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상실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간다 3>
나는 내 투자금까지 빨아갈 것 같은 종혁이의 시선을 피해서 고개를 돌리자 두 개의 USB 중 하나를 손에 든 종혁이가 물어왔다.
“현진이 몫은?”
“내가 사업가라고 했지? 이건 어디까지나 경수하고 종혁이 게임 아이템 정리하면서 받은 거라고 현진이 몫은 없어.”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놈.”
“이런 나한테서 피 같은 돈을 뜯어내는 네가 더 대단하다.”
경수는 고민하는 것 같더니 골드 코인 지갑이 들어있는 USB를 들면서 한마디 했다.
“나 인하 그렇게 되고 정말 많은 걸 바꾸고 싶었거든. 그런데 미친 듯이 책만 파고들고 배우면 배울수록 나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한계가 너무 보여서 막막했어. 그리고 사회의 일면을 알면 알수록 두렵기도하고···.”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런데 이 작은 USB 안에 300억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던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나도 미안하지만 돌려주지 못할 것 같은데 괜찮냐?”
“네 몫이라고 몇 번이나 말하냐? 그 아이템 덕분에 난 더 키워서 내 아이템은 더 비싸게 팔아먹었으니까 내가 얼마나 벌었는지 묻지나 마.”
“미친···너 그 돈으로 투자한 거냐?”
“그게 중요해? 어쨌든 성공했고 각자 제 몫도 전해줬잖아?”
“이 자식 이야기만 너튜브에 올려도 바로 인기 채널 아니냐?”
“내가 그런 이야기를 왜 거기에 올려. 그리고 인터넷방송은 내가 아니라 현진이 할 거야. 정확히는 케이블 채널 하나 만들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현진이 인상을 찌푸린 채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현진의 반응에 경수가 익숙하다는 듯 말을 거는 사이 종혁이 플라스틱 의자를 하나 옮겨와 자리를 만들어 줬다.
“아우 씨···”
“왜 또 편집장이 내 기사 통편집한 거야?”
“자꾸 광고 떨어지는 기사 넣지 말고 클릭 유도하고 이슈가 되는 자극적인 기사만 쓰라고 하잖아. 그럼 연예기자를 뽑지 나를 왜 뽑냐고?”
“후···. 그렇다고 설마 사표 쓴 건 아니지?”
“아무리 언론 3사에 전부 합격했다고 해도 두 번이나 옮기면 평판이 안 좋다고···.”
“평판이 문제야? 1년도 안 돼서 두 번이나 퇴사를 하는 사람을 어디서 뽑아주겠어.”
“그렇다고 쓰레기 같은 거짓도 아니고 진실도 아닌 기사만 쓸 수는 없잖아.”
“왜? 어떤 기사를 쓰라고 하길래 그렇게 열폭 하는 거야?”
“야당 정치인이 이건 정치적 보복이라고 하는 일방적인 말을 그래도 쓰라고 하잖아.”
“정치적 보복?”
“그래. 야당이든 여당이든 기업인이든 어쨌든 수상한 상황을 포착했다면···조사를 해야 하는 게···정당하게 수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언론 3사에서 야당에서 말하는 정치적 보복 수사라고 말하는 걸 그대로 기사로 올리면 사람들이 부당한 수사라고 생각할 거 아니야. 그러니까 팩트 체크를 하게 해주던지···아니면 상대 당의 의견을 같이 붙여서 올려야 하는데···일방적인 말만 그대로 옮기라고 하니까. 이 정도면 내가 그쪽 언론 대변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진정해. 기자가 아니라 레퍼가 된 줄 알겠네.”
“후···.”
현진은 앞에 놓인 맥주는 단숨에 마시면서 탁자에 내려놓더니 이전의 불같이 화가 났던 표정은 사라지고 후회가 남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사표 던지고 나왔지.”
“너 또···. 저번에는 사표 던지고 나오면서 다시는 기자 안 한다고 하더니···.”
”그새 다른 언론사에 합격해서 조용히 지내나 했다···.”
“나 많이 참았어.”
“그래. 많이 참은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두 번이나 사표를 던지면 내가 얼마나 면접을 잘 보고 시험을 잘 본다고 해도 뽑아주지 않을 것 같은데”
“나 위로해주려고 모인 거 아니냐?”
“주인이 동생 졸업식 축하로 모인 건데?”
“아···. 졸업식에 참석도 못 하고···축하한다고 전해줘라.”
현진은 내 동생의 졸업식을 완전히 잊고 있었는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미안해했다.
“내가 이럴 줄 알고 네 이름으로 졸업선물 전해줬으니까. 걱정마.”
나는 종혁이와 경수가 현진을 타박 아닌 타박을 하면서 걱정을 하는 사이에 거의 다 먹은 술안주를 치우고 그 위에 노란 서류봉투를 올렸다.
살짝 취기가 올라오는지 얼굴이 붉어진 현진이 가타부타 말없이 노란 서류봉투를 열더니 말했다.
“뭐야? 제보내용이라도 넣어온 거야? 나 오늘 사표 넣었다고 그 쓰레기 같은 새끼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수리할 거라고.”
“너 같은 놈을 써주는 언론사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나같이 사실에 대해서 집중해서 탐구하는 기자가 필요한 세상이라고 다들 일방적으로 떠드는 소리 말고 말이야.”
“나도 그 말에는 동의해. 그래서 제안하는 거야. 언론사 사장 자리.”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이번에 방송통신법이 변경되면서 인터넷방송 그러니까 소위 케이블 채널도 뉴스 방송을 할 수 있게 될 거야.”
