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휴거 5>
아찔한 감각과 함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들리던 대화가 엿가락처럼 느려지면서 감각이 점차 공항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갈풀이라는 남자가 씩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눈동자만큼은 냉정하게 굳어있었다.
“이봐 누구 소개로 날 찾은 거야?”
누군가의 사주로 추적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어려 보여서 의뢰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갈풀은 흥신소를 하면서 얼굴이 알려진 건가? 그리고 초록흥신소라니 작명이 너무 이상하잖아? 보석 반지 낀 남자의 반응도 그렇고 일부러 그런 건가?’
내가 계속 말이 없이 서 있자 갈풀이라는 남자가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듯 말했다.
‘대백공이 선연이 될지 악연이 될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했지.’
“얼마나 심각한 의뢰를 넘기려고 서서 얼 타고 있는 거야?”
“아···. 그게 제 친구가 사이비종교 단체에 들어간 것 같은데···.”
“사이비?”
“네.”
“난 종교단체 일은 안 해. 끝이 지저분하거든."
“···?”
“지저분하다고요?”
“쉽게 말해서 지나가다가 폭행당하는 여자를 구해주려고 싸웠더니 피해자는 도망가고 나는 폭행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
“그렇지만 제 친구는 사이비를 믿어서 들어간 게 아니에요.”
“다들 말은 그렇게 하더라고.”
“···.”
“그리고 처음부터 말했지만 나는 사업 접고 해외로 나가기로 했단 말이지. 이제 비행기 수속도 하고···.”
“오천만 원.”
“뭐?”
“적어요? 그럼 두 배 아니 세 배면 되겠어요?”
“허···이 친구···. 아니 가장 중요한 걸 이제 말하면 하하핫···. 그래도 비행기 표까지 포기하고 일 진행하는데 진행비는 별도 그건 이 업계 관행인데 이 정도는 알겠지?”
“그럼 의뢰를 받는다는 건가요?”
“우선 선금부터?”
나는 돈을 뽑아오겠다고 말하면서 화장실에서 금고에 넣어놨던 현금 뭉치 중 하나를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갈풀에게 넘겼다.
“아이고 이런 호구 아니 어린 의뢰인을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예상을 못 해서 어떻게 사무실로 가서 마저 대화할까?”
“아니요. 그저 행방만 빠르게 알아봐 주세요.”
현금을 품 안에 넣고 공항을 빠르게 빠져나가는 갈풀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김 씨 아저씨가 좀 더 세속적이었다면 내 옆에 있었지 않을까?’
가까운 사람이 영웅이 되어서 멀리 떨어지거나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것보다 좀 세속적이고 속물이라고 내 옆에 그리고 항상 만날 수 있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갈풀을 만나고 나서 집에 들어오자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송태연의 행방에 대한 장소가 찍혀 있었다.
“빠르네.”
어머니가 내가 들어와서 씻고 나오자 저녁상을 차리면서 뭐가 빠르냐고 질문했지만 나는 식사만 급하게 마치고 운동 나간다는 핑계로 바로 집에서 나왔다.
익숙하게 공원에서 금고를 통해 꺼낸 별 특징 없는 다른 운동복을 꺼내 입고는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났다.
‘의천군?’
재민이의 휴대폰 신호 마지막에 찍혔다고 하는 곳에 송태연의 위치가 찍혀 있다는 사실에 못내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도착한 곳은 의천군 외각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물류창고로 보이는 곳이었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지만 물류창고 주변은 환하게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몸을 낮추고 근처의 높은 건물을 찾아봤지만 외진 도로에 있는 물류창고보다 높은 건물을 찾을 수는 없었다.
‘저건···.’
나는 도로 근처에 세워진 전신주를 날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올라갔다. 다행히 밤늦은 시간 전신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시선이 모이는 일은 없었다.
전신주에서 내려다본 물류창고는 외곽에서 봤을 때와 다른 느낌이었다.
‘창고가 둘러싸인 가운데 공터에···캠프파이어를 하는 건가?’
창고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기 때문에 물류창고 중심 공터에서 불을 지피고 있는 게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다.
‘물류창고에서 불이라니 위험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하기 무섭게 물류창고의 거대한 철문 중 하나가 열리더니 기괴하게 생긴 철판을 사람들이 밀면서 나타났다.
‘저건 뭐지?’
십자가처럼 생겼지만···좌, 우의 날개 부분이 하늘로 올라간 십자가보다는 삼지창을 닮았다고 하면 어울릴만한 육중한 철판은 자세히 보니 무언갈 묶을 수 있는 벨트가 달려 있었다.
‘아무리 봐도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건 아니지?’
사람들의 악의가 느껴지는 캠프파이어의 불기운이 묻어나는 삼지창 같은 장치는 불길하게 빛나 보였다.
“아악···살려···살려주세요···. 교주님 은총 받을게요. 제발···.”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이 울고 불며 창고에서 나오지 않기 위해서 문을 붙잡았지만 그걸 교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한차례 흔들면서 때리더니 질질 끌고 공터 가운데로 끌고 나왔다.
