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각성 2>
이제 차가운 그저 이름도 모르는 시체가 되어버린 교주를 내려다보면서 나를 이루고 있던 구성 중 하나가 바뀌어 더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거라는 걸 부지불식 간에 깨닫게 되었다.
그저 하나의 유기물이 되어버린 시체를 금고를 통해서 던져 넣고 송태연과 여학생이 빠져나간 걸로 예상되는 곳으로 바라봤다.
몇몇의 교인들이 남아 있었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를 피해 물류창고 사이사이로 흩어지듯 사라졌다.
송태연이 탈출하면서 허경장이 준 휴대폰으로 이곳의 상황에 대해 신고한 것 같았다.
주변의 교인들이 사이렌 소리를 듣고 뿔뿔이 흩어진 걸 보면서 송태연과 여학생이 무사히 탈출해 신고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온몸이 무겁고 축축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검은색 운동복이 늘어지듯 들러붙은 핏물로 인해서 축축 늘어지고 있었다. 물류창고를 벗어나서 가로등이 없는 외곽도로를 따라 빠른 속도로 내달리다가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 입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도 되는 걸까?’
집에서 나올 때 나는 조금 특별한 능력을 가진 고등학생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살인자가 되었다.
이제까지 교인들 스스로 자신의 눈을 의심할 만큼의 속도로 움직이던 내 모습과 확연히 다른 갈 곳을 잃은 느린 발걸음으로 어두운 숲 안으로 들어간다.
‘사람을 죽였어.’
사람을 죽였다고 계속 되뇌었다. 그러지 않으면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이유는.
사람을 죽였는데 아무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안에 닭목을 비틀 듯 사람의 목덜미를 잡고 뼈를 손아귀 힘만으로 박살 냈는데도 유유히 그 공간을 벗어났다.
충격이나 기쁨 슬픔보다는 가슴 한 컨에 나를 귀찮게 하던 어떤 사슬을 풀어버린 것만큼 개운하기까지 했다.
이대로 잠이 들면 너무 쉽게 숙면을 취할 것만 같아서 쉽게 집으로 향하기 무서웠다.
스스로가 정상적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벽빛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태양의 끝자락을 쫓아간다.
‘사람답게 살고 싶었는데···.’
새벽의 태양은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 있었다.
분명 몇 시간 후면 이런 어스름 따위 어디에 있냐는 듯 밝게 빛날 태양인 걸 알았지만 지금 보는 태양은 그저 어스름의 한자락으로만 보였다.
‘나는 괴물이 되어버린 걸까?’
새벽빛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꺼풀이 감겼다고 생각했을 때 멀리서 누군가의 부름이 들리는 것 같았다.
눈을 뜨자 보이는 건.
나는 익숙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공간이었다.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그림으로 그린듯한 오두막에 그런 오두막 앞에는 허연 수염을 길게 기른 대백공이 나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다.
맑은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몸과 마음의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혈향이 이곳까지 퍼지는 것을 보니···.”
대백공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계속 되뇌고 있던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대백공이 지금 나타났는지에 대한 궁금증 보다 계속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혼란스러움이 더 컸다.
“김 씨 아저씨가 말한 선이 이걸까요? 저는 선을 넘은 걸까요?”
“정의의 저울에 따른 처분은 업보. 즉, 카르마가 쌓이지 않는다네.”
업보가 쌓이지 않는다. 내가 그를 이름도 모르는 교주를 죽였다는 것보다 그가 죽고 난 다음 나의 상태에 대해 혼란스러운 건 이미 내가 변해버렸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럼 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요? 사람을 죽였는데도 죄책감이나 부채감보다는 죽이는 순간까지 어떻게 하면 이 시체를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정의의 저울을 얻는 순간 심판자가 된 것이기 때문이지.”
“그럼 이전에도 정의의 저울이 기울었을 때 고민하지 않고 바로 심판했다면 그렇다면···.”
‘김 씨 아저씨를 잃지 않아도 되었을까?’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인간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간절하게 기도했지. 비를 내려달라고···.”
“···?”
“그래서 하늘은 비를 내려줬다네. 그럼 인간들이 좋아했을까?”