“뭐?”
“그중에 작은 회사 하나 내가 샀어. 아니 정확히는 경력자 몇 명 모아서 하나 차렸지. 나야 방송이나 언론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내가 나 대신 경영 일선에서···.”
“무슨···. 경수야 나 한번 때려봐. 아무래도 마음속에 계속 담고 있던 사표를 던지는 순간부터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데···.”
“나 말고 종혁이한테 때려 달라고 해. 나 검사야. 아무나 때리면 곤란하다고.”
“이건 진짜 경수가 할 말인데···.”
“내가 경수니까 내가 한 말 맞지.”
“미친 나 꿈꾸고 있는 거 아니야? 이게 진짜냐고···.”
흥분해서 소리치는 현진이를 진정시켜서 자리에 앉게 만들기 위해서 나는 빠르게 덧붙였다.
“지분은 내가 전부 가지고 있는 거고 성과 올릴 때마다 상황 봐서 지분 넘길 테니까, 개처럼 일해라.”
“미친 이런 싸가지없는 말은 주인이가 틀림없는데···.”
“맥주 한잔으로 맛이 간 것 같은데?”
“현진이가 술이 약하기는 하지.”
“기자가 술이 약하면 되냐?”
“기자가 술 마셔야 한다는 건 편견이야. 기사 쓰려면 정신 차리고 써야지.”
“크큭···. 우리한테는 코인 주고 현진이한테는 사장 자리 준건가?”
“나 사업가야. 다 줄 거 주고 받을 거 같은 거니까 그렇게 음흉하게 웃지 말아 줄래?”
“미친놈 어느 사업가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던지냐?”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투자회사의 창업자?”
“미쳤네···. 누가 여기에 잘 나가는 인권변호사와 검사 그리고 미국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가 있는 사업가가 있다고 생각하겠어?”
폭탄 같은 내 선물에도 우리는 어느새 평소와 같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는 평소에 자주 보이는 포차에 모여서 익숙한 대화를 하면서 한잔 씩 하고 하는 이 순간.
한여름이지만 한밤중이라서 싸늘한 바람이 오히려 적당히 열기를 식혀줘서 주변에 플라스틱 의자에 적당히 걸터앉은 저마다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인생에 대해서 열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소였다.
“왜 잘 나가는 기자는 빼놓은 거냐?”
“잘 잘리는 기자겠지.”
“오늘 오전까지 잘 나간 거지. 끝에는 삐딱하게 커서 사표 쓰고 나왔으면 백수 아니냐?”
“나 능력 있어서 바로 취업 된 거 몰라?”
“바로 해고될 수도 있는 거지.”
“주인아 너 이런 걸로 장난치면 안 된다? 나 여기 사인했어?”
“미친 그래도 계약서는 술 깨서 정신 차리고 사인해야지.”
현진이보다 경수가 현진을 말리면서 말했다. 나는 그런 친구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말했다.
“방송사 운영은 내가 알아서 해. 다만 너튜브 같은 콘텐츠 제작은 꼭 병행해서 하는 게 내 조건이야. 그것만 지켜주면 돼.”
“너튜브 같은 인터넷 개인방송이 큰 시장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종혁이가 인터넷 개인방송을 언급한 내 생각에 궁금하다는 듯 질문했다.
대답은 현진이가 했다.
“기자 생활하다 보니 촉이 온다고 인터넷 개인방송이 지금은 아직 수면 속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곧 대다수의 언론을 집어삼킬지도 몰라.”
“왜? 이렇게 봐도 나 사업가라고.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나쁠 것 없지. 케이블 채널 하면서 너튜브에 콘텐츠 같이 올리는 건 그렇게 많은 손이 가는 것도 아닐 테니까.”
현진은 자신의 사인을 막는 경수와 다투면서도 나를 향해 엄지 척을 해 보이면서 말했다.
“미친···. 너 이 새끼 그 성적 가지고 경찰대학교 안 간다고 했을 때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너 사업하는 게 당연한 놈이었어.”
나는 현진의 붉게 타오르는 것 같은 얼굴과 점점 높아지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집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무슨···. 적당히 먹어라. 이러다가 저번처럼 추한 꼴 보겠어.”
“우리가 먹였냐? 지가 스스로 처먹은 거지.”
“현진이가 맥주 한잔에 맛이 간 것 같으니까. 이제 정리해야겠네.”
“왜 나 기분 좋은데···한 잔만···한 잔만 더 마시자.”
“이미 시작됐어. 나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먼저 간다.”
경수가 현진이 계약서도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하려는 걸 막던 행동을 멈추고 들고 온 서류가방을 챙기더니 몸을 일으켰다.
“야. 경수 너 도망치기냐?”
“백수를 바로 스카우트해 간 회장님이 챙겨야지 나 먼저 간다.”
“나도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나 보고 싶다고 할 것 같아서···나도 이만.”
배신자 경수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런 경수를 잡을 것처럼 일어난 종혁이가 나를 돌아봤다.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 오랜만에 한국에서 저녁에 가족끼리 만나기로 했다면서 경수의 뒤를 쫓아 나가버렸다.
“야···이 의리 없는 놈들아.”
나는 300억을 먹고 튀는 경수와 종혁이의 뒤통수에 짧은 욕설을 남겨주고 현진을 가볍게 부축해서 택시에 태워 보냈다.
‘이정도면 친구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