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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82화 (182/205)

<182화 상실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간다 2>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나는 친구들과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해가 진 도심이지만 밝게 빛나는 네온사인과 불빛은 내가 가야 하는 방향을 지시해주는 느낌이었다.

‘이쪽이었던가?’

우리는 평소에 자주 보이는 포차에 모여서 익숙한 대화를 하면서 한잔 씩 하곤 하는 포차가 멀리 보인다.

포차 안 탁자에는 이미 삼삼오오 서로 반가운 이들끼리 모여서 시끌시끌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

코끝을 스치는 알코올 냄새와 안주 특유의 달콤하고 매콤한 자극적인 향이 나를 일깨우는 것 같았다.

‘나는 사람이다.’

주문을 외우듯 다짐하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만 먹고 바로 나와서 주신이가 실망하지 않았어요?”

“무슨···주신이도 기주하고 친구들 만난다고 신나서 나갔는데···. 네가 저녁이라도 가족끼리 먹자고 안 했으면 가족끼리 저녁도 못 먹었을걸?”

“하하···. 그럼 어머니 오늘은 집에서 편히 쉬세요. 졸업식이라고 편의점도 시간 빼셨잖아요.”

“아무래도 오늘은 집에서 밑반찬이나 해야겠다.”

“조금 쉬시지···.”

“요번에 외삼촌이 수술한다고 하루 꼬박 굶었다더라. 그래서 죽 하고 밑반찬 좀 가져다주게.”

“만들어 놓으시면 제가 전해 드릴게요. 무겁게 혼자 들지 말고요.”

“내가 가져다줘도 되는데···.”

“제가 마음이 불편해요. 오늘 어차피 일찍들 들어갈 거라 저도 오랜만에 본가에 들릴게요.”

“그래?”

반색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따로 나와서 일하는 나에 대한 대견함과 안쓰러움이 공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자주 본가에 들려야지 하면서도 들리지 못한 무심했던 내 행동에 반성했다.

포차에 들어가기 전에 안부 전화를 끝낸 나는 시선을 들어 주변을 살펴봤다.

‘이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인가?’

쓴웃음을 입가에 물면서도 주변을 관찰하는 시선을 돌리지는 않았다.

한여름이지만 한밤중이라서 싸늘한 바람이 오히려 적당히 열기를 식혀줘서 주변에 플라스틱 의자에 적당히 걸터앉은 저마다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인생에 대해서 열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소였다.

시끄럽지만 그 모습조차도 열정적으로 느껴지는 이곳이 좋아서 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된 이후로 단골이 된 포차였다.

동생의 졸업식 덕분에 만나게 된 종혁이와 경수는 내가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는 사이에 둘이서 저녁을 먹고 온 것 같았다.

“오늘 같은 날에도 햄버거를 먹어야겠냐? 너 이제 매일같이 야근하면 햄버거에 샌드위치 물릴 정도로 먹을걸?”

“무슨 햄버거가 어떻게 물릴 수가 있어? 없어서 못 먹는데···.”

“네가 너무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만 찾으니까 너네 어머니가 건강 신경 쓴다고 집에서 인스턴트 못 먹게 하시는 거 아니야?”

“악순환이지 악순환···.”

종혁이와 경수의 대화로 봤을 때 저녁은 햄버거를 먹고 온 것 같았다. 내가 웃으면서 끼어들며 말하자 왁자지껄한 술집 특유의 소음 사이로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나를 반겨준다.

“오랜만이다. 군대 제대하면서 다 같이 보고 다들 1년 넘게 못 만난 것 같은데···.”

종혁이가 군대를 제대할 때 다 같이 모이고 각자 바쁘다는 사정에 다 같이 모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너나 그렇지···나는 그래도 자주 만났어.”

“그래···그래··대단합니다. 검사님.”

경수의 핀잔에 종혁이가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걸 들으면서 나는 옆 테이블에서 플라스틱 의자를 하나 더 가져와서 앉았다.