“가뭄을 해갈할 비가 내렸으니까. 좋아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처음에는 좋아했지. 하지만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를 뿌리자 인간들은 하늘을 원망하며 홍수를 걱정하고 수해로 인해 괴로워했다네.”
“···!”
“뭐든지 과하면 없으니만 못한 법이지.”
“그럼 제가 처음부터 정의의 저울에 취해서 힘을 썼다면 잘못되었을 거라는 건가요?”
“그건 알 수 없지. 가보지 않은 미래가 아닌가?”
“저를 회귀시킬 정도의 힘이 있는 토지신이잖아요.”
“자네는 신이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하나?”
“그게 무슨···.”
“물론···유일신 그러니까···이 세계를 창조한 창조신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
“하지만 인간들의 믿음으로 만들어진 신. 나 같은 존재는 넘치도록 힘이 강해져서 타락하기도 하고 아니면 잊혀서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
“인간의 믿음으로 만들어진 신이라는 건가요?”
“그렇지.”
“그 말씀은···.”
“과거에는 땅을 경배하고 많은 이들이 땅의 소출에 감사하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토지신의 힘이 강했을지언정 지금은···.”
“지금도 땅이 없다면 사람들은 살 수 없는데요.”
“물론 그렇겠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직도 이름이 잊히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고.”
“···.”
“하지만 힘이 약해졌다는 사실은 변하지가 않아. 회귀를 하는 계약조차 많은 제약이 붙어있다네. 물론 자네는 계약 당사자가 아니니 아직 알지 못하겠지만 말일세.”
“제약은 그럼···.”
“제약은 자네 아버지가 지고 과실은 자네가 취했다고 보면 되겠군···.”
“네?”
“인간들의 일이란 게 그렇지 않나? 일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달콤한 과실을 취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
“나는 자네의 자질에 놀라웠네.”
“자질이요?”
“술법은 내가 걸었지만···그래 쉽게 말하면 같은 무기술을 배워도 자신만의 기술로 만들어내는 재능.”
“···?”
“자네에게 걸었던 술법이 자네와 함께 하면서 특이점을 얻고 성장하면서 자네에게 최적화된 것일세.”
“처음과 좀 달라지긴 한 것 같아요.”
“같이 성장해 나간다는 것이겠지.”
“저는 성장한건가요? 저 자신이 밉고 원망스러운데요.”
“모든 미래의 순간을 만족한다는 건 그래···사이비 종교를 믿으면 되겠군.”
“네?”
“오늘 백화교 교인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생각하지 않았나? 이들의 믿음은 어떻게 보상받을지에 대해서 말이네.”
“그건···.”
“그들은 믿는다는 것 자체가 보상일세.”
“···?”
“자네처럼 원하지 않은 결과를 얻은 삶을 이번 생은 망했다고 해서 다음 생 아니 백화교를 믿고 따르면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살 수 있다는 믿음에서 말도 안 되는 짓까지 하면서 믿는 것이지.”
“아···.”
“그들에게는 믿는다는 행위 자체가 보상이었다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참고 해내고 기도하면 끝내 자신이 원하는 삶 아니면 내세에서 높은 권세와 지위를 얻을 거라는 믿음 말인가요?”
“믿음은 나쁜 게 아닐세. 송태연이 변재민의 믿음 덕분에 큰 부상 속에서도 옳은 삶을 살고자 노력했고 결국 재활에도 성공했지.”
“믿음이 나쁜 게 아니면 도대체 어째서···.”
“그 믿음이라는 큰 힘을 이용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지.”
“···.”
“그리고 자신의 믿음이라는 소중한 권리를 남에게 불확실한 미래가 두렵다는 이유로 손쉽게 넘기면서 발생한 불행한 사태인 것···.”
“···.”
“이번에 광신도들을 만나고 무엇을 보았는가?”
“믿음이라는 게 무섭구나···아무리 미래가 불안하고 희망이 안 보인다고 해도 남에게 나의 미래를 손쉽게 넘기면 안 되겠구나···”
“그렇다면서 왜 손쉽게 얻은 힘에 자신의 미래를 쥐여주지 못한 걸 후회하나?”
“···.”
