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상실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간다>
‘김 씨 아저씨.’
잠시나마 잊고 있던 존재가 떠올랐다.
‘외할아버지.’
생각해보면 내가 잃어버린 사랑하던 존재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아버지.’
회귀 후 내가 할 수 있는 선택 중 정말 올바르고 정확한 선택이 뭔지 이제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선택을 할 뿐이다.
내가 알고 있고 회귀 전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나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선택을 한다고 해도 항상 그게 최선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한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기보다
그런 선택을 했던 내가 회귀 전처럼 실패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리는 패배감에 사로잡히지 않겠다.
‘그런 패배감에 사로잡힌 삶의 끝이 어떤지 나는 이미 알고 있잖아.’
회귀 후 삶이 내 뜻대로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여전히 정답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고 혼란스럽고 두렵다.
이런 혼란과 불안함에 쌓일 때 결국 나를 지지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옆에 있기에 나는 다시 한번 앞을 향해 나아간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그 말속에 나도 모르고 있었지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삶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자 하는 내 의지가 담겨 있지 않았을까?
나는 오늘도 회귀자 답게 하루를 소중하게 불태운다.
이런 하루가 쌓여서 훗날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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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고등학교 25회 졸업식 대표자 앞으로.”
“반갑습니다. 입학식이 어제 같은데 벌써 졸업입니다.”
“어렸을 때는 항상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이제까지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어른이 되면 지금까지 하고 있던 모든 고민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나이가 먹는다고 어른이 된다고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는 걸요.”
“그리고 어른이 된다고 모든 고민이 갑자기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요.”
“그렇다고 우리의 졸업이 우리의 성장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는 말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요.”
“하지만 졸업을 앞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은 참 신비롭다. 그리고 대단하다고요.”
“왜냐하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걸 그리고 그건 존중받아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어린 시절 즉 약한 상태의 무방비한 시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기간이 매우 짧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유아기 시절이 매우 깁니다. 생명체가 유아기 그러니까 미성숙한 기간이 짧을수록 생존에 유리합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참 신비롭습니다.”
“미성숙한 기간이 긴데도 생태계에서 도태되지 않고 종을 그것도 피라미드 최상단에서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이 학교부터 등굣길 모든 곳에서 위험은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나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아니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폭력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특정하고 불운한 사고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많은 사회체계와 평범하다고 자평하는 이들의 시야가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가족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학교에 나오고 배우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단순한 여정에도 우리는 우리를 보호하는 체계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체계는 저 높은 곳의 사람들이 세울 수 있을지언정 그 체계를 인정하고 지키는 것은 우리가 평범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돌보고 살피고 지키기 때문에 인정받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높은 곳의 사람들은 체계나 규칙을 만들 수는 있지만···그것을 지키라고 모든 이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강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우리 주변의 이웃들은 저 높은 곳의 사람들이 만든 체계나 규칙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나와 이웃들을 안전하게 할 거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규칙이나 체계를 지키기 위해서 평범한 이들은 자신의 불편함을 감내합니다. 도로 위에서 속도를 지키고 음주 후에는 운전을 안 하기 위해서 노력하죠.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런 규칙을 지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잠깐의 실수라고 하지만 단지 자신이 조금 편하기 위해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특별하고 조금 편하기 위해서라면 남이 양보를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은 보통 평범한 이들이 지켜주는 질서의 의미를 퇴색하게 만듭니다. 이렇듯 규칙은 지켜야 한다고 믿으면서 지키기 어렵습니다. 그것이 우리네 삶을 강제하는 규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장르소설 중에 아포칼립스에 관한 소설은 제시간과 흥미를 잡아끌었습니다.”
“아포칼립스라는 소재가 왜 인기가 많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건 규칙이 사라진 세상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수도도 전기도 먹을 것도 제대로 없는 세상이지만 지금 우리 주변을 지켜주고 있는 규칙이나 체계가 하나도 없는 세상 그래서 자유롭다고 생각한 세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게 아닐까요?”
“그만큼 우리 주위를 지켜주는 규칙이나 체계가 촘촘하고 그걸 지키기 위해서 각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라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특별하고 조금 편하기 위해서라면 남에게 양보를 강요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은 이런 아포칼립스 소설이 왜 인기가 많은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전부 규칙을 지키지 않고 체계가 없는 세상에서 불편하더라도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진다면 지금 우리 주위의 평범한 일상이 지켜질 수 있을까요?”