“난 경수가 판사가 될 줄 알았는데···. 아쉽지 않아?”

“원래라면 신원조회에서 검사임용도 힘들 수 있었어. 그래도 연수원 검사시보로 실무 실습 나갔을 때 담당 검사가 나를 좋게 봐줘서 검사로 임용 가능했던 거지.”

“너 연수원 검사시보 때 담당이었다는 서검사님?”

“이번에 강릉지청으로 갔거든.”

“강원도?”

“뭐 이래저래 검찰 인사에 아직 신입인 내가 말하기는 그렇지만 좌천성이라고 하더라.”

“너는 초임지가 어딘데?”

“제주지방검찰청.”

“제주도? 경수 대학에서도 수석이고 사법고시도 수석으로 붙었는데 왜?”

“경수 아버지가 민주화운동하다가 빨간줄 그어진 것 때문에 그런 거잖아.”

“그거야 오히려 대단하게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해서 날 안 뽑으려는 걸 검사 시보 시절 만난 서검사님이 강하게 이의제기해서 들어가게 된 거야.”

“그럼 판사는 아예 임용에 대해서 말도 없었던 거야? 사법연수원에서 성적도 좋았다면서?”

“그래도 어릴 때 꿈꾸던 판검사 중 검사는 된 거잖아?”

“그럼 너는 순환 기간 채우면 어디로 지원할 건데?”

“나? 당연히 서검사님 밑으로 지원해야지.”

“미친놈. 스스로 지방을 자처하냐?”

“어차피 빨간줄 그어진 놈 들어온 거라 위에서 못마땅하게 생각할 텐데···뭐.”

“아니 왜?”

“군사정권 시절이었다고 해도 그 당시에 말도 안 되는 판결이나 조사를 주도했던 이들의 위에서 봤을 때는 나는 빨갱이 자식이니까.”

“아직도 그런 놈들이 남아있다니.”

“그런 사람들이 처세를 잘해서 높은 자리에서 조직에 오래 남아있잖아.”

“그런 게 바뀌어야 하는데···.”

“나는 경수가 검사가 된 것보다 주인이가 경찰대학을 안 가고 바로 서운대 경영학과로 간 게 더 놀라웠는데.”

“맞아···진수형이 얼마나 주인이 노렸냐? 경찰 하자고···하자고···.”

“그것도 좋지만···. 우리 집에서는 내가 가장이잖아. 돈을 빨리 벌고 싶었지.”

“확실히 돈 버는 건 네가 우리 중에 최고지.”

“미국에 투자회사에 지분 있다고 했던가?”

“그럼 미국에서 활동하는 거야? 종혁이하고 같은 LA지역? 거기에 아는 지인 있다고 하지 않았어?”

“투자회사에 투자를 한 거고 거기 CEO는 별도로 있지.”

“그 CEO가 은영 누나인 건 말 안 하고?”

“그것도 알고 있었어?”

“어머니가 말해줬지. 미국에서 유명한 투자회사 CEO가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지역뉴스에서 탐사 보도식으로 한 적이 있는데···그 사람이 아는 사람이어서 놀랐다고.”

“그럼 은영 누나 만났을 때부터 투자회사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그냥 인연이 된 거지. 그리고 투자는 은영 누나가 잘 한 거고 난 거기에 조금 도움을 준 것뿐이지.”

“그래도 대단한데?”

“운이 좋았지.”

“현진이는 오늘 늦는거야?”

“현진이는 기사 올리는 것 때문에 조금 늦는다고 하더라.”

“이건 뭐야?”

“골드코인 지갑.”

코인 거래에 필요한 니모닉 구문과 프라이빗 키가 들어간 USB를 넘기면서 말했다.

“이걸 왜 우리를 줘?”

“린지 게임 아이템 팔았었는데 골드코인으로 주더라고 외국인이었나 봐. 그래서 그때 받았던 코인을 우리 3명한테 맞게 나눴지.”

