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작지만···작아서 더 소중한 행복 Ⅱ 3>
햄버거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오락실로 움직인 우리를 반겨준 건.
“펌프 최신형이잖아.”
“난이도가···별 하나짜리 도전해볼까?”
“그건 안 될 말이지. 별 5개가 기본 아니냐?”
펌프 앞에서 별 5개의 스테이지를 선택하고 방향키를 대부분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다 못해서 대신 올라갔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앞에 순식간에 지나가는 화살표 모양을 무아지경을 밟고 누르고 내려오니 주변에 구경하는 아이들 눈초리에 머쓱한 상태로 내려왔다.
“와···그게 인간이 할 도리냐?”
“뭐가?”
“아니 그걸 어떻게 퍼펙트만 만들면서 하는 거지···?”
“다시 하라고 하면 더 잘 나올 것 같은데?”
“정말? 그게 가능해?”
“진짜 가능할 것 같아서 무섭다.”
“너 춤도 잘 추는 거 아니야?”
“뭐? 춤?”
“펌프 하는 모습이 댄스 동작 같았다고.”
“내가?”
친구들이 나의 새로운 재능에 대해서 이야기를 떠들썩하게 하는 사이에 우리는 학원가에 있다는 즉석떡볶이 집에서 들어가 주문을 했다.
“날만 안 추우면 재도전해보는 건데.”
“아서라 너는 안돼.”
“너는?”
즉석떡볶이가 끓어 오르는 것보다 우리 대화가 끓어 오르는 게 더 빠른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웃으면서 지켜봤다.
“내일도 이렇게 모여야 하는 거 알지?”
“뭐? 나 오늘도 공쳤는데? 도서관은?”
“오랜만에 한국에 온 나를 위해서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모여야 하는 거 아니야.”
“주인이 아프다고 해서 모인 거 아니었어?”
“아프긴 방금 펌프 하면서 날아다닌 애는 누군데?”
“하긴.”
“도서관을 이틀이나 쉬다니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수의 외침을 무시하고 우리 셋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자 경수는 전투적으로 떡볶이만 먹었다.
“내일 그럼 도서관에서 볼까?”
“윽···.”
종혁이의 질린 표정에 현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요즘 유행하는 장르 소설 본 적 있어?”
“장르 소설?”
“판타지 소설 말하는 거야?”
“응.”
“유학 가고서 보던 만화책도 못 본 판에···?”
“도서관에서 신권 들어왔거든.”
“그럼 내일은 도서관?”
“도서관 갔다가 책방이라도 가자.”
“도서관에도 신권 들어왔는데?”
“나 보던 만화책도 보고 가야지.”
“하긴 도서관에 만화책은 없지.”
“너 보던 소설하고 만화책은 뭔데?”
“소설은 아포칼립스 좀비 나오는 소설인데 제목이···.”
“아 나 그거 제목···. 음 길어서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것도 들어왔을 거야.”
“아포칼립스?”
“세상이 망하고 능력 있는 몇몇이 문명 재건하는 내용이야.”
도서관으로 목적지가 정해지자 즉석떡볶이를 작살 내던 경수가 끼어들었다.
“아포칼립스 소설이 유행한다···. 이건 그거지.”
“그거가 뭔데?”
“세상아···망해 버려라.”
“응?”
“그건 너무 간 거 아니야?”
“저번에 내가 학생회장 관련해서 교환학생 두 명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고 했잖아?”
“그런 일이 있었어?”
나는 햄버거집에서 말했던 내용에 살을 더해서 설명해줬다. 그제야 종혁이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경수의 말에 집중했다.
“그리고 아빠가 노동조합에서 제안받은 일까지 더해서 뭐든지 자신들 이득을 위해서 방해도 치고 적당히 압박도 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행동을 한다는 걸 느꼈지.”
“그게 무슨 말이야?”
“이런 저런 이유를 붙이지만 하나의 집단으로 뭉치면 집단 이기주의가 발동한다는 말이지. 자신들한테 유리한 방향으로만 행동해주기만 바란다는 거?”
“뭐···틀린 말은 아니네.”
