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휴거 4>
송태연의 일로 마음이 지친 나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대백공이 나타났다.
‘오늘 특별한 일이···.’
“오랜만일세. 어린 친구.”
“···!”
“오래된 종교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아나?”
“···?”
“종교란 인간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
“···.”
“인간이 있기에 종교가 있고 종교가 있기에 인간이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말일세.”
“사이비도 종교라는 말씀인가요?”
“인간의 기준에서 사이비가 있는 것이지.”
“모든 종교가 다 사이비처럼 사람의 인생을 망가트리지는 않잖아요.”
“모든 종교는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그게 좋을지 안 좋을지는 인간의 선택이라네.”
“선택권이 사람한테 있다고요?”
“믿음은 누군가 강요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지. 익숙하고 흉내는 낼 수 있어도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그걸 강요로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니까.”
“믿는다는 것···.”
송태연이 자신이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을 굳게 믿어준 재민이를 통해서 삐뚤어지지 않고 제대로 살려고 노력했던 것만큼 누군가를 믿어달라는 건 쉽게 말하고 싶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믿는다···.”
“그만큼 믿는다는 것에는 큰 힘이 담겨있지. 그렇기 때문에 타락자들 중에서도 인간들의 믿음을 통해서 발현된 타락자가 더 큰 힘을 가진다네.”
“···.”
“본다는 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
“···?”
“우리는 두 눈을 가지고 보고 있지만 그것은 외양일 뿐 본질을 보지는 못하지.”
“누구나 그렇지 않나요?”
“인간의 눈은 진실을 보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변해간 것이지.”
“···?”
“진실이라는 게 항상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네.”
“그래도 진실이 필요하지 않나요?”
“잔인한 진실이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거짓된 모든 것이 강력한 타락자가 될 수 있었다는 건가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진실이라는 무게보다 거짓된 말과 행동이라도 나에게 희망을 주고 혜택을 준다면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된 것에 현혹되는 게 아닐까?
“오늘 내가 나타난 건 자네가 특이점을 얻었고 그 덕분에 끊어질 뻔한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는 걸세.”
“좋은 인연인가요?”
“글세···선연이 될지 악연이 될지는 자네가 할 행동에 따라 결정되겠지.”
“저의 행동에 따라서 달라진다고요?”
“누구를 만날지 힌트라도 주시면 안 되나요?”
“글세···자네는 이미 만났지만···상대는 자네에 대해서 모르는 상태이지.”
“이 정도면 힌트가 되었을까?”
“아···.”
그 말과 함께 어딘가로 떨어지는 듯한 부유감이 들고 그대로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인가?’
방에서 일어나자 이제는 익숙해진 내방의 전경이 보였다.
‘바로 옆에서 동생이 자던 때가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이제는 각자 방이 익숙해진 건가?’
사람의 간사함에 대해서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나는 서둘러 일어나 씻으러 들어갔다.
“주인아 벌써 일어났어? 방학이라서 늦잠잔다더니?”
“오늘 종혁이가 출국하는 날이어서 일찍 일어났어요.”
“어머 벌써?”
“원래는 종혁이 어머니만 들어오려고 했던 거라···나중에 방학하고 다시 온다고 하니까 그때 제대로 계획 세워서 놀려고요.”
“그래···아쉽다. 종혁이가 왔을 때 집 밥이라도 한번 해줘야지 생각했는데···.”
‘종혁이는 집밥보다 햄버거를 더 좋아할걸요?’
나는 쓴웃음을 입에 물고는 아침밥을 먹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원래대로라면 도서관에 왔어야 했을 어제 일정을 하루 종일 학원가에서 보낸 한풀이를 하듯이 경수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이른 시간에 도서관에 출동한 상태였다.
하암―.
“그렇게 피곤하면 방학인데 자다가 오지 도대체 오늘 몇 시에 도서관 나온 거야?”
“좋은 자리 맡으려면 새벽에 와야 한다고.”
