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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73화 (173/205)

<173화 작지만···작아서 더 소중한 행복 Ⅱ 4>

친구들과 헤어져서 들어온 집안에는 외삼촌이 동생과 놀아주는 모습이 나를 반겨줬다.

“외삼촌?”

“계속 방에만 있다고 연미가 걱정하더니 괜찮아 보이는데?”

“하하···그냥 조금 지쳤던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지. 가끔 내 조카긴 해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더라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나도 철든 다음에는 열심히 살았지만 네 나이대에는 방황도 하고 시간도 허비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외삼촌이요?”

“우리 집에서 가장 말썽꾸러기였지.”

“믿기지가 않는데요?”

내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외삼촌의 얼굴을 바라보자 어머니가 과일을 거실로 가지고 나오면서 말씀했다.

“철든 모습만 봐서 그래.”

“엄마?”

“여기 과일···친구들하고는 재미있게 놀다 온 거야?”

“그냥 게임하고 밥 먹고 그런 거죠. 뭐···외삼촌하고 엄마는 저녁 드신 거예요?"

“아직 너는 저녁 먹고 왔니?”

“떡볶이 먹고 와서···.”

“그럼 저녁 같이 먹을래?”

“저야 좋죠. 그 대신에 조금만 주세요.”

“주신이는요?”

“기주네에서 저녁까지 먹고 왔다더라.”

“너무 자주 신세 지는 거 아니에요?”

“거기에서 그룹과외 받고 저녁까지 과외 선생님하고 먹는다니까. 주신이만 따로 빠지는 것도 그렇지.”

“아···그런가요?”

식사가 끝나고 간단한 수정과를 식탁에 올려놓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이 무거워서 나는 외삼촌에게 눈짓했다.

하지만 그런 내 신호를 감지한 건지 아닌지 수정과에만 관심을 가지던 외삼촌은 수정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뗐다.

“사람의 눈이 왜 좌와 우로 두 개로 나누어져 있는지 아니?”

“다들 눈이 두 개라서요?”

“좌측이나 우측이나 한쪽 눈으로 바라보면 물건에 대한 초점을 맞추지 못해서 물건을 잘 잡지 못한단다. 물건의 위치를 저기 있다고 머리는 생각하지만···한 쪽으로만 바라보면 제대로 된 위치를 식별하지 못하고 물건을 놓치거나 아니면 허공을 잡게 돼.”

“···?”

“한쪽으로 바라보면 진실처럼 보였던 사실도 양쪽의 눈으로 바라보면 제대로 된 진실이 아닌 한쪽의 면만 투영한 반쪽짜리 사실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갑자기 그런···.”

“내가 너희 외할아버지에게 자주 듣던 말이란다.”

‘외할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한쪽의 말만 듣지 말아라. 사람들은 자신의 시야에 속아서 거짓을 진실로 믿고 말할 수 있다라고 말이지.”

‘진실은 언제나 거짓으로 보기 좋게 포장된다는 걸 알고 계셨던 거지. 그래서 쫓기는 김 씨 아저씨를 도와준 게 아닐까?’

“나는 그런 너희 외할아버지의 말을 그저 나이 든 사람 특유의 꼰대짓이라고 생각했었다.”

“···.”

“하지만 그 말씀은 너희 외할아버지의 삶의 방식이었지. 그걸 우연히 알게 된 나는 그때부터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단다.”

“지금도 열심히 사시는 것 같아요. 다른 진료과목 의사들이 기피 하는 수술도 나서서 한다고 간호사 누나들이 흉보는 건지 자랑하는 건지 모르게 말하더라고요.”

“하하···이거 음료수나 과자라도 돌리면서 환심이라도 사야겠는걸?”

“외삼촌은 의사고 그분들은 간호산데요?”

“수술을 의사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간호사와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얻지 못하면 그저 나는 한 명의 의사일 뿐이니까. 물론 실력은 좋은?”

“하하···.”

“점점 사회가 복잡해지고 서로의 영역이 겹치는 부분이 많아질수록 뭐가 옳은지 아니면 그른지에 대한 구분이 어려워지는 시대가 될 거야.”