그 모습을 보니 머리끝까지 피가 솟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게 무슨···.’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웅성거리는 교인들 사이에서 흰 도포자락을 휘날리면서 얼굴에 가면을 쓴 남자가 불꽃 가까운 데로 다가오더니 외쳤다.
“휴거하리. 휴거하리. 믿음이 약한 불신자가 우리에게 새로운 환난을 던져주었습니다.”
“휴거하리. 휴거하리.”
그런 남자의 말에 대답하듯 웅성거리던 교인들이 고개를 숙이면서 양팔을 하늘로 들고 흔들면서 미친 듯이 외쳤다.
“휴거하리. 휴거하리. 믿음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불신이라는 악마의 유혹을 던지던 저 자매도 믿음만 확고하다면 이 환난을 이겨내고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휴거하리. 휴거하리.”
‘미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여자가 결국 억센 아줌마의 손에 삼지창 같은 곳에 매달리고 말았다. 양 손목과 다리가 구속되니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길이 없어 보였다.
‘뭐야···현대판 화영이야? 아니···인간 바비큐?’
어이가 없을 정도였지만 아무도 상식에 어긋난 지금 상황을 막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난입을 해서라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양다리 힘을 주고 전신주를 박차고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갑작스러운 폭음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펑.
시야를 하얗게 메우는 흰 연기와 함께 소화기 열 몇 개가 한꺼번에 터진 것 같은 흰 가루가 사람들을 뒤덮었다. 그런 혼란스러운 사람들 사이로 여자의 팔다리를 구속하고 있는 벨트를 가위로 잘라버리고 부축해서 벗어나려는 사람이 있었다.
‘송태연.’
나는 강화된 육체와 대백공에게 얻은 특별한 능력이 있지만 송태연은 그저 운동을 하던 학생이었다.
‘그나마도 정의감이 투철해서 일진에게 찍히고 망가지기까지 했는데···.’
나는 송태연의 모습을 보고 혹시라도 탈출이 어려울 때 뒤에서 도와주기 위해서 추이를 지켜봤다.
“불신자들이 도망간다!”
여학생의 팔다리를 제압하는데 돕던 아줌마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치자 교인 몇 명이 송태연과 여학생 앞을 막아섰다.
나는 내가 나서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몸을 일으키는데 송태연이 날 듯이 발차기를 날리자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허수아비처럼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래서 재민이가 태연이 형···태연이 형···한 거군.’
나는 격투기 선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송태연의 활약을 지켜보다가 송태연의 뒤에서 캠프파이어를 위해 준비했던 것 같은 각목을 들고 내리치려는 모습에 전신주를 박차고 뛰어내리듯 내려와 송태연과 구출된 여성이 있는 곳까지 달렸다.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 있잖아?’
파지직―.
머릿속에서 무언가 터지는듯한 개운함과 함께 내 몸은 믿기 힘든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정관념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속도나 운동량 등을 제한한 게 아닐까?’
퍽―.
내리치는 각목을 막아내고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놀란 교인의 배를 올려치자 눈을 뒤집고 엎어졌다.
송태연은 여학생 앞에서 달려오는 교인들을 막느라 자신의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지 모르는 것 같았다.
여학생과 눈이 마주쳐서 깜짝 놀란 듯 큰 눈이 더 커졌지만···다행히 정신없이 교인들을 상대하는 송태연을 향해 외치거나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여기서 내가 나타났다고 알려봐야 어떻게 온 건지 말하자면 입만 아프니까.’
나는 송태연과 구출된 여학생의 시선을 피해 가면서 교인들의 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교주라는 사람을 향해 한달음에 달려들자 송태연과 여학생을 잡으라는 외침이 막아라는 외침으로 바뀌었다.
“막아. 막으라고.”
“으아아.”
흰 가루가 허공에 날리면서 그 사이로 피가 튀는 도화지에 새빨간 색의 물감을 어지럽게 흩뿌린듯한 몽환적인 상황은 나에게도 교인에게도 좋지 않았다.
몽환적인 상황 속에서 이성적이기보다는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내 움직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내 눈동자는 타오르는 것 같은 뜨거움이 돌면서 정의의 저울이 기울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구원을 원해서 모인 게 아닌가?’
나는 구원을 위해서 모였다는 교인과 교주를 바라봤다. 캠프파이어 불빛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저들은 알고 있을까?
자신의 삶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같은 사람을 불태울 수 있다는 걸까?
대백공의 말처럼 진실을 알게 된다는 건 마냥 기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내가 뛰어들도록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교주의 막으라는 외침에 교주 근처에 있던 교인 2명이 반사적으로 나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나는 어설픈 자세로 주먹을 날리는 교인의 팔을 손으로 쳐내고 품으로 파고들어 다시 한번 보디블로 한방에 교인의 눈을 뒤집어줬다.
‘사이비로 눈이 뒤집어졌으면 다시 한번 눈이 뒤집어지면 정신을 차릴까?’
내가 교인 한 명을 기절시키는 동안 다른 교인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각목을 주웠는지 나를 향해 어설프게 내질렀지만 나는 각목의 스윙이 시작하는 팔목을 잡아 교인의 발을 걸어 제대로 맨땅에 메치기를 해줬다.
‘사이좋게 눈이 돌아가면 정신을 차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