“오늘 종혁이 마중 나간다고 한 거 아니야?”
“단 몇 시간이라도 난 내가 원하는 자리에서 책 보는 게 좋아.”
“너도 대단하다 진짜.”
“그런데 넌 도서관은 왜? 바로 공항으로 갈 거 아니었어?”
“어제 일이 마음에 걸려서 진수 형 만나고 갈까 해서.”
“그 형도 참···사람도 좋아. 비번인데 우리가 부른다고 달려와 주고.”
“그건 그렇지.”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사람이라서 그렇지.’
허경장이 좋은 경찰인 건 틀림없지만 이유 없이 나와 주변 인물들에게 친절을 배푸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처음에는 내가 경찰이 되면 좋겠다는 이유에서 인걸로 생각했지만···.’
허경장의 기억 속에서 봤던 허경장이 선배라고 부르는 경찰과 관련된 일일까?
허경장을 부른 순간 우리의 역할은 끝난 거나 다름없었지만 송태연의 소식에 목마른 우리는 파출소에 찾아갔다.
익숙하다는 듯 허경장이 우리를 데리고 조용한 벤치로 나왔지만···평소와 달리 철벽이나 다름없었다.
“아직 별다른 연락이 없어.”
철벽을 치는 허경장에게 조금이라도 정보를 듣기 위해서 경수가 여러 이야기를 꺼냈지만 허경장은 위험한 일이니 경찰에게 맡겨달라는 말만 했다.
“그런데 대 예배라는 거 좀···꺼림직 하지 않아?”
“왜?”
“평소와 다르다는 거니까.”
“그리고 보니 진수형이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사항에서도 보면 새 천년 된다고 사이비종교 단체주의 경보 내려온 거 날면서.”
“그러니까.”
불안함에 휩싸였지만 허경장은 철저하게 우리에게 송태연의 정보를 주지 않았다.
이제까지와 다르게 확실하게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그런 것 같았다.
‘이럴 때는 철저하게 경찰 같네···.’
속으로 불만을 삼키면서 익숙하게 김 씨 아저씨를 떠올리고 말았다.
‘김 씨 아저씨에게 연락만 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정보획득이 가능했는데···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나와 경수는 별다른 소득 없이 허경장과 인사만 나누고 종혁이가 출국하는 시간에 맞춰서 공항에 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종혁이는 공항으로 바로 간 건가?”
“집에서 어머니하고 같이 출발한다고 하더라.”
“며칠 있지도 않고 바로 가는 거네.”
“아쉽지만 너 아프다고 잠깐 시간 내서 들어온 거라니까.”
“괜히 여러 사람한테 신세만 지는 것 같네.”
“그게 사람 사는 거지. 뭐 이 버스 타면 공항까지 갈 거야. 놓치면 안 돼.”
경수의 말에 나는 있는 힘껏 뛰어서 버스를 잡아탔고 뒤이어서 경수가 올라탔다.
“현진이는 오늘 무슨 일 있는 거야?”
“말을 안 해서 모르겠네. 자기 대신에 우리한테 열렬히 출국 환영 인사 해달라고 하더라.”
“무슨···.”
“그런데 우리 엄마가 종혁이는 김치나 고추장 이런 거 안 싸줘도 되냐고 묻던데···.”
“종혁이가 김치 찾을 애냐?”
“하긴···”
종혁이와 종혁이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나자 한산한 공항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적네.”
“그러게 방학기간이어서 사람 많을 줄 알았는데···.”
종혁이와 종혁이 어머니가 입국장으로 들어서는 걸 보고 나와 경수는 짐을 들어주면서 인사했다.
“이렇게 왔다가 금방 가니까···아쉽다.”
“나도 아쉬운데···아직 학기 중이라서 시간이 별로 없네. 내가 같이 온 게 아니면 엄마도 좀 더 있다가 갔을 텐데.”
“엄마는 아들하고 같이 와서 더 좋은데?”
“헤어짐이 있어야 만남이 있는 거니까 그만 들어갈까?”
