고 한 적은 없다.

그저 진실을 전부 말해주지 않았을 뿐···.

‘대백공은 카르마 즉 업보를 쌓지 않는다고 했지만···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으니까.’

상념에 젖어 국도를 타고 외진 산길에 도착하자 나는 헤드라이트를 끄고 옷차림을 다시 한번 살폈다.

시동이 꺼진 조용한 차 안에서 나의 심장이 점차 달아오른다.

검은색 운동복에 흔한 운동화 밑창은 일부러 훼손해서 발자국으로 특정 브랜드를 알아낼 수는 없지만···덕분에 마찰이 약해져서 미끄럽다.

‘뭐, 내 감각에 넘어지는 게 더 어렵겠지만···.’

마스크와 야구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장갑을 낀 상태에서 차에서 내렸다.

익숙하게 산을 타면서 장갑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흥분하지 말고···. 놈들의 기억은 사실확인 정도만···.’

내가 보는 밝은 낮의 세계와 밤의 세계는 너무나 다르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오랜 시간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보리니····.’

어두워진 만큼 산을 타는데 발걸음을 주의해야 했지만···술법을 통해 강해진 육체의 감각은 밤조차 뚫어볼 정도의 시력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심연에 오래 몸을 담근 게 아닐까?’

내가 아무리 밝은 낮의 세계를 지향한다고 해도 정의의 저울로 처벌할 대상과 마주할 때마다 읽게 되는 놈들의 기억은 나를 질척이는 진창에 던져넣고는 했다.

그들의 기억 속의 피해자는 한없이 약하면서 동시에 한없이 강인했다.

‘강하기 때문에 약한 걸까?’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악행은 사람이기 때문에 처벌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가 처벌하기 원하기 때문에 처벌하는 것일까?

그런 나의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저 사회체계라는 틀 안에서 사법 정의를 벗어난 이를 심판자라는 이름으로 찾아갈 뿐이다.

‘피를 보기에는 너무 좋은 날이군.’

어김없이 나타나는 질 좋은 나무로 된 울타리 너머로 세련된 외관의 3층짜리 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집 아니면 별장?’

범죄 목적의 대부분은 금전 관계에서 출발하고 안타깝지만···피해자를 대가로 범죄자는 대가 없는 풍요를 누리곤 했다.

‘보이스피싱 범인이 500억대 자산으로 호화생활을 했다고 했던가?’

보이스피싱을 당한 당사자와 가족은 정작 명절날 제대로 가족과 함께하기도 힘들 때···범인은 피해자의 돈으로 호화스럽게 하루하루를 허무하게 보냈을 것이다.

피해자가 피해 금액을 조금이라도 복구하기 위해서 한 시간 더 일하고 휴일도 반납하고 가족과 시간도 줄일 때···

범인은 게임을 하면서 한 시간을 더 놀고 너튜브 같은 비대면인 상태에서 피해자들을 약 올리기라도 하듯 자신이 가진 명품가방 호화로운 집 전시라도 하듯 세워둔 비싼 차량을 올리며 시간을 물 쓰듯 낭비했을 것이다.

그렇듯 범인은 그것도 피해자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 범인일수록 찍어내듯 똑같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돈이 세상의 전부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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