“···.”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냐고? 외삼촌이 그래도 유학도 다녀오고 학회 때문에 출장도 자주 다니다 보니까···알게 되더라. 미국에서는 간호사를 구하지 못해서 이민자라도 간호사 능력이 있는 사람을 대우해 준다는 거 알고 있니?”

“아뇨. 몰랐어요.”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간호사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지원하지 않으면 의료인력이 줄어들게 될 거란다. 물론 내가 하고 있는 외과 수술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

“일은 힘든데 대우가 나쁘다면 당연히 인력 구하기 어렵지 않겠니?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 걱정하는 건 현장의 의료 인력 뿐이고 나라 그러니까 정부에서는 손을 놓고 있지.”

“어째서요?”

“그건 제대로 된 집단을 이루지 못하고 개개인이 걱정하는 수준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지.”

“네?”

“외할아버지가 좌, 우의 시선 중 한쪽에만 사로잡히면 안 된다고 말씀했다고 했잖니?”

“네.”

“대한의사협회는 아주 큰 이익집단이지 힘도 있고 정부에 압력도 넣을 수 있는 단체지. 하지만 그중에 간호사에 대한 복지나 힘든 외과시술 관련한 의사들의 수가 주는 것에 대한 대책에는 인색하지.”

“같은 의료인력인데 어째서 그런 거죠?”

“음···어설픈 민주주의의 폐해랄까?”

“네? 그래도 민주적인 게 좋지 않나요?”

“대한의사협회라는 단체 내에서 민주적으로 의견을 제시한다고 하면 소수인 외과 의사들과 다수의 다른 의사들의 이익이 같은 방향일까?”

“어···하지만 사회는 소수의 약자를 배려하잖아요?”

“의사와 간호사는 약자가 아니지.”

“어···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민주적이라고 하지만 소수의 단합된 이익집단이 모든 이익을 독점하게 되는 잘못된 관행이 지금 사태를 만든 거지.”

“민주주의는 다수를 뜻하는 거 아닌가요? 어째서 소수의 단합된 이익집단이···.”

“다수의 사람들은 세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 이게 직접 민주주의의 단점이지.”

“모든 문제에 있어서 전문성을 가지지는 못한다는 거네요?”

“그래. 그런데 문제는 전문가입장에서는 자신의 이득을 지켜주는 사람이 선동하는 이슈에 올라탄다는 거야.”

“하지만 대다수의 비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신경 쓰이는 이슈에서 전문가라고 나와서 선동하는 사람의 말을 대부분 거리지 않고 듣게 된다는 건가요?”

“그래. 그래서 너희 외할아버지가 말한 좌우를 전부 살펴야 한다는 말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한 거란다.”

“아···.”

“한쪽의 말만 가지고는 진실을 찾기 어렵거든. 세상을 살면서 더욱 느끼게 된 사실이지.”

“저한테 이런 말씀해주시는 이유가 뭐예요?”

“음···이런 말하면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 충격을 받은 적이 있거든 내가 알던 진실이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 진짜가 아니었을 때라는 건가요?”

“그래. 나는 너희 외할아버지가 우리 가문에 재산을 넘보고 들어왔다는 주변 어른들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리고 가문에 재산이 많으니까라는 생각으로 미래에 대한 생각도 없이 그저 재미를 추구하면서 살았지.”

“···.”

“하지만 너희 외할아버지는···그러니까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유산을 한 푼도 안 받겠다고 했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어. 내가 이제까지 주변에서 들어왔던 너희 외할아버지를 공격했던 그 많은 힐난과 비난의 말들이 전부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말이야.”

“···.”

“그제야 내가 알던 진실이 그저 아픈 진실이기 때문에 덮어놓고 있던 것일 뿐이라는 걸 알았을 때 큰 충격을 느꼈지.”

“그리고 성장했고요.”

“하하···그렇다고 볼 수 있지.”

“왜 철이 든지는 엄마는 몰랐지만···. 사람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어머니가 수정과에 어울리는 말린 과일을 식탁에 올리면서 말씀하셨다.