종혁이 어머니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아쉬워하는 우리에게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우리는 장난스럽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공항에서 집으로 바로 가려는 경수를 붙잡았다.
나는 공항 이곳저곳을 구경하자는 이유를 들어서 공항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왜 안 하던 짓을 하냐?”
“공항에 처음 오니까 구경이나 하다가 가자는 거지.”
“공항이든 공항 할아버지든 네가 구경하겠다고 시간 버릴 놈이 아닌데···.”
의심스럽다는 듯 자신을 보는 경수의 시선을 무시하고 커피를 한잔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커피 괜찮지?”
“괜찮겠냐? 나는 카페인 없는 걸로.”
“그럴 줄 알고 생과일주스로 시켰어.”
“알면서 커피냐고 묻는 이유는 뭐야?”
나와 경수가 실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내 눈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익숙한 실루엣에 나는 다급하게 자리에 일어나면서 말했다.
“커피 나오면 대신 받아줘.”
“알겠다 알겠어. 구경은 무슨 화장실 급한 거였네.”
나는 경수의 말에 어느 부분에서 태클을 걸어야 할지 고심하다가 익숙한 실루엣이 시야 밖으로 벗어날 것 같아서 급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대백공이 말한 특이점 보상이···나에게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했지.’
나와 만났지만···상대방은 모르는 인연.
‘저 사람은 분명.’
익숙한 뒤통수를 보면서 멀리서 따라간다고 생각했는데 순간 시야에서 벗어나면서 사라진 인형에 나는 다급하게 달려와 주변을 둘러봤다.
“누구지? 이렇게 티 나게 나를 쫓아온 걸 보면 내가 알고 지내던 친구들은 아닌 것 같은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누군가 찾던 나는 그 대상이 나에게 말을 걸자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뭐라고 말해야지?’
“···.”
“뭐야? 너 누군데···.”
갈풀이라고 불린 남자는 나의 앳된 모습과 당혹스러운 표정에 자신이 더 당황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대리고 공항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드문 자리로 나를 끌고 갔다. 나는 힘으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갈풀이라는 남자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잠자코 따라갔다.
“누구 소개로 따라온 거야? 나 이제 장사 접고 해외로 뜬다니까?”
나는 갈풀의 말에 혼란을 느꼈지만 동시에 머리가 어질하면 아찔한 기분과 함께 시야가 반전되었다.
눈앞의 갈풀이라는 남자가 좀 더 젊은 모습이었고 그런 갈풀의 앞에는 보석을 낀 중년 남자가 소파에 깊숙이 몸을 밀어 넣은 상태로 앉아 있었다.
‘저 보석 반지는···.’
내가 기억을 떠올리기도 전에 갈풀이라는 남자에게서 말이 터져 나왔다.
“제가 왜 그런 일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왜? 1팀에 있다가 와서 3팀 업무는 시시하다는 건가?”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건 아무리 봐도···.”
“불법이라고?”
“그건···.”
“불법이라기보다는 탈법에 가까운 일이지. 우리 회사가 규모가 크다 보니까 큰 정보는 빨라도 자잘한 소식이 늦는다. 그런 점 때문에 안타까운 실수가 가끔 생기고 말이야.”
“그렇다고 제가 심부름꾼 노릇을 하라는 겁니까?”
“심부름꾼이라니 어디까지나···.”
“흥신소가 심부름꾼이 아니면 도대체···.”
“실력이 있다면 흥신소 소장이 되는 거고 실력이 없다면 그저 심부름꾼이 되는 거겠지.”
“선택권이 저한테 있는 겁니까?”
“글세···그건 자네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나?”
갈풀이라는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보석 반지를 낀 남자가 주는 명함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초록 흥신소라고 적힌 명함에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보석 반지를 낀 남자를 마주했다.
“초록 흥신소라···.”
“왜 마음에 안 드나? 잡초같이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 자네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재밌군요.”
“3팀에 온걸 환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