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휴거 2>
“도망쳐 나온 사람이 있다면서요.”
“문제는 도망 나온 사람은 소수인데 그 반대 의견을 진술할 사람은 수십이 넘는다는 거야.”
“아···교단 내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진술에 의존한 건 다른 사람의 진술에 의해서 반박당할 수 있다는 거죠?”
“아무래도···그래서 수사를 해봤다 벌집만 쑤신다는 생각에서 남부 경찰청에서도 조직 규모만 파악하고 그대로 지켜보는 중이라고 하더라.”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대놓고 자신을 착취한다고 선언하는 건데 그걸 그대로 믿고 따라간다고요?”
“사이비하고 사기하고 비슷한 점이 많아.”
“사이비하고 사기가 비슷하다고요?”
“차라리 적은 피해면 사기를 당했다고 피해자가 길길이 화내면서 신고를 하거든···.”
“···?”
“그런데 피해 금액이 너무 크면 자기가 사기를 당했다고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아. 그런 걸 사기꾼들이 노리는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하고 신고도 안 하고 버티는 거지.”
“그렇다고 피해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경찰 입장에서 그런 피해자들을 보면서 느끼는 건···. 정신승리랄까?”
“네?”
“사기라는 게 금전적 피해도 그렇지만 정신적 피해도 무시할 수가 없어.”
“정신적 피해요?”
“음···당연히 사기를 친 놈이 나쁜데···우리나라는 이상하게 그런 사기나 당하다니 멍청하다든지. 부주의하다든지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리는 경우가 많거든.”
“어···나쁜 짓 한 놈이 나쁜 건데···왜 피해자들이 욕을 먹어야 하는 거죠?”
“그게···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지.”
“그래서 피해자들이···.”
“이건 사기가 아니다. 좀 시기가 어려워서 나하고 약속한 금전이나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피해가 더 커진다는 말씀이네요.”
“그래.”
“그럼 사이비종교나 사기가 비슷하다는 건?”
“그건 피해자들의 심리 흐름이 비슷하다는 거야.”
“내가 사이비에 빠졌다니 믿을 수 없다. 인정하기 싫다 그런 건가요?”
“자신의 재산 자신의 젊음···모든 걸 착취당했다는 걸 느낄 때 그러니까···피해가 너무 크면 내 선택으로 이런 상황에 빠졌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이게 잘못된 길이라고 생각해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더 열렬히 믿는다는 거야.”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의심스러울수록 더 믿는다는 거예요?”
“그 정도면 광신도 아닌가?”
“탈출한 사람 말로는 인생을 빼앗겼다고 다시 찾은 느낌이라고 그런 사이비에 빠졌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다고 진술했다더라···.”
“스스로를 원망하지 말고 사이비가 나쁘다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이비종교로 인한 이득을 얻었던 사람들이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더 피해회복이 어려운 거지.”
“법의 신판을 받기 어려워요?”
“피해 규모가 크면 클수록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그렇다보면 피해자 스스로가 피해를 축소하는 경우도 있거든···.”
“그런 사이비에 태연이 형이 빠졌다니···.”
사람이 힘들 때 도와주는 사람은 주변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이다.
나는 김 씨 아저씨를 잃었지만 동시에 주변에 나를 지지해주는 이들의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일어나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어머니와 동생에게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모든 관계가 망가진 사람이라면 어떨까.
자신을 이용하려고 접근한 사람의 관심이라도 물릴수 있을까?
단단하고 자신감 넘칠 때와
상처받고 흔들릴 때의 행동이 같을 수 없다.
‘송태연 넌 어떤 선택을 한 거지?’
송태연의 기억을 보면 문재하와 악연으로 소중한 인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큰 사건이 있었음에도 자신을 지지해줬던 변재민의 실종으로 그는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창밖에 추운 바람을 맞으면서 움츠리고 걷고 있는 사람들 틈 사이에 먼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송태연의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내가 회귀를 해서 삶의 방향을 틀지 않았다면 저런 공허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답답하지만 묵직한 그리고 알 수 없는 책임감에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진수형 도와줄 거죠?”
“너는 부탁할 때만 형이라고 하더라.”
“당연히 도와야지.”
“내 방학이 이렇게 스펙터클하게 지나갈 줄은 몰랐는데···.”
나는 허경장과 친구들의 대답에 설핏 웃고 말았다.
“그런데 사이비 아니 백화교라는 곳이 불법이라고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하려고?”
“우선 저 감시 눈길을 피해서 태연이 형하고 대화를 나눠봐야지.”
“감시? 우리 말이야?”
“우리 말고도 저기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어.”
“어 정말 저 차는 계속 저기 서 있네?”
“아마 같은 교단의 사람들끼리 감시하는 거겠지.”
“같은 종교를 믿는 교도끼리 감시를 한다고요?”
“탈출했다는 사람의 말로는 사람을 3인에서 5인으로 묶어서 행동하게 한다고 해.”
“무슨 군대에요?”
“군대보다 더하지. 여기는 결혼도 교주가 시킨다고 하니까.”
“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교주가 젊은 여자에게 은총을 내린다고 하고 임신하면 결혼시켜서···정부에서 지원받는 돈으로 아이를 키운다고 하더라.”
“···?”
“지원금 신청 가능한 가족 규모로 디자인해서 아이를 키우는 거지.”