“나 하나쯤이야 나 정도 되는 위치의 사람이라면···같은 이유로 하나둘 지키지 않는다면 어떤 사회가 될지 곰곰이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무단횡단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변명하자면 옆에서 건너길래 신호가 바뀐 줄 알고 건넜지만 아직 빨간불이었습니다. 하지만 빨간불인 걸 알면서도 이미 건너기 시작한 발걸음을 돌릴 수는 없었죠. 아니 돌리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나 하나쯤이라고 생각하고 한발을 떼지만 뒤를 보면 그의 뒤를 쫓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주위에 평범하게 그리고 규칙과 체계를 지키려고 하는 이들이 그런 규칙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무시당하고 멸시당하는 세상이 온다면 누가 규칙과 체계를 지키려고 할까요.”
“우리가 평범하다고 그저 지나가는 행인1, 2로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의 사회 그리고 규칙과 체계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방송이나 언론에 나와서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음주운전을 하고 가족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세금을 안 낸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자신들은 민주적 투표로 대표가 된 거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나와 함께 신호등 불빛을 지켜보고 건널목에서 건너는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보는 운전자 그리고 보행자들이 더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배우고 익숙하지만 규칙이나 체계 또한 우리를 지켜줌과 동시에 제재하는 큰 범위의 규율이 대체적으로 공평하게 모든 이들이 지켜갈 때 그 의미와 체계가 확고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크고 학교를 가고 졸업을 하는 것을 평범하다 다들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잘 먹고 잘 자라고 사랑받고 일찍 일어나 제시간에 등교하고 하교하는 모든 것은 단순히 평범하다고 말할 것이 아닙니다.”
“서로 이번에 졸업하는 친구들을 바라보세요. 항상 보고 옆에 있지만 그걸 지키기 위해서 잠과 싸우고 귀찮음을 이기고 이 자리에 있다는 걸 알 겁니다. 왜냐면 본인도 그럴 테니까요.”
“하하.”
“평범하게 졸업하는 친구분들···.”
“하지만 저는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남들이 알지 못하는 노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평범해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무사히 졸업하는 이들과 그런 이들을 지켜준 분들에게 감사하고 또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졸업하시는 이들과 가족분들에게 이건 그저 남들이 하는 평범한 졸업이 아닌 자녀분들과 가족분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평범하다고 말하지만···그 평범함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감내하며 규칙이나 체계를 지켜주는 분들 그리고 하루하루를 평범하다는 말 속에서 꾸준히 지켜준 친구 여러분들이 사회와 체계···규칙을 지켜주는 소중한 한 명의 위대한 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하다는 삶의 대단함을 직접 눈으로 보여준 여러분과 가족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교복을 입고 졸업식 연설을 마치고 내려오는 남학생의 모습은 10년 전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졸업식 대표자 연설을 끝내고 내려오는 동생을 보면서 나에게 현진이 말했다.
“난 너 졸업하면 경찰대 들어갈 줄 알았는데···주신이가 경찰대에 가고 정작 넌···.”
“나도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왜 갑자기 바뀐거야?”
“그건···.”
청소년기의 졸업을 고등학교 졸업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일괄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친절하게 전부 성인이 될 수 있을까?
나이를 먹고 정해진 교육 기간을 채운다고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건 내가 회귀를 통해서 직접 경험했다.
나이를 먹고 시간이 지났을 때 당연히 상식적이고 평범한 한 명의 성인이 된다면 내가 겪었던 사회생활에서 불합리는 있을 수 없다.
상식적이고 평범하지 않은 일들이 눈에 보이고 그런 일들을 내일이 아니라고 넘어가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압력 속에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발버둥 친 수 많은 시간들이 성숙된 성인들이 만들어낸 사회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이 청소년기의 졸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나의 유소년기의 끝을 살인으로 마무리 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어머니와 동생에게 평범한 아들 든든한 형으로 자리 잡았지만 나의 속에는 이제는 진실이 불편해진 불쾌한 괴물과의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그날을 기준으로 나는 강제로 어른이 되었고 동시에 내 안의 괴물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