“오늘 너무 먹어서 더는 못 먹겠는데···.”

“말린 과일이니까. 좀 싸서 집에 가져가요. 밑반찬도 몇 개···.”

밑반찬을 포장하려 주방으로 향하는 어머니를 말리던 외삼촌은 두 손 들더니 나에게 말했다.

“오늘 친구들 만난 것 보니까 이제 괜찮은 것 같지만 외삼촌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믿기 힘든 건 믿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그저 보고 듣고 나중에 시간을 가지고 신중하게 판단해 봐도 늦지 않는다는 거지.”

“그 판단이 너무 늦으면 어떡해요?”

“음···늦는 것도 문제지만 잘못된 판단을 하고 밀어붙이는 게 돌아가야 할 길이 너무 멀어지는 것 아닐까?”

“···돌아갈 수 없다면요?”

“돌아갈 수 없는 길은 없어. 다만 원래 가려고 했던 길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돌아갈 때 드는 힘이 더 든다는 거지.”

“가끔 생각해요. 나 대신에 누군가 내 삶의 방향을 잡아서 이쪽으로 가면 된다고 말해주면 편하겠다는 생각이요.”

“음···.”

어머니가 밑반찬을 싸준다는 걸 말리기 위해서 일어났던 외삼촌이 다시 식탁에 앉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생각 없이 살면 참 편하거든. 나도 주변 어른들이 너희 외할아버지 욕할 때 같이 욕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재산도 있겠다 복잡한 생각 안 하고 살면 편하지. 그런데 그런 삶에 내가 있을까?”

“···.”

“그저 남의 말만 듣는 남의 인생만 남는 거지. 내가 아닌 인생 남들 말만 잘 들어주고 자신의 생각이 없는 인생이 남는 거지. 그게 정말 자신의 인생일까?”

“힘들더라도 자신의 삶을···인생을···살아야 한다는 거네요.”

“그래. 두 눈 똑바로 뜨고 자신이 한쪽으로 갈 것 같으면 다시 생각하라고···네가 무슨 고민으로 일주일 동안 방안에 틀어박힌 줄은 모르겠지만···한쪽만 보고 생각하면 사고가 굳어지고 그런 굳어버린 사고는 정상적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단다.”

“외삼촌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연미야 이렇게나 많이 싸주면···.”

외삼촌은 바리바리 짐을 챙기는 어머니를 말리기 바빠 보여서 내 대답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차 가져왔다면서 그냥 다 챙겨가···그리고 일부러 시간 내줘서···.”

“잘 먹을게···잠을 많이 못 자서 이만 가봐야겠다.”

“운전 괜찮으시겠어요?”

“바로 옆이니까.”

피로가 많이 쌓였는지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외삼촌은 귀가를 서둘렀다. 잠은 집에서 자야 제대로 피로가 풀린다는 지론 때문에 서두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삼촌의 양손에 들린 무거운 밑반찬과 먹거리를 나눠들고 차가 있는 곳까지 향했다.

“여기까지 나올 필요 없는데···.”

“외삼촌 집에 잘 들어가는지 보고 갈게요. 오늘 피곤한데 저 때문에 무리해서 온 거 아니에요?”

“아니야.”

손사래를 치는 외삼촌의 검게 죽은 다크서클을 보면서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조수석에 따라 올라갔다.

“오늘 친구들하고 분식점에서 즉석떡볶이 먹고 저녁까지 먹었더니 배가 불러서 운동할 겸이요. 공원 도로 타고 올라오게요.”

외삼촌은 내 말에 그저 씩 웃더니 운전을 해서 집으로 향했다. 우리 집과 가까운 아파트 단지였기 때문에 나는 외삼촌이 밑반찬을 올리는 걸 도와주고 붙잡기 전에 몸을 돌려서 공원 쪽으로 향했다.

공원은 추운 겨울임에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그 사이로 지나가면서 나를 걱정해주는 이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내 선택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무언가 내 발을 무겁게 했던 무게감에서 해방되듯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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