“그래서 직장 없는 젊은 나이에 애 아빠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해. 탈출했던 사람도 직장도 없는데 결혼을 해서···종교에 푹 빠진 아내보다는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다른 말보다 이 진술을 읽었을 때가 가장 화가 났어.”
“애들은 그럼···.”
“어려서부터 세뇌가 되는 거지.”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세뇌 시켜서 나중에 갈아타기를 할 때 자신의 측근으로 삼는 거고···.”
“갈아타기요?”
“사이비에서 갈아타기는···.”
“휴거···설마 휴거 말하는 거예요?”
“그래. 집단 자살을 시키고 꼬리 자르기 식으로 사이비종교를 통해 얻은 자산과 함께 사라지는 거지.”
“재산도 삶도 자신이 정당하게 일한 대가도 전부 빼앗는 것도 모자라서 목숨까지 빼앗는다고요?”
“그래서 사이비종교가 무서운 게 그렇게 빼앗기면서도 자발적이라고 생각하니까.”
“자발적이라고요?”
“우선 자살은 자살이니까.”
“살인이나 다름없잖아요. 그것도 인생조차 빼앗은 악질 중에 악질···.”
“내가 사이비종교가 사기하고 비슷하다고 했잖아?”
“···?”
“자신의 인생을 빼앗기고 목숨까지 빼앗는 순간까지도 그게 사이비 즉···사기일 거라고 생각이 드는 걸 스스로 막는 거야. 내가 믿음이 약해서 이런 유혹에 빠진다고 하면서···.”
“말도 안 돼요···죽는 순간까지도요?”
“그렇지 않다면 자살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이런 사이비종교 단체가 없어지질 않는 이유는···. 종교단체의 특성 때문이지.”
“종교단체의 특성이요?”
“너희는 왜 정관계의 힘 있는 사람들이 국회 의원 같은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지 아니?”
“딱히 그런데 관심이 없어서···.”
“누군가의 머리가 된다는 것에 대한 사람의 욕심 때문이야.”
“누군가의 머리?”
“사람 위에 사람 없다고 하지만 사람 위에 사람 있게 만드는 위치가 몇 개 있지 그리고 그런 자리에 서기 위해서 사람은 못 할 게 없고.”
“···!”
“종교단체의 힘은 사이비에 빠진 교인들의 목숨까지도 통제할 힘이 생기는 거지. 그 유혹에 빠진 사람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고···.”
“그럼?”
“사이비 단체가 가업처럼 승계가 된다는 거야.”
“종교단체가 혈연으로 승계가 된다고요?”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종교단체의 장 자리가 가족끼리 승계되는 경우는 많아.”
“전혀 몰랐어요.”
“보통 알려질 일이 많이 없지. 경찰 일을 하다 보면 알게 되지만···.”
“왜요?”
“기업의 가족 승계는 언론에서 많이 떠들고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지만···종교에 관해서는 언론도 조심해야 하거든.”
“아···언론사에서 가장피해야 하는 이슈가 종교 관련이라고 하는 걸 들었어요.”
“오···어떻게 알았냐?”
“제가 그쪽으로 관심이 좀 있어서요.”
“다른 건 몰라도 언론도 조심스러운 게 종교에 대해서 다루는 거지. 아무리 옳은 진실이라도 종교 색채가 묻으면 그건 교인 입장에서 거슬리지 않게 다뤄야 하거든.”
“네? 어째서?”
“그건 일반적인 세상의 법칙과는 다른 독특하고 내부 교리가 있기 때문에 외부 세상의 상식이나 정상적인 가치관, 법이나 국가 제도, 보편적인 도덕 관념보다는 내부 교리를 해석해주는 교단에서 발언권이 있는 교단의 임원이 말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따른다고 보면 돼.”
“···.”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나 포교행위를 일반적으로 보면 왜 그럴까 하지만 교단 내부에서 보면 힘든 일에 솔선하는 대단히 희생적인 교인이 되는 것처럼 말이야.”
“아···.”
“일반적인 세상의 가치관이나 법과 다른 교내의 교리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네요?”
“그러니 언론에서 종교단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보이지 않는 여러 힘이 작용한다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세 지긋한 분이 방송국 앞에서 1인시위를 그것도 금식하면서 한다고 생각해봐.”
“아···.”
“말 그대로 곤란하겠네요.”
“거기다가 시위하다가 쓰러지면···.”
“어렵네요.”
“그렇지 언론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곳 중에 한 곳이 종교단체라고 보면 돼.”
“그런데 경찰은 사이비종교에 대해서 이렇게 전부 자세히 아는 거예요?”
“이번에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로 다들 기본적인 것만 알고 있지. 이건 내가 아는 선배를 통해서 따로 알아본 내용이야.”
“상부 지시요?”
“연도가 새천년으로 넘어가게 되면···사이비종교 단체가 더 기승을 부릴 거라고 미리 대비하라는 차원에서 내려온 지시사항이지.”
“아···음주운전 집중단속기간처럼 사이비종교 집중단속 같은 건가요?”
“음주운전처럼 잡아다 넣을 수 있으면 좋지만 그건 사실 어렵고 사이비종교로 인한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일선 경찰에게 기본적인 내용을 교육 시키고 조금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피해자를 구제하거나 지원하라는 내용이지.”
“영화 같은데 보면···잠입 수사 그런 것도 막 나오던데 그렇게 못 잡아요?”
“북한에 침투하는 것보다 사이비종교에 침투하는 게 더 위험할지도 몰라.”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