“뭐? 골드코인 이번에 신문 보니까 개당 5만 달러 넘었던데? 언제 팔아서 받은 건데?”

“졸업하고 자원입대하기 전에 정리했지.”

“뭐? 그 당시에는 10달러 정도였나?”

“정확히는 나도 몰라 어쨌든 지금하고 비교도 안 되는 가격이었을걸?”

경수와 종혁이가 놀라서 서로 말하는 사이로 내가 끼어들어서 말했다.

“지금 팔면 돈 때문에 아쉬운 소리는 안 할 거야.”

“뭐?”

“이번에 한국에도 암호화폐거래소 생겼는데 한국에서는 미국보다 더 비싸게 거래된다고 해서 이참에 가지고 왔어.”

“뭐?”

“못해도 300억 정도 되지 않을까? 시세가 그날그날 다르니까 정확한 건 팔아봐야 알겠지만···.”

“이런 거 받을 수 없어. 나 검사잖아.”

“네가 나한테 줬던 아이템만 내가 판 거야. 그게 운 좋게 골드코인이었던 거고 나도 군대 나오고 한참 잊고 있다가 이번에 한국에서도 코인 거래소가 문을 연다니까 생각난 거야. 그리고 린지 나 혼자 키운 거 아니잖아.”

“고등학교 올라가고서는 너 혼자 키운 거 아니냐?”

“뭐···캐릭터하고 아이템은 너희한테 받은 거니까.”

“원래 주인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을 시세대로 팔아서 가지고 있다가 준거니까. 오히려 내가 이자를 챙겨줘야 하는 거지. 뭐 지금 300억이니까. 지연이자도 억 단위일 것 같은데 챙겨줘?”

“미쳤나?”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고 어째서···.”

“내가 투자를 하면서 느낀 게 뭔지 알아?”

“···?”

“진짜 투자는 사람에게 한다는 거야. 나는 경수가 청렴하고 곧은 검사가 될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경수도 가족이 있잖아. 사는데 필수적인 돈 때문에 경수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검사로서 꿈을 제대로 못 펼치는 건 싫다.”

“나는 주는 돈마다 안 할 거야. 경수 너 거절할 거면 나 줘라.”

“이 돈 귀신이···.”

종혁이는 돈에 연연하지 않던 중학교 때와 다른 반응이었다. 지금도 종혁이 부모님이 자산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 나는 종혁이의 행동에 의문을 표했다.

“종혁이 너는 그 돈 다 어디에 쓰게?”

“내가 다니던 UCLA에서 인권동아리가 있었거든···그게 어쩌다 보니까 커져서 국제인권변호사 모임이 되어버렸지 뭐야. 다들 돈 쓸 줄만 알고 돈 모아오는 놈들이 없어요.”

“그거 가져다가 전부 쓰지 말고 나처럼 투자에서 투자이익금 나오는 것만 사용해 안 그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야.”

“300억 정도면 기금으로 만들어서 운영할 수 있지. 내가 아주 알차게 써줄 게 더 줄 수 있으면 더 주고···.”

종혁이 어머니도 피해자지원재단 운영하는데···종혁이는 한술 더 떠서 국제적인 인권변호사들 활동비를 지원하는 모양이었다.

“미친···나 사업가다 이건 어디까지나 네 몫이니까 그냥 준거지 내 주머니에서 한 푼이라도 받고 싶으면 사업성 검토하게 제대로 서류로 준비하라고···.”

“크크큭 그럼 피해자지원재단처럼 매년 기부해 주는 거냐?”

“거기는 만들어질 때 내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거고.”

“어쨌든 이번에도 기부금도 기대하고 있다고 어머니가 그러더라.”

“자꾸 이것저것 규모가 늘어나는 것 같은 건 내 착각인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나는 내 투자금까지 빨아갈 것 같은 종혁이의 시선을 피해서 고개를 돌리자 두 개의 USB 중 하나를 손에 든 종혁이가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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