“쉽게 얻는 것은 쉽게 잃는 것처럼 자네는 비록 늦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성숙해졌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되어 있는 것이지.”
“하지만 제가 사이비 교주를 죽인 건 김 씨 아저씨 일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나 다름없는데요.”
“자네는 화가 났지. 본인이든 주변 일이든 일이 이렇게 되게 한 모든 것에게 화가 났을 거야. 하지만 그 화를 아무나에게 푼 건가?”
“그건···.”
“자네는 사이비 교주를 마주하고 정의의 저울을 통해서 처단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걸 확인하고 움직였네.”
“하지만 충동적이고···.”
“내가 인간을 보는 시점과 자네가 사람을 보는 시점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네.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분명 구분되어야 하지.”
“신의 눈으로 보는 인간과 사람의 눈으로 보는 같은 사람이라는 건가요?”
“다른 것을 틀리다고 말하지 않겠네. 자네는 인간이고 인간은 격정적이고 열정이 있고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발전했다고 믿으니까.”
“저는···.”
“만약 자네가 아니었다면 이미 그 힘은 남용되었을 거라네. 그리고 자네가 사이비 교주를 죽인 덕분에 살린 목숨이 얼마나 되는 줄 아는가?”
“어···?”
나는 대백공을 둘러싼 공간을 바라봤다. 지기가 부족해서 현신은커녕 목소리만 전달하기도 힘들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처음 봤던 그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사이비 교주가 죽지 않았다면 이번 연말에 휴거라는 이유로 많은 생목숨이 그대로 쓰러졌을 거라네.”
“···.”
“자네도 회귀 전에 봤던 뉴스에서 대량 자살에 대한 내용을 접하지 않았나?”
“솔직히 누군가 뉴스를 통해서 못된 장난을 치는 것만 같았죠.”
“하지만 진실은 어떨 때는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법이지.”
“그럼 그 사이비 종교 단체가···.”
“자네가 교주를 막지 않았다면 오늘 자네에게 팔다리가 부러진 교인들은 전부 산목숨이 아니었겠지.”
“···.”
“오늘 자네가 한 행동은 결론적으로는 잘 풀린 일이었다네. 하지만 경고하자면 힘에 취하지 말게나.”
“저에게 방금 잘했다고 말씀하신거 아닌가요?”
“땅이 가물어 비가 오기를 내린다고 하지만 비가 너무 내려 수몰이 되면 또 하늘을 원망하는 법이라고 말했지. 그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격언이라고 생각하나?”
“···.”
“실제 비를 내리는 힘을 가진이가 그 힘에 취해서 벌어진 비극이었다네.”
“네?”
“땅이 너무 가물어 많은 이들의 기도와 믿음의 힘으로 한 아이가 비를 내리는 힘을 얻었지.”
“···.”
“가문 땅의 해갈을 돕고 전부 아이를 칭송하며 고마워했다네.”
“···.”
“힘을 쓸수록 힘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안 아이는 자신을 두려워하면서도 경외하는 인간들의 시선을 즐기면서 점점 힘을 키우기 위해 계속해서 비를 내렸지.”
“···.”
“계곡이 넘쳐나고 강이 둑을 타고 범람했다네. 하지만 아이는 비를 멈추지 않았다네.”
“그럼···.”
“결국 큰 홍수가 나 수해로 모든 땅의 인간들이 피해를 보고 나자 아이의 힘을 두렵다 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힘이라고 낙인찍었다네.”
“그럼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 것 같나?”
“아···.”
“어린 친구 자네는 충분히 잘해주고 있다네. 자네처럼 고뇌 없이 힘에 취하게 되면 타락자가 되는 것은 불에 보듯 뻔한 법이지.”
“저는 제 모습에 실망하고 후회하고 있는데도요?”
“과하면 좋지 않다네 그건 비단 힘이나 능력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네.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
“전 살인을 하게 되면 제가 충격을 먹거나 최소한 괴로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살인 후에 느낀 건 귀찮음 뿐이었어요.”
“···.”
“이제 죄를 지은 이들을 심판하고 다니면 되는 건가요? 아무도 모르게 계속 죽이고 실종시키면서?”
“자네는 어떻게 하고 싶나?”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