현진의 답에 우리가 시선을 경수와 현진에게 돌리자 좀 냉소가 서린 표정으로 둘이서 말하기 시작했다.
“양보를 계속하면 호구가 된다고 솔직히 젊다는 게 무슨 죄도 아니고.”
“···?”
“약자 배려라는 타이틀로 젊다는 이유만으로···여자한테 양보해···노인한테 양보해···몸 불편하다는 사람한테 양보해···양보 셔틀이잖아.”
“당연한 거니까···안 하면 인간쓰레기 취급이고.”
“어떻게 보면 자신의 권리를 양보하는데···거기에 당연하다는 건 있을 수 없잖아?”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깐···보따리 내놔라 식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양보를 주장하는데···.”
“사실은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줄이고 양보하는 계층이 있다는 걸···그게 당연한 게 아니라 배려라는 걸···인식하지 못한다는 거지?”
“맞아.”
“그렇다고 약자 배려나 사회적 배려를 안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지금은 젊어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우리도 약자가 되는 거고···.”
“내 말은 그런 행동이나 이념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용하려는 일부 이익집단이 있다는 게 싫다는 거야.”
“아하 기본적인 도덕률을 놓고 안 할 거야? 하면서 그걸로 이용하는 곳이 있다는 거지?”
“맞아. 노동조합이 아빠한테 가입 의사를 타진하는 이유가 뭐겠어? 노동조합에서 우리 조합에는 암에 걸린 노동자가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거지.”
“어···. 그런가?”
“그럼 그걸로 자신과 반대되는 집단에 요구조건을 걸겠지. 그걸 위한 가입이고 그런데 암에 걸린 일용직 노동자에 대한 배려를 사회적으로 해야 한다는 건 동의해···. 그렇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마음에 안 들어.”
“사회적 약자를 앞세워서 이용하려는 이익집단이 나쁘다는 거네.”
“그런데 그걸 세심하게 보지 못하면 과한 요구조건을 사회적 약자를 내세워서 요구해도 그걸 안 들어주면 상대집단이 악하게 빌런처럼 보인다는 거지.”
“그걸로 여론을 악화시켜서 원래 목표보다 더 많이 얻어낸다는 거네?”
“물론 개개인이 약자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문제에 큰 소리를 내기 위해서 집단을 이루고 소리를 높이는 건 좋지만···.”
“그 집단이 오히려 빌런이 되어간다는 거 아니야?”
“처음 취지가 그대로 유지되는 이익집단은 거의 못 본 것 같아.”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것처럼···이익을 위해서 뭉친 단체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부패한다는 건가?”
“뭐 비슷한 원리기는 하겠지. 어쨌든 학생회장 하려고 이것저것 해보니까. 참···.”
“왜?”
“우리 학교에 구내식당 있다고 했잖아?”
“어.”
“그런데 기존의 구내식당을 운영하던 업체가 계속 새로운 업체가 입찰하는 걸 방해했더라고.”
“뭐? 그래도 되는 거야?”
“그럼 안되는 거지만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그냥 넘어가자고 하는데 나는 이런 잘못된 관행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어.”
“그래서 네가 학생회장이 되는걸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복합적인 거겠지.”
“그런데 기존의 구내식당 운영하는 업체가 어떤 식으로 방해를 하는 건데?”
“구내식당 업체계약이 2년 단위인데 입찰을 통해서 선정해. 그런데 금액을 미리 학교에서 구내식당을 담당하는 임직원과 맞춰놓고 하는 거지. 금액을 높이고 나머지는 리베이트로 돌리는 거야.”
“그럼 그 업체보다 낮게 입찰 들어오는 곳이 있으면?”
“그럼 미리 합의한 업체를 밀어주기로 한 임직원이 최저 입찰이 들어온 업체에 대한 평가를 0점 주는 거지.”
“어···.”
“최저 입찰로 하게 되면 구내식당 품질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최저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학교 측에서 평점을 주거든.”
“그 점수를 0점을 줘서 떨어뜨린다는 거구나?”
“그래. 보통 아무리 평점을 낮게 줘도 70점 전후인데 0점 처리는 보기 힘들지.”
