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사람···그리고 사람 3>
수도권 중심의 길게 올라선 빌딩 숲 사이로 햇빛이 잘 드는 큰 통창 사이로 두 명의 남자가 회의실로 보이는 장소에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내려놓으면서 자리에 앉는다.
회의실은 이미 사용하고 있었는지 각 자리마다 노트북과 메모지가 올려진 탁자를 보면서 거친 인상의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남자가 그보다 젊어 보이는 남자에게 말을 건다.
“사장님 이거 정말 보도자료 만들라고요?”
“왜요? 충분히 기사가 될만한 사건이잖습니까?”
“지상파 3사에서 뉴스로 안 만들고 보도도 통제하는데 이유가 있다는 생각 안 하시는 겁니까?”
“어때 우리는 종합편성채널이라고 하지만 케이블이잖아요. 케이블이 케이블 했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왜? 종교만큼 건들면 안 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서입니까? 우리 생각을 말고 사실관계만 보도하면 되지 않겠어요?”
“어렵게 구한 일자리가 바로 날아가는 건 싫습니다만···.”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회의실을 사용했던 이들이 나타나 사용하던 집기를 챙겨 나가면서 회의실 문을 닫자 적막한 침묵과 대비되는 밝은 햇빛이 회의실 테이블을 비추고 있었다.
“선배 나도 사장 자리 바로 날리고 싶지는 않다고···.”
“후···현진아 정말 괜찮겠어?”
두 사람은 단순히 사장과 직원의 관계가 아니었던 듯 보는 시선이 사라지자 좀 더 편한 분위기로 대화가 시작되었지만 가벼운 주제로 보이지는 않았다.
“선배도 제대로 된 기사 쓰고 싶어서 이쪽으로 이직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쓰고 싶은 내용을 써서 보도자료 만들라고요.”
수염만큼이나 덥수룩한 머리를 거칠게 흩트리면서 중년 남자가 현진이라고 불린 남자를 향해 말했다.
“나 이제 정말 갈 때 없다.”
“저도 없어요.”
“너 따라서 신생 케이블 채널로 온 게 잘한 건지 모르겠다.”
“승진도 하고 연봉도 올랐는데 왜 내 심장은 이렇게 뛰는 거냐?”
“이제까지 하고 싶은데도 할 수 없었던 걸 하려니까. 심장이 기대로 열심히 뛰나 보죠.”
“정말이냐? 진짜? 나 진짜 기사 쓴다?”
중년 남자는 현진이 자신을 말려주기를 바란다기보다는 이제까지 자신이 겪어왔던 상황과 다른 흐름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현진이 그런 중년 남자의 반응에 자신도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쓰지 말라고 그렇게 뜯어말릴 때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멍석 깔아주니까 왜 그러는데요?”
“그렇지? 나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우선 사실관계만 적시하고 분위기 봐서 심층취재로 돌리면 되잖아요.”
“심층취재까지 갈 수 있을까?”
“저는 그렇게 가면 좋겠어요. 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선한 이익집단은 없다고요.”
“음···. 그거 타이틀로 괜찮겠는데?”
“이제는 조간신문 기자가 아니라고요. 종합편성채널···.”
“알아. 영상 쪽 보도자료야 네가 알찬 녀석들로 데려왔을 테니까 난···제대로 된 기사만 쓰면 되는 거잖아.”
“같은 소외 받은 사람들인데···한쪽은 조명받지 못하고 한쪽은 조명받는다는 것도 체크 하면 좋겠네요.”
“음? 어떤 사건?”
“섬에서 갇혀서 각종 노역으로 노동력을 갈취당하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던 사건이요.”
“아···. 수항원 사건 말하는 거구나? 그거 그것은 알고 있다 팀이 취재했던 사건 아닌가?”
“후속 취재는 불발되었다고 하던데 그 원장이 집행유예 받았다고 했어요.”
“집행유예? 형 집행이 2년 이하가 나와야 가능하지 않나? 사람이 죽고 암매장된 시신도 발견되었는데도 집행유예가 나왔다고?”
“폭행, 뇌물공여 혐의만 받아서 1년 6개월 선고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아마도 뒤에 누군가 있는 거겠죠. 아니 그래야죠. 아무도 뒤를 봐주지 않는데 그런 사람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면 뭔가 잘못된 거 아니겠어요?”
“후···그런데 비해서 이번 지하철 2호선 장애인차별폐지연대 지하철 시위와 너무 비교되는데?”
“같은 소외 받는 사람들이 한쪽은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한쪽은 불법을 저질러도 언론이나 검경 정치권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단체가 되었죠.”
“후···잘못하다가 새롭게 시작하는 회사에 불똥이 튈 수도 있어.”
“그걸 무서워했다면 사장 자리 맞겠다고도 안 했어요.”
“이래야 내가 아는 오현진이지. 아주 고집은···.”
“그러는 선배도 만만치 않아서 잘 팔리지도 않는 신문기자로 전전했으면서···.”
서로를 바라보다가 피씩 웃고는 현진에게 선배라고 불린 기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자신을 답답하게 누르던 자물쇠가 풀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전까지는 머리와 수염만 덥수룩한 지저분한 아저씨였다면 현진과 대화 후 자리에서 일어난 지금은 올곧은 무언가가 비추는 눈빛이 되었다.
“지금이야 사석이라고 생각해서 편하게 말했지만···사람들 있을 때는 깍듯하게 사장 대접 할테니까 걱정마.”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기사만 잘 써온다면야.”