“하지만 그게 암암리에 계속 된 거고?”
“학생회장으로 밀어주겠다고 할 때 업무 인수인계를 받다가 알게 된 거야. 정확히는 구내식당 식권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거지.”
“무슨 파도 파도 더러운 것밖에 없지?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하고 아주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은데.”
“겉으로만 그럴듯한 거지 이익집단 그러니까 조직 내에서 보면 기득권층이 있어서···.”
“기득권층?”
“쉽게 말하면 자기가 힘들게 높은 자리 아니면 꿀 보직을 얻었는데 다른 놈들한테 넘기기 싫은 사람들이지.”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자리를 확고하게 하기위해서 불법을 저지른다고?”
“불법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편법 정도 되겠네.”
“뭐? 아무리 들어도 정상적이지 않은데?”
“왜 편법이냐면 걸려도 적당히 넘길 수 있는 수준이랄까?”
“뭐? 이게 적당히 넘길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점을 조작했다면서.”
“0점을 준다는 게 사실 그 사람 개인의 판단이니까 이상하다고 경위서나 감봉 정도는 몰라도 불법을 위해서 0점을 줬다는 게 밝혀지지 않는 이상···.”
“그게 뭐야 딱 봐도 이상한데···.”
“그러니까 기득권층이 딱 문제가 안 될 정도만 조직 안에서 장난을 친다는 말이지.”
“젊은 세대는 양보 셔틀로 써먹고 기득권층은 조직 내에서 자신의 권한으로 편법으로 이득을 챙긴다는 말이네.”
“역사적으로 새로운 계층과 기존의 계층이 서로의 자리 또는 지위를 지키거나 획득하기 위해서 대립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많았다고?”
“삼국지 같은 것도 다 가진 게 있는 놈들끼리 자기가 한 지역의 패자를 하겠네 하면서 다투는 역사소설이고 우리나라 역사만 봐도 나라가 뒤집어질 때는 항상 기득권층과 대립 되는 새로운 신진 세력이 있었어.”
“그런데 우리 왜 아포칼립스 이야기하다가 여기까지 온 건데?”
“그거야 아포칼립스라는 소재가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 있는 거지.”
“응?”
“약자 배려라고 했잖아? 약육강식의 과거처럼 그저 강해진다고 기존의 기득권층에 편입할 수 없는 체계와 질서가 잡혀 있으니까. 그런 체계와 질서 없는 아포칼립스 상황이 되기를 바란다는 거지.”
“근데 아포칼립스면 전기 수도도 끊어지고 음식의 질도 엄청 떨어지는데?”
“그걸 포기할 만큼 변화하고 싶다는 게 반영된 거지.”
“소설인데?”
“소설은 현실을 반영 한다라고 하잖아.”
“그래도 소설이지. 진짜 있으면 안 되니까. 그러니까 답답한 심정을 소설에서라도 투영해서 풀어보는 거지.”
“나는 그냥 아포칼립스나 좀비 나오는 소설이나 게임 영화가 재미있었는데 이렇게 들으니까 좀 섬뜩하기도 하다.”
“섬뜩해? 왜?”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망하기를 바란다는 거잖아.”
“최소한 나는 아니야.”
“나는 가끔 그런 생각해 보는데.”
나의 대답에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최소한 너는 그런 생각하면 안 돼.”
“너는 그러지 말자.”
“뭐? 왜?”
“네가 그런 말하면 진짜 아포칼립스 될까 봐 걱정된다.”
“방금 전까지는 아포칼립스 하면서 노래를 부르더니?”
“그거야 따뜻한 식당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즉석떡볶이를 앞에 두고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면서 할 수는 있지만···.”
“진짜로 수도 전기 끊어지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생고생할 것 생각하면 나는···.”
“그런데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진짜 좀비 튀어나올까 봐 걱정돼서 넌 안돼.”
“···.”
나의 어이없다는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혁이 경수 현진이 서로 주고받더니 나한테는 절대 아포칼립스나 좀비 영화는 추천하지 않는 걸로 자기들끼리 결론을 내렸다.