“이제 위치가 위치니까. 그런 것도 신경 써야지 그런데 너는 이제 현장 안 나가는 거냐?”
“나가고 싶어도···자리 잡는 게 먼저니까요. 뭐든 시작할 때가 가장 혼란스럽고 바쁘잖아요?”
“하긴 그러네. 아직 방송국 직원이고 스태프고 다들 자리 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러니까. 이렇게 혼란스럽고 다들 잿밥에만 관심이 있을 때 제대로 된 기사가 필요하다고 봐요. 분명 누군가는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하겠지만 그렇다고 사실관계를 거짓으로 보도하고 진실에서 눈 돌리는 언론사를 더 늘리고 싶지는 않아요.”
“후···. 사실관계만 적시해서 논란을 안 만드는 쪽으로 해봐야겠다.”
“그럴 수 있을까요? 명확한 불법인데도 장차연 대표를 비롯해서 주동자들에 대한 출석조사조차 거부했잖아요. 사유가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는데···. 사실 기자 입장에서 보면 그것도 장차연이니까 가능한 종횡 아닌가요?”
“그만한 힘이 있으니까 가능한 거지.”
“하지만 같은 소외 받는 사람들 중 제대로 된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짐승처럼 인격이하의 대우를 받고 갇혀 있던 수항원의 원생들과 장차연 대표가 같은 소외계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현진의 말에 선배라고 불린 남자가 고심하는 표정이었지만 취재 수첩이라고 적힌 수첩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와 상황 시간대가 다르니까.”
“물론 실험하겠다고 같은 조건을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분명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 장차연 대표는 불법조차 제대로 조사받지 않을 정도의 힘이 있고 수항원 피해자는 제대로 된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했으니까.”
“···.”
“거기다 그것은 알고 있다 팀이 후속 취재는 불발되었어도 거기 작가한테 들은 말로는 사건이 보도된 이후에 조사가 시작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곳 원생들은 제대로 된 보호조치도 못 받았다고 하더라.”
“···.”
“보상은커녕 수항원 원생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또 어딘가 떠돌고 있겠지. 그곳이 수항원과 다를 거라는 보장도 없고···.”
“정말 차별철폐를 위한 단체라면 수도권같이 이미 어느 정도 인프라가 이루어진 곳의 장애인보다는 지방의 소외 받고 수항원 사건처럼 섬과 같은 곳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이들을 찾아보고 보살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언론의 주목이나 받고 정치권에 발 들이려는 것과 다르게 말이지?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른 법이지.”
“물론 그들이 약자의 입장이 아니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수항원 사건처럼 사지가 멀쩡하다고 항상 강자가 아니라는 걸 꼭 일부러 외면 하는 것 같아요.”
“외면하고 싶겠지. 사지가 멀쩡하다고 항상 강자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면 평범하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자신들에 대한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운동 자체가 동력을 잃어버리는 거니까.”
“그래서 친구가 선한 이익집단은 없다고 한 것 같아요. 처음의 의도는 선하더라도···.”
“이후에 시간이 흐르면 음식이 변질되는 것처럼 이익집단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은 불법적인 것도 상관없다는 듯 변질되는 것이지.”
“제 검사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
“계약서에 갑과 을이라고 고유명사가 아닌 갑, 을, 병, 정이라는 지칭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냐고요.”
“···.”
“자신은 갑과 을이 항상 같을 수만은 없기 때문에 갑과 을이라고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더군요.”
“틀린 말은 아니네. 갑과 을이 항상 같을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갑과 을이 아닌 고유명사가 지칭되어야 하는 거니까.”
“항상 강자일 수도 항상 약자일 수도 없는 상대적 지위인데도 불구하고 강자는 언제나 강자로 약자는 언제나 약자로 본다고 말이죠.”
“어쩌다가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노동운동에 대해서 말하다가요. 노조가 처음에는 사측 보다 약자였지만 지금도 그런 시각에도 동일하게 판단해도 되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왜? 너도 사장이 되니까 회사에 노조가 없었으면 좋겠어?”
“솔직히 NBS 노조 보면 정치권하고 너무 친하잖아요. 방송도 뉴스도 전부 어딘가의 나팔수처럼 변질되어버렸고요.”
“그렇게 따지자면 케이블 채널이 더 심각한 것 아닌가? 고려일보에서도 케이블 채널 만든다고 하던데 그쪽은 완전히 대한당 쪽 아니야?”
“저는 언론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생각보다 중심 잡기 어려울 거다.”
“저도 각오하고 있어요. 그래서 결혼···아이···다 포기하려고요.”
“뭐?”
“언론사 사장이 되었으니 연봉이야. 혼자 쓰기도 벅찰 거고 결혼 안 하면 압력 들어 올 가족도 어머니밖에 없으니까요.”
“자당께서 허락은 하시고?”
“요즘 다들 늦게 가는 추세라고 하고 버티는 거죠. 뭐.”
“허···. 신박한 개념의 불효자네.”
“선배···. 물론 욕을 먹고 회사 앞에서 시위도 당할 거고 소송도 들어올 겁니다. 하지만 사장이 저잖아요?”
“그래. 방송 3사 편집장 뒷목을 잡게 한 미친놈이 너지.”
“그러니까. 그저 사실관계만이라도 제대로 전달하고 싶어요. 그게 제 오랜 꿈이기도 했고요.”
“내가 여기로 온 게 잘한 건지 모르겠다.”
“최소한 통장에 월급 들어가면 생각이 달라질걸요?”
“그럼 이것저것 생각 안 하고 소신껏 사실만 기사로 달 거다. 나중에